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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532화 (532/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532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26)

강태산 이병도 옷을 벗고 세탁물을 꺼냈다. 팬티까지 자연스럽게 벗는 것을 보니 강태산 이병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듯 보였다.

그런 모습을 최강철 일병이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강태산 이병이 슬쩍 두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뭐, 뭐 보십니까.”

“야, 강태산…… 뭐냐?”

“네?”

“너 뭐냐고.”

그러자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뿌듯한 자신감이 오르며 말했다.

“그렇죠. 이해합니다. 제가 한 사이즈 합니다.”

“지랄하지 말고, 너 뭐냐 말이야.”

“도대체 뭘 말씀하시는 것인지…….”

강태산 이병이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최강철 일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너 진짜…… 속옷에 이름 안 적었어?”

“속옷에 이름을 왜 적습니까?”

“인마, 당연히 속옷에 이름을 써야지.”

“네?”

강태산 이병은 최강철 일병이 말하는 의도를 전혀 몰랐다.

“야, 멍청아. 이름을 써야 해. 내 거 봐봐.”

최강철 일병은 자신의 속옷을 꺼내 죄다 보여주었다. 그곳에 최강철 일병의 이름과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어?”

강태산 이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진짜입니까?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최강철 일병이 입꼬리를 올렸다.

“태산아, 주위를 한번 쭉 둘러봐. 다들 속옷 색깔이 어떤지.”

강태산의 그 말에 옷을 갈아입는 소대원들을 봤다. 대부분 한 가지 색으로 통일이 되어 있었다. 바로 국방색 속옷들만 있었다.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속옷도 확인했다.

“어…….”

“설마 이제 눈치챈 것은 아니지.”

“그, 그게 말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이런 답답아. 그래서 다 똑같으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

“…….”

강태산 이병이 입을 다물었다. 최강철 일병이 피식 웃으며 맞은편에 있는 이은호 이병을 불렀다.

“은호야.”

“이병 이은호.”

“은호 넌 속옷에 이름 다 적었지?”

“네, 여기 다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맑은 미소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속옷을 보여줬다. 그곳에는 ‘은호’, ‘은호 꺼’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강태산 이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후, 전 진짜 저렇게까지는 못하겠습니다.”

“못 하기는 왜 못 해! 아무튼 괜히 잃어버리기 전에 속옷에 이름 꼭 적어놔.”

“…….”

강태산 이병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식으로 소심한 반항을 해보았다. 하지만 최강철 일병의 강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메인 펜으로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저히 크게는 못 적을 것 같았다.

‘우씨, 내가 이렇게까지 하려고 군대 온 거 아닌데. 아버지…… 아들이 이렇게 군생활 합니다.’

강태산 이병이 거의 울먹이며 속옷에 이름을 적었다. 그렇다고 크게 적지는 않았다. 구석에 작게 자기 이름을 적었다.

[강태산]

그렇게 빨랫감이 나오고 세탁기로 가서 빨래를 돌렸다. 약 두 시간이 흐른 후 구진모 상병이 말했다.

“야, 빨래 널었냐?”

“지금 갈 생각입니다.”

“빨리 가.”

“은호, 태산이 세탁실로 가서 빨래 널고 와.”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재빨리 내무실을 빠져나갔다.

세탁실로 가서 세탁물을 꺼내 큰 대야에 담았다. 그걸 들고 건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각 중대, 소대로 나뉘어 빨래를 건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은호 이병이 빨래를 가져와 그곳에 널었다.

“야, 태산아.”

“이병 강태산.”

“너, 속옷에 이름 안 썼어?”

“저 말입니까? 썼습니다.”

“진짜?”

“작게 썼습니다.”

“작게 썼어? 그러다가 누가 네 거 가져가면 어쩌려고.”

“에이, 이은호 이병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진짜, 속옷을 누가 훔쳐간단 말입니까. 군대에서…….”

강태산 이병은 자기보다 2개월 빠른 이은호 이병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짝 면박을 주는 식의 말투를 내뱉었다. 정작 이은호 이병은 그런 말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다 널었으면 가자.”

“네.”

이은호 이병이 빈 대야를 들고 갔다. 그 뒤를 강태산 이병이 따랐다. 강태산 이병이 건조실을 나가려다가 순간 발길을 멈추고 건조대를 힐끔 바라봤다.

“에이, 설마…….”

강태산 이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건조실을 나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후, 다시 건조실로 갔다.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가기 위해서였다.

최강철 일병과 이은호 이병, 강태산 이병 이렇게 세 명이서 갔다. 한 창 빨래를 걷던 강태산 이병의 눈이 커졌다.

“어?”

짧은 탄식에 최강철 일병이 물었다.

“왜 그래?”

강태산 이병이 놀란 눈으로 최강철 일병을 봤다.

“제 속옷이…… 제 속옷이 사라졌습니다.”

“뭐? 잘 찾아봐. 어디 떨어져 있겠지.”

최강철 일병의 말에 강태산 이병이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그런데 그곳 어디에서도 속옷이 발견되지 않았다.

1소대 내무실로 최강철 일병과 이은호 이병이 빨래를 들고 들어왔다.

“빨래 찾아가십시오.”

“아싸, 빨래 왔다.”

“아, 뽀송뽀송한 빨래가 왔습니다.”

고참들은 자신의 빨래를 찾아 관물대에 넣었다. 그러다가 한태수 일병이 주위를 확인하며 물었다.

“왜 너희 둘만 오냐? 태산이는?”

“태산이는 건조실에서 팬티를 찾고 온다고 합니다.”

“팬티? 팬티를 왜?”

“팬티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잃어버렸어?”

“네. 그렇습니다.”

“이름은? 이름 안 적었대?”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걸 가져갔어?”

“그런데 한 귀퉁이에 작게 적었다고 합니다.”

“으구, 쯧쯧쯧.”

구진모 상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자기 빨래를 관물대에 다 정리한 김우진 병장이 한마디 했다.

“아직도 이런 군인들이 있어요. 세상이 흉흉해지려고 해. 아직까지 도둑놈들이 들끓는 군대! 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뒤늦게 소식을 듣고 들어온 이해진 상병이 다가와 최강철 일병에게 말했다.

“태산이 이름 적었다며.”

“네. 적었습니다.”

“그런데도 가져갔대?”

“네. 그런데 알고 보니 귀퉁이에 작게 적어놨다고 합니다.”

“아이고…….”

이해진 상병이 안타까워했다. 그때 내무실로 축 처진 어깨를 한 강태산 이병이 들어왔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돌렸다.

“강태산, 찾았어?”

“없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말을 하면서 씩씩거렸다.

“왜 그래? 뭘 그렇게 씩씩거리며 말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군대에서 팬티를 훔쳐갑니까. 이거 해도 너무하지 말입니다.”

그 순간 내무실에 있던 소대원들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핫!”

“순진한 녀석일세.”

“하긴 이등병이니까.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그러게 말입니다.”

모두 다 웃으며 얘기를 하자 당황한 쪽은 강태산 이병이었다.

‘뭐, 뭐지? 왜 다들 웃고 있지?’

강태산 이병 혼자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해진 상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래 군대는 그래. 한정된 보급품에 거의 대부분이 낡은 속옷을 입고 있잖아. 그러니 간만에 본 A급 속옷에 눈이 돌아갔겠지.”

“…….”

“다 그런 거야. 너만 당한 것도 아니고, 여기 몇몇 고참들도 당했어. 그나마 새 보급품을 받으려면 네가 아마 상병쯤? 아니지, 1년 지나면 그나마 속옷은 보급해 주지 말입니다.”

이해진 상병이 김우진 병장, 차우식 병장을 봤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1년 지나면 속옷은 보급해 주더라.”

“그럼 1년 동안 신교대에서 준 보급으로 버텨야 하는 겁니까?”

“그렇지.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래.”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은 황당하다 못해 당황에 물들어 있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강태산 이병은 지금의 현실을 믿기지 않는 듯 혼자 작은 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우진 병장이 말했다.

“야, 태산이 맛 갔다.”

“크크크, 그런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구진모 상병도 웃으며 말했다. 강태산 이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전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너도 훔쳐 와야지.”

“네?”

“뭘 놀라고 그래! 다들 그렇게 하고 살아. 자 볼래?”

구진모 상병이 자신의 속옷 하나를 꺼내 가져왔다. 그리고 메인 펜으로 구진모 상병의 이름과 이니셜이 적혀 있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 보이냐?”

“네,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인마, 거기 말고 여기!”

구진모 상병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새카맣게 칠이 되어 있었다.

“여기가 바로 너처럼 이름을 작게 적어 놓은 어떤 녀석의 것이지. 내가 메인펜으로 싹 없애고 내 이름으로 바로 갈아탄 거지.”

구진모 상병은 아주 자랑스럽게 자신이 속옷을 훔쳤다는 것을 자랑했다.

“그,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게 합니까?”

“인마, 누가 훔쳐갔는 줄 어떻게 알고! 그리고 우리 대대에 중대가 몇 중대인데…… 못 찾아. 못 찾아.”

구진모 상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꺼낸 속옷을 도로 관물대에 넣었다.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확히 말을 하면 자신이 입은 속옷은 절대로 찾지 못한다는 것과, 그 속옷을 누가 입는다는 것이었다.

“으윽! 어떻게, 남의 속옷을…….”

강태산 이병은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최강철 일병이 강태산 이병 옆으로 다가왔다.

“태산아.”

“최강철 일병님. 어떻게 그런 더러운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럴 거야. 군 생활 자체가 너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거지.”

최강철 일병이 애써 위로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태산 이병은 쉽사리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구진모 상병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다.

“야, 강태산! 정 그러면 행보관님께 가서 팬티 새것으로 달라고 그래.”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 그렇게 해도 됩니까?”

“그래, 빨리빨리 갔다 와. 나중에 보급품 없다고 그럴지도 몰라.”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앉은 최강철 일병을 바라보며 허락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습관적 허락을 받고 싶었다.

‘가도 됩니까? 저 지금 가고 싶습니다. 꼭 가게 해주십시오.’

강태산 이병은 눈을 크게 뜨며 강하게 요구를 했다. 그 눈빛을 본 최강철 일병은 순간 당황했다.

‘뭐, 뭐야. 이 강력한 눈빛은…….’

그러다가 최강철 일병이 번뜩하며 눈으로 사인을 줬다.

‘아니야. 아니야. 가지 마.’

강태산 이병이 멈칫했다.

“아, 아닙니까?”

그러자 구진모 상병이 인상을 썼다.

“야, 최강철!”

“일병 최강철.”

“너 새끼야. 그걸 알려주면 어떻게 해.”

“구진모 상병님 얘, 진짜 행보관님에게 갑니다.”

“가면 뭐?”

“그러면 혼납니다.”

“인마, 혼나라고 그러는 거잖아. 혼나라고, 그래서 다음에 안 잃어버리게 말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강태산 이병이 눈을 둥그렇게 뜬 채로 말했다.

“아, 행보관님께 찾아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구진모 상병이 다가왔다.

“태산아, 태산아. 아무리 그래도 생각 좀 해라. 너 말이야, 총을 잃어버렸어. 그런데 행보관님께 가서 ‘저 총 잃어버렸습니다. 새 총을 주십시오.’ 그러면 행보관님이 총을 주겠니. 아니면 너에게 기합을 줄 것 같니.”

“아!”

그 순간 강태산 이병이 깨달은 듯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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