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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531화 (531/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531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25)

“네. 행보관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페인트랑 다른 물품도 지원도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네네. 내일 중으로 내려갈 겁니다. 벌써 주문해 놨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행보관님.”

“네.”

“제가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이 기분 나쁘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체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민용기 상사는 말까지 조금 짧아져 있었다. 오상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무튼 행보관님 잘 부탁드립니다.”

오상진은 그래도 대대의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대대 행보관이니 나름 최대한 공손하게 부탁을 했다.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민용기 상사의 표정만 봐도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상진은 일단 더 말하지는 않았다. 민용기 상사가 오상진을 봤다.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아뇨. 나중에 하다가 필요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민용기 상사는 눈인사를 하고는 걸어갔다. 그리고 김도진 중사를 보며 낮게 말했다.

“따라와.”

민용기 상사가 김도진 중사를 이끌고 구석으로 갔다. 민용기 상사는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김 중사.”

“네.”

“너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예?”

“아니, 일 처리를 어떻게 하기에 소대장 나부랭이가 쇠파이프를 교체하라 말라 하냔 말이야.”

민용기 상사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김도진 중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민용기 상사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막말로 따지면 짬 싸움이었다. 계급으로는 밀리지만 짬에서는 솔직히 민용기 상사가 한참 앞섰다. 그래서 저렇게 기분 나쁜 표현을 거침없이 했다.

“김 중사. 안 그러냐고. 시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어디 소대장 따위가…….”

민용기 상사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김도진 중사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기서 오상진 편을 들 수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바로 배신자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되면 부사관들에게 왕따를 당할지도 몰랐다.

‘아놔, 이 양반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진짜 선배만 아니면…….’

김도진 중사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1소대장과 잘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면 됐죠?”

“그리고 말이야. 김 중사! 우리 부대가 어디 돈이 남아도나? 훈련비로 지출하는 돈이 어마어마해.”

‘요즘 훈련을 제대로 하긴 하나?’

김도진 중사는 연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용기 상사는 열을 내며 소리쳤다.

“사단에서 어디 뭐, 지원이나 제대로 해주는 줄 알아? 이건 어디 들어가고? 이건 또 어디에 쓰는 거냐며, 꼬치꼬치 캐묻는데 나도 돌아 버릴 지경이라고. 이것도 말이야, 다 내 주머니 털어서 보수공사하게 생겼는데 지금 저걸 다 교체를 하자고? 그러면 돈이 배는 들어가, 배는! 야, 오상진 중위 제발 좀 아무것도 모르면 철 좀 들라고 해. 철 좀!”

“네, 알겠습니다.”

김도진 중사는 빨리 대답을 하고 민용기 상사에게서 벗어났다. 그 길로 오상진에게 갔다.

“소대장님.”

“네, 행보관님.”

오상진은 간판 중에서도 유독 녹이 잔뜩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뚝 부분에는 녹 때문에 삭은 것도 보였다.

“와. 녹 제거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녹 제거가 될 것 같습니까?”

오상진이 오히려 물었다. 김도진 중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소대장님. 사실 이런 말씀 드리는 저도 솔직히 싫습니다. 그런데 부대 사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자금도 빠듯하고 말입니다. 이거 다 한다고 하면 대대장님께서도 허락을 안 해주실 겁니다.”

“그럼 이걸 재활용해야 한다는 겁니까? 이거 좀 너무한다고 생각 드는데…….”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김도진 중사가 사정했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 주시죠. 다음번에 사정이 더 좋아지면 그때 교체하는 걸로 하시죠. 지금 사단장님 새로 오시고 이런 문제로 사단 시끄러워져 봤자 좋을 건 없지 않습니까.”

김도진 중사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 오상진도 가만히 생각을 했다.

‘김 중사님 입장도 생각을 해야 하고, 그렇다고 이런 상태로 그냥 하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인데…….’

오상진은 생각을 한 끝에 어느 정도 절충안을 제시했다.

“알겠습니다. 전부 다 교체는 힘들고, 몇 개만 교체하죠.”

“몇 개 말입니까?”

“네. 이거 보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교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저기 부식이 되고, 삭았습니다. 그냥 툭 건드려도 넘어갑니다.”

오상진이 부식되고, 삭아진 곳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쇳가루가 우두둑 떨어졌다. 김도진 중사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것은 교체하는 걸로 하고 나머지는 재활용하는 식으로 가죠.”

“감사합니다.”

“에이, 제가 감사인사 받을 것이 됩니까. 사정을 이해해 주신 소대장님께 감사를 드려야죠.”

“아닙니다. 제가 부대 사정도 모르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또 우리 소대장님 이런 식으로 나오니 제가 더 민망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여기서 서로 그만둡니까?”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오상진과 김도진 중사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자리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본 두 사람은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났다. 오상진 역시도 몸을 돌려 다른 곳을 살피러 움직였다.

그런데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바로 장석태 중위였다.

“오오, 오 중위.”

“어? 장 중위님. 안녕하셨습니까.”

“저야 안녕하죠. 그런데 오 중위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장석태 중위가 가까이 다가왔다.

“제 표정이 안 좋습니까?”

“네, 아주 사람 다 죽어가는 얼굴입니다.”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장석태 중위가 다시 물었다.

“진짜 표정이 왜 그럽니까?”

“별거 아닙니다.”

“에이, 또 왜 그럽니까. 여자 친구랑 잘 안 됩니까?”

“여자 친구랑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참 너무하네.”

“네?”

“여자 친구랑 그리 잘되면 그 뭐냐, 새끼도 좀 치고 그래야지. 인간미가 넘치지. 혼자 그렇게 재미나면 진짜 너무한 사람입니다.”

장석태 중위가 너스레를 떨었다. 오상진은 살짝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

“전 말입니다. 오 중위가 언제 새끼를 치나 기다리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잘되고 있으면서 새끼를 안 쳤다고? 생각해 보니 내가 더 억울하잖아.”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오상진은 이내 피식 웃었다.

“그건 제가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물어보겠습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됩니까?”

“아, 이상형. 예쁘면 됩니다.”

장석태 중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되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쁘면 된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자고로 예뻐야죠.”

“예쁘기만 하면 됩니까? 나이는 상관없습니까?”

“어릴수록 좋죠. 안 그렇습니까?”

“아……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오상진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장석택 중위는 사람 좋은 미소로 입을 뗐다.

“왜 그러십니까. 모든 남자들이라면 응당 원하는 거 아닙니까? 그중에서 내가 솔직하게 말한 거고 말입니다. 어? 뭡니까? 그런 시선으로 보면 난 좀 억울한데.”

“내 시선이 어때서 그럽니까?”

“봐봐, 이런 시선! 마치 날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막말로 오 중위야말로 어리고 예쁜 여자 친구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 중위는 되고, 나는 안 됩니까. 이거 완전히 내로남불 아닙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뭐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이번 얘기는 끝이 났고, 그보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장석택 중위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

오상진은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 살짝 인상을 썼다. 장석택 중위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사실 조금 전 민용기 상사랑 얘기를 나누는 것을 봤습니다.”

“아, 보셨습니까?”

“딱히 집중적으로 본 것은 아니고, 그냥 다른 일을 확인하다가 슬쩍 봤습니다. 왜? 뭐라고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보수공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도 그 보수공사 때문에 확인 차 와 있고 말이죠.”

“네. 지금 현재 보니까, 유격장 코스별 간판들이 전부 철로 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그 와중에 부식이 된 것과 삭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전부 새것으로 교체를 하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합니까?”

“네.”

“그렇다는 말이죠? 하나도 교체 안 된다고 합니까?”

“네. 뭐, 우리 중대 행보관하고는 일단 너무 부식이 심한 것은 교체를 하는 쪽으로 하자고 얘기가 되었지만…….”

“중대 행보관하고만 얘기가 되었지, 대대 행보관인 민용기 상사하고는 얘기가 안 되었다는 거죠?”

“네. 지금 현재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민용기 상사가 압력을 넣은 것 같습니다.”

“아, 민 상사 그 양반 참…….”

“대부분의 행보관들은 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를 해야죠. 어쩌겠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오상진은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장석태 중위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이상했다.

“참, 그런데 장 중위님은 왜 여기에 계십니까? 보수공사 하러 오신 것은 아닐 테고…….”

오상진이 슬쩍 장석태 중위를 봤다. 그러자 장석태 중위가 히죽 웃었다.

“전 오 중위 보러 왔습니다.”

“네? 저를 말입니까?”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장석태 중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농담이고. 그냥 보수공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 차 온 것입니다. 과장님께서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은 낮게 말했다. 오상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구나.”

“네. 뭐 지금 확인 다 했고, 그럼 전 이만 가볼 테니까. 오 중위도 고생하십시오.”

“네. 수고하십시오.”

장석태 중위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오상진과 멀리 떨어지자 그렇게 해맑게 웃던 장석태 중위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그런데…… 고작 간판 교체 건으로 장난을 쳐? 민용기 상사도 은근히 간이 작네.”

장석태 중위가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1소대로 복귀를 한 소대원들은 유격장에서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와, 오늘 너무 찝찝합니다. 이럴 때 샤워가 딱인데.”

구진모 상병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때 한태수 일병이 말했다.

“오늘 저희 소대 세탁기 돌리는 날입니다. 모두 빨래하실 것 있으면 내놓으시지 말입니다.”

“벌써 그래?”

“알았다.”

“야, 누가 양말 벗어서 내놓는 놈 있으면 혼난다.”

“속옷까지는 괜찮지 말입니다.”

“그래. 대신 이름 철저히 적어놔라. 안 섞이게 잘하고!”

“넵 알겠습니다.

그러자 관물대 구석에 박아두었던 전투복이랑 속옷들을 꺼내왔다. 조영일 일병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커다란 대야를 내무실 중앙에 놓았다.

그곳에 세탁물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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