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30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24)
“김 병장님. 확실히 해진이가 일을 잘합니다.”
“차 병장. 너도 그리 느꼈어? 확실히 해진이가 일을 잘해.”
“네.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으니까. 확인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야지. 가자고.”
두 병장이 천천히 산책을 하듯 유격장을 누볐다. 그사이 6코스에 온 이해진 상병이 말했다.
“여기 누구라고?”
“상병 구진모.”
“일병 노현래.”
두 사람이 나왔다. 이해진 상병이 코스별 간판을 확인했다. 바로 6코스 ‘5단봉 손 짚고 넘기’ 였다. 간판은 쇠로 되어 있고, 밑에는 콘크리트에 박혀 있어 뽑히지는 않았다. 다만 페인트가 벗겨지고, 벗겨진 부분에 녹이 있었다.
“자, 잘 들어. 일단 페인트를 잠시 후 나눠줄 사포로 긁어내면 된다. 녹도 긁어내고, 오늘은 그것만 하자.”
“네. 알겠습니다.”
1소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다들 달라붙어!”
“네.”
1소대원들이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야, 도구 빨리 가져와. 페인트를 빨리 긁어야 해.”
“네. 지금 가져가겠습니다.”
최강철 일병과 강태산 이병 역시 자리를 잡았다. 안전수칙 간판과 코스가 적힌 간판이 보였다. 강태산 이병이 그 간판을 보며 입을 열었다.
“군인이 이런 것도 합니까?”
“당연하지. 놀고 있는 공짜 인력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그냥 두겠냐.”
“와, 진짜 이런 것까지 하고…….”
“그럼 군인이 총만 들고 싸울 것 같았냐?”
“그건 아니지만…….”
강태산 이병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훈련만 할 줄 알았지, 이런 것을 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잔말 말고, 빨리 간판 페인트나 벗겨!”
“네.”
강태산 이병이 인상을 쓰며 페인트를 벗겼다. 그사이 김도진 중사가 필요 물품을 확인했다.
“이야, 아무래도 국방색이랑 흰색 페인트가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그래야 할 듯합니다.”
오상진과 김도진 중사는 유격장 코스를 돌며 확인을 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3년이나 방치를 했더니 영 아닙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죠. 이제 사단장님도 바뀌었고, 새롭게 단장을 해야죠.”
“뭐, 매번 있는 일이니까요. 그보다 요즘 왜 놀러 안 옵니까? 저의 믹스커피가 그립지 않았습니까?”
“왜 아니겠습니다. 엄청 그리웠죠.”
“그런데 왜 놀러 안 옵니까?”
“죄송합니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누가 우리 소대장님을 정신없게 합니까?”
“뭐. 꼭 누구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대 일은 소대장님이 다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십니까?”
오상진의 반문에 김도진 중사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이동을 했다.
최강철 일병과 강태산 이병은 열심히 페인트를 벗겼다. 그때 최강철 일병의 눈에 녹슨 곳이 보였다.
“태산아.”
“이병 강태산.”
“너 저쪽에 녹 보이지.”
강태산 이병이 고개를 돌렸다.
“네. 보입니다.”
“그거 사포로 좀 쓸어라.”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은 신기하면서도 불만이 있었지만 최강철 일병의 말에는 그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 강태산 이병이 사포를 들고 녹을 쓸었다.
약 3분이 흘러간 후 갑자기 강태산 이병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얏!”
최강철 일병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뭐야? 왜? 어디 다쳤어?”
강태산 이병이 오른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했다. 최강철 일병이 당황했다.
“태산아, 다쳤어? 많이 다친 거야?”
최강철 일병의 물음에 강태산 이병이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최강철 일병님”
“그래 왜?”
“여, 여기 제 손이 까졌습니다.”
“뭐?”
순간 최강철 일병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은 마치 아빠에게 이르는 것처럼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 보십시오. 너무 쓰라려 죽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강태산 이병의 상처를 확인했다. 딱 봐도 약간 쓸린 정도였다. 크게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은 너무도 아프다는 듯 울먹였다.
“흐흑, 아파. 너무 아픕니다. 이런 상처는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최강철 일병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프냐?”
“네. 정말 아픕니다.”
“야이씨, 이게 아파? 그냥 조금 쓸린 건데?”
“이거 진짜 아픕니다.”
강태산 이병은 진짜 눈물까지 흘렸다. 최강철 일병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태산아, 널 어쩌면 좋니.”
최강철 일병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때 김우진 병장이 마침 다가왔다.
“뭔데? 왜 그래?”
최강철 일병이 바로 말했다.
“태산이가 사포질하다가 좀 쓸린 모양입니다.”
“그래? 그거 가지고 아파해?”
“네.”
김우진 병장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산아.”
“이병 강태산.”
“이리와.”
강태산 이병이 김우진 병장에게 갔다. 김우진 병장은 곧바로 강태산 이병을 달랬다.
“우리 태산이 아팠어? 어느 정도 아팠어? 와, 많이 쓸렸네. 이 형이 약 발라 줄까?”
“약 있습니까?”
강태산 이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김우진 병장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약? 네 눈에는 약이 있을 것 같냐?”
“네?”
“약이 있을 것 같냐고.”
“어, 없습니까?”
강태산 이병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 김우진 병장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와, 이런 정신병자를 봤나. 야, 강태산!”
“이병 강태산.”
그래도 꼬박꼬박 관등성명을 댔다. 김우진 병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았어?”
“네.”
“그럼 죽어.”
“네?”
강태산 이병의 눈이 커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죽으라고, 새끼야. 그리 아프면 죽어!”
김우진 병장이 바로 태도를 바뀌며 윽박질렀다. 강태산 이병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김우진 병장이 슬쩍 보더니 말했다.
“그리고 분대장이 있는데, 쉬고 있다는 거네?”
“아, 아니……. 조금 전까지 사포질을…….”
“시끄럽고! 최강철.”
“일병 최강철.”
“엎어!”
최강철 일병이 곧바로 엎드려뻗쳐를 했다. 그 모습을 보는 강태산 이병은 당황했다. 김우진 병장이 최강철 일병에게 갔다.
“신병 교육 똑바로 안 가르치지.”
“아닙니다.”
“신병 손이 아주 금손이라 조금의 상처도 용납이 안 되나 봐.”
“아닙니다.”
“신병이 잘못했는데 널 엎드려뻗쳐 시켜서 기분 나쁘냐?”
“아닙니다.”
“넌 아닙니다밖에 할 줄 모르냐.”
“아닙…… 그렇지 않습니다.”
“어쭈 말 바꾸는 거 보소. 내가 만만하냐?”
“아닙니다.”
“또 아닙니다? 그래서 신병 교육 잘 시키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잘해!”
“넵!”
“원위치!”
최강철 일병이 바로 벌떡 일어났다. 강태산 이병은 주눅이 든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김우진 병장의 시선이 다시 강태산 이병에게 향했다.
“그래서 우리 태산이. 아직도 많이 아파?”
“아, 안 아픕니다.”
“그렇지, 하나도 안 아프지?”
“네. 그렇습니다.”
“이봐, 이봐. 이렇게 내가 명의야. 명의! 손도 안 대고 치료를 해버리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차우식 병장이 입을 뗐다.
“김뱀, 이제 그만 하십시오. 우리 할 일도 있는데…….”
“그럴까?”
김우진 병장이 최강철 일병에게 향했다.
“똑바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몸을 돌렸다. 차우식 병장과 함께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두 사람이 내려가고 최강철 일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강태산 이병이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최강철 일병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됐어. 일이나 해.”
“그, 그래도…….”
“됐다고, 가서 일해.”
최강철 일병의 호통에 강태산 이병이 움찔하며 옆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 사포로 문지른 곳을 다시 쓱싹 문질렀다. 그러면서 힐끔 최강철 일병을 바라봤다.
“일하자고!”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강태산 이병은 오른손 손바닥의 아픈 상처도 기억 속에서 사라진 후였다. 그러면서 잔뜩 미안한 얼굴로 최강철 일병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김우진 병장과 차우식 병장은 이동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김뱀.”
“응?”
“어디서 저런 녀석이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식아.”
“네.”
“저 녀석 진짜 재벌 2세 아니냐?”
“예?”
“조금 전에 손을 봤는데 고생을 하지 않은 손이야. 곱상한 것이……. 왠지 진짜 잘 사는 것 같은데.”
“에이, 재벌 2세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래서 제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말뚝 박고 저 녀석 커버쳐 주시려고 그러십니까?”
“으음, 저 녀석이 진짜 재벌 2세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김우진 병장이 슬쩍 본심을 드러냈다. 차우식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엊그제 행보관님이 ‘말뚝 박을래’ 물어봤을 때 성질내시지 않았습니까.”
“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만약 재벌 2세라면 진짜 고민되는데.”
“정말입니까?”
차우식 병장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김우진 병장은 정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진짜야.”
“헐…….”
차우식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김우진 병장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그런데 말이야. 누군가 10억 줄 테니까. 군대 한 번 더 갈래? 이렇게 물어봐.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당연히 거절하지 말입니다. 미쳤다고 군대를 두 번 갑니까?”
차우식 병장이 버럭 했다.
“그렇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말이야. 나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봤다. 10억이야, 10억! 눈 딱 감고 24개월만 고생하면 돼. 그럼 제대할 때 10억이 들어와! 난 솔직히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차우식 병장이 눈을 크게 하며 김우진 병장을 봤다. 김우진 병장의 진지한 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김뱀이 낯섭니다.”
“야, 진짜 생각해 보라니까. 10억이야. 10억! 네가 평생 동안 그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아, 모르겠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니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다음 코스로 이동을 했다.
오상진은 김도진 중사와 함께 코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오상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김도진 중사가 슬쩍 보면서 물었다.
“어디 기분 안 좋으십니까?”
“아닙니다.”
오상진은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대대 행보관인 민용기 상사가 나타나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오상진이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오, 1소대장님.”
“지금 뭐 하시고 계십니까?”
“지금 간판 쇠로 다 되어 있어서 교체 작업을 할 것은 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선별 작업 중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저도 쭉 훑어봤는데 제법 교체할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교체요?”
“네. 안 보셨습니까?”
민용기 상사가 슬쩍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