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29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23)
“그럼 됐지? 2주 동안 3개 중대가 하는 거니까 충분할 것 같은데.”
“네, 알겠습니다.”
김도진 중사가 대답을 했다. 어느 정도 회의가 끝나 갈 때쯤 3중대 행보관이 손을 들었다.
“대대 행보관님. 그럼 보수 지원금 내려옵니까?”
“야, 바보냐? 그딴 것이 제대로 나오겠어?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주겠니? 게다가 대대 예산도 이미 다 책정되어서 뺄 구멍도 없어.”
민용기 상사는 이미 선수를 쳐서 대대 예산에서 돈을 빼 주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이래저래 막막한 것은 중대 행보관이었다.
“하아, 미치겠네. 보수 지원금도 안 나오면 우리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그걸 왜 나에게 말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중대에 돈 있잖아. 잘 활용해 봐.”
김도진 중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의 시선은 민용기 상사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도진 중사가 손을 들어 말했다.
“왜?”
“솔직히 유격장을 보수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여기는 막말로 지원을 해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희 중대 지원비로 모자랍니다.”
3중대, 5중대 행보관도 동조를 했다. 민용기 상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세 사람을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내가 지원 안 해준다고는 안 했잖아. 해줘, 다만 그리 많지는 않다는 거지. 그 점을 미리 말해주는 거야. 너희도 알다시피 대대 예산이 그리 많지가 않아.”
민용기 상사도 죽겠다는 듯 말했다.
“아무튼 빠듯한 살림에 어떻게든 쪼개서 지원해 줄 테니까. 그리 알아. 그보다 유격장 보수한 지가 얼마나 되었지?”
“아마, 3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참내. 사단장님 진짜 별거 다 아시네.”
민용기 상사는 한종태 대대장에게 미리 언질받은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김 중사 말은 페인트칠도 하고, 부서진 것도 보수하고 그러자 말이지?”
“네. 저도 확인을 해보니, 유격장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지난번에도 장애물 코스 하다가 다친 병사도 있었고 말이죠.”
“나 참.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 알았어, 그렇게 진행해야지 어쩌겠어.”
민용기 상사는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래저래 예산을 뽑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하하핫. 시가진 전투장도 포함시켜야겠지. 이참에 모든 훈련장을 다 보수해야겠다.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알겠지만……. 이번에 제법 뽑아 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군수과 회의를 마친 후 각 중대 행보관은 중대로 향했다. 김도진 중사도 곧장 김철환 1중대장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똑똑.
“들어와.”
김도진 중사가 들어가자 김철환 1중대장의 눈이 반짝였다.
“어? 행보관. 어쩐 일이야?”
“충성.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래. 거기 앉아.”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를 권했다. 김도진 중사가 자리에 앉았다. 김철환 1중대장도 바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무슨 보고?”
“이번 보수공사 말입니다.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아, 또 보수공사? 행보관이 고생이 많아.”
“그럼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네.”
김도진 중사가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김철환 1중대장도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반으로 향했다. 행정반 문을 열자 각 소대장들이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흐흠!”
김철환 1중대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소대장들 모두 고개를 들어 김철환 1중대장을 확인했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충성.”
“그래, 수고가 많다. 중대장이 행정반에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보수공사 때문에 그렇다. 우리 1중대가 맡은 보수공사 구역은 유격장이다.”
“유격장입니까?”
“와, 하필 가장 빡센 곳을 우리가 담당합니까.”
소대장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이 뱉어냈다. 오상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야, 인마. 뭘 그렇게 투덜거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설마 우리 혼자 하는 겁니까?”
“그 넓은 유격장을 어떻게 우리 1중대만 해.”
“그럼 어느 중대가 합니까?”
“일단 우리 1중대, 3중대, 5중대 이렇게 함께 움직인다.”
그러자 4소대장이 바로 인상을 쓰며 혼잣말을 했다.
“아, 왜 하필, 3중대랑 5중대야.”
그때 이미선 2소대장이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
“그런데 우리 3중대랑 5중대랑 사이 안 좋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런 철없는 질문에 3소대장이 바로 답했다.
“그건 아니고, 3중대장님이 은근히 라이벌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자 4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무슨 라이벌 의식입니까. 어차피 한 번도 못 이겼는데.”
3소대장도 피식 웃었다.
“뭐, 그렇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5중대는 어떻게 됩니까?”
이번에도 3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뭐, 좋게 말하면 5중대장님과 3중대장님이 엄청 친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5중대장님이 3중대장님을 무척이나 잘 따릅니다.”
그 소리에 이미선 2소대장이 바로 이해를 했다.
“아…….”
그러면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3소대장에게 말했다.
“설마 3중대장님 수하?”
3소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미선 2소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5중대장님 지난번에 봤을 때는 그런 분으로 안 보이던데…….”
“네? 지난번에 언제 봤습니까?”
“아, 그냥 예전에 지나가다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5중대장님이 생긴 거만 그렇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현재 이미선 2소대장이 본 5중대장은 나름 잘생긴 축에 들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중대장의 수하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아닐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아, 네에.”
3소대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튼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각 소대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오상진도 1소대로 갔다.
“얘들아.”
“충성.”
“얘기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보수공사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입니까? 작년에는 시가전 훈련장이었는데 말입니다.”
김우진 병장의 말에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시가전 훈련장이 아니다. 유격장이다.”
“네? 유격장 말입니까? 거기 엄청 넓습니다.”
“알아! 그래서 우리 중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3중대랑 5중대도 함께 한다.”
“그럼 뭐 다행이고 말입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총 2주간 진행되니까. 널널하게 할 수 있을 거다. 그전에, 우진아.”
“병장 김우진.”
“미리미리 준비도 해놓고. 그 뭐냐, 사포도 많이 챙겨놓고, 페인트나 붓은 지원해 주니까. 확인하고!”
“네.”
“그리고 장애물 코스마다 있는 팻말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것도 페인트칠해서 새롭게 박아 놔야겠다. 저번에 보니까, 나무가 썩어 있더라. 툭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래, 다들 고생들 해보자. 어쨌든 우리가 맡은 일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들 하고.”
“넵!”
오상진이 내무실을 나가자 곧바로 김우진 병장이 불만을 터뜨렸다.
“젠장! 말년에 보수공사라니. 내가 보수공사를 해야겠냐?”
“어쩌겠습니까.”
구진모 상병이 말했다. 그러다가 김우진 병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차 병장이랑 나는 살살할 테니까. 그래, 해진아.”
“상병 이해진.”
“다음 분대장이 너잖아. 그러니 이참에 네가 책임지고 이번 보수공사 진행해 봐.”
“제가 말입니까?”
이해진 상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김우진 병장은 귀찮은 일을 떠넘길 상대를 발견하고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그래. 이제 너도 서서히 준비를 해야지. 안 그래?”
“…….”
이해진 상병이 말이 없었다.
“뭐야? 왜 입을 다물고 있지? 하기 싫어?”
“아닙니다.”
“그래 한번 해봐.”
“네. 알겠습니다.”
“그래.”
김우진 병장이 환하게 웃었다. 이렇듯 김우진 병장은 분대장 견장을 찬 지 한 달 만에 실권을 이해진 상병에 넘길 준비를 했다. 그런데 차우식 병장이 슬쩍 말했다.
“우리 이렇게 해도 됩니까? 제대하려면 멀었지 않습니까.”
“야, 해진이도 미리미리 해봐야지. 우리가 이런 거 안 해주면 언제 해보겠냐. 게다가 다음 달이면 춘계 진지공사도 있잖아. 이렇듯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지. 우리 얼마나 남았다고. 안 그래? 그리고 너랑 나랑 지금부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해.”
그러자 차우식 병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김 병장님. 지금 3월입니다. 떨어질 낙엽이 어디 있습니까?”
“야, 인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하늘에서 눈 내리는 것도 조심해야 해. 그 안에 우박이라도 내릴지 말이야.”
“에이, 설마 무슨 우박입니까.”
“그 설마가 우리 말년 병장들을 잡는 거야. 조심할 때는 조심해 줘야 해.”
김우진 병장은 엄청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차우식 병장은 별로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런 의미에서 해진아.”
“상병 이해진.”
“이번 보수공사 네가 애들 잘 이끌고 열심히 해봐. 물론 우리도 뒤에서만 있진 않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자, 얘기 들었지. 움직이자. 일단 전부 창고로 가서 장비들 챙겨라.”
“네. 알겠습니다.”
1소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둘 내무실을 빠져나갔다.
유격장으로 육공트럭이 도착을 했다. 조수석에서 오상진이 내렸다.
“자, 도착했다. 모두 내려라.”
박중근 중사가 차량 뒤에서 내렸다. 곧바로 1소대가 내렸다. 오상진이 1소대로 갔다.
“자, 우리가 할 코스는 제1코스부터 6코스까지. 나머지는 3중대와 5중대가 하기로 했다.”
“네.”
“일단 오늘은 페인트부터 긁어내고,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부터 해주기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의 지시를 받은 1소대가 재빨리 움직였다. 그 속에서 이해진 상병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6코스까지 각자 구역 나눠서 출발해.”
게다가 이해진 상병은 직접 지정을 해줬다.
“진모랑 현래는 6코스 가고, 태수랑 주영이는 5코스, 영일이랑 나랑은 4코스, 강철이랑 태산이는 3코스, 그리고 두 병장분은 천천히 산책이나 하시면서 부서진 곳이나 보수할 곳이 있는지 체크해 주십시오.”
그 말에 김우진 병장과 차우식 병장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야, 우리 해진이. 잘한다.”
“자식! 당연히 그래야지.”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그런 다음 또 뭐 할까?”
“그다음은 그냥 쉬십시오.”
“우리 쉬어도 돼?”
“네. 오늘은 그렇게까지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어차피 2주의 시간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알았다.”
김우진 병장과 차우식 병장은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