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28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22)
한대만의 표정을 알아차린 오상진은 일부러 더 환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그렇게 하세요. 가족끼리 돕는 거라고 했잖아요. 전 가족 아닙니까?”
“사, 상진아…….”
한대만이 고개를 들었다.
“저, 우리 소희 씨랑 결혼할 겁니다. 다른 여자는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저 가족 맞는 거죠?”
이번에는 한소희가 고개를 들었다.
“상진 씨…….”
그녀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사실 한소희도 큰 오빠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되레 자기가 나서면 모양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모질게 나섰던 것도 있었다.
“그러니까, 형님께서 받아주시는 겁니다.”
“처, 처남. 그렇고말고. 우리는 가족이 맞지. 내가 우리 상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한대만은 기분이 좋은지 처남과 상진이를 연달아 부르며 기뻐했다. 김소희도 솔직히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을 하면 부끄러웠다.
“처남! 내가 임대료는 확실히 밀리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당연하죠. 아무리 가족 사이라고 해도 그런 것은 철저히 해야죠.”
“와, 무섭다. 처남.”
“제가 그런 쪽으로는 철저한 편이라서…….”
“하하핫!”
한소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걱정 마요. 상진 씨. 제가 다 받아낼 테니까.”
“알겠어요. 미리내 빌딩은 소희 씨가 다 책임져요.”
“네!”
한소희 역시도 환하게 웃었다.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오상진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한소희가 한대만을 바라봤다.
“오빠, 진짜 임대료는 확실하게 내야 해.”
“인마, 당연하지. 어차피 장사도 잘될 텐데…….”
그때 김소희가 옆구리를 툭 찔렀다. 한대만이 움찔하며 바라봤다. 그리곤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그렇지만 좀 싸게 해주면 안 될까?”
그 모습을 보며 한소희가 말했다.
“으이구, 그렇게 살고 싶어?”
“원래 이렇게 살아야 가정이 화목해!”
“네네,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그리고 한대만과 다를 바 없는 오상진은 ‘허허’ 웃고 말았다.
장기준 사단장은 취임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시찰을 했다. 대대 시찰은 그 대대에 대한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을 하기 위함이었다.
“요새 충성대대는 어때?”
나종덕 비서실장이 바로 말했다.
“지난 번 사건 이후로 잘 하고 있고, 열심히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장기준 사단장은 충성대대뿐만이 아니라 여러 대대를 시찰했다. 게다가 여단까지 나가 확인했다.
그런데 충성대대 총기 사건이 모든 대대에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사실 장기준 사단장은 그런 모습을 보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지, 만약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에 따라 얘기를 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충성대대 때문인지 모든 일을 다 잘했다.
사단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단장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 열심히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독수리 훈련은 언제로 잡혀 있지?”
“올해는 5월로 잡혀 있습니다.”
“아직 멀었네.”
“요새 대대는 뭐 하고 있지?”
“겨울도 지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다들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 맞을 준비?”
“네. 부대 주변 보수할 것이 있으면 하고, 그 외 이것저것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 작업?”
장기준 사단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시각 한종태 대대장도 보수 작업에 관한 일정을 보고받는 중이었다. 보고자는 장석태 중위였다.
“현재 저희 대대 훈련장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훈련이 없는 지금 각 훈련장 보수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은 보고를 받는 내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래, 이건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훈련장 보수공사를 완벽하게 해서 사단장님께 눈도장을 받는 거야.’
“……이런 식으로 보수 작업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장석태 중위는 보고를 다 한 후 가만히 서 있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그래, 그래. 장 중위. 보고 잘했어. 당연히 훈련장 보수는 필수지. 암!”
“아, 네에…….”
장석태 중위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종태 대대장이 물었다.
“더 보고할 사항은?”
“없습니다.”
“알았어. 보수작업은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고. 대대 행보관 들어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민용기 상사가 들어왔다. 한종태 대대장이 바로 말했다.
“얘기 들었지? 이번에 훈련장 보수공사를 해야 할 판이야. 자네가 알아서 필요한 것 지원 좀 해줘.”
“보수공사 말입니까?”
“그래.”
“벌써 보수입니까?”
“뭐가 벌써야. 3월이야, 이제 준비를 해야지.”
“보통 이렇게 빨리하진 않습니다.”
“사단장님이 바뀌었잖아. 그분이 언제 시찰 도실지 모르는데 미리미리 해야지.”
민용기 상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예전처럼 각개전투장만 하면 됩니까?”
“아니, 거기하고, 유격장이랑 시가전 훈련장도 같이 해버려.”
“으음…… 거기까지 하려면 예산이…….”
민용기 상사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한종태 대대장이 물었다.
“왜? 예산이 없어?”
“아뇨, 예산은 맞추면 되지만…….”
“그러니까. 사단장님이 언제 또 내려오실지 모르니까. 이참에 제대로 하게. 그러니까, 빵빵하게 지원해 줘.”
“네, 알겠습니다.”
민용기 상사가 경례를 한 후 대대장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인상을 투덜거렸다.
“아, 젠장. 안 그래도 돈이 모자라는데……. 나보고 알아서 하라니. 나는 뭐 땅 파서 장사하나. 아니면, 내가 도깨비방망이라도 돼? 뚝딱하면 돈이 나오게.”
하지만 속은 달랐다.
‘가만, 이번 기회에 빵꾸 난 거 한번 메워봐?’
군수과로 온 민용기 상사는 곧바로 군수계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야, 그거 다 맞췄냐?”
“네. 다 맞췄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수공사 안 합니까?”
“야, 이 새끼 봐라. 너 다음 달 제대라고, 누구 엿 먹이려고 그러냐?”
“에이, 그런 거 아닙니다. 행보관님 왜 그러십니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않습니까.”
박 병장의 말에 민용기 상사의 얼굴을 와락 일그러졌다.
“뭐 자식아? 야, 뭐 해! 저 자식 잡아!”
그 소리와 함께 박 병장이 후다닥 일어나 도망을 갔다.
“아, 또 왜 그러십니까!”
“너 인마, 그 입이 방정이야. 입이! 아무리 말년병장이라고 해도 그래. 감히 내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용기 상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 군수과 전화가 띠리리 울렸다.
“어? 행보관님, 전화.”
“알아 인마. 어서 자리에 앉아. 받아!”
“넵!”
군수계원에 곧장 달려와 수화기를 들었다.
“통신보안, 충성대대 군수과입니다. 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 병장이 힐끔 민용기 상사를 봤다.
“누군데?”
“중대 행보관입니다.”
순간 민용기 상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놔. 뭔가 불안한데…….”
그러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누구? 이 중사. 그래. 왜? 회의? 누가? 김도진 중사가? 알았어.”
민용기 상사가 전화를 끊자마자 인상을 팍 썼다. 군수계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몰라 인마.”
“보수공사 때문에 내려오라고 하시죠?”
“자식이 역시 병장은 병장이네. 눈치가 빨라.”
“병장 중에서도 말년병장입니다. 눈치가 좀 빠릅니다.”
“어휴, 아무튼……. 시끄럽고. 어서 업무나 마저 봐.”
“넵!”
대대 식당으로 각 중대 보급관들이 나타났다.
“어? 김 중사 왔습니까?”
5중대 행보관이 먼저 알아봤다. 김도진 중사가 그를 보며 말했다.
“아, 왔어?”
“네. 그런데 우리 왜 모이는 겁니까?”
김도진 중사는 무슨 이유로 모이는지 알지만 모른 척했다.
“모르지 뭔 일인지.”
“아이씨, 또 이상한 일 시키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그러겠어?”
그리고 뒤늦게 대대 행보관인 민용기 상사가 나타났다.
“다들 잘 지냈어?”
민용기 상사의 반가운 인사에 각 중대 행보관들이 앓는 소리를 해댔다.
“아, 행보관님 저희 중대 보급 좀 해주십시오. 필요하다고 보고서를 올린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처리 안 해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 뭐였지?”
“행보관님!”
“알았어, 회의 마치고 올라가서 다시 확인해 볼게.”
민용기 상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하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그 외에도 여러 중대 행보관들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중대 지원비 보내준다고 해놓고선 이틀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입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지만 민용기 상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 내일 보내줘. 내일 내려갈 거야.”
“알겠습니다.”
“자자, 일단 다들 앉아.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니까. 민용기 상사는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뗐다.
“대대 지시사항이 떨어졌다.”
“뭡니까?”
“훈련장 보수공사를 해야 해.”
“뭐뭐 합니까?”
“시가전 훈련장, 각개전투장, 마지막으로 유격장까지.”
그중 눈치 없는 중대 행보관이 입을 열었다.
“어, 그럼 일이 제법 큰데 대대에서 지원 제대로 나옵니까?”
그 순간 민용기 상사가 인상을 팍 썼다.
“야! 우리 대대장 몰라? 지원을 제대로 해주겠어?”
“그럼 뭡니까? 맨땅에 헤딩하라는 겁니까?”
“인마, 우리 군인 아냐? 군인이 까라면 까야지. 뭔 말이 많아!”
“하지만 작업량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4중대 함 중사가 말했다. 함 중사를 보고 민용기 상사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럼 4중대는 못한다고 말한다.”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애들을 쥐어짜서라도 해. 기한은 1주일이면 되나?”
민용기 상사가 슬쩍 물었다.
“1주일 안에 어떻게 합니까? 2주는 잡으셔야죠.”
“그건 알아서 하고. 그럼 유격장은 1중대가 하면 되겠네.”
민용기 상사가 슬쩍 김도진 중사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민용기 상사는 김도진 중사를 엄청 싫어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유격장을 줬다. 그래서 그런지 바로 김도진 중사가 반응했다.
“각개전투장 주면 안 됩니까?”
민용기 상사가 인상을 썼다.
“야, 인마. 김 중사.”
“네.”
“넌 1중대 행보관이라는 놈이 책임 의식 좀 가져라.”
“보수공사랑 1중대랑 무슨 관계입니까?”
“왜 관계가 없어. 우리 충성대대의 탑인 1중대잖아. 그럼 뭐든지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냐. 제일 힘들고 잘할 수 있는 유격장을 해야지 맞지 않냐고.”
“…….”
민용기 상사는 한마디로 김도진 중사의 입을 다물게 했다.
‘와, 저 능구렁이.’
김도진 중사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민용기 상사가 인심 쓰는 듯 말했다.
“김 중사.”
“네.”
“유격장 1중대만 하라는 것이 아니야. 3중대랑 5중대도 함께 할 거야.”
그 순간 3중대, 5중대 행보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