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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521화 (521/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521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15)

“네, 최 중사입니다.”

-자네 지금 사무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대대장실로 오게.

“알겠습니다.”

최 중사는 전화를 끊고 뭔가 쎄한 느낌을 받았다. 휴대폰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시발. 도대체 어떻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 거야?”

눈을 좌우로 굴리던 최 중사가 다급히 대대장실로 갔다.

대대장실로 들어온 최 중사에게 한종태 대대장은 선택지를 내밀었다.

“이대로 헌병대 모든 조사를 받거나, 그게 아니면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거나. 자네가 선택하게.”

최 중사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 다른 부대 전출 가면 계속 군 생활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겁니까?”

“그건 자네 하기에 달렸지.”

“그럼 다른 부대로 가겠습니다.”

최 중사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한종태 대대장도 이런저런 얘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이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기에 최 중사는 앞엣것을 생략했다.

“알겠네, 그럼 나가보게.”

“네.”

최 중사는 잔뜩 굳은 얼굴로 대대장실을 나갔다. 한종태 대대장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헌병대 조사를 받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용히 말했다.

“자기가 한 일이 있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이대로 해결이 되는 건가?”

“일단 제가 한번 박대기 병장을 만나보겠습니다. 박대기 병장이 원하는 대로 했지만 나중에 딴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다짐을 받아 놓겠습니다.”

“그래. 가능하면 자네가 잘 해결하고. 헌병대에 힘 좀 써봐. 조사받고 잘 나오게끔 말이야. 괜히 헌병대 조사받다가 울컥해서 다 말해버리면 안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금요일에 복귀를 하자마자 헌병대로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부대로 복귀를 했다.

다시 하루가 지난 월요일 날 본부중대에 있던 최 중사는 바로 전출 명령을 받고 부대를 나섰다.

이미선 2소대장이 짐을 싸는 최 중사를 찾아갔다.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걱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최 중사가 멋쩍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원래 군 생활하다 보면 부대를 옮길 수도 있죠.”

“그래도, 서울도 아니고. 강원도로 가시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보다 앞으로 우리 이 소위님 못 봐서 어떻게 합니까.”

“왜 못 봅니까. 휴가 얻어서 보면 되죠.”

최 중사는 그런 이미선 2소대장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최 중사도 알고 있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자신을 이용해 먹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당해줄 만큼 이미선 2소대장과 나누는 사랑이 좋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궁지에 몰리고 나니 더는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잘 지내십시오. 다음에 볼 기회가 있다면 또 보는 거고 말이죠.”

그렇게 최 중사가 부대를 떠나갔다. 이미선 2소대장이 몸을 돌렸다.

“하아, 진짜……. 그거 하나 똑바로 처리 못 하고. 그나저나 이제 박대기를 어떻게 보지.”

이미선 2소대장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2소대에도 빠르게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뭐?”

“본부중대 최 중사 강원도로 전출 갔습니다.”

“강원도? 갑자기 그곳으로는 왜?”

“모르죠. 고향이 강원도라서 가는 것도 있고, 사고 쳐서 쫓겨났다는 말도 있고 말입니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래?”

한쪽에 앉아 조용히 듣던 박대기 병장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강인한 병장이 바로 물었다.

“박 병장님 어디가십니까?”

“화장실에.”

“정말 화장실 갑니까?”

“왜? 따라오게? 못 믿겠으면 따라오든가.”

“아닙니다. 다녀오십시오.”

강인한 병장은 휴가를 갔다가 잔뜩 멍이 든 채로 복귀한 박대기 병장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정말 화장실을 따라갈 수는 없는지라 박대기 병장이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화장실을 간다고 했던 박대기 병장이 몸을 돌려서 1소대로 향했다.

1소대로 당당히 들어간 박대기 병장이 김우진 병장에게 말했다.

“김 병장.”

“네?”

“부탁할 것이 있는데.”

“뭡니까?”

“은호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싶다.”

“은호랑 말입니까?”

김우진 병장이 슬쩍 이은호 이병을 봤다. 박대기 병장이 다시 말했다.

“잠깐이면 돼. 이야기하게 해줘.”

박대기 병장의 담담한 말에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이은호 이병에게 갔다.

“은호야.”

“이병 이은호.”

“박 병장이 너랑 할 말이 있다는데 괜찮겠냐?”

잠깐 생각을 하던 이은호 이병이 말했다.

“네. 저 이제 괜찮습니다.”

김우진 병장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 알았다. 그럼 가 봐.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소리치고.”

“네. 괜찮을 겁니다.”

이은호 이병은 그런 김우진 병장의 마음을 읽고 괜찮다고 거듭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대기 병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무실을 나섰다. 이은호 이병이 뒤를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온 박대기 병장이 이은호 이병을 봤다. 이은호 이병 역시 박대기 병장을 빤히 바라봤다. 예전에 잔뜩 주눅이 든 이은호 이병의 모습이 아니었다.

“은호야.”

“네. 말씀하십시오.”

이은호 이병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이은호 이병이 가소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바뀐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편으로는 이은호 이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도 이은호 이병처럼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 중사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쩌면 이은호 이병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은호 이병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해진 이은호 이병을 보니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미안한 행동을 했던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 지금 제대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네.”

“미안했다.”

“네?”

“미안했다고 인마. 물론 이런 말로 용서가 안 되겠지만 나도 내가 잘못한 거 반성할 테니까. 너도 남은 군 생활 열심히 잘했으면 좋겠다. 날 용서해 달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용서 안 해도 돼. 다만 너에게 사과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말이야. 그래서 그래.”

박대기 병장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이은호 이병이 얼떨결에 자신도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악수를 한 후 박대기 병장이 이은호 이병을 스쳐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은호 이병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김철환 1중대장은 각 소대장들을 중대장실로 불렀다. 한 주에 관한 훈련을 회의하는 자리였다.

“1소대장.”

“네, 중대장님.”

“이번 주에 수류탄 훈련 있는 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오상진의 얼굴의 급격히 굳어갔다.

“위에서는 이번에 수류탄 훈련 제대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일단 우리 1중대부터 시작해서 화기중대까지 이어질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대답을 했다. 다른 소대장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어리에 적어갔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 수류탄 교육 말이다. 당연히 1소대장이 진행하겠지?”

“제가 말입니까?”

“당연히 네가 해야지.”

김철환 1중대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중대장님 꼭 제가 해야 합니까?”

“왜? 하기 싫어?”

“사격이면 괜찮은데 수류탄 교육은 좀…….”

사실 오상진은 수류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 수류탄 사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수류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다.

“수류탄에 대한 알레르기라도 있어?”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지난번에 사격도 제가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 중대에 소대장이 저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긴 그렇긴 하지.”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수긍을 했다.

“그럼 누가 할래? 3소대장? 4소대장?”

두 사람이 호명되자 일제히 시선을 피했다. 오상진이 조용히 귓속말로 물었다.

“2소대장은 왜 말이 없으십니까?”

“2소대장? 그 짓을 했는데 교육을 맡기겠어, 내가?”

“중대장님.”

“왜?”

“중대장님께서 그리 티를 내면 이미선 2소대장이 많이 불편해할 겁니다. 당장 다른 부대 전출 보낼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할 수 있으면 했지. 그게 어디 말처럼 쉽냐?”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미선 2소대장을 그냥 편한 부하 장교로 대해 주십시오.”

“후우, 그래서 뭐? 이번 일을 이미선 2소대장에게 맡기라고?”

“네. 한번 의향을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보나 마나 하지 않겠다고 하겠지. 여자가 그걸 하겠니?”

김철환 1중대장은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오상진이 슬쩍 물어보라고 눈치를 줬다.

“어험, 2소대장.”

“네.”

“자네 수류탄 훈련 교관을 한번 해보겠나?”

“네, 저에게 기회를 주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교육해 본 경험은 있고?”

“네. 육사 때 다 배웠습니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래, 이미선 2소대장이 한번 해봐.”

“네, 감사합니다.”

이미선 2소대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오늘 회의는 끝마친다.”

소대장들이 다시 행정반으로 갔다. 가는 도중 3소대장과 4소대장이 다가왔다.

“2소대장 축하합니다.”

“나도 수류탄 훈련 교육 좀 해보나 했는데…… 완전히 뺏긴 모양입니다.”

4소대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제가 수류탄 교육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의욕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 스스로도 부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소대장으로써 뭔가 업적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오상진을 봤다.

“1소대장님,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아닙니다. 양보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오상진이 그리 말했지만 3소대장과 4소대장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뭐지? 또 육사 커넥션인가?’

오상진은 괜히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행정반을 나갔다.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오상진은 곧장 1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얘들아. 우리 수류탄 훈련 일정 나왔다. 내일 우리 1중대부터 시작해서 한 주 내내 할 거야. 참고로 교육 교관은 2소대장이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서 수류탄 훈련 안 받아본 사람, 거수! 아니다. 신교대 때 교육 다 받았지?”

“네. 그래도 자대배치받고는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1소대가 소리쳤다. 오상진은 김우진 병장을 봤다.

“김우진 분대장.”

“병장 김우진.”

“네가 애들 수류탄 훈련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숙지를 시켜놔.”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내일 1중대 전체 훈련이니까. 다른 소대에게 쪽팔리지는 않아야지.”

“책임지고 교육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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