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18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12)
“네? 부사관하고 말입니까?”
“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계급 차이가 있는데…….”
“남녀가 만나는데 그깟 계급이 문제겠습니까.”
3소대장의 말에 4소대장이 인상을 썼다.
“그런데 말이죠. 최 중사, 딱 봤을 때 영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건 진짜 극비인데, 사실 최 중사 깡패였다던 얘기도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신빙성 있는 제보입니다. 그러니 괜히 엮이지 마십시오.”
3소대장의 충고에 4소대장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진짜 답답하네. 네, 알겠습니다. 3소대장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제가 포기해야죠.”
그러는 사이 이미선 2소대장은 행정반을 나오자마자 인상을 썼다.
“아, 진짜. 눈치도 없이 만날 말을 걸어. 내가 놀아주니까. 만만해 보이나?”
이미선 2소대장이 중얼거리며 걸어가다가 맞은편에서 오상진이 걸어왔다.
“2소대장 어디 갑니까?”
“아, 예에. 본부중대에 볼일이 있어서 갑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니, 조금 전에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눈인사를 하며 중앙계단을 통해 본부중대로 올라갔다. 2층 계단을 밟던 이미선 2소대장이 힐끔 오상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흥, 뭐야. 언제 나 신경 썼다고. 그러게 내가 데이트 신청했을 때 받아주면 좀 좋아.”
이미선 2소대장은 혼자 딴생각을 했다.
“아니면 나에게 맘이 있나? 여자 친구랑 잘 안 되고 있나?”
오상진이 첫 관심을 보여주자 이미선 2소대장은 혼자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이씨, 지금 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돌려 다시 본부중대로 올라갔다. 본부중대 행정반을 지나 작전과 푯말이 걸린 사무실 앞에 섰다. 이미선 2소대장이 잠시 한숨을 내쉰 후 문을 열었다.
“어? 이 소위가 여긴 어쩐 일이지?”
장석태 중위가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최 중사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아, 최 중사 만나러 왔구나. 최 중사 잠깐 커피 한잔하러 나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장석태 중위가 말했다.
“금방 들어올 것 같은데 여기 앉으시죠.”
“아닙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거절을 한 후 작전과를 나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에 있어요!
또 읽었는데 답이 없었다. 이미선 2소대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짜 장난하나. 읽었으면 무슨 답이라도 줘야 할 거 아니야.”
이미선 2소대장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잠깐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창밖 휴게실 쪽 벤치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최 중사……. 지금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이미선 2소대장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는데 같이 있는 인물이 여군이었다.
“허…… 날 두고 딴 곳에 한눈을 판다 이거지.”
이미선 2소대장은 잔뜩 날이 선 표정으로 후다닥 내려가 휴게실 쪽으로 걸어갔다.
“최 중사.”
“어이구, 이 소위님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는데……. 바쁘십니까?”
이미선 2소대장의 말속엔 연락했는데 왜 답을 하지 않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최 중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아직 모르시는구나. 하긴 정식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이니까. 우선 인사라도 나누시죠. 이쪽은 이번에 충성대대로 부임한 김 소위님. 제가 김 소위님에게 부대를 안내해 주고 있었습니다. 김 소위님 인사하시죠. 이미선 소위입니다.”
김 소위가 고개를 돌리자 이미선 2소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미선 2소대장이 아는 얼굴이었다.
“어? 너, 너는…….”
김희진 소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야, 이미선 너 오랜만이다.”
최 중사도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 두 분 아시는 사이입니까?”
“네, 잘 알죠. 우리 둘이 동기입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다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희진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아까 얘기했잖아. 충성대대로 발령받았다고.”
김희진 소위가 환하게 웃었다. 이미선 2소대장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러니……. 어쨌든 환영한다.”
“그래. 고맙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빛에서 스파크가 뛰는 것은 왠지 몰랐다.
“그보다 월요일부터 출근인데 일찍 부대에 왔네.”
이미선 2소대장의 물음에 김희진 소위가 환하게 웃었다.
“으응, 미리 부대 좀 알아보려고. 다행히 최 중사님께서 안내를 선뜻 수락해 주셨고.”
“그러니?”
이미선 2소대장이 최 중사를 바라봤다. 최 중사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부대 구경은 다 끝난 거니?”
이미선 2소대장이 다시 물었다. 김희진 소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끝났어.”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아니, 최 중사님과 잠깐 휴식도 취할 겸 얘기 중이었지.”
“그러니?”
이미선 2소대장의 대답에 김희진 소위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가만, 미선아.”
“왜?”
“설마 최 중사님이랑…….”
그때 최 중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험, 김 소위님. 당분간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러자 김희진 소위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또 눈치 없이.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가는 길은 알고 있지?”
“당연하지. 그럼 월요일에 정식으로 인사 나누자.”
김희진 소위가 손을 흔들며 휴게실을 벗어났다. 그런 김희진 소위를 빤히 바라보던 이미선 2소대장의 시선이 최 중사에게 향했다.
“지금 뭡니까?”
“아, 미안합니다. 얘기하다 보니까, 문자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뭐하러 그런 소릴 하십니까!”
“뭘 말입니까?”
“우리 둘이…….”
“그럼 거짓입니까?”
“그건…….”
이미선 2소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최 중사는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약간 서운해지려고 합니다.”
“소문나서 좋을 것 없어서 그랬습니다.”
“아무튼 좀 그렇습니다.”
“그래도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뭐 어떻습니까. 게다가 김 소위님이 벌써 눈치를 채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 김 소위랑 별로 안 친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최 중사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도 잠시 이미선 2소대장에게 물었다.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월요일에 박대기 병장 휴가 나갑니다.”
“박대기가 휴가를 갑니까? 그 녀석 말년휴가 남아 있었습니까?”
“네! 10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4박 5일짜리로 다녀온다고 합니다.”
“4박 5일? 그걸 허락했습니까?”
“어쩝니까. 어제 와서는 답답해서 크게 사고 칠 것 같다고 협박을 하지 뭡니까. 그런데 어떻게 안 보내 줍니까.”
“하아, 그러시면 박대기 그 녀석에게 자꾸 끌려다니십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말입니까. 딱 눈빛을 보니 진짜 크게 사고 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휴가를 허락했습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후우, 알았습니다. 이미 결정 난 상황이고, 휴가는 월요일에 나간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말씀입니까?”
최 중사가 물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다소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나에게 말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 크게 사고를 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크게 사고를 친단 말입니까?”
“네. 분명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니 최 중사님께서 어떻게 좀 해보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부대 안도 아니고, 부대 밖에서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최 중사가 슬쩍 말을 하자 이미선 2소대장이 눈을 치켜떴다.
“뭡니까? 저에게 큰소리치시더니. 최 중사님 그렇게밖에 안 되는 남자였습니까?”
최 중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소위님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니 약간 서운해지려고 합니다. 저만 박대기 신경 쓰는 것 같고, 이 소위님은 요새 만나 주지도 않고 그랬으면서 말입니다.”
최 중사의 볼멘소리에 곧바로 이미선 2소대장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바로 여우짓을 하기 시작했다.
“아잉, 왜 그러실까. 제가 요즘 좀 바빴잖아요. 잘 아시면서……. 집에 일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 집안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면 안 됩니까?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알아도 될 것 같은데.”
최 중사가 좀 강하게 나갔다. 그러자 이미선 2소대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최 중사님. 저 저희 집안에 대해서 얘기 하고 그런 여자 아닙니다. 또 그러신다.”
“알겠습니다. 집에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시는데, 그럼 우리 이번 주에 데이트는 합니까?”
“데이트 말입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데이트를 안 해주면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은데 해줘야겠네.’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죠.”
“언제 합니까?”
“오늘 보면 되죠. 불타는 금요일인데.”
그 순간 최 중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오늘 말이죠.”
“네. 싫습니까?”
“어이구, 싫을 리가 있습니까. 저는 당연히 좋죠.”
“좋습니다. 그럼 오늘 퇴근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죠.”
“대신 알죠?”
“걱정 마십시오. 내가 박대기 이 자식을 헛짓거리 못 하도록 확실하게 밟아 놓겠습니다.”
최 중사가 강하게 말했다. 이미선 2소대장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는 몸을 홱 돌렸다.
“그럼 최 중사만 믿겠습니다.”
그렇게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최 중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참, 뭔 바람이 불어서 나에게 왔나 싶었더니. 또 박대기야. 아무튼 진짜……. 어후!”
최 중사는 혼잣말을 하며 투덜거렸다. 막말로 말이 좋아 남자 친구이지 하는 짓은 머슴 부리듯 했다.
“뭐, 그래도 밤에는…… 끝내주니까.”
최 중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꼬리가 올라가며 므흣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슬쩍 딴생각을 했다.
“가만, 김희진 소위라고 했지. 그 여자를 꼬실 때까지 당분간은 이 소위를 좀 더 만나 봐야겠네. 그런데 요즘 우리 부대 왜 그러지? 갑자기 여군을 받아들이고 말이야. 물론 나야 좋지만, 크크크.”
최 중사는 포식자의 눈빛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번뜩 떠오르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래도 지금은 할 건 해야겠지.”
최 중사는 휴대폰 전화번호부에서 누군가를 찾았다.
“어디 보자, 여기 있네.”
등록된 이름이 ‘기철이’라고 된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곧바로 누군가 받았다.
“야, 기철아.”
-누구야?
“나다, 최현태.”
-헉, 혀, 형님.
“너 요새 뭐 하고 지내냐?”
-만날 하던 대로 지내고 있죠.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휴가 나오십니까?
“휴가는 무슨! 내가 휴가 나가서 너 보게 생겼냐?”
-후후, 그건 그렇죠.
“그건 그렇고. 너 일 하나 하자.”
-어떤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