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15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9)
“와, 진짜 부럽습니다. 우리 애들은 저러는 놈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4소대장이 잔뜩 부러워하고 있을 때 행정반에서 이미선 2소대장이 나왔다. 김일도 병장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어? 무슨 대화를 그리 재미나게 하십니까?”
“김일도 병장 오늘 전역입니다.”
“아, 제대구나.”
이미선 2소대장은 솔직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축하는 해줬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그때 박대기 병장이 복도에 나타났다. 이미선 2소대장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사라졌다.
“어, 박 병장.”
박대기 병장이 이미선 2소대장 앞에 섰다.
“충성.”
“어어, 그래. 무슨 일이야?”
이미선 2소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박대기 병장을 맞이했다. 박대기 병장은 그런 이미선 2소대장을 보며 움찔 놀랐다. 그리고 주먹을 쥐었다가 살짝 풀며 말했다.
“2소대장님.”
“응?”
“저 휴가 좀 보내주십시오.”
“휴가? 너 휴가 있어?”
“말년 휴가를 쪼개서 가고 싶습니다.”
“왜 벌써 말년 휴가를 가려고 그러지?”
“일이 있습니다.”
“일? 무슨 일일까?”
이미선 2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박대기 병장은 살짝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 그걸 꼭 말해야 합니까?”
“말해주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은 없지.”
이미선 2소대장의 말에 박대기 병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박대기 병장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지금 저 부대에 있으면 미칠 것 같습니다. 왠지 사고라도 칠 것 같습니다.”
박대기 병장의 당당한 말에 이미선 2소대장이 움찔했다.
“야, 일단 나랑 다른 곳에 가서 얘기를 하자.”
이미선 2소대장이 박대기 병장을 데리고 상담실로 갔다.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4소대장 역시 무슨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의 문제였다.
“자자, 신경 끄고. 우리 할 일이나 합시다.”
오상진이 말하며 김일도 병장을 봤다.
“일도야. 너도 이제 나가야지. 자, 전역증!”
오상진이 주머니에 있던 전역증을 건네주었다. 김일도 병장은 전역증을 받아 확인했다.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과 전역 날짜가 찍힌 전역증이었다.
“이제 진짜 전역하는 것 같습니다.”
“후후, 그래? 가자!”
오상진이 김일도를 이끌고 부대를 나섰다. 대로변에 들어서자 1소대원들이 양옆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축하합니다. 김 병장님!”
“부럽습니다.”
“집에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저희들 잊지 마십시오.”
“가끔씩 부식도 좀 보내주시고 말입니다.”
“진짜 축하드립니다.”
짝짝짝짝짝!
1소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김일도 병장이 위병소로 향했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위병소에 전역증을 내밀자, 그곳에서도 축하한다고 했다.
“어? 전역하십니까?”
“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위병소에서 일지를 작성한 후 전역증을 다시 받았다. 그리고 위병 근무자를 지나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흐흡! 이제 끝났다.”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돌려 부대를 바라봤다. 그 순간 파노라마같이 지난날이 떠올랐다. 김일도 병장은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의 입가로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상담실에 이미선 2소대장과 박대기 병장이 앉아 있었다. 이미선 2소대장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저, 진짜 너무 답답해서 바깥바람이라도 좀 쐬고 싶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원래라면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싶다고 휴가를 신청한다는 것은 진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대기 병장은 앞에 있는 이미선 2소대장 때문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박대기,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 그럼 휴가 나가면 사고 안 친다는 거야?”
“그런 게 아닙니다. 계속 여기 있다가는 크게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박대기 병장은 이미선 2소대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미선 2소대장도 이번의 박대기 병장은 진짜 크게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알았다. 휴가 보내주면 되는 거지?”
“보내주실 겁니까?”
“보내달라면 보내줘야지. 얼마나 갔다 올 건데?”
“4박 5일로 다녀오겠습니다.”
“4박 5일? 그거면 될 것 같아?”
“네.”
“언제 가고 싶은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가고 싶습니다.”
“월요일 날? 그래 알았어. 행정계원에게 얘기해 놔.”
“네.”
“그럼 더 이상 얘기할 것은 없지?”
“네.”
“알았다. 그럼 휴가는 월요일 날 가는 거로 알게.”
이미선 2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대기 병장도 따라서 일어났다. 상담실을 나온 두 사람은 몸을 반대로 돌렸다. 박대기 병장은 내무실로, 이미선 2소대장은 행정실로 각각 움직였다.
행정반에 들어온 이미선 2소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3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2소대장.”
“네.”
“아까 보니까, 박대기 병장 데리고 상담실 가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어?”
“왜 그러십니까?”
“행정반에 들어오는데 표정이 영 좋지 않아서 말이야.”
“아닙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말해봐. 무슨 일인데?”
“그게 말입니다. 휴가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휴가? 갑자기 왜 그런답니까?”
“그냥 답답하다고 잠깐 휴가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다고 합니다.”
“뭐, 그런 미친…….”
3소대장이 발끈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하긴 박대기 그 자식 완전 또라이 아닙니까. 에효, 2소대장 힘들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2소대장은 너무 착한 것이 문제입니다. 일일이 그런 걸 다 받아주면 무시당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박대기 병장,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사고 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어쩝니까.”
“그런 협박까지 했습니까? 내 이 자식을 그냥…….”
3소대장이 발끈하자, 이미선 2소대장이 좋게 말했다.
“제가 잘 해결했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애써 밝은 미소를 보였다. 3소대장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긴 제가 2소대에 간섭한다는 것이 좀 웃기지만……. 아무튼 신경 많이 쓰이겠습니다.”
“네, 뭐……. 지금은 괜찮습니다.”
“네. 언제든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런 이미선 2소대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박대기 병장과 이미선 2소대장의 대화를 보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으음…….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지랖도 아니고 말이야.’
오상진은 찜찜한 마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때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
“응? 중대장님이 왜 전화하시지?”
오상진은 곧바로 휴대폰을 받았다.
“네. 중대장님.”
-너 어디야? 행정반?
“네. 행정반입니다.”
-그럼 듣기만 해.
“…….”
-야, 오늘 저녁 어때?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준다며. 그러니 오늘 저녁 어떠냐고.
“아, 그 얘기였습니까?”
-그럼 그 얘기 말고 중요한 것이 있어?
“하하하, 없죠.”
-그래,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하자. 너희 형수한테 물어보니까. 이왕 시간을 끌 필요가 있냐면서, 오늘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더라.
“으음, 제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된다고 하면 소은이도 데리고 갈 건데.
“상관없습니다. 소희 씨 소은이 좋아합니다.”
-아, 지난번에 한 번 봤다고 그랬지?
예전에 원래 소은이를 김세나가 돌보기로 했지만 오디션 때문에 오상진에게 도움을 청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오상진과 한소희와 함께 소은이를 돌봤던 적이 있었다.
“네.”
-알았다. 아무튼 얘기하고 전화 줘.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우리 중대장님 빠르시네.”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는데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오상진이 행정반을 나섰다.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후 한소희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소희 씨 지금 통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전화 주세요.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상진 씨!
“소희 씨 지금 수업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그럼 뭐 하고 있었어요?”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나에게 전화하라고 그래요?”
-상진 씨 전화를 받고 싶으니까요?
“아, 친구들 앞에서 남자 친구 전화를 받고 싶었어요?”
-당연한 걸 왜 물어요.
오상진은 이것만 봐도 한소희가 어리다는 것을 느꼈다.
‘하긴 지금 나이는 뭐든 자랑하고 싶을 때지.’
오상진이 속으로 웃었다. 수화기 너머 한소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왜요?
“아, 맞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요?”
-오늘 저녁요?
“제가 말씀드렸던 중대장님 부부가 같이 식사를 했으면 해서요. 소희 씨 보여달라고 난리에요. 그래서 내가 날짜를 잡으라고 했는데 오늘로 잡았더라고요.”
-으음, 저는 상관없어요. 그럼 예쁘게 하고 가야겠네요.
“아니요. 편하게 입고 오세요. 가족 같은 사이에요.”
-가족 같은 사이니까. 예쁘게 하고 가야죠.
“너무 예쁘게 입으면 우리 형수님이 질투할지도 몰라요.”
-음, 그런가?
“참, 소은이도 같이 나온다고 했어요. 알고 있죠. 소은이.”
-그때 봤던 애기요. 보고 싶네. 얼마나 컸을지…….
“많이 컸죠. 아마 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아, 참 작은 형님 말인데요.
-우리 작은 오빠요?
“네.”
-그런데 왜요?
“혹시 사무실에 사람 하나 쓰실 의향이 계신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사람요?
“네.”
오상진이 김일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한소희가 설명을 다 듣고 입을 뗐다.
-으음, 작은 오빠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하긴, 지금 오빠 혼자 있으니까 사무실에 사람이 필요하긴 할 거예요. 알았어요, 얘기해 볼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애는 참 착해요. 맡기면 일은 참 잘할 겁니다.”
-알겠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 소희 씨.”
-네, 알겠어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었다. 다시 행정반으로 와서 일과를 시작했다.
“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
4소대장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다른 소대장들도 모두 시계를 바라봤다.
“오늘은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얘기를 하며 퇴근할 준비를 했다. 오상진은 언제나 그랬듯 퇴근 전 내무실에 들렀다. 김우진 병장이 바로 일어나 경례를 했다.
“부대 차렷. 충성! 1소대 휴식 중.”
“그래. 오늘 하루도 잘 보냈나?”
“네.”
“환자는?”
“없습니다.”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병들을 살폈다.
“잘 지내고 있지?”
“이병 강태산. 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