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14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8)
그런 소란스러움이 김일도 병장 귀가에 고스란히 들렸다. 김일도 병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 순간 김우진 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스톱! 뭐지? 김 병장님 잡니까? 잡니까?”
드르르렁.
코 고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김우진 병장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깜짝 놀랐네. 야, 빨리빨리 움직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김우진 병장이 말했다.
“야, 다들 준비됐지?”
“네.”
소대원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김 병장님 깨워라. 그리고 불 안 꺼지게 잘 간수하고.”
“알겠습니다.”
구진모 상병이 김일도 병장을 깨웠다.
“김 병장님. 김 병장님.”
“으음……. 왜?”
김일도 병장은 모르는 척 끝까지 연기를 했다. 김우진 병장이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인데 주무시면 어떻게 합니까.”
“안 자면? 술 마셨으니까 자야지.”
김일도 병장은 어색한 연기였지만 소대원들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만 서프라이즈가 성공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김 병장님 일어나서 촛불 끄십시오.”
“초? 뭐?”
“일어나 보십시오.”
김일도 병장은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그 앞으로 케이크에 꽂힌 촛불 하나가 보였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김일도 병장이지만 막상 보니까, 속에서 울컥했다.
“와, 김 병장님 웁니까?”
“야, 울긴 누가 울어.”
“뭐, 이런 걸 가지고 감동받고 그럽니까. 빨리 초나 부십시오.”
김일도 병장이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초를 ‘후’ 하고 불어서 껐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이 한마음으로 외쳤다.
“김일도 병장님 전역 축하드립니다.”
“그래, 다들 고맙다. 그런데 이 아까운 케이크를 나에게 던지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
김우진 병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김 병장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닙니까?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던지긴 뭘 던집니까.”
“아, 그러냐? 나에게 던졌으면 내가 다 먹는 건데 아깝네.”
“그럴까 봐, 안 던진 겁니다.”
“자식들…… 알았다. 케이크 잘라서 상황실에 갖다 드리고, 나머지는 알아서 먹어라. 난 너무 취해서 자야겠다.”
김일도 병장은 괜히 쑥스러운지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좀 드시지 말입니다.”
“됐다! 아, 그리고 현래 것도 남겨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대원들이 일제히 케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상황실에 두 조각 가져다 주니 별로 많이 남지도 않았다.
“김 병장님 정말 안 드십니까?”
“…….”
“네?”
“안 먹어. 너희들끼리 먹어.”
“네. 그럼 저희들끼리 먹습니다.”
김일도 병장은 소대원들을 찬찬히 봤다. 그 옆으로 김우진 병장이 다가와 앉았다.
“김일도 병장님.”
“왜?”
“이제 밖에서 만나면 친구인 거죠?”
“자식이……. 한번 고참은 영원한 고참이야. 그리고 우진아.”
“네?”
“밖에서 너 안 볼 거거든.”
“와, 진짜 너무하시네.”
“됐고, 빨리 정리하고 자자.”
“네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김일도 병장의 내무실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김일도 병장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아침 기상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 날 아침이라 좀 더 뭉그적거리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꾸만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야, 일어나! 일어나 새끼야.”
‘뭐? 새끼야? 이 자식들이 돌았나.’
김일도 병장의 짜증이 왈칵 올라왔다.
“인마, 아무리 제대한다고 새끼야는 너무하잖아.”
김일도 병장이 눈을 떴다. 그런데 순간 숨이 턱 하니 막혔다.
“헙!”
김일도 병장 눈앞에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라, 이 자식 봐라. 뭐?”
“그럼 네가 새끼야지. 아, 김일도 일병님 이렇게 부를까? 빨리 안 일어나!”
강상식 상병이 잔뜩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김일도 병장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다, 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지?”
“어라, 이 자식이 봐라. 너 미쳤냐?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지? 애들 집합시켜서 한딱가리 할까!”
강상식 상병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김일도 병장은 믿기지가 않았다.
“왜 두 사람이 여기 있는 건데……. 당신들은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김일도 병장이 계속해서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
“빨리 일어나라고!”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김일도 병장은 곧바로 손을 휙휙 저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킨 김일도 병장의 눈앞엔 어둠만이 가득했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허헉, 허헉.”
거친 숨소리를 내며 빠르게 주위를 확인했다. 차츰 어둠 속에 눈이 익숙해졌다. 바로 내무실이었다.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무슨 개꿈을…….”
김일도 병장이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기상까지 약 2시간가량은 남아 있었다.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리며 김우진 병장이 눈을 떴다.
“으음, 뭡니까. 김 뱀.”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돌려 확인을 했다.
“누구냐?”
“누구냐니……. 저입니다. 김우진 말입니다. 무슨 잠꼬대를 그리 심하게 합니까. 무슨 악몽이라도 꿨습니까?”
“악몽, 그리 악몽 꿨지.”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무슨 악몽입니까? 뭐 다시 재입대하는 꿈이라도 꿨습니까?”
“그런 꿈이라면 내가 이렇게 놀라지 않지.”
“그럼 무슨 꿈을 꿨습니까?”
“내 꿈에 최용수 병장이랑, 강상식 상병이 나타난 거야.”
“허헉…….”
김우진 병장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입니까?”
“그래. 와, 정말 생생하더라.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무슨 악감정이 있었어. 내 꿈에 나타나는 거야.”
“와, 대박. 무슨 꿈을 꿔도 그런 꿈을 꾸십니까. 하필 제대 날에 말입니다.”
김일도 병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지. 오늘 나 제대 날 맞지?”
“김일도 병장님 두 사람에게 무슨 잘못한 거 있습니까?”
김일도 병장이 움찔했다. 사실 잘못한 것이 있긴 있었다. 두 사람의 만행을 고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일도 병장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어.”
“그러니까, 다시 주무십시오. 아직 날 밝으려면 멀었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도로 누웠다. 잠을 청해보려고 하지만 잘 오지 않았다. 솔직히 이대로 잠을 자면 또 그 꿈을 꿀 것만 같아 사실 겁이 났다. 그렇게 뜬 눈으로 가만히 있었다.
‘진짜 오늘 제대하는 거 맞지? 거짓말 아니지?’
김일도 병장은 정말 자신이 오늘 제대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막말로 진짜 제대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물론 상병 때부터 제대 날까지 카운트를 세긴 했지만 말이다.
“진짜 제대하는 거 맞지?”
김일도 병장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김우진 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대하는 거 맞습니다. 꼭 그렇게 확인을 받고 싶습니까? 어서 주무시기나 하십시오.”
김우진 병장이 몸을 옆으로 돌렸다.
“으응, 미안. 자.”
김일도 병장이 사과를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다시 잠은 못 잘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뜬눈으로 지새워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 참 잘 가지.’
김일도 병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2시간의 시간은 진짜 더디게 흘러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멍하니 눈을 뜬 채로 있다가 기상나팔 소리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윽.”
“으아아아.”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김일도 병장의 익숙하게 침낭을 접었다.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아침 점호를 하러 나갔다. 아침 점호를 마친 후 다시 복귀해 소대원들과 마지막 짬밥의 만찬을 즐기러 식당으로 갔다.
“우와. 김 병장님 이제 마지막 짬밥입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소감은 무슨 소감! 그냥 그런 거지.”
“에이. 그래도 이제 두 번 다시는 짬밥을 먹지 못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소감 좀 말씀해 주십시오.”
“시끄러워, 인마. 짬밥이 거기서 거기지.”
김일도 병장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지만 식판에 담아온 짬밥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으음…….”
낮은 신음을 흘리며 가만히 생각해 봤다. 과연 이런 날이 올까? 그런데 진짜 왔다. 김일도 병장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마지막 짬밥의 만찬을 즐겼다.
“야,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짬밥도 맛있다.”
“와, 진짜! 김일도 병장님. 제발 티 내지 좀 마십시오.”
“너무 하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는 아직 한 참이나 남았는데…….”
“나가는 아침까지 이러깁니까?”
소대원들의 원성 가득한 말에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지을 뿐이었다.
“와, 저 웃음.”
“뭐지? 저 인자한 웃음은? 아니지, 모든 것을 해탈한 듯한 미소야.”
“와, 진짜. 부럽다. 제대 날 아침에 짬밥을 먹으면서 해탈한 웃음을 보여주는 것. 저게 진정한 전역자의 모습이지.”
소대원들의 부러움 가득한 말들을 밑반찬 삼아 김일도 병장은 짬밥을 말끔하게 처리했다. 내무실로 복귀해 전투복과 예비군 마크가 찍힌 전투모를 착용한 후 행정반으로 갔다.
“충성, 병장 김일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때 소대장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예비역 김일도.”
“전역 축하한다.”
“이야, 이제 이쪽으로는 진짜 오줌도 안 싸는 거 아냐?”
“조심해서 가라.”
“감사합니다.”
김일도 병장이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오상진에게 갔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물었다.
“어제 잘 잤냐?”
“네.”
김일도 병장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빨리 나가고 싶을 텐데. 중대장님께 전역 신고하러 가자.”
“네.”
김일도 병장이 오상진과 함께 김철환 1중대장에게 갔다. 김일도 병장은 곧바로 전역 신고식을 했다.
“충성! 병장 김일도는 2006년……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그래, 고생했다. 그보다 괜찮아?”
“저는 어제 술을 많이 안 마셨습니다.”
“하긴 그렇지. 그보다 어제 애들이 전역식 해줬어?”
“네. 해줬습니다.”
“중대장 말이 맞지. 케이크 네 거였지?”
“네, 중대장님 대단하십니다.”
“그럼 인마. 중대장이 짬밥이 얼마인데……. 그보다 사회 나가서도 열심히 하고.”
“네.”
“마지막으로 악수 한번 하자.”
김철환 1중대장이 손을 내밀었다. 김일도 병장이 두 손을 내밀며 악수를 했다. 그다음으로 오상진과 악수를 했다.
“축하한다. 형님께 미리 얘기는 해뒀다. 조만간 연락 갈 거다.”
“네. 감사합니다.”
김일도 병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오상진은 김일도 병장과 함께 중대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4소대장을 만났다.
“이제 나가냐?”
“네.”
“축하한다.”
4소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김일도 병장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잘 살고!”
“네.”
그러면서 4소대장이 슬쩍 오상진을 봤다.
“그러고 보면 1소대장님은 애들이랑 참 친합니다.”
“우리 일도처럼 이렇게 살가운 놈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