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13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7)
오상진이 그 말을 듣고 씨익 웃었다.
‘생각을 해보니 정말 그랬네. 초반에 적응을 제대로 못 해서 중대장님께서 많이 붙잡아 주셨지. 그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그걸 보답하기 위해서 로또 2등짜리로 줬다. 사실 2등짜리로 김철환 1중대장에게 받았던 은혜를 다 갚지는 못했다. 물론 이 얘기는 전부 회귀 전에 받았던 은혜에 대해서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중대장님께서 술 마시자고 그러면 군말 없이 가겠습니다.”
“아이고, 됐네요, 됐어! 나라고 너랑 술 마시고 싶겠냐.”
김철환 1중대장은 휴대폰을 꺼내 다시 한번 문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술잔을 꺾었다.
“그런데 형수님도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제법 남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천만 원 넘게 남았었을걸.”
“그걸 말입니까? 일 년밖에 안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너희 형수가 대단하다는 거야. 와, 1년이면은……. 뭐 중간에 보너스도 들어가고 그랬지만. 아무튼 그걸 다 갚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생각을 했다.
‘지금 중대장님이 대위 7호봉쯤 되니까. 월급이 아마 280만 원이 조금 넘겠지? 거기서 세금을 떼고, 실수령액이 얼추 250? 그 정도 되겠지. 거기서 한 달에 백만 원만 갚아도 일 년이면 다 갚잖아. 물론 1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만…….’
오상진이 생각하기에 충분히 빚을 갚을 여력이 충분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엄청 힘들지는 않아 보이는데.’
오상진이 미심쩍은 눈길로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야야, 뭘 또 계산을 하고 그러냐. 너 지금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었지?”
“아닙니다.”
“아니긴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다니더만.”
“그랬습니까?”
“그랬다, 인마. 그보다 사실 우리가 둘째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래.”
“아……. 그렇습니까.”
“그런 것도 있고 하니까. 슬슬 준비를 해놔야지. 그래서 그런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이사도 해야 할 것 같고.”
“이사 말입니까?”
“그래. 애들도 늘면 거긴 좁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이사를 갈까, 고민 중이야.”
“아, 그러십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은이가 6살이죠?”
“그렇지. 그런데 너 나보다 더 잘 안다. 저번에 우리 소은이 다섯 살인가? 그랬다가 너희 형수에게 뒤지게 혼났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빠가 딸 나이도 모릅니까.”
“야, 인마. 헷갈릴 수도 있지 인마.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난 현재 내 나이도 몇 살인지 가물가물해.”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군인아파트 근처에 초등학교가 없지. 좀 멀리 나가야 하니까. 그래서 이사도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오상진이 생각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좀 많이 모으셨습니까?”
“너희 형수가 세상에, 빚을 갚으면서도 저축을 얼마나 잘했는지……. 거의 월에 백만 원씩 넣고 있더라.”
“네?”
오상진은 또 한 번 놀랬다.
“와, 형수님께서 말입니까? 그럼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셨습니까?”
“그러니까, 너희 형수가 대단하단 거야. 그 안에 빚은 빚대로 갚고 말이지. 그래서 난 너희 형수가 하자고 하면 아무 말도 못 해.”
“아,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이해가 됩니다. 역시 우리 형수님.”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잠깐 생각을 했다.
‘진짜 빠듯하게 생활하셨겠다.’
오상진은 다시 한번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김세나가 궁금했다.
“그보다 세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세나 잘 지내고 있지. 요새 데뷔한다고 정신이 없는 모양이더라. 게다가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우리 처제가 이렇게나 예뻤나 하고 말이야.”
“에이, 원래부터 세나는 예뻤습니다.”
“어? 이 자식……, 우리 처제에게 관심 있어?”
“하긴 세나 정도면 관심 없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오오, 이 자식. 아예 대놓고 말하는데.”
“하하하.”
오상진이 크게 웃고 말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처제가 올 때마다 서운해하더라. 너 연락이 없다고 말이야. 가끔이라도 연락 좀 해줘.”
“어? 지난번에 듣기로는 연습실에서는 휴대폰 압수라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몰래몰래 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가끔씩 문자라도 보내줘.”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김철환 1중대장이 먼저 술병을 들어 오상진에게 따라줬다. 두 손으로 정중히 술잔을 든 오상진이 입을 뗐다.
“그건 그렇고 중대장님.”
“어?”
“중대장님 진급 얘기 없습니까?”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이 따라주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좋다.”
안주로 김에 둘둘 만 참치회를 장에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맛나. 아주 맛나.”
김철환 1중대장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실실 웃었다. 오상진은 그냥 기다려 주기로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놨다.
“그게 말이다. 잘하면…… 될 것 같아.”
“진급하십니까?”
“잘하면……. 아무튼 진급도 다 너 덕분이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철환 1중대장이 술잔을 꺾었다.
“사실 너도 알다시피 별다른 라인이 없었지 않냐. 그렇다고 내가 군 생활 엄청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말씀입니까. 중대장님 정도면 엄청 열심히 한 거죠.”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솔직히 이 정도는 안 돼. 위에다가 잘 봐달라고 샤바샤바 하고, 대대장님이나 연대장님 똥꼬 빨고 그래야지. 안 그러냐?”
“으음…….”
오상진이 신음을 흘렸다. 김철환 1중대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똥꼬 빤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내가 그런 걸 잘 못 했지 않냐. 알다시피 내가 또 엄청난 애처가 아니냐.”
“공처가시죠.”
“애처가로 해, 인마. 아무튼 연수 채워서 진급하는 것은 몰라도 조기 진급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그런데 지난번에 사단장님이 날 좋게 봤는지 내 얘기를 했나 봐. 사실 육본에 내 동기가 있거든. 나에 대해서 좋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나 봐.”
“아, 그러십니까? 그럼 소령 진급을…….”
“그래, 잘하면…… 이지.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게 다 네 덕분이다.”
“에이, 무슨 제 덕분입니까.”
“너 만나고 잘 된 거지. 네가 정신을 차리는 바람에 네 덕을 보는 것 같다. 그 점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저야말로 중대장님 덕분에 이렇듯 사람답게 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그럼 우리 둘이 서로 고마운 것은 없는 거다.”
“네에.”
“그래, 앞으로 이대로 쭉 가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시죠.”
“좋지.”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이 술잔을 마주쳤다. 한잔 뚝 들이켜고 난 후 김철환 1중대장이 물었다.
“넌 어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 그 집 말이다.”
“네.”
“그거 괜찮은 거냐? 너희 형수가 자꾸 물어봐. 대출금이나 그런 거 잘 갚고 있는지 말이야.”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입니다. 예전에 넣어 뒀던 주식이 갑자기 잘 되어서 그걸로 집을 산 것입니다.”
“뭐? 집을 샀어?”
“네. 그때는 집 산다는 것이 건방져 보일까 봐,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 거였어? 그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네.”
“네.”
“그럼 진즉에 말을 하지. 너희 형수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애매했습니다. 나중에는 말씀드릴 타이밍도 놓치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 같아도 잘 먹고 잘산다는 얘기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는 못하지.”
“이제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가 잘 먹고 잘살면 됐지. 그런 의미에서 말이야. 너희 형수가 참치회를 참 좋아해.”
“아후, 당연히 형수님 것도 가져가셔야죠. 갈 때 하나 포장해서 가져가십시오.”
“그럴까?”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한마디로 네가 날 속인 대가는 이걸로 퉁 친다는 의미였다. 그런 의미를 알고 있는 오상진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너 여자 친구는 언제 보여줄 거야?”
“보여드리고 싶은데……. 시간을 한번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중대장님께서 편한 시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래?”
“네.”
“알았어. 너희 형수에게 물어보고, 조만간에 날짜 잡는다.”
“그렇게 하십시오.”
“주중도 괜찮지? 주말에는 데이트해야 할 것 아니야.”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알았어. 자, 좋은 안주를 두고 술을 그냥 두면 안 되지. 마시자.”
“넵!”
오상진이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그리고 그대로 쭉 들이켰다.
“크으, 안주가 좋아서 그런지 술이 쭉쭉 들어가는구나.”
김철환 1중대장은 기분 좋은 얼굴로 연신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한 시간 전, 박중근 중사는 김일도 병장을 부대에 데려다줬다.
“들어가라.”
“충성. 들어가십시오.”
“그래.”
김일도 병장은 상황실에 보고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자 불침번을 서고 있는 노현래 일병을 봤다. 첫 순번인데도 노현래 일병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으며 옆으로 다가갔다.
“야, 노현래.”
“일병 노현래. 저 안 잤습니다.”
“안 자기 뭘 안 자. 내가 내려오면서 다 봤는데.”
“……김 병장님 술 냄새 납니다.”
“술 먹었으니까, 술 냄새가 나지, 인마.”
“혹시 취하셨습니까?”
“내가 취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졸고 있는 것이 중요해. 일병 단 녀석이 이러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말입니다.”
“자식이……. 그래도 신경 써서 해. 수고하고!”
김일도 병장이 노현래 일병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린 후 내무실로 향했다.
“편히 쉬십시오.”
김일도 병장은 손을 흔들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컴컴했다.
“다 자나?”
김일도 병장은 저녁에 케이크를 사 가는 것을 봤다. 만약 그걸 보지 못했다면 솔직히 서운했을 것이다.
“아이고 자식들…….”
김일도 병장은 김대식 병장 때처럼 연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하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전투복을 벗고, 잠을 청했다.
“그럼 자 볼까.”
김일도 병장은 괜히 자신이 잔다는 것을 슬쩍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대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 새끼들 잠자는 척 연기라도 해야 하나?’
김일도 병장이 그 생각을 하며 괜히 코를 드르렁 골았다. 잠시 후 누군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김일도 병장 앞으로 다가왔다. 손으로 뭔가를 홱홱 지나갔다. 그때까지 김일도 병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준비해.”
“알겠습니다.”
이미 상황실에 보고를 했기 때문에 밖에서 준비를 해도 되었다. 물론 케이크 몇 조각은 상황실에 줘야 했다.
“초는 몇 개 켭니까?”
“큰 거 하나면 되지 않아?”
“네.”
“티 안 나게 조용히 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