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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512화 (512/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512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6)

안줏거리 삼아서 김일도 병장은 자신이 구상했던 시나리오를 세 가지 정도 얘기를 했다.

오상진이 찬찬히 들어보니까, 하나는 SF 시나리오인데 너무 시대를 앞서갔고, 또 하나는 퓨전 사극인데 역사의 고지식한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중간에 끊어졌다. 마지막 세 번째는 코미디 장르인데 꽤 괜찮았다. 김철환 1중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 깡패 얘기는 괜찮다.”

“그렇죠. 이거 좀 괜찮지 않습니까?”

“괜찮네. 추석에 개봉하면 5백만? 7백만? 아니지,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한 백만, 그 정도는 되겠네.”

“아이, 중대장님. 그러면 저 망합니다.”

“백만이 어디야. 요새!”

“아닙니다. 예전이랑 달라서 관객들 엄청 잘 들어옵니다. 이거 몇 년 후에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때 가서 백만이면 저 쫄딱 망합니다.”

“그런가?”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마치 영화를 만들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상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김일도 병장이 얘기하는 것을 묵묵히 들었다.

‘으음……. 시나리오도 괜찮고. 둘째 형님께서 영화 제작사를 하시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오상진은 한소희 둘째 오빠를 떠올렸다. 그래서 슬쩍 김일도 병장을 불렀다.

“일도야.”

“병장 김일도.”

“야, 내일이면 전역한다는 놈이 무슨 관등성명이야. 그냥 편하게 대답해.”

“그래도 아직은 군인이지 않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박중근 중사가 바로 말했다.

“그건 일도의 말이 맞습니다.”

“뭐, 그건 알아서 하고. 너 혹시 아르바이트 안 할래?”

“아르바이트 말입니까?”

“그래, 생각 있어?”

“지금 저 뭘 고르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당연히 아르바이트해야 합니다.”

“사실 내 아는 사람이 영화 제작사를 하는데.”

순간 김일도 병장이 젓가락을 툭 떨어뜨렸다.

“예? 정말입니까?”

“응.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내 둘째 형님이 될지도 모르는 분이야.”

김일도 병장이 바로 이해를 했는지 말했다.

“아, 그 여자 친구분 오빠 되시는 겁니까?”

“그래! 영화사를 하고 있는데 그분이 직원이 필요하다고 말씀을 하시더라. 혹시 괜찮으면 널 소개시켜 줄까 해서 말이지.”

갑자기 김일도 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확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오상진이 당황하며 말했다.

“야, 인마. 중대장님도 계시는데…….”

오상진은 슬쩍 김철환 1중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김일도 병장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김철환 1중대장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중대장님도 감사합니다. 박중근 중사님도 감사합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오상진 덕분에 우리가 엎드려 절 받는다.”

“그러게 말입니다.”

김철환 1중대장과 박중근 중사가 피식 웃었다. 오상진이 김일도 병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좋냐?”

“네. 솔직히 이런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영화사 돌아다니며 시나리오 보여주고, 취직시켜 달라고 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께서 나서 주시니 정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김일도 병장은 정말 흥분이 되는지 자신의 손으로 왼쪽 가슴에 올렸다.

“저 지금 술 못 마실 것 같습니다. 너무 어지럽습니다.”

“아이고 김일도. 핑계도 좋다. 술도 못 마시는 놈이 술 마시는 척을 하더니.”

김철환 1중대장의 말에 김일도 병장이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야, 인마. 딱 보면 알지. 술꾼들은 말이지, 너처럼 밑잔 남기고 그러지 않아.”

가만히 고기를 굽던 박중근 중사가 슬쩍 말했다.

“중대장님 눈치채셨습니까? 저도 딱 보고 일도 이 자식, 두세 잔 마시면 취할 것 같아서 짠도 못했습니다.”

“그렇지. 에라이 김일도 이놈아.”

김철환 1중대장이 웃었다. 김일도 병장이 박중근 중사에게 말했다.

“박 중사님 이제 저에게 주십시오. 저 많이 먹었습니다. 박 중사님은 고기 굽느라 많이 못 드셨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된다니까.”

“아닙니다. 전 고기를 구우면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너 고기 태우면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절대 안 태웁니다.”

“그럼 그럴래?”

박중근 중사가 슬쩍 가위와 집게를 건넸다. 김일도 병장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내일 전역하는 예비역 병장의 솜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일도 병장 집게로 새 고기를 집어 불판에 올렸다.

삼겹살집에서 약 두 시간가량 얘기를 나누고, 술을 마신 후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박중근 중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일도 부대에 데려다주고, 저도 집으로 가 보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박 중사. 부탁할게.”

“네. 충성.”

박중근 중사가 김일도 병장에게 말했다.

“가자.”

“넵!”

그리고 김철환 1중대장에게 경례를 했다.

“충성!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김철환 1중대장이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갔네.”

그 말에 오상진이 한마디 툭 던졌다.

“어후, 중대장님. 그렇게 저랑 2차를 하고 싶었습니까?”

“그럼 인마. 내가 무슨 삼겹살 얻어먹으려고 한 줄 아냐?”

“네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실실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어디로 가십니까? 댁으로 가시는 겁니까?”

“야, 인마. 우리 마누라가 술상 차려주는 사람이야?”

“언제는 만날 집에 가서 마시자고 하시더니.”

“네 형수도 쉬어야지. 아무튼 2차도 네가 쏴.”

“네? 1차도 제가 샀는데 말입니다.”

“아이, 1차도 쏘고, 2차도 쏴. 중대장 오늘 기분 좋은 일 있다니까.”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걸 맨입으로 되나?”

“2차 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가서 말해줄게.”

김철환 1중대장이 실실 웃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김철환 1중대장은 슬쩍 휴대폰을 봤다. 1차 중간에 김선아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것을 확인하고 난 후부터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아예 여기서 2차 할까?”

김철환 1중대장이 말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에이, 벌써 나왔는데 또 들어갑니까. 좀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시죠.”

“그래. 가자.”

두 사람이 걷다가 오상진이 물었다.

“뭐 드시고 싶으십니까?”

“그러니까, 오늘따라 참치회가 땡기네.”

“네, 뭐. 갑시다.”

오상진은 바로 택시를 세웠다. 택시를 타고 약 10분을 달리자 참치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 앞에 섰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렸다.

“자, 들어가시죠.”

“오냐.”

김철환 1중대장이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종업원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이십니까?”

“네네.”

“편하신 곳에 앉으십시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약간 구석진 자리에 칸막이가 쳐진 곳으로 가서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오상진이 쭉 훑어보더니 메뉴판을 접고 말했다.

“참치회 모둠으로 주십시오.”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번쩍하고 떴다.

“야, 그거 너무 비싸!”

“아이고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사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그럼 나 부담 안 가져도 되겠지?”

“네.”

종업원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술은 어떤 거로 하시겠습니까? 사케로 준비해 드릴까요?”

“아뇨, 그냥 소주로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참치회가 나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참치회 모듬이 나오고, 술이 나왔다. 오상진이 먼저 술을 따라 주었다.

“자,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겁니까?”

“아, 자식. 급하기도 해라. 기다려봐.”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몇 번 조작을 하더니 오상진에게 내밀었다.

“봐봐!”

오상진이 확인을 했다. 김선아에게서 온 문자였다.

-여보, 고생했어요. 우리 빚 다 갚았어요. 오늘은 상진 씨와 술 늦게까지 먹고 와도 돼요. 사랑해요.

그 문자를 확인한 오상진은 살짝 감동이 느껴졌다. 김철환 1중대장은 실실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도톰한 참치회 하나를 집어 장에 찍은 후 입에 가져갔다.

“으음, 역시 맛있어.”

“중대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렇지. 고맙다.”

“진짜 이제 걱정 없겠습니다.”

“이제는 없지.”

김철환 1중대장이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요즘 힘들어하셨습니까?”

“그래, 말도 마라. 너희 형수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소은이가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잖아.”

“네, 그렇죠.”

“올해 안에 최대한 빚을 다 갚고 싶다고 그러는 거야. 소은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야. 그래서 내가 그러자고 했지. 그래도 2년이나 남았으니까, 느긋하게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너희 형수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든 것을 다 줄이기 시작하는데…….”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를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한번 참치 회를 먹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지금에 와서 말하는 건데 중대장 그동안 용돈도 제대로 못 받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앓은 소리를 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빚 갚느라 그랬던 겁니까?”

“그렇지. 너희 형수가 좀 악착같아져서 그래.”

“형수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빨리 갚느라고 무리를 했지.”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와, 그래도 마음의 짐은 들어내지 않았습니까. 형수님이 참 대단하십니다.”

“대단하지. 나도 깜짝 놀랐다. 아무튼 너희 형수가 빚 있는 꼴은 못 보겠다고 하니까.”

“거의 한 달에 백만 원씩 갚았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3개월마다 나오는 보너스 있잖아. 그것으로 거의 생활했다고 봐야지. 그것뿐인 줄 아냐. 오죽하면 잘 들어오지도 않는 훈련수당.”

“와, 그것까지 달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우리가 무슨 전방부대도 아니고, 훈련도 그리 자주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것까지 얼마인지 물어보더라. 그건 차마 알려 줄 수가 없더라.”

“그렇죠. 그거는 군인에게 있어서 거의 비상금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터뜨려 버리면 난 뭘 의지하며 살아야 하니. 안 그러냐?”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걸 지키려고 용돈을 포기했다는 거 아니야. 무려 1년 가까이 말이지.”

“잘하셨습니다.”

“잘하긴 인마. 우리 부대가 훈련을 많이 안 뛰어. 그래서 손에 남는 게 없어. 그래서 너에게 술 사주지도 못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그런 줄도 모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술자리를 가지는 건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다. 너 여자 친구 생기면서 중대장은 안중에도 없더라.”

“아닙니다.”

“너 말이야. 힘들 때 중대장이 어떻게 했어. 만날 너 힘내라고 술 사 주고 술 취한 널 집에 데리고 가서 해장시켜 주고. 너희 형수가 널 보고 저러다가 큰일 날 것 같다며 꼭 좀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했잖아. 이렇게 사람 만들어놨더니…… 너 정말 이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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