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10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4)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김철환 1중대장이 그런 오상진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자식이 말이야. 요새 술 한잔 먹기 힘들어. 가만 보자, 일단 전화를 해야겠지.”
김철환 1중대장이 곧장 휴대폰을 꺼내 김선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 나야.”
-네. 무슨 일이에요?
“아니, 오늘 늦게 들어간다고.”
-왜요? 집에서 저녁 안 먹어요?
“으응 간만에 상진이랑 술 한잔하기로 했어.”
-아, 그래요? 그럼 집에 와서 먹어요. 새삼스럽게 밖에서 먹어요.
“그게 아니라. 우리 중대원 한 명이 내일 전역이야. 그래서 겸사겸사 술 사기로 했거든.”
-정말이에요? 중대원 때문에 먹는 것이 아니고요?
“아이, 왜 그래. 간만에 상진이랑 한잔하는데.”
-알았어요. 일찍 들어와요.
“으응, 알았어.”
김철환 1중대장 전화를 끊고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느긋하게 기지개를 한 번 켜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간만에 목구멍 좀 소독해 볼까?”
김철환 1중대장이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김일도 병장은 휴가 갔다가 너무 일찍 복귀하는 바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우진 병장이 한마디 했다.
“김 병장님. 아무리 그래도 정신 좀 차리십시오.”
“아, 왜?”
“어차피 내일 나가실 분 아닙니까. 이럴 거면 뭐 하러 들어오셨습니까.”
“인마, 안 들어오면 영창이잖아. 게다가 신병 놀려 먹으려고 일찍 온 거잖아.”
“하아. 그보다 공기가 왜 이렇게 안 좋습니까? 무슨 냄새 나지 않습니까?”
김우진 병장이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김일도 병장도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김우진 병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말년 병장 냄새 말입니다.”
“뭐?”
김일도 병장이 눈을 추켜 떴다. 김우진 병장이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일도 병장이 코를 벌렁거렸다.
“어? 그러고 보니 진짜 냄새가 나네.”
“네? 말년 병장 냄새 말입니까?”
김우진 병장이 말을 하면서도 킥킥 웃었다. 그러나 김일도 병장은 진지했다.
“아니, 뭔가 구린 냄새가 나. 넌 안 나냐?”
킁킁.
“안 나는데 말입니다.”
“자세히 맡아봐.”
김일도 병장이 다시 말했다. 김우진 병장이 다시 코를 벌렁거렸지만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어? 진짜 안 나는데…….”
김우진 병장이 김일도 병장을 노려봤다.
“뭡니까? 설마 저 놀리는 겁니까?”
“뭔 소리야. 진짜 냄새 안 나? 군대 냄새 말이야.”
김일도 병장의 얼굴은 진지했다. 김우진 병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차우식 병장이 한마디 했다.
“와, 김일도 병장님 내일 제대하신다고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야, 너희도 곧 아니야? 나만 그래? 나만 남사스러워야 해? 너희는 더 심하게 할 거면서.”
“안 합니다.”
“진짜 그런 짓 안 합니다.”
“웃겨! 안 할 것 같지? 어디 한번 두고 봐.”
김일도 병장은 앞날을 예견하듯 말했다. 그러다가 조영일 일병이 손을 번쩍 들었다.
“김일도 병장님 오늘 마지막 저녁 짬밥 알려드립니까?”
김우진 병장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어디 한번 말해봐!”
“넵!”
조영일 일병이 내무실 벽에 붙어 있는 식단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저녁 국은 똥국이고, 어묵볶음에, 감자조림, 김치 이상입니다.”
“마지막까지 똥국이야? 반찬 더럽게 맛없겠네.”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 저녁 만찬인데 맛있게 드십시오.”
“아니야, 내일이면 사회 밥을 먹는데 똥국으로 나의 입을 더럽힐 순 없어.”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김우진 병장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됐다! 난 오늘 맛있는 삼겹살에 소주 먹는다. 으흐흐흐흐.”
김일도 병장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헉! 누구랑 말입니까?”
“소대장님께서 밥 사 주신다고 했어. 조금 있다가 행정반에 가면 돼.”
“와, 대박! 진짜 좋겠습니다.”
“아, 나도 삼겹살에 소주 먹고 싶다.”
여기저기서 소대원들의 부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일도 병장은 또 한 번 소대원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너희도 먹고 싶으면 제대를 하든지, 아니면 외박을 나가! 그리고 너희 돈으로 사 먹어.”
“와, 진짜……. 끝까지 놀리는 겁니까?”
“안 놀려! 안 놀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김일도 병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럴수록 소대원들의 분노게이지는 점점 상승했다. 그때 김일도 병장을 살리는 행정병이 등장했다.
“김일도 병장이 소대장님께서 오시랍니다.”
“아, 그래?”
김일도 병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소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갔다 올게. 저녁 맛나게 먹어라.”
김일도 병장이 손을 흔들며 내무실을 나갔다. 그 뒤로 소대원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와, 진짜 너무하신다.”
“순간 진짜 많이 원망할 뻔했어.”
“삼겹살 먹다가 체해 버려라.”
“우씨…….”
여기저기서 악담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모르고 김일도 병장은 실실 웃으며 행정반으로 향했다. 때마침 다른 소대의 최 병장과 만났다.
“어? 김 병장님.”
“오오, 최 병장. 잘 있었어?”
“뭐, 저야 항상 똑같지 않습니까. 그보다 내일 전역이라고 들었습니다.”
“후후, 그렇지 뭐. 그보다 너도 얼마 남지 않았지?”
“전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뭐? 두 달? 아니면 석 달?”
“아뇨, 한 달 남았습니다.”
“야 이씨……. 한 달 남은 것 가지고 지금 장난해!”
“요새는 하루하루가 너무 느리게 갑니다. 이러다가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겠죠?”
“지랄하고 있네. 그보다 너 말년 휴가는 남았어?”
“저 말입니까? 깔끔하게 썼죠. 요새 누가 제대 일자 딱 맞춰서 말년 휴가 씁니까.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일도 병장이 말했다.
“뭐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어? 아셨습니까?”
“이 자식이 끝까지 놀려.”
“하하하, 그보다 어디 가십니까?”
“아, 소대장님 만나러.”
“어? 사고 치셨습니까?”
“내가 넌 줄 아냐. 우리 소대장님이 오늘 소주에 삼겹살 사 주기로 했다.”
“워, 대박! 우리 소대장은 그런 거 없던데. 좋겠습니다. 그런데 1소대장님은 왜 그렇게 잘해주십니까? 혹시 약점 하나 잡으셨습니까?”
“야,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 소대장님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신데.”
“와, 김 병장님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처음에 저한테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소대장님 때문에 빡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순간 당황한 김일도 병장이 곧장 주위를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야! 그게 언제적 얘기인데……. 그땐 그때고, 막말로 초반에 적응 잘 못 하셨잖아. 하지만 지금은 우리 소대장님이 최고야.”
“그건 그렇습니다. 저희한테도 잘해주시고. 가끔 음료수도 사 주시고 말입니다.”
“그래, 인마. 그러니까 너도 우리 소대장님께 잘해.”
“아, 저 한 달 남았습니다.”
“아무튼 우리 소대장님께 잘해. 만약 잘 못 한다는 소식 들리면 당장 쫓아온다.”
김일도 병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최 병장 역시 그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장단을 맞춰줬다.
“어이쿠, 김 병장이 다시 복귀 안 하게 하려면 잘해야겠습니다.”
“그래. 인마. 잘해!”
김일도 병장이 씨익 웃었다. 최 병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맛있게 먹고 오십시오.”
“알았다.”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 병장이 웃으며 자신의 내무실로 들어갔다. 김일도 병장은 행정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병장 김일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일도 왔어? 잠시만 기다려.”
“네.”
그사이 4소대장이 고개를 들며 김일도 병장을 봤다.
“야, 김일도!”
“병장 김일도.”
“너 내일 전역이라며.”
“네. 그렇습니다.”
“자식 좋겠다.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좋냐?”
“흐흐흐, 좋습니다.”
“입 찢어지겠다. 그보다 전역하면 뭐 하냐?”
“학교 복학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 너 무슨 과 다니냐?”
“아, 저 국어국문학과 다니고 있습니다.”
“뭐? 네가?”
4소대장이 다소 놀란 얼굴이 되었다. 3소대장도 오상진도 좀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너 졸업하면 뭐 할 생각이냐? 국어 선생 하냐?”
“아닙니다. 아직 생각 안 해봤습니다.”
“야, 너 학점 개판이지? 공부도 안 했고, 그러니 평소에 좀 잘하지.”
4소대장의 핀잔에 김일도 병장은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막말로 따져서 4소대장이랑 나이 차도 별로 나지 않았다. 김일도 병장은 살짝 빈정이 상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4소대장 나갈 때까지 시비를 거네.’
그때 오상진이 고개를 들어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일도야. 나가 있어. 소대장도 거의 끝났다.”
“네. 그럼 충성!”
그 뒤로 3소대장, 4소대장의 전역 축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다. 전역 축하한다.”
“전역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김일도 병장이 인사를 하며 나갔다. 잠시 후 오상진도 정리를 마친 후 가방을 챙겼다.
“그럼 저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상진도 행정반을 나갔다. 밖에서 김일도 병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셨습니까.”
“그래, 잠깐만 기다려 중대장님 모시고 올게.”
“네? 중대장님도 가십니까?”
“어, 중대장님도 같이 마시기로 했어. 왜 불편해?”
“그건 아니지만…….”
“야, 괜찮아. 중대장님도 너 가는 거 축하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중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리고 문을 살짝 연 후 말했다.
“중대장님 준비 다 되었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래. 다들 준비 다 되었지?”
“네.”
“그래, 가자고!”
김철환 1중대장의 밝은 음성이 들려왔다.
한편, 1소대 내무실에서는 뭔가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다. 김우진 병장이 주도하에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케이크는?”
“박중근 하사님께서 사다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 그런데 케이크까지는 오버 아닙니까? 김대식 병장님은 그냥 초코파이에다가 했는데 말입니다.”
“김대식 병장은 김대식 병장이고, 김일도 병장은 다르잖아. 우리랑 얼마나 오래 함께했어. 안 그래?”
김우진 병장의 말에 소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맞습니다. 오래 함께했습니다.”
“그래 인마. 그리고 김대식 병장은 좀 대범했지만 김일도 병장은 조금 그렇지 않냐? 나중에 두고두고 원망할라.”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설마가 사람 잡지!”
“하긴 그런 것 같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차를 타고 가는데 너무 귀가 간지러웠다.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팠다. 오상진이 힐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 그래?”
“모르겠습니다. 귀가 간지럽습니다.”
“설마 얘들이 너 욕하는 거 아니야?”
“서,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건 모르지!”
“아, 아닐 겁니다.”
김일도 병장은 애써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오상진의 말을 듣고 그럴 것 같다는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