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09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3)
똑똑똑.
내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널브러져 있던 강태산 이병이 후다닥 각을 잡고 앉았다.
그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강태산 이병이 곧장 확인을 했다.
“누구…….”
그런데 전투모에 작대기 하나, 이등병이었다.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신병이구나.’
신병이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내무실에 들어왔다. 신병은 강태산 이병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경례를 했다.
“충성, 이병 김이도.”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풀어지며 말했다.
“신병이야? 이리와 앉아.”
“이병 김이도,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은 이름을 살짝 바꿔서 관등성명을 대고 후다닥 들어와 앉았다. 강태산 이병이 슬쩍 확인을 했다.
“너 1월 군번이야?”
“네, 그렇습니다.”
“나도 1월 군번이야. 그럼 우리 둘 동기네.”
순간 김일도 병장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 그런 겁니까?”
“‘그런 겁니까’가 뭐야. 동기인데. 그냥 말 놓아.”
“아, 그, 그래도 돼?”
“당연하지.”
“어, 그래. 그런데 넌 언제 왔어?”
“난 여기 온 지 일주일 좀 넘었지.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난 다른 곳에서 훈련받고 와서…….”
“아. 그래서 다르구나.”
강태산 이병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를 한다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는 김일도 병장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후후, 잘 속네.’
“그보다 이도야.”
“왜?”
“편히 있어. 편히. 지금 소대원들 전부 작업 갔거든. 그러니까, 괜찮아.”
“아, 아니. 그래도…….”
“괜찮아. 진짜 괜찮다니까.”
그러면서 강태산 이병이 곧장 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을 보고 김일도 병장도 따라 해봤다.
“그래, 그렇게 해. 쫄 거 없어. 문이 열린다. 그때 재빠른 동작으로 원위치 하면 돼.”
“아, 알았어.”
김일도 병장은 완벽한 신병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강태산 이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야, 그런데 너…….”
김일도 병장이 살짝 긴장했다. 강태산 이병이 김일도 병장을 살피더니 물었다.
“너 더플백은? 안 가져왔어?”
“아, 행정반에 놓고 왔네.”
“야, 그걸 놓고 오면 어떻게 해.”
“소대장님이 바로 내무실에서 대기하라고 해서.”
“이것 참 곤란하네.”
강태산 이병은 진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네. 이따가 가지러 가야지.”
“그, 그래.”
“그보다 너 여자 친구 있냐?”
강태산 이병이 뜬금없이 물었다. 김일도 병장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으응?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봐?”
“야, 선임병들 오면 분명 그런 걸 물어봐. 내가 미리 너 코치해 주는 거야.”
“아, 그런 거야?”
“당연하지. 잘 봐.”
강태산 이병이 김일도 병장을 툭 건드렸다.
“…….”
김일도 병장이 눈을 끔뻑이며 쳐다봤다. 그러자 강태산 이병이 입을 뗐다.
“아니지. 이게 아니지. 너 고참이 툭 건들면 뭐부터 해야 해.”
“관등성명?”
“그래! 욕 안 먹으려면 그것부터 해야지.”
“아…….”
김일도 병장은 완벽한 신병 흉내를 냈다. 그런 김일도 병장을 보며 강태산 이병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친구 답답하네. 그렇게 어리바리해서 어떻게 군 생활 하려고 그러냐.”
“아, 그래? 좀 가르쳐 줘.”
“그래. 어차피 동기지만 여긴 내가 일주일 선배니까. 내 말 잘 들어. 고참이 무조건 툭 건드리거나, 이름을 부르면 자동적으로 관등성명을 대야 해. 또 한 가지 팁이라면 쳐다만 봐도 관등성명을 대야해. 알겠어.”
“쳐, 쳐다만 봐도.”
“그래. 눈빛이 서로 마주치더라도.”
“알겠어.”
강태산 이병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우리 소대 요주의 인물들을 알려줄게.”
“요주의 인물?”
“그래, 조심하라는 뜻에서 미리 알려주는 거야. 이거 내가 아니면 안 알려주는 거다.”
“으응? 뭔데?”
김일도 병장이 눈을 반짝였다. 강태산 이병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관물대를 쭉 한번 봐봐.”
“관물대?”
“응. 저쪽 창가 쪽부터 설명을 해줄게. 맨 끝에 있는 관물대가 바로 김일도 병장이라고 있어. 저 사람은 신경 쓰지 마. 휴가 복귀하면 바로 제대라고 하니까.”
김일도 병장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어쭈?’
강태산 이병은 신나 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내무실에서 실질적인 대빵이 바로 김우진 병장이야. 성격이 아주 더러워.”
“더러워?”
“응, 그것도 아주 더러워.”
“아, 그래? 그럼 조심해야겠네.”
“조심을 떠나서 아예 상대도 하지 마. 물론 부르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해야 하지만 그때는 무조건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알았어.”
그 뒤로 각 선임들에 대한 강태산 이병의 생각을 쭉 설명을 해줬다. 김우진 병장 외에는 그리 큰 특이사항은 없었다. 김일도 병장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뭐야, 좀 재미없네. 그래도 뭐 우진이라도 건져서 다행인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무실 문이 열렸다. 그 순간 강태산 이병과 김일도 병장이 후다닥 정자세를 취했다. 내무실로 소대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어? 진짜 신병 왔습니다.”
“그래?”
소대원들이 하나씩 김일도 병장을 보며 씨익 웃었다. 김일도 병장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김우진 병장이 자리에 앉으며 김일도 병장을 봤다.
“신병! 이리 와봐.”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래, 자식이…….”
그 순간 강태산 이병이 당황했다. 김일도 병장을 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야,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응? 뭐?”
김일도 병장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 강태산 이병을 봤다.
“저, 저분이 김우진 병장님이야.”
“알아.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말을 하자 강태산 이병은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안타까운 시선만 보낼 뿐이었다. 김일도 병장이 김우진 병장 옆으로 갔다.
“이야. 우리 신병 많이 컸네.”
김우진 병장이 장난식으로 말했다. 김일도 병장이 씨익 웃으며 최강철 일병을 봤다.
“강철아, 가져와.”
“일병 최강철. 넵!”
최강철 일병이 전투모와 야상을 가지고 왔다. 김일도 병장은 자신이 입고 있던 전투모와 야상을 바꿔 입었다. 그곳에 작대기 4개가 오바로크 쳐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강태산 이병의 눈이 커졌다.
“저, 저, 저…….”
최강철 일병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강태산 이병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명복을 빈다.”
강태산 이병이 놀란 얼굴로 최강철 일병을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는 듯했다. 하지만 최강철 일병은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저 애처로운 얼굴로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최, 최강철 일병님…….”
“미안하다.”
최강철 일병은 그 한마디만 하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 이후 강태산 이병은 소대원들을 쭉 훑었다. 모두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강태산 이병은 깨달았다.
‘젠장, 모두 한통속이었어.’
강태산 이병은 원망 어린 시선으로 김일도 병장을 바라봤다. 김일도 병장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김우진 병장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우진아.”
“네.”
“내가 재미난 얘기를 해줄까?”
“오호, 재미난 얘기 말입니까? 뭡니까?”
“신병에게 너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그런 거?”
“아, 고거 참 재미난 얘기겠습니다.”
“그렇지. 아주 재미난 얘기지. 어디 한번 들어볼래?”
“좋죠!”
“저희도 듣고 싶습니다.”
그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완전히 사색이 되어버렸다.
오상진이 행정반을 나서 중대장실로 갔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저 부르셨습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너 오늘 저녁에 뭐 해?”
“저 말입니까? 저녁에 약속 있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와, 오상진이 너무하네.”
“네?”
“너 인마, 내가 며칠 전부터 술 한잔하자고 그러지 않았냐. 주말에는 여친 만난다고 빼더니. 평일에는 또 다른 약속을 잡아? 서운한데…….”
김철환 1중대장은 서운한 얼굴로 바뀌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중대장님.”
“왜 그러긴, 인마.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아무리 바빠도 중대장이랑 술 한잔 먹을 시간은 빼놔야지.”
“당연히 술 한잔해야죠.”
“그런데 왜? 오늘은 안 돼?”
“오늘은 안 됩니다.”
오상진이 단호하게 말하자,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안 돼? 너 진짜 너무하네. 나는 너 힘들 때 말이야, 형수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너와 함께했어. 그런데 너 요즘에 진짜 많이 바뀐 거 아냐?”
“제가 뭘 바뀝니까. 그대로입니다.”
“그대로는 개뿔! 됐어, 인마. 존심 상해서 더 이상 애걸 안 해. 나가!”
김철환 1중대장이 잔뜩 인상을 쓰며 나가라고 했다. 오상진은 미소를 지었다.
“중대장님…….”
“부르지도 마! 나가라고, 너 필요 없어 인마!”
김철환 1중대장이 잔뜩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에 자대배치를 받고 적응하지 못할 시기에 김철환 1중대장이 많은 도움을 줬었다. 그 생각을 하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대장님 죄송합니다. 사실 오늘 김일도 병장이랑 저녁 약속 있습니다.”
“응? 김 병장이랑?”
“네. 내일 전역하지 않습니까. 술 한잔 사 줘야지 말입니다.”
“아, 그래? 그런 것이라면 뭐…….”
김철환 1중대장이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바로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런데 일도가 벌써 전역이야?”
“네.”
“이야, 시간 빨리 가네.”
“그렇죠. 일도가 분대장 달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김대식 병장 후임으로 단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전에 최용수랑 강상식이 때문에 내무실 분위기 엉망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 둘이 잘 잡아줬어.”
“네. 맞습니다.”
오상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고 보면 일도 제법 하더라.”
“저도 일도에게 분대장 맡기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잘해줬습니다. 제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래서 술 한잔 사 주는 거야?”
“네. 그것도 있고. 아무래도 대식이 나갈 때도 사 줬는데 일도는 안 사주면, 일도가 서운해하지 않겠습니까?”
“야, 그럼 나도 끼자.”
“중대장님께서도 말입니까?”
“왜? 나도 낄 수 있잖아. 둘이 마시나, 셋이 마시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
“그럼 중대장님이 쏘시는 겁니까?”
“야 이씨…… 너 진짜 해도 너무하네. 나 뻔히 용돈 받고 다니는 거 뻔히 알면서…….”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네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네 소대잖아.”
“중대장님 중대원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꼭 한마디를 안 져요.”
“무슨 소리입니까. 만날 지는데 말입니다.”
“됐어, 인마. 나가봐.”
“넵! 그럼 저녁에 모시러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