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95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14)
강태산 이병이 신나 하며 최강철 일병을 따라 올라갔다. 강태산 이병의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이었다.
그다음 날도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중대들도 연병장에 나와 있었다. 아니, 모든 중대가 다 나와 있었다.
“뭐야?”
“훈련 가는데 왜 갑자기 줄을 세우고 그래?”
구진모 상병이 구시렁거렸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한마디 했다.
“대대장님 나오신단다.”
“대대장님 말입니까? 왜 갑자기?”
“몰라.”
“우리 대대장님도 돌아가실 때가 되었나? 갑자기 안 하던 짓 하면 그렇다던데…….”
구진모 상병의 말에 후임병이 풋 하고 웃었다. 이해진 상병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면 진모 네가 직접 가서 물어봐. 죽을 때 되셨냐고.”
“어? 진짜 한번 물어봅니다? 뒷감당은 책임지시는 겁니까?”
“그래. 일단 도전해 봐.”
“진짜입니까?”
구진모 상병이 당당하게 나가려고 했다. 그때 김우진 병장이 한마디 했다.
“야, 지방 방송 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닙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소대장이 나타났다.
“인원 이상 없지?”
“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섰다. 잠시 후 중앙현관으로 한종태 대대장이 내려왔다. 그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했다.
“이봐, 작전과장.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대대장님 들리는 첩보에 의하면 사단장님이 조만간 우리 부대에 시찰…….”
“알았어, 알았다고. 거참, 사단장님은…….”
한종태 대대장이 구시렁거리며 단상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중대를 훑었다.
“몇 개 중대가 안 보인다.”
“네. 6중대, 7중대는 파견 나가서 아직 복귀를 안 했습니다.”
“그래? 언제 복귀하는데?”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알았어. 그리고 오늘 훈련은 시가전 훈련만 있나?”
“아닙니다. 2중대랑 5중대는 각개전투 훈련장으로 갑니다.”
“그래?”
“네.”
“그럼 나머지가 시가전 훈련이라는 거지?”
“네, 대대장님.”
한종태 대대장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상에 서서 한마디 설교를 했다.
“……다치지 말고 훈련 열심히 하길 바란다. 이상!”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이 경례를 하고, 각자 훈련장으로 이동을 했다.
오상진도 1소대를 이끌고 이동했다. 그 옆으로 박중근 중사가 붙었다.
“박 하사, 아니지 이제 박 중사라 불러야 하는구나.”
“네.”
“축하합니다. 이제 중사 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중근 중사가 쑥스러워했다.
“그보다 갈매기 하나랑 두 개는 확실히 달라 보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무튼 보기 좋습니다.”
“네.”
그때 이동하는 1소대가 조금 소란스러웠다. 박중근 중사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이동 중에 누가 잡담하라고 했나.”
1소대원들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박중근 중사는 영 못마땅한 얼굴로 오상진에게 말했다.
“김우진 병장이 분대장을 단 이후 1소대가 조금 소란스럽습니다.”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반문했다.
“네. 솔직히 김우진 병장은 애들을 너무 풀어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풀어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원래 김우진 병장이 말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입니다. 가끔씩 내무실 가면 소란스러워서 죽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후후,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도 3개월만 참으십시오. 그다음에는 해진이 아닙니까.”
“하긴 이해진 상병은 과묵한 편이죠. 그보다 오늘 훈련 중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1소대는 시가전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시가전 훈련이 착실하게 진행이 되었다.
“야, 새끼야. 개활지에서 누가 걸어가래! 안 뛰어!”
“총구 똑바로 안 올려!”
“누가 고개 내밀래. 대가리에 총 맞아서 뒤지고 싶어!”
여기저기서 고함이 들려왔다. 그럴수록 1소대는 점점 더 담금질이 되어갔다.
“푸읍, 푸읍.”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시가전 모의 전투장을 끝에서 끝까지 몇 번을 왕복해서 뛰어다녔는지 몰랐다.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흘러내렸다.
“정신 차려! 갑자기 왜 이래? 김우진!”
“병장 김우진.”
“일도 한 명 빠졌다고 이렇게 티가 확 나나.”
“아닙니다.”
오상진은 이번 모의 훈련에서 조금 실망감을 드러냈다.
“전혀 안 맞잖아. 전혀! 팀웍은 둘째 치더라도, 왜 작전대로 안 움직여.”
“…….”
오상진의 언성이 올라갈수록 김우진 병장을 비롯한 1소대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소대장도 이해는 해. 신병도 새로 들어왔고, 새로 발도 맞춰야 하는 것을 말이야. 소대장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아닙니다.”
“그럼 소대장이 완벽한 걸 원했나?”
“아닙니다.”
“그래, 소대장은 최소한 자기가 어떤 역할이진 숙지를 하라고 하지 않았나. 자기가 어느 위치인지, 뭘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라! 그냥 우왕좌왕 여기 우르르르, 저기 우르르르. 무슨 동네 축구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
소대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상진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소대장이 솔직히 실망을 했다. 김우진.”
“병장 김우진.”
“제대로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뗐다.
“30분간 휴식! 어차피 다른 중대 연습이 끝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때까지 다시 한번 자기 임무에 대해서 숙지해 놓도록.”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물러났다. 김우진 병장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자, 소대장님 말씀 들었지. 각자 임무 다시 한번 확인해서 숙지해 놓도록 한다. 그리고 노현래, 최강철.”
“일병 노현래.”
“일병 최강철.”
“너희들 이등병들 임무 다시 한번 체크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제발 좀…… 잘하자.”
“네.”
김우진 병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도 아직 지휘에 있어서 미흡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섣불리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저 한 곳에 앉아 스스로 임무 숙지를 다시 한번 할 뿐이었다.
“하아, 시발…….”
1소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각자 임무 수첩을 꺼내 시가전 훈련 위치와 자기 임무에 대해서 숙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강태산 이병의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뭔가 잔뜩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몸을 움찔하며 들썩였다. 옆에 있던 최강철 일병이 물었다.
“강태산. 왜 그래?”
“이병 강태산. 그게…….”
강태산 이병이 섣불리 말을 하지 않았다. 최강철 일병이 다시 물었다.
“뭐야? 뭔데?”
“사실 화장실이 급히 가고 싶습니다.”
“그래? 큰 거? 작은 거?”
“크, 큰 거입니다.”
“자식이 그런 것은 미리 볼일을 봤어야지.”
“사실 자대 배치받고 한 번도 큰 볼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필 지금 신호가 왔습니다.”
“뭐야? 너 혹시 변비냐?”
“아, 아닙니다.”
급기야 강태산 이병이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만큼 급하다는 신호였다. 최강철 일병이 이해진 상병에게 말했다.
“이 상병님.”
“왜?”
“저기 태산이가…….”
이해진 상병이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딱 얼굴로 행동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빨리 갔다 와.”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급히 다가가 말했다.
“빨리 다녀와. 화장실 어디인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참, 휴지는?”
“조,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
“저쪽 상황실 보이지?”
“네.”
“거기 있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몸을 꼬며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김우진 병장이 말했다.
“어? 신병 어디 가는 거야?”
이해진 상병이 나섰다.
“화장실 간답니다.”
“화장실?”
“네. 자대배치 받고, 첫 똥이랍니다.”
“아, 자식…… 더럽게!”
그러다가 김우진 병장이 문득 떠올랐다.
“참, 저 자식 총기 간수 잘하라고 일러뒀냐?”
“네.”
“야, 최강철.”
“일병 최강철.”
“빨리 가서 총기 잘 챙겼는지 확인하고 와!”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뛰어갔다. 화장실에 도착을 하니 다행이 총기는 밖에 없었다.
“야, 태산아.”
“이, 이병 강, 태, 산!”
강태산 이병이 잔뜩 힘을 주면서 대답했다. 그와 함께 ‘뿌디디딕’ 소리가 조용한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크으, 자식. 총은?”
“제,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너, 총기 간수 잘해. 나중에 잊어버리지 말고 챙기고.”
“네, 네…….”
뿌디디딕.
최강철 이병이 손으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총기 똥통에 안 빠지게 잘해야 해.”
“아, 알겠습니다.”
“수고해라.”
최강철 일병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야외 화장실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급히 주위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흐으으으으흡! 와, 대박! 냄새가 진짜…….”
야외 화장실이다 보니 건물에 있는 것처럼 깨끗하지 않았다. 게다가 냄새는…… 말도 못 했다. 방독면을 착용해야 할 정도였다.
약 10여 분의 시간이 흐른 후 화장실에서 강태산 이병이 나왔다. 아주 개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 만에 큰 볼일(?)을 봤다.
“와, 휴지 안 챙겨 왔으면 어쩔 뻔했냐.”
강태산 이병은 탄띠 속에 만일을 대비해 화장지를 돌돌 말아 챙겨 왔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이다. 다행히 양말로 뒤처리를 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좀 찝찝하네.”
강태산 이병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큰 것을 쌌지만 싼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탄띠를 착용하고 총을 어깨에 메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때 앞에서 또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 너는…….”
이번에 같이 자대배치를 받은 동기였다.
“야!”
“미, 미안……. 나 지금 급해서…….”
동기가 강태산 이병을 스쳐 지나갈 때 물었다.
“너 휴지는?”
“휴지? 아, 맞다. 휴지 안 가져왔다.”
그러면서 동기가 다시 몸을 돌렸다. 강태산 이병이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남은 휴지를 꺼내 내밀었다.
“야, 이거라도 써.”
“아, 그래. 고맙다.”
그러곤 몸을 돌리려는데 다시 한번 강태산 이병이 불렀다.
“야.”
“아, 왜?”
“화장실 더럽다.”
“아이씨……. 몰라.”
동기는 잔뜩 인상을 쓰며 화장실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강태산 이병이 피식 웃었다.
이태수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콧속을 파고는 엄청난 암모니아 냄새에 기절을 할 것 같았다.
“와, 시발. 냄새…….”
그래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볼일을 봐야 했다. 문을 열자마자 딱 보이는 구멍과 그 아래에 누런 잔잔한 그것(?)이 보였다. 순간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대박……. 진짜 더럽네. 흑!”
또다시 신호가 왔다. 이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곧바로 탄띠를 풀고, 총을 내려놓았다.
너무 급하다 보니 이태수 이병은 자신이 총을 어디다 놓았는지 기억도 못 했다. 그냥 화장실 입구에 총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