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93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12)
-무슨 소리예요. 그런 것도 데이트 아닌가요?
“뭐, 그렇죠.”
-그러니까요. 전 다 좋아요. 상진 씨랑 같이하는 것은요.
“고마워요.”
-에이, 또 그런다. 아무튼, 내일은 우리 볼 수 있어요. 아잉, 좋아라.
“네. 내일 꼭 봐요.”
-알겠어요.
그렇게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 * *
그날 저녁. 오정진은 학교를 마치고, 합기도 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장님 저 왔습니다.”
“오, 정진이 왔냐.”
오정진 말고도 저녁 타임 함께하는 수련생들이 많았다. 대부분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여자 수련생도 있었다.
“네. 좀 늦었습니다.”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 몸 풀게.”
“네.”
오정진은 곧장 탈의실로 들어가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관장이 오정진에게 갔다.
“야간 자율학습하고 오는 길이야?”
“네.”
“안 피곤해?”
“확실히 운동하고 나니까, 피곤한 것이 덜 합니다.”
“그럼 됐다. 몸 풀자.”
“네.”
몇 명이 줄을 선 후 간단하게 몸풀기 체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뜀뛰기를 한 후 무술 형 연습을 시작했다.
“자, 기합 1식 준비!”
“얏!”
“시작!”
그 뒤로 형 연습을 하고, 잡기와 술기 연습까지 마쳤다. 한 시간 코스로 마련된 연습이었다.
그 뒤에는 집에 가든지 아니면 부족한 발차기 연습이나 형 연습을 좀 하다가 다들 갔다. 오정진은 좀 더 운동을 한 후에 집에 갈 생각이었다.
그 앞으로 관장이 다가왔다.
오정진은 관장님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샌드백에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퍽! 퍽! 퍽!
“정진아.”
관장님이 부르자 오정진이 곧바로 발차기를 중단하고 관장님을 봤다. 오정진의 얼굴에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관장님.”
“너도 이제 자흑띠인데 다음 달에 승단 심사를 봐야 하지 않겠냐.”
오정진은 자신의 허리에 두른 붉은색과 검은색이 반반인 띠를 봤다.
‘벌써 승단 심사구나.’
오정진이 속으로 생각을 한 후 고개를 들었다. 이제 다음 달이면 검은 띠를 받게 될 승단 심사를 봐야 했다.
“벌써 승단 심사예요?”
“인마, 벌써라니. 너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검은 띠를 따고도 남지. 어쨌든 본관에서 정해진 룰이 있기에 아직 못 따고 있는 거지. 하지만 기간도 채웠고, 내가 원하는 형과 술기까지 다 나갔고. 당당히 승단 심사에 도전할 수 있잖아.”
“그렇긴 한데…….”
오정진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관장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그건 아니고요. 저도 이제 고3인데 공부에 매진할까 해서요.”
“공부도 좋지.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 검은 띠를 따 놓는 것이 좋지 않겠냐.”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인마, 너만큼 공부 열심히 하는 녀석도 없을 거다. 물론 운동도 그렇고……. 그냥 눈 딱 감고 평소처럼 하면 돼. 아마 공부에 지장도 주지 않을 거다.”
“네. 관장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알았다. 이번 주까지 답을 줘야 나도 본관에 보고한다.”
“네.”
“그보다 요새는 학교에서 괴롭히는 애들 없어?”
“없습니다. 운동을 해서 그런지 확실히 몸이 좋아지긴 했어요.”
“당연하지. 우리 합기도는 몸과 마음을 수련을 통해 정화를 하는 목적으로…….”
관장은 또 한 차례 설교를 늘어놓았다. 오정진은 그런 관장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아무튼 정신수양과 더불어 몸도 튼튼해지는 것이야.”
“네.”
오정진이 환하게 웃었다.
“아무튼 괴롭히는 애들이 없다는 거지?”
“네. 얼마 전에는 저한테 장난치는 애가 있었는데. 내 다리를 일부러 넘어뜨리려고 하다가 자기가 넘어져 버렸습니다.”
“오우, 우리 정진이 운동하길 잘했지. 그리고 상진아, 관장님이 항상 말하지 합기도는…….”
또다시 설교가 시작되려고 하자, 이번에 오정진은 바로 말을 잘랐다.
“네, 꼭 올바른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어어, 그래야지. 운동하다가 가.”
“네. 관장님. 쉬십시오.”
관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정진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샌드백으로 발차기를 넣었다.
퍽! 퍼퍽, 퍽!
오정진이 운동을 마치고 늦은 시각 아파트에 들어섰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주희인 것 같았다.
“어? 이 시간에…….”
오정진이 뛰어가 주희를 불렀다.
“주희야!”
주희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오정진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어, 오빠.”
“너 요새 왜 이렇게 늦어?”
“학교에서 공부 좀 하느라…….”
주희는 오정진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자율학습 시간은 끝났잖아.”
“남아서 좀 더 공부하고 오느라.”
오정진은 주희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것도 좋은데……. 너 어디 안 좋아? 표정이 많이 어둡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그래? 일단 집에 가자.”
“응, 오빠.”
오정진과 주희는 나란히 걸어서 아파트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층수를 누른 후 오정진이 중얼거렸다.
“아, 출출하네.”
“오빠, 라면 끓여 먹을까?”
“라면 좋지. 네가 끓여줄 거지?”
오정진의 물음에 주희가 환하게 웃었다.
“알았어. 내가 끓여 줄게.”
“아싸, 우리 주희가 해 주는 라면이 최고지.”
“칫.”
주희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 * *
그다음 날, 오상진과 한소희는 어느 건물 앞에 섰다. 한소희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에요?”
“네, 이 건물입니다.”
어느새 한 사장이 다가와 말했다. 오상진이 힐끔 봤다.
“주차를 빨리하셨네요.”
“네. 바로 앞에 자리가 있더라고요. 뭐, 일단은 한 번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한 사장의 말에 오상진과 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건물은 지하 2층에서 지상 5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한울빌딩하고는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한울빌딩이랑 거의 비슷하네요.”
“네. 하지만 여기 빌딩이 2평 정도는 더 큽니다.”
“아, 네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가시죠.”
“그래요.”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한 사장이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깨끗하죠? 이거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잘 되어 있고, 화장실 같은 경우도 신경을 많이 쓰신 모양이더라고요. 한 번 보시겠어요?”
“화장실은 나중에 볼게요.”
“네. 그러십시오.”
한 사장이 방긋 웃었다. 오상진과 한소희가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생각보다 상태가 훨씬 괜찮았다.
‘하긴 세입자가 거의 없으니…….’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구족 역시 한울빌딩이랑 비슷했다. 다만 공실이 많아 구경하기는 편했다.
“으음, 여긴 5층이네요.”
“네. 이 지역 신문사가 세 들어 있습니다. 마포신문이라고 해서 마포구 지역에만 배포되는 신문입니다.”
“아, 네에…….”
오상진은 한 사장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이런 지역에 신문사가 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오상진이 ‘마포의 미래 마포신문’이라고 적힌 글귀를 확인했다. 그때 문이 열리면 신문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직원은 오상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곧바로 한 사장이 앞으로 나섰다.
“아, 부동산에서 나왔습니다. 이분은 여기 건물 매입에 관심이 있으셔서 직접 찾아오신 겁니다.”
한 사장은 오상진과 한소희가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소개를 해 줬다. 그러자 직원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구,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신문사 사장 이진보입니다.”
순간 오상진은 깜짝 놀랐다. 포근한 인상의 이진보 사장을 직원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네, 안녕하세요. 오상진입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이진보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건물을 급매로 내놓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구매하시는 겁니까?”
이진보 사장이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네. 일단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제가 구매하게 된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오상진이 친근하게 인사를 했다. 이진보 사장이 환하게 웃었다.
“어이구, 건물주님이 되실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헤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면서 한 사장이 말했다.
“이야, 저분 인상이 참 좋습니다. 이 지역 신문사 사장에다가……, 나중에 정치하셔도 되겠습니다.”
한 사장이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그 순간 오상진의 머릿속으로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정치? 그러고 보니까…….’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
한 사장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저 신문사 사장님 말이에요.”
“왜? 아시는 분이십니까?”
“아, 아닙니다.”
오상진이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1층에 도착해 밖으로 나갔다.
“차 가져오겠습니다.”
한 사장이 부랴부랴 주차한 곳으로 뛰어갔다. 오상진과 한소희가 서로를 바라봤다.
“소희 씨 어때요?”
“나쁘지 않네요.”
“그럼 우리 아지트로 가서 좀 더 생각해 볼까요?”
“좋죠.”
한소희기 씨익 웃었다. 잠시 후 한 사장이 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두 사람은 그 차에 올라 한울빌딩으로 향했다.
한 사장이 운전을 하며 뒷좌석에 탄 오상진과 한소희를 힐끔 봤다. 오상진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사장님, 어디서 많이 봤다고 했더니…….’
오상진의 기억 속 이진보 사장은 몇 년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마포구 의원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워낙에 지역신문으로 인지도를 많이 쌓아 올린 것도 있지만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같이 출마를 선언한 여당 의원과 야당 의원이 같이 스캔들에 휘말렸다.
두 사람이 물고 뜯고 하는 사이 무소속인 이진보 사장의 지지율이 급상승해 당선이 되었던 것이었다.
‘훗, 이 얘기를 우리 사단장이 한 창 얘기했던 기억이 있네.’
차 창밖으로 시선을 두며 오상진이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내가 살지도 모를 건물에 있다니……. 이것도 인연인가?”
오상진의 중얼거림을 들은 한소희가 물었다.
“네? 뭐라고 했어요?”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뇨, 아무 말 안 했는데요.”
“방금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아, 그냥 혼잣말이에요. 혼잣말. 밖의 한강이 참 좋아 보인다고요.”
때마침 한 사장이 모는 차량이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한소희도 한강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렇게 차량은 한 사장 부동산에 도착했다. 한 사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어떻게 생각은 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진행을 합니까?”
한소희가 바로 대답을 했다.
“얼마까지 가능할까요?”
“으음, 제가 최대한 저렴하게 해 드려야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너무 싸게 후려치며 서로 감정이 상할 수 있으니까요. 적정가에서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하시는 적정가는 얼마데요?”
“저는 한 45억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45억요?”
한소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모부가 알아봤을 때는 40억 초반이었는데……. 그래도 홍대 근처이니 투자 가치는 있어. 나중에 10년이 지났을 때 가격이 많이 오를 거야.’
오상진은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