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91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10)
최강철 일병이 강태산 이병을 몰아붙였다. 강태산 이병은 갑자기 바뀐 최강철 일병의 모습에 정말 당황했다.
“저, 저…….”
“저 뭐? 똑바로 안 해!”
“아, 아닙니다.”
“관등성명!”
“이병 강태산!”
강태산 이병은 관등성명을 말하며 곧바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최강철 일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후우, 태산아. 잘 들어. 여긴 군대야. 선임들 봤지? 그 선임들에게 잘못 보여봐. 그럼 넌 앞으로 군 생활 꼬이는 거야. 2년이 지옥이야.”
“아, 그런 겁니까?”
“그래! 어차피 군 생활 하러 온 거 열심히 해. 열심히 하다 보면 배울 것도 많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여기서 너나 나나 집 잘산다는 것은 비밀이다.”
강태산 이병이 의아해했다.
“그걸 왜 비밀로 해야 합니까?”
강태산 이병의 입장에서는 자기 집이 잘산다고 하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최강철 일병은 오랜만에 만난, 심지어 자신의 집안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이 녀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마 그 얘기를 하면 어쩌면 쉬운 보직으로 갈지 몰라.’
최강철 일병은 홀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강태산 이병은 최강철 일병 곁을 떠날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든 최강철 일병과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지금 강태산 이병은 집안의 장남이었다. 선진그룹과 친하게 지낸다면 어떤 도움이든 받을 수 있었다.
‘꼭 함께한다. 꼭! 난 절대로 이 끈을 쉽게 놓치지 않을 거야.’
강태산 이병은 최강철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군대에 왔다. 그래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강철, 아니 선진그룹이라는 끈을 꼭 잡아야만 했다.
한편으로 최강철 일병 역시 말 안 듣는 후임보다는 그래도 잘 알고, 자신을 잘 따르는 후임이 좋았다. 그런 면에서는 강태산 이병이 나쁘지 않았다.
최강철 일병이 슬쩍 물었다.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너 말이야. 날 두고 꿀보직 가려고 뭐 그러는 것은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최강철 형님 옆에 꼭 붙어 있을 것입니다.”
“이 새끼가 또 형님이라네. 여긴 군대야. 최강철 일병님!”
“네. 최강철 일병님.”
“그래. 그래.”
최강철 일병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조금은 풀어줄 생각이었다.
“뭐, 단둘이 있을 때는 형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정말입니까?”
“그래. 대신에 너 내 밑에서 군 생활 착실하게 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자식, 맘에 드네. 그럼 이제부터 네가 군 생활 잘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지.”
강태산 이병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도대체 어떤 비법을 알려줄 것인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후후후, 하긴 우리 강철이 형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럼 그렇지, 우리 형님이 일병처럼 보이지만 그냥 일병은 아닐 것이야. 분명 뭔가 있다.’
강태산 이병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최강철 일병이 씨익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잘 들어.”
“네.”
“우리 내무실 왕고가 있어. 그분은 휴가 나갔다가 복귀하면 바로 제대야. 그래서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네.”
“아까 네 옆에 있던 김우진 병장. 성격 더러워.”
“아, 예!”
“그러니까, 건들지 마. 밉보이는 짓거리 하지 말라고. 나도 처음에 김우진 병장님에게 정말 갈굼을 많이 당했다.”
순간 강태산 이병의 눈빛이 사납게 바뀌었다.
“감히……. 제가 나중에 손을 한번 봐 드립니까?”
강태산 이병은 정말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최강철 일병이 움찔했다.
“뭐? 손을 봐? 이 자식이 미쳤나. 손을 보긴 뭘 봐! 여긴 군대야. 정신 차려. 훈련소도 갔다 온 놈이 아직까지 사회 물이 안 빠지면 어떻게 해.”
“아, 죄송합니다.”
강태산 이병이 바로 사과를 했다. 최강철 일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그래도 김우진 병장은 사람이 착해. 그러니까, 밉보이는 짓을 하지 않으면 돼.”
“네.”
“그리고 김우진 병장 제대까지 3개월이 남았지만 말년 꼬장을 부릴지도 몰라. 그래도 잊고 넘어가. 그럼 좋은 시절이 올 거야.”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차우식 병장님은 김우진 병장님이랑 한 달 차이지만 조용하신 분이야. 그러니 눈에 안 띄게 잘 지내면 돼.”
“그럼 그다음이 강철이 형님이십니까?”
“자식아. 넌 군대 계급도 모르니. 병장 다음이 상병이지. 내가 일병인데…….”
“아, 죄송합니다.”
“이번에 말하는 것이 중요해. 내가 존경하고 모시는 분이 바로 이해진 상병님이다.”
순간 강태산 이병이 뭔가를 떠올렸다.
“아, 조금 전에 그분 말씀입니까?”
“그렇지.”
“이해진 상병님은 이미 포섭을 하신 겁니까?”
강태산 이병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포섭은 무슨. 드라마 쓰지 마. 이해진 상병님이 날 엄청 챙겨주셨어. 내가 이해진 상병님을 형님처럼 모시는 분이야. 너도 깍듯이 대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이해진 상병님에게 형님이라고 하지 말고. 알았지!”
“네.”
“무엇보다 각 소대 고참들에 대해서 다 알아둬야 해. 소대장님 이름도 물론이고.”
“그, 그걸 다 외워야 합니까.”
“당연하지. 물론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제일 먼저는 우리 소대 고참들 이름이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군가는 다 알고 있지?”
“일단 신교대에서 좀 배웠습니다.”
“나머지도 다 알아두는 것이 좋아.”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은 최강철 일병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최강철 일병은 소대원들에 대해서 일일이 얘기를 해줬다. 물론 강태산 이병은 모두를 다 기억하지는 못했다. 다만, 앞서 말한 인물들은 꼭 기억할 생각이었다. 최강철 일병이 설명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참, 너 소대장님은 봤지?”
“네.”
“너 우리 소대장님에게 잘해라.”
“네?”
“소대장님이 우리 누나랑 친해.”
“누나라고 하시면……. 어? 최강희 팀장님 말씀입니까?”
강태산 이병이 깜짝 놀랐다. 최강철 일병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우리 누나가 집에서 실세인 거 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대장님. 우리 아버지, 최익현 의원님하고도 잘 아셔.”
“네? 정말입니까?”
강태산 이병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강태산 이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개 소대장이 그런 거물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말도 안 돼. 최익현 의원님과 친하다니.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였다니.’
강태산 이병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물론 최강철 일병으로서는 소대장님에게 잘 보이라는 의도에서 꺼낸 말이었다.
“우리 소대장님 예의 없는 걸 엄청 싫어하신다.”
“네. 예의 하면 저입니다.”
“또한 부소대장님도 좋으신 분이야. 잘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다른 장교님들에게도 경례 잘해야 한다. 무슨 소리인 줄 알겠어?”
“네.”
강태산 이병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철 일병이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너 말이야. 딱 봐도 대충 군 생활 보내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지 마. 너 그러면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도 좋은 대접 못 받는다. 너 대표 자리 물려받을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때 너 군 생활 개판으로 했다고 소문이라도 나 봐. 어떻게 될 것 같아?”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함께 군 생활 잘해 보자고. 서로 윈윈하면서 말이야.”
“윈윈…… 말입니까?”
강태산 이병이 눈을 번쩍 떴다. 최강철 일병이 씨익 웃었다.
“그래, 윈윈!”
“아,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래.”
최강철 일병이 환한 얼굴로 강태산 이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빨리 빨래 마저 하고 들어가자.”
“네.”
그 뒤로 최강철 일병은 건조실로 가서 1중대 1소대 빨래 건조대를 가르쳐 줬다. 게다가 속옷에 이름을 쓰는 것도 알려 줬다. 내무실로 복귀하는 길에 최강철 일병이 하나하나 얘기를 해줬다.
“……알겠어?”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담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봐.”
“역시 최강철 일병님이십니다.”
강태산 이병의 눈이 반짝거렸다. 문을 열고 내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선임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오, 빨래 다 했냐?”
“강철이, 신병이랑 얘기 많이 나눴어?”
“네. 그렇습니다.”
“구박은 많이 했고?”
“아, 안 했습니다.”
“워, 강철이. 선임이라고 막 어깨에 힘 들어가고 그러는데?”
“아닙니다.”
최강철 일병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강태산 이병 역시 자리에 앉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하아, 복잡하네. 알아둬야 할 것이 너무 많네.’
강태산 이병이 심각한 얼굴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때 김우진 병장이 불렀다.
“야, 신병.”
“이병 강태산.”
김우진 병장이 씨익 웃었다.
“우리 강철이가 많이 혼냈냐?”
“아닙니다. 혼내지 않았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잔뜩 주눅이 들었네.”
그러면서 김우진 병장이 힐끔 최강철 이병을 노려봤다.
“야, 최강철.”
“일병 최강철.”
“넌 도대체 애를 얼마나 잡았기에 저렇게 잔뜩 주눅이 들었냐.”
“…….”
“적당히 좀 잡지 그랬어.”
“별 얘기 안 했습니다.”
“별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저래?”
최강철 일병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김우진 병장이 장난치는 것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김우진 병장이 말했다.
“강철아.”
“일병 최강철.”
“너 신병 데리고 가서 집에 전화 좀 시켜줘라.”
그러자 강태산 이병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저, 전화 말이니까? 해도 됩니까?”
“가서 해, 인마. 엄마 목소리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최강철 일병을 바라봤다. 그것을 본 김우진 병장이 또 장난을 쳤다.
“뭐야? 강철이 눈치 보는 거야? 와, 최강철 애를 얼마나 잡았으면…….”
“진짜 안 했습니다.”
“이제 일병 달았다고 대꾸까지 하고 말이지. 우리 강철이 진짜 많이 컸네.”
“김 병장님…….”
“알았어. 그만할게. 그보다 신병 데리고 가서 전화시켜 줘.”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강태산 이병을 보며 말했다.
“가자.”
“이병 강태산.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은 바짝 군기가 들어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소대원들이 싱글벙글거리며 웃었다.
최강철 일병과 강태산 이병이 공중전화 부스에 도착했다. 각 중대 고참들이 힐끔거렸다.
“어라? 신병인가 보네.”
“네.”
“전화시켜 주게?”
“그렇습니다.”
“신병이 막 이곳에 와서 전화해도 되는 거야?”
“저희 분대장님께서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알아, 인마. 네가 딱 온 걸 보면 알지. 아무튼 전화 잘해라.”
그렇게 타 중대 고참들이 갔다. 강태산 이병이 눈을 크게 하며 물었다.
“각 중대 고참들에게도 깍듯하게 대해야 합니까?”
“아니야. 중대가 다르면 아저씨들이야. 하지만 같은 대대니까. 예의는 지켜드리는 거지.”
“아…….”
강태산 이병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공중전화 한 곳이 비었다.
“태산아. 저기 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