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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490화 (490/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490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9)

김우진 병장은 요즘 ‘웃기며 살자’에서 유행하는 ‘그런 거야’ 말투까지 흉내를 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갈구는 것 같더만.”

“진짜 아닙니다.”

노현래 일병이 펄쩍 뛰었다. 김우진 병장은 곧바로 먹잇감을 물었다.

“오오, 노현래 말대답하는 거 봐라.”

김우진 병장이 침상에 누워있는 차우식 병장을 봤다.

“우식아 봤냐? 현래가 저렇다.”

차우식 병장이 웃으며 입을 뗐다.

“현래 대단하네.”

차우식 병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워낙에 조용히 있던 차우식 병장이었다. 김일도 병장이 없어서 그럴까? 차우식 병장도 서서히 농담도 하고, 말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김우진 병장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너 전공이 뭐냐?”

“전 아버지 밑에서 일 배웠습니다.”

“오오, 아버지 밑에서? 대학은 안 다녀?”

“대학은 다닙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아버지 밑에서 일해?”

“아르바이트 아닙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구진모 상병이 말했다.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박수를 쳤다.

“아아, 아르바이트구나. 새끼, 무슨 거창하게 말을 하니까, 헷갈렸잖아. 이 자식 무슨 허언증 있나?”

순간 강태산 이병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허언증? 내가 살다가 허언증이라는 소리는 또 처음 듣네.’

강태산 이병은 실제로 대학도 다니고, 아버지 밑에서 일도 하고 있었다. 물론 한자리를 차지하고 일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 것은 사실이었다.

‘와, 다 말할 수도 없고…….’

그러고 있는데 바로 앞에 각이 딱 잡혀 있는 최강철 일병이 보였다.

‘아니지, 아니야. 강철이 형님도 저러고 있는데 내가 말을 할 수는 없지. 겸손해져야 해. 아버지께서 절대 사고 치지 말라고 했으니까.’

강태산 이병이 속으로 다짐을 했다. 김우진 병장이 다시 물었다.

“여자 친구는 있냐?”

“네. 있습니다.”

“있어?”

“네.”

김우진 병장의 눈이 커졌다.

“이 자식 봐라, 여자 친구도 있고……. 예쁘냐?”

“예쁩니다.”

“사진 있어?”

“네.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보고 안 예쁘면 너 뒤진다.”

김우진 병장의 엄포에 강태산 이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 제 눈에는 가장 예쁩니다.”

“아무튼 사진 꺼내 봐. 내가 판단할 테니까.”

“아, 그게…….”

강태산 이병이 갑자기 우물쭈물 망설였다. 김우진 병장이 바로 말했다.

“뭐해 사진 안 꺼내고.”

“사, 사진을 챙겨 온 줄 알았는데 어, 없습니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랬다저랬다 그래?”

“죄, 죄송합니다.”

그때 구진모 상병이 입을 뗐다.

“김 병장님.”

“왜?”

“갑자기 저 자식 별명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

“아마 맞을 겁니다.”

구진모 상병이 씨익 웃으며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야,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넌 이제부터 별명이 입벌구다.”

“네?”

강태산 이병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구진모 상병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줬다.

“입벌구 몰라?”

“네, 모릅니다.”

“잘 들어. 입벌구란 ‘입만 벌리면 구라’라는 뜻이다. 알겠냐.”

“어…….”

순간 강태산 이병의 표정이 굳었다. 구진모 상병이 곧바로 캐치했다.

“어? 뭐야? 신병!”

“이병 강태산.”

“지금 고참이 놀렸다고 표정이 굳어진 거야? 응? 그런 거야?”

또다시 유행하는 개그 말투를 흉내 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풋’ 하고 웃었다.

“진짜 내가 개그 프로그램은 못 보게 하든지 해야지. 다, 저거 따라 한다. 안 그러냐. 강철아.”

최강철 일병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 김일도 병장이 저 유행어로 후임병들 갈구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저 유행어로 갈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니, 김우진 병장이 분대장이 되면서 확실히 소대원들이 풀어진 것도 있었다.

“뭐, 신상 조사는 이 정도로 하자. 얘 정신없겠다.”

김우진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 관물대 어디냐?”

“최강철 일병 옆자리입니다.”

“그래? 그럼 누가 태산이 관리할래?”

“일병 노현래.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노현래 일병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현래야. 넌 은호나 신경 써.”

노현래 일병이 이은호 이병을 슬쩍 보더니 말했다.

“은호도 제가 잘 챙기고, 신병도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어이구, 현래야. 무슨 욕심이 그리 많냐. 노현래.”

“일병 노현래.”

노현래 일병이 눈을 반짝이며 김우진 병장을 바라봤다. 김우진 병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노현래 일병이 신병 때 어땠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병을 앞에 두고 말하기도 뭐 했다.

“후, 할 말은 많은데 차마 말은 못 하겠다. 적당히 해.”

그러자 노현래 일병이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김우진 병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최강철 일병을 봤다.

“강철아.”

“일병 최강철.”

“네가 책임지고 얘 좀 신경 써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가 도와서 관물대 정리 좀 해줘라.”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힘차게 대답을 한 후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신병, 더플백 들고 이리와.”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힘차게 대답을 한 후 더플백을 가지고 갔다.

“여기에 다 꺼내.”

“네.”

더플백 속에 있던 내용물을 꺼냈다. 위에는 아직 빨지 않은 속옷과 양말이 있었다.

“아, 구린내.”

옆에 있던 한태수 상병이 코를 붙잡았다. 강태산 이병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직 빨래를 못 했습니다.”

“알아, 일단 한쪽으로 치워놔.”

“넵!”

강태산 이병이 빨랫감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그사이 최강철 일병이 A급 전투복과 속옷, 양말 등을 관물대에 정리를 했다.

“속옷 개는 법 알지?”

“네.”

“그럼 그것부터 하자.”

최강철 일병이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 주었다. 강태산 이병은 힐끔 최강철 일병을 바라봤다.

“왜?”

최강철 일병이 한마디 툭 했다. 강태산 이병이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최강철 일병님.”

“그러니까, 왜?”

“저 기억 안 나십니까?”

최강철 일병의 손이 멈칫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강태산 이병을 봤다.

“너 나 알아?”

“저 예전에…….”

강태산 이병이 얼굴을 환하게 하며 말을 하려는데 구진모 상병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야, 관물대 정리하는데 무슨 지방 방송이 들려!”

최강철 일병이 바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강태산 이병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 이따가 얘기하자.”

“네.”

최강철 일병이 관물대 정리를 도와주면서 힐끔힐끔 강태산 이병을 봤다.

‘그래, 이 녀석 날 알고 있어. 내가 아까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맞았어.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최강철 일병이 속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강태산 이병의 속옷과 양말을 들고 세면대로 향했다.

“빨랫비누도 챙겨.”

“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우진 병장이 곧바로 놀렸다.

“오오오, 우리 강철이. 신병 데리고 뭐 하려고?”

“아, 빨래하려고 그럽니다.”

“빨래? 갈구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아, 아닙니다.”

“그래. 강철아. 신병은 원래 초장에 잡아야 해.”

“진짜 빨래만 할 겁니다.”

“알고 있다고.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는 갈구지 마라. 오늘 처음 내무실에 온 신병이다.”

“안 그럽니다. 너 빨리 챙겨서 나와.”

“이병 강태산.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강태산 이병을 데리고 서둘러 내무실을 나섰다. 그 뒤로 다른 선임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철아, 살살해라. 살살!”

“그러다가 탈영할지도 몰라!”

최강철 일병이 피식 웃으며 강태산 이병을 세면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최강철 일병이 빨래를 도와줬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당황하며 말했다. 최강철 일병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같이 해.”

최강철 일병이 빨래에 집중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태산 이병이 자꾸만 우물쭈물하며 최강철 일병을 쳐다봤다.

“왜? 뭔데?”

“네, 네?”

강태산 이병이 깜짝 놀랐다. 최강철 일병이 고개를 돌려 강태산 이병을 똑바로 쳐다봤다.

“너 아까 보니까, 나 아는 것 같은데 너 누구야?”

최강철 일병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강태산 이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저 모르십니까?”

“아니, 나도 너 어디서 본 것 같아. 가물가물한데 말이야.”

“혹시 기억 안 나십니까? 예전에 기업인 2세 모임 때 만났습니다.”

“모임? 언제?”

“4년 전이었습니다.”

“4년 전?”

당시 4년 전이면 고등학교 때였다. 기업인 2세 모임을 누군가 주최를 했고, 한번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최강철 일병이 그때를 떠올렸다. 그 속에서 옆에 있는 강태산 이병과 딱 닮은 얼굴이 있었다.

“아……. 기억난다.”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네, 맞습니다. 강진실업…….”

“그래, 그래. 기억나네.”

최강철 일병은 구석에 홀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강태산 이병을 떠올렸다.

“그런데 너 군대 왔어?”

“네, 저 어쩌다 보니 오게 되었습니다.”

“야, 너 왜 군대를 와?”

최강철 일병은 솔직히 강태산 이병이 왜 군대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막말로 그 정도 재력이면 유학을 가든지 이중국적으로 어떻게든 군대를 안 오려고 했다. 강진실업이면 그 정도는 되었다.

“그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최강철 일병이야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왔다. 게다가 최익현 의원은 차,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최익현 의원의 흠집을 주기 싫어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돼? 진짜 군대 온 이유가 뭐야?”

“사실 아버지가 형님이 여기 계신 거 알고 절 보냈습니다.”

“아니, 왜? 우리 아버지 때문에 그런 거야?”

최강철 일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태산 이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큰 사업을 하십니다. 아무래도 선진그룹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 거야?”

순간 최강철 일병은 짜증이 났다. 게다가 실망도 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있는 이곳으로 군대를 왔다는 것에 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짠했다.

‘그래도 나랑 처지가 조금은 비슷하네.’

최강철 일병은 강태산 이병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어찌 되었든 군대에 불순한 생각으로 왔지만 아버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이 아닌가.

“야, 너도 참 인생이…… 그렇다.”

“그러게 말입니다.”

강태산 이병은 아는 형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조금 풀어져 있었다. 그러자 최강철 일병이 바로 눈을 부라렸다.

“야, 강태산. 너 훈련소 안 다녀왔어?”

“네? 다녀왔습니다.”

“자식 봐라. 고참이 부르는데 관등성명도 안 대고!”

“네?”

강태산 이병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최강철 일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인마, 여긴 밖이 아니야. 군대야. 그런데 갓 전입 온 신병이 군기가 빠져가지고…….”

“가, 강철이 형…….”

“강철이 형? 이 새끼 봐라. 아무리 우리가 밖에서 알던 사이라고 해도 여긴 군대야! 난 고참이고. 어디서 함부로 형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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