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89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8)
김도진 중사가 콧방귀를 꼈다. 그러자 황당한 표정을 짓는 4소대장이었다.
“어? 행보관님,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우리가 술잔을 기울인 것이 몇 번인데……. 그리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에이, 4소대장님 왜 그러실까. 농담입니다, 농담!”
“정말입니까?”
“네. 뭐, 그렇다면 저 녀석 우리 소대로 주십시오.”
“그건 뭐, 어렵진 않지만…….”
김도진 중사가 슬쩍 지목된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뭔가 잔뜩 할 말이 있는지 움찔움찔거렸다. 그런데 4소대장이 아예 그 녀석 앞으로 가서 지목을 해버렸다.
“야, 너 생긴 것 괜찮다. 우리 소대 와라.”
강태산 이병이 지목을 당하자 순간 당황했다.
“저, 저는…….”
“왜 싫어?”
“아, 아닙니다. 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몇 소대인지 여쭤볼 수 있습니까?”
4소대장이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새끼, 이제 갓 전입 온 녀석이 당돌하네. 그래, 못 해줄 것도 없지. 나 4소대장.”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죄, 죄송합니다. 전 1소대로 가고 싶습니다.”
4소대장이 순간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왜? 왜 1소대에 가고 싶은데?”
“1소대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지못해 털어놓았다. 4소대장이 집요하게 물었다.
“아는 사람? 누구?”
“저, 그게……. 오상진 중위님…….”
“1소대장님을 안다고?”
4소대장이 번쩍 눈을 떴다. 황급히 4소대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너, 어떻게 아는데.”
“그게…….”
“어떻게 아냐고.”
“…….”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때마침 오상진이 행정반에 들어왔다. 4소대장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1소대장님.”
“네?”
“이 녀석이 1소대장님을 안다고 그러는데, 혹시 아십니까?”
“네?”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날 안다고? 난 모르는 얼굴인데…….’
하지만 오상진은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잠깐만, 네가 누구였지?”
“이병 강태산!”
“아, 강태산. 아버님 잘 계시지?”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풀어졌다. 4소대장도 그제야 표정을 밝게 하며 말했다.
“아, 진짜 1소대장님을 알고 있구나.”
“네, 뭐. 친척 중에 아시는 분이 부대에 온다고 해서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4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1소대 가야죠. 어쩌겠습니까.”
오상진은 솔직히 이렇게 오해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씁쓸하게 웃었다. 김도진 중사가 불쑥 말했다.
“그럼 너는 1소대로 가라.”
강태산은 이등병은 1소대로 배치가 되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강태산 이병에게 갔다.
“강태산.”
“이병 강태산.”
“일어나. 아무래도 소대장이랑 따로 면담을 해야겠지?”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그건 나중에 하고, 너희들 다 일어나.”
“네. 알겠습니다.”
신병 세 명이 다 일어났다. 오상진이 김도진 중사를 바라봤다.
“이 녀석들 배정은 다 끝났죠?”
“네.”
“그럼 중대장님 면담하러 가보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오상진이 신병들을 바라봤다.
“중대장님 면담이 있으니까. 다들 따라와.”
“네.”
오상진이 나가고 그 뒤로 세 명의 신병이 이동했다. 중대장실 앞에 섰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며 오상진이 들어갔다.
“중대장님 신병들 면담할 시간입니다.”
“아, 신병들 왔다고 했지. 들여보네.”
“네.”
3명의 신병이 나란히 들어왔다. 김철환 1중대장이 신병들을 봤다. 오상진이 직접 커피를 타서 김철환 1중대장과 신병들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신병들 신상명세를 쭉 훑었다.
“어디 보자.”
그때 강태산 이병의 신상명세서에 눈이 꽂혔다. 부친의 직업란에 강진실업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강진실업?”
김철환 1중대장이 강진실업이라는 기업을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아는 강진실업?”
그러면서 슬쩍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강태산 이병이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면담을 시작했다.
“그래, 신교대에서 교육받느라 힘들었지?”
“아닙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부드러운 얼굴로 신병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약 10여 분의 대화를 마친 후 오상진을 바라봤다.
“1소대장.”
“네. 애들 행정반으로 보내서 각 소대장보고 데리고 가라고 해.”
“네.”
“그리고 넌 바로 들어오고.”
“알겠습니다.”
“아, 강태산 이병은 좀 남고. 중대장이 개인적으로 물어볼 것이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강태산 이병만 빼고 두 명을 데리고 나갔다. 강태산 이병은 잔뜩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 긴장하지 마.”
잠시 후 오상진이 들어와 앉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시선이 갔다.
“1소대장.”
“네.”
“이것 좀 봐라.”
김철환 1중대장이 신상명세를 내밀었다. 그중 아버지 직업란을 가리켰다.
“강진실업 대표? 오, 남성 정장 브랜드 맞지? 내가 알고 있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전에 저랑 같이 가서 양복 맞췄지 않습니까.”
“그래. 거기 말이야.”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강태산 이병도 눈치를 챘는지 바로 말했다.
“네. 저희 아버지가 남성 의류 및 기성복도 제작하십니다.”
“그렇지. 내가 아는 거기 맞지.”
“네.”
“와, 아버지 크게 사업하시네.”
“아닙니다. 선진그룹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강태산 이병의 말에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선진그룹? 갑자기 왜 그 얘기가 나오지?”
오상진이 바로 물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뭔가를 아는 듯 입을 뗐다.
“혹시 아버님께서 선진그룹하고 친하신 거니?”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1소대 최강철 일병님이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그러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중대장님 앞에서 최강철 일병님을 높이면 어떻게 하냐.”
“앗! 죄송합니다.”
강태산 이병이 당황했다. 오상진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최강철 일병이랑 친해?”
“몇 번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최강철 일병 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온 거야?”
오상진이 궁금해서 물었다. 물론 김철환 1중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군대는 가야 하는데, 친구도 없고……. 그나마 여기에 최강철 일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강태산 이병이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오상진은 대충 눈치를 챘다. 이게 단순히 최강철 일병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들끼리 말을 맞춰서 슬쩍 밀어 넣은 것 같았다. 같이 군 생활 하라고 말이다. 김철환 1중대장도 미소를 지었다.
“어이구, 강 대표님 대단하시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상진도 웃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중대장도 잘 알았고. 앞으로 너 사고 치지 말고 군 생활 잘해. 참고로 말하지만 최강철 일병도 군 생활 엄청 잘하고 있다. 별다른 특혜도 없이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사고 치면 다른 부대로 전출 보내버릴 거야.”
“그것만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군 생활 잘하라고!”
“네. 걱정 마십시오.”
“1소대장 데리고 가.”
“네.”
오상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태산 이병도 일어나 더플백을 등에 멨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냐?”
“후후후, 저도 웃깁니다.”
“최강철 일병에게 멋진 후임 들어왔네.”
“네.”
오상진이 웃으며 강태산 이병을 데리고 중대장실을 나와 1소대로 향했다. 1소대 내무실 문을 열며 오상진이 소리쳤다.
“얘들아, 신병 받아라.”
그 순간 1소대원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우오오오. 신병 왔습니까?”
“신병 왔다!”
그렇게 1소대가 소란스러워졌다.
김우진 병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신병 앞으로 갔다.
“야, 신병!”
“이병 강태산.”
“강태산?”
“네, 그렇습니다.”
“오오, 이름 좋네.”
그러면서 은근슬쩍 강태산 이병 옆으로 가서 앉았다. 강태산 이병이 움찔하며 힐끔 바라봤다. 김우진 병장은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강태산 이병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 이병 강태…….”
“쉿! 시끄러워, 인마.”
“아, 네에…….”
“그보다 누나 있냐?”
“어, 없습니다.”
“없어?”
순간 김우진 병장의 얼굴에 아쉬움이 비쳤다.
“그럼 좀 곤란한데……. 아버지는 뭐 하시냐?”
“아버지는 사업하십니다.”
“사업? 뭐 파시는데?”
“옷 파십니다.”
“옷?”
“네. 그렇습니다.”
“어디? 동대문? 아니면 점포 브랜드 운영하시는 거야?”
김우진 병장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강태산 이병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뗐다.
“어, 그게…… 남성복을 파십니다.”
“남성복? 남성복이면 돈 안 되지 않냐?”
김우진 병장이 소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소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는 것 같았다. 하나, 강진실업은 남성복뿐만이 아니라, 아웃도어 제품도 따로 브랜드를 신설해 운영 중이었다.
“아웃도어 매장도 운영하십니다.”
“오오, 아버지께서 사업 크게 하시는구나.”
김우진 병장은 남성복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웃도어까지 한다고 하자 살짝 놀랐다.
“아웃도어 매장 어디서 하시는데?”
“어, 서울…… 에서 합니다.”
강태산 이병은 전국적으로 한다고 하면 왠지 일이 커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서울? 그럼 서울에 있는 아웃도어 매장이 다 너희 거야?”
강태산 이병은 순간 바로 ‘네’ 하고 대답할 뻔했다. 주위의 소대원들은 킥킥 웃었다. 그 와중에 최강철 일병만 표정이 좀 심각했다.
‘가만 저 녀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최강철 일병이 강태산 이병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봤더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현래 일병이 입을 뗐다.
“최강철.”
“일병 최강철.”
“너 왜 빤히 이 녀석을 보는 거야? 왜? 밑에 후임 또 들어오니까, 좋아?”
“아닙니다.”
“아니긴, 자식.”
노현래 일병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웃었다.
“이야, 우리 현래 많이 컸네.”
“좀 컸지 말입니다.”
노현래 일병의 받아치는 말에 김우진 병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우리 현래 그런 말까지 할 줄 알아?”
“왜 그러십니까. 저도 이제 일병 2호봉입니다.”
“아, 그래? 일병 2호봉이면 막 병장에게 개기고 그래도 되는 거야?”
“네? 아, 아닙니다.”
노현래 일병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김우진 병장이 피식 웃었다.
“인마, 바로 꼬리를 내릴 거면 뭐 한다고 개겨.”
“죄송합니다.”
“됐고, 조금 전 내 앞에서 최강철 갈군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