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87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6)
“좋아?”
“네.”
“포장해 주시는 거죠?”
“당연하죠.”
아저씨는 컴퓨터 케이스 박스에 조심스럽게 넣고, 정성껏 테이프로 감았다. 게다가 잘 들 수 있게 손잡이도 만들어 주었다.
“다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은 찾아 놓은 현금으로 계산을 마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 오상진이 말을 꺼냈다.
“참, 혹시 명함 있습니까?”
“아, 네에. 여기요.”
“제가 전화를 하면 바로 이거랑 똑같은 거로 하나 조립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거야 가능하죠.”
“그럼 한 대 더 주문할 테니까. 조립해서 배달 좀 부탁드릴게요.”
“배달요?”
“네. 나중에요. 이것 역시 계산은 할게요.”
“뭐, 그래 주신다면야. 당연히 해드려야죠. 걱정 마세요. 여기 주소만 적어놓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니다. 두 대 해주세요.”
“두, 두 대요?”
아저씨의 눈이 커졌다.
“네.”
오상진은 아지트에 한 대, 그리고 관리사무실에 한 대를 놓을 생각이었다. 그때 가 보니, 관리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속도가 많이 느렸다. 그래서 이참에 바꿀 생각이었다.
“이렇게 팔아드리는데 신경 잘 써 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걱정 마십시오. 저 이런 거로 사기 치는 사람 아닙니다.”
오상진은 그 자리에서 통 크게 컴퓨터 5대를 계약해 버렸다. 그것도 현금으로 말이다. 오상진은 거의 600만 원의 지출이 있었지만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그런데 주혁아. 어떻게 아까 그 매장을 고른 거야?”
“아. 쭉 훑어보니까. 그 아저씨 매장만 솔직하게 가격대를 적어놓으셨더라고요. 다른 곳은 이래저래 장난친 곳이 많았어요.”
“그래?”
그때 오정진이 나섰다.
“맞다. 아까 컴퓨터 옆에 적어놓은 글 보니까. 그래픽카드 없음. 이렇게 적혀 있던데.”
“네. 맞아요. 그것도 하나의 믿음이었죠. 사실 다른 곳에도 그래픽카드가 없으면서 있다고 과대광고를 하더라고요. ‘최신 그래픽카드 최저가에 모십니다’ 이런 광고들 보셨죠?”
“봤어.”
“나도.”
“그런데 그 아저씨는 싼 가격대의 컴퓨터에 그래픽카드가 없다고 해놓으셨으니까요. 그걸 보고 이 아저씨는 양심적이구나, 생각을 했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어이구, 우리 주혁이 제법이네.”
“에이, 뭘요. 기본이죠. 아무튼 형, 컴퓨터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투자야. 투자!”
“네?”
주혁이 눈을 크게 떴다.
“나중에 프로그래머로 성공하면 형 잊지 말라는 거야.”
“아……. 걱정 마요.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조카들에게도 엄청 잘할 거예요.”
“조, 조카? 하하하. 그래, 고맙다.”
오상진은 주혁의 말에 크게 웃었다. 오정진도, 주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오정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형, 내 것은 안 사도 되는데.”
“너 어차피 전에 사 준 노트북 상희에게 뺏겼다며.”
“괜찮아. 어차피 상희 집에 거의 없어서. 내가 그 노트북 쓰고 있는데, 뭐.”
“그러지 말고. 그냥 네 컴퓨터 써! 그리고 너도 볼 것 봐야지.”
오상진이 슬쩍 다가와 오정진의 귀에 대고 말했다. 순간 오정진이 당황했다.
“뭐, 뭘 본다는 거야?”
“자식, 다 알면서…….”
오상진이 음흉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오정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 나, 그런 거 안 보거든.”
“안보긴 뭘 안 봐!”
“나 진짜 안 봐.”
“안 봐? 진짜야? 그럼 형이 노트북 들고 가서 조사해 봐도 돼? 우리 장병들 중에 컴퓨터 잘하는 애가 있는데 말이야.”
오상진이 은근슬쩍 압박을 가하자 오정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왜 그래?”
“그러니까, 안 본다며.”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안 돼! 이게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한창 클 나이에……. 아무튼 적당히 해라. 뼈 삭는다.”
“형!”
오정진이 빨개지며 버럭 했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주혁이 옆으로 가버렸다. 오정진은 그런 오상진의 뒷모습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세 사람은 기분 좋은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5.
육군 제56사단의 사단장 이·취임식이 오후 사단 사령부 대연병장에서 거행됐다.
제1작전사령관 주관으로 열린 이 날 행사에는 백 소장과 이번에 취임하는 장기준 소장이 참여했다.
그 외 각 부대장과 장교 간부들 및 시장, 지역기관장을 비롯해 보훈 단체장, 초청 인사, 부대 장병 5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 명령 낭독, 부대기(지휘권) 이양, 열병, 작전사령관 훈시, 이임사 및 취임사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백 소장의 이임사가 있겠습니다.”
제56사단을 떠나는 백 소장이 단상에 섰다. 그전에 작전사령관에게 경례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흐흠, 저는 2년 전 바로 이 단상에서 서울시민이 어려울 때마다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제56사단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또한, 부모들로 하여금 금쪽같은 내 자식을 군에 맡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군에 들어와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 할 수 있는 생명과 인권 중심의 병영문화를 만드는 데 선봉장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제가 지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는 결실을 맺었다고 자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동고동락한 전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자랑스러운 서울, 즉, 한강 이남을 수호하는 멋진 작전사령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백 소장은 사단을 떠나는 마음을 아쉬워하며 이임사를 마쳤다. 그리고 곧바로 취임사가 진행되었다. 장기준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1작전사령관에게 경례를 한 후 단상으로 걸어갔다.
“지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선진 일류 국가를 지향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한 군대와 튼튼한 안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한 부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명예와 전통에 빛나는 제56사단의 지휘권을 인수함에 있어, 작전사령관님의 지휘 의도를 명찰함은 물론, 역대 사단장님들과 전우들이 이룩해 놓은 빛나는 업적과 전통을 창의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장기준 소장의 취임식도 간략하게 끝이 났다. 그렇게 제56사단 사단장 이·취임식이 끝이 났다.
제1작전사령관과 두 명의 소장은 사진 촬영을 했다.
“자,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병이 큰 카메라로 각 기관장들과 간부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제1작전사령관과 백 소장, 장기준 소장이 나란히 사단 현황을 보고했다.
무사히 모두 마치고 기념촬영까지 끝낸 상황에서 사단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취임식의 뒤풀이 장소였다.
“백 소장은 그동안 사단을 이끄느라 고생을 했고, 장 소장은 앞으로 2년 동안 잘 부탁한다.”
“넵.”
“네.”
제1작전사령관이 샴페인을 들어 두 사람에게 따라 주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제1작전사령관은 각 기관단체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백 소장과 장기준 소장 역시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때 백 소장의 눈에 구석진 곳에 있는 오상진을 발견했다.
“오 중위.”
“충성.”
“이런 곳에서 무슨 경례인가. 그보다도 그동안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사단장님께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그보다 아직 생각 안 바뀌었어?”
“네?”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백 소장이 피식 웃었다.
“아니, 나랑 같이 가자니까.”
“아닙니다. 저는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핫, 아무튼 자네 고집도 참……. 언제든지 마음 바뀌면 연락해. 내 번호는 알고 있지?”
“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어쨌든, 오 중위 덕분에 잘 지내다 가네.”
백 소장이 인자한 미소로 오상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다른 곳으로 갔다. 오상진은 그런 백 소장의 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반면, 그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종태 대대장이 있었다.
“야, 상진아.”
오상진이 고개를 돌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서 있었다.
“네. 중대장님.”
“넌 참 간도 크다. 어떻게 사단장님이 같이 가자고 하는데 안 간다고 할 수 있냐?”
“그럼 중대장님하고 누가 술을 같이 마셔줍니까?”
“하긴 그건 그렇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는 한종태 대대장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때 옆에 있던 곽부용 작전과장이 나직이 속삭였다.
“대대장님 신임 사단장님께서 오십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가오는 장기준 소장에게 경례를 했다.
“충성. 충성대대장 한종태 중령입니다.”
“오오, 자네가 충성대대장이었군.”
“네. 그렇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장기준 소장은 악수를 한 번 하고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장기준 소장 바로 옆에 정석태 중위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이 오상진 중위입니다.”
“그래?”
장기준 소장이 자연스럽게 오상진에게로 걸어갔다. 오상진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경례를 했다.
“충성.”
“으음…… 자네가 오 중위로군.”
“중위 오상진.”
그러자 바로 옆에서 김철환 1중대장이 관등성명을 댔다.
“대위 김철환.”
장기준 소장이 움찔하며 김철환 1중대장을 봤다.
“아, 미안하네. 자네가 1중대장이었군.”
“네. 그렇습니다.”
“내가 말이야. 두 사람을 참 만나고 싶었어. 오늘 행사 끝나고 나랑 차 한잔할 수 있겠나?”
“네?”
김철환 1중대장의 눈이 커졌다. 그러곤 곧바로 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대답을 하고, 옆에 있던 오상진은 슬쩍 한종태 대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한종태 대대장이 죽일 듯이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행사가 끝이 나고, 사단장실에 장기준 소장과 김철환 1중대장, 오상진, 장석태 중위가 있었다.
“그럼 말씀들 나누십시오.”
장석태 중위가 경례를 한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말했다.
“왜? 같이 얘기 나누지.”
“아닙니다. 전 여기서 빠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럼.”
장석태 중위가 사단장실을 나갔다. 어차피 장석태 중위의 목적은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장기준 소장을 봤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드님을 참 잘 두신 것 같습니다.”
“어이구, 말도 마. 나 따라와서 군대 들어온다고 할 때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저놈이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우리 김 대위가 잘 챙겨주길 바라네.”
“장 중위가 워낙에 잘해서 제가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친동생이다, 생각하고 잘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대답을 한 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 나는 또 이 라인에 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