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85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4)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어우, 우리 현래가 있어서 든든하네.”
“아, 아닙니다.”
노현래 일병이 미소를 지었다. 오상진이 박수를 짝 소리 나게 쳤다.
“그래. 주말 다들 잘 보내고. 사고 치지 말고. 물론 안치겠지만. 소대장은 이만 퇴근한다.”
“충성! 주말 잘 보내십시오.”
“오냐.”
오상진이 손을 흔들어 주며 내무실을 나섰다.
퇴근을 한 오상진은 자신의 관사에 들어갔다. 침대랑 책상 옷 넣을 장롱이 전부인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좁아 보이는 느낌이었다.
“관사가 이렇게 좁았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샤워실로 향했다. 물을 틀었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 왜 안 나오지?”
한참을 틀었지만 잘 나오지 않았다.
“에이씨! 보일러를 꺼 놨나?”
하지만 관사는 통합관리였다. 개개인이 관리하지 않았다.
“보일러병 이 자식. 일 안 하나?”
오상진은 투덜거리며 찬물에 대충 샤워를 한 후 나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하아. 그냥 오피스텔 하나 얻을까?”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원래 관사야, 잠만 자고 나가고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여태껏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불편하다고 느껴지는지 몰랐다. 오상진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풍요로움 때문에 느껴지는 주변의 변화 때문인 것 같았다.
“침대도 좀 꺼진 것 같은데…….”
오상진은 침대에 앉은 상태에서 ‘퉁퉁’ 튕겨 보았다. 그러나 침대는 처음과 그대로였다. 그저 오상진이 그리 느낄 뿐이었다.
“침대를 하나 사야 하나? 아니지, 아싸리 독립을 하는 게 낫겠다.”
오상진은 독립을 위해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소위로 임관했을 때는 관사 생활을 주로 했다. 하지만 중위를 달고 밖에서 출퇴근할 여력이 된다면 그렇게 해도 되었다.
“일찍 독립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오상진은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예전 그때가 떠올랐다.
“내가 예전에는 관사에서 언제까지 살았더라?”
오상진이 회귀 전을 떠올려봤다.
“아마 대위 달고도 몇 년간 더 살았던 것 같은데…….”
오상진은 그때를 기억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노트북을 펼쳐 자연스럽게 이번 주 로또에 대해서 확인했다.
“저번 주 로또 1등은 얼마나 받았나?”
그러면서 기사를 확인했다. 대략 34억 정도 받는 것 같았다. 오상진이 기사를 보고 피식 웃었다.
“34억? 물론 큰돈이긴 한데…….”
오상진이 현재 가지고 있는 로또에 비하면 적은 돈처럼 느껴졌다. 그 돈을 고스란히 은행에 넣어 뒀다. 그러니 한 달 이자만 해도 억 단위로 붙었다.
“그냥 넣어만 둬도 돈이 불어나니. 이거야 원…….”
오상진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직까지 오상진의 통장에는 30억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이거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빨리 돈을 굴릴 방법을 생각해야겠는데.”
오상진은 그날 밤늦게까지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 공상에 잠겼다.
오상진은 주말 아침 일찍 집에 도착을 했다.
“저 왔습니다.”
오상진이 현관에서 전투화를 벗었다. 그사이 2층에서 애들이 내려왔다. 오정진, 주희, 주혁이 세 명이 함께 말이다.
“어? 형 왔어?”
“그래.”
“오빠 왔어요?”
“형 오셨어요?”
오상진이 전투화를 벗다가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어? 너희 학교 안 갔냐?”
오정진이 나서서 말했다.
“형, 우리 지금 봄 방학이거든.”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안방에서 신순애가 나왔다.
“상진이 왔니?”
“네. 엄마.”
“안 그래도 잘 왔다. 엄마가 돈 줄 테니까. 애들 좀 데리고 나가서 학용품이나 새 학기 필요한 것 좀 사줘라.”
곧바로 뒤 따라 나온 신지애가 입을 열었다.
“언니, 아이고! 무슨 그런 걸 사 준다고 그래.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새 학기 준비를 해.”
“얘는……. 새 학기도 들어가는데 이것저것 준비는 해야지.”
“언니. 어처구니없는 소리 좀 하지 마요.”
신지애가 곧장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상진아, 이모도 돈 줄 테니까. 애들 맛있는 거나 사줘. 엄마랑 이모는 장사하러 지금 나가봐야 하니까.”
“네, 알겠어요.”
오상진이 대답을 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애들을 보며 말했다.
“야, 뭐 해? 다들 올라가서 준비하고 내려와.”
그러자 애들이 투덜거렸다.
“뭐야. 집에서 좀 쉬려고 했더니…….”
“아, TV 좀 보고 싶었는데.”
“…….”
오상진이 애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것들아! 뭔 말들이 그리 많아! 빨리빨리 움직여! 어서!”
“형, 군인인 것 알거든. 왜 병사들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해.”
오정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오상진이 짐짓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야, 병사들에게는 이렇게 하지 않지.”
“그럼?”
“막 굴리지! 왜 너도 해줄까?”
“아, 아니야. 벌써부터 군대의 기운을 느끼고 싶지 않아.”
오정진이 손사래를 치며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제일 먼지 주혁이가 옷을 입고 나왔다.
“오오, 주혁이가 1등이네.”
“전 잠바만 입었어요.”
“네가 지금 중학교 3학년이지?”
“네.”
“어디 학교생활은 할 만해?”
“네, 뭐…….”
주혁이가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상진이 주혁이의 머리를 헝클었다.
“자식이 얼굴에 자신감 넘치네.”
그 뒤로 오정진이 내려왔다. 오정진은 여전히 얼굴이 불만이 가득했다.
“아, 진짜 오늘 안 나가면 안 돼? 나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싶은데.”
“인마, 정진아. 오랜만에 형이랑 같이 쇼핑을 가자는데 왜 그리 불만이 많아.”
“나, 좀만 쉬다가 참고서 풀려고 했단 말이야.”
오상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진아. 넌 좀 쉬어! 하루 종일 공부만 하니? 아니면 ‘전 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해?”
“어? 그 말 괜찮네. 지금 나에게는 공부가 제일 쉬워.”
“헐, 그러다가 전국에 있는 모든 수능생들에게 몰매 맞는다.”
“뭐, 어때! 사실인데…….”
“됐다. 잔말 말고 어서 따라오기나 해.”
“하아……. 싫은데.”
오정진은 잔뜩 싫은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나가려다가 몸을 돌렸다.
“참! 그보다 너 합기도 도장은 잘 다니고 있니?”
“다니고 있는데.”
“내가 합기도 몇 개월 끊어 줬더라?”
“됐어. 형이 용돈 많이 줘서 그 정도는 스스로 낼 수 있어.”
오상진의 눈빛이 바뀌며 슬쩍 오정진의 팔을 붙잡았다.
“어? 왜 그래.”
오정진이 정색했다. 오상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오, 확실히 운동은 하고 다니네. 팔에 근육 붙은 거 보소.”
“아, 이거 놔. 남자끼리 뭐 하는 거야.”
“형제끼리인데 뭐 어때.”
오상진이 오정진을 끌어안으며 몸을 더듬거렸다.
“싫어, 싫다고.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둘이 엉켜 있을 때 주희가 나타났다. 그런데 겉에 걸친 코트가 제법 허름했다.
“어? 주희도 준비 다 했어?”
“네.”
“그렇구나……. 그런데 코트가 좀…….”
“코트요? 코트가 왜요?”
주희가 자신의 코트를 이리저리 확인했다. 오상진이 보기에는 조금 낡아 보였다. 게다가 주희가 키가 컸는지 코트 소매가 짧게 느껴졌다.
“그거 언제 산 코트야?”
“이거요? 이거 한 3년 된 것 같은데요.”
“이번 기회에 코트 하나 사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주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상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하나 사자. 너 지금 소매가 다 헤졌어. 너도 이제 많이 컸어. 그 코트가 안 맞는 거야. 그리고 내 동생들이 밖에 나가는데 이렇게 둘 수는 없지.”
“괜찮은데…….”
주희는 동생들이라는 말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면서 괜히 코트를 매만졌다. 그리고 2층 계단 끝에서 후다닥 누군가가 내려왔다.
“짜잔! 내가 나왔소!”
그곳에 예쁘장하게 차려입은 오상희가 서 있었다.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어라? 너도 있었냐?”
“뭐야. 내가 있었던 것을 몰랐어?”
“넌 기숙사에 없었어?”
“헐, 오라버니. 어쩜 이럴 수가 있어? 나도 이 집 ‘동생들’인데 말이야. 이렇게 왕따를 시켜도 되는 거야?”
“왕따? 무슨 왕따야.”
“그렇잖아. 내가 나타났는데 그 반응은 뭐냐고.”
“아니, 오빠는 연습한다고 기숙사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됐어. 너무해.”
오상희가 우는 시늉을 하자, 오상진이 마지못해 입을 뗐다.
“아, 알았어. 잘못했어. 그보다 너 얼굴 좀 보자.”
오상진이 오상희에게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오상희가 움찔하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오상희!”
“왜!”
“너 도대체 얼굴에 뭔 짓을 한 거냐?”
“뭐? 뭔 짓? 오빠는 화장도 몰라.”
“아, 너의 얼굴에 떡칠을 한 것이 화장이었어? 아고고, 네가 지금 몇 살이냐. 이렇게 화장을 떡칠을 하고 말이야.”
“와, 진짜. 너무하네. 이게 떡칠이라니. 기본 베이스야. 기본 베이스!”
“기본 베이스 좋아하네.”
오상진이 콧방귀를 끼자, 오상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진짜! 됐어! 빨리 가기나 해. 오빤 아무것도 몰라.”
“어휴, 진짜……. 겉멋만 든 널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시끄럽고, 가자고요. 가.”
오상진은 등 떠밀리듯 집을 나섰다. 그리고 차를 타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휴대폰 매장이었다. 그것도 박중근 하사의 처남이 연 휴대폰 매장이었다.
“형, 휴대폰 매장은 왜?”
“이번 기회에 너희들 휴대폰 좀 바꿔주려고 그런다.”
“무슨 휴대폰이야. 아직 괜찮은데.”
“잔말 말고 들어와.”
오상진이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휴대폰 좀 보여주실래요? 어떤 게 잘나갑니까?”
점원이 최신 휴대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거랑, 그리고 이것이 가장 좋아요.”
그러자 옆에서 불쑥 오상희가 끼어들었다.
“그런 거 말고 난 예쁜 거로 해줘. 어? 저기 빨간색, 저거 괜찮네.”
오정진이 희미하게 웃었다.
“후, 상희야. 휴대폰 하면 선진이잖아.”
“싫어. 난! 엘지니가 좋아.”
오정진과 오상희가 티격태격거릴 때 뒤에서 주혁이랑 주희가 뻘쭘하게 서 있었다.
“너희 둘은 뭐해? 이리 와서 골라.”
오상진이 주희, 주혁을 보며 말했다. 주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너희들도 내 동생들인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오빠가 결심했을 때 뜯어 먹는 거야. 이리와!”
오상진의 손짓에 서로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점원이 물었다.
“이야, 다 친동생이세요?”
“아뇨, 이 둘은 친동생이고, 저 둘은 사촌 동생들입니다.”
“사촌들하고도 우애가 좋습니다.”
“저희 어머니랑 이모랑도 두 분 너무 좋으세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박중근 하사 가족분 되시는데 당연히 군인정신으로 팔아 드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