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84화
43장 꽃 피는 봄이 오면(3)
“네가 사냐?”
“와, 아버지 너무하십니다. 일개 중위 월급이랑 별 두 개 다신 월급과 같습니까?”
“일 없다.”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삽니다.”
장석태 중위가 휴대폰을 들어 족발을 주문했다. 약 20분 후 족발이 왔다. 술잔 두 개를 놓고, 술을 따랐다.
“크윽, 오랜만의 술이라서 그런지 맛있습니다.”
“야, 이 집 족발 맛있다.”
장기준 소장이 족발 세 개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 앞에 있던 장석태 중위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하나씩 드십시오.”
“이 자식이. 이게 얼마나 된다고, 아빠가 먹는 게 아까워?”
“그럼 아버지가 사시든지!”
“와, 자식 놈 키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 어이구.”
“아무튼 여기까지가 제 것니다. 넘 보지 마십시오.”
“어이구, 에라이, 치사한 놈아.”
장기준 소장이 한마디 툭 던지고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족발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렸다.
“그런데 왜 사단을 내려갔냐?”
“소식 참 빠릅니다.”
“그야……. 아무튼 전 사단장에게 말했다며 보직 이동해 달라고 말이야. 사단에 가만히 있니, 뭐 한다고 내려가냐.”
“아버지 눈치 보이잖아요.”
“왜? 내가 너 갈굴까 봐 그래?”
“그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잘해도 사단장 아들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이런저런 말 도는 것이 싫습니다.”
“그럼 육본으로 올라가지.”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제가 아버지를 두고, 그쪽 라인을 타겠습니까?”
“이놈아, 너라도 그쪽 라인을 타고 있어야, 아버지를 끌어올려 주고 좋지.”
“하아, 진짜……. 그게 아들에게 할 소리입니까?”
“됐어. 그냥 해본 소리야.”
장기준 소장은 아들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일도 잘하고, 전 사단장인 백 소장이 잘 봐서, 데리고 갈 뻔했다.
그런데 그 손을 뿌리치고 남아서 자기를 위해서 고생을 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석태야.”
“네.”
“조만간 군 생활 접는다고 하더니, 그래도 적성에 좀 맞는갑다.”
“네, 해볼 만합니다.”
“내가 말했잖아. 몇 년 지나 보면 적응한다고. 넌 딱 군대 체질이야.”
“군대 체질이 어디 있습니까. 하다 보니, 그런 거죠.”
장석태 중위가 바로 반발했다. 장기준 소장이 피식 웃으며 술 한 잔을 마셨다.
“그것보다 너 이유는 말 안 해줄 거야?”
“무슨 이유 말입니까?”
“네가 꼭 충성대대에 갔던 이유 말이야. 혹시 오상진 중위 때문이야?”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럼?”
“충성대대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게 누군데?”
“아직은 말 못 해요. 좀 더 알아본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분간 절 믿고 맡겨 주십시오.”
장기준 소장은 그런 아들을 보며 조용히 술잔을 꺾었다.
3.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오상진은 항상 하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한소희와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환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낸 오상진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상진 씨?
한소희는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오상진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네. 여보 맞습니다.”
-뭐예요오.
“여보 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은 건 줄 몰랐네요.”
-정말요?
“네. 계속 듣고 싶어요.”
흔한 통화 인사말이었지만 그 말을 한 상대가 한소희라서일까.
그 흔한 말에도 괜히 가슴이 설렜다.
-으음, 그럼 결혼해야 하는데요?
“결혼 안 해도 할 수 있잖아요.”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네.
“그래도 할 거면서.”
-하긴 그렇죠. 호호호.
오상진은 이렇듯 한소희와 통화를 하면 하루의 피로가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내일은 몇 시에 볼까요?”
-상진 씨……. 설마 잊어버린 거예요?
“네? 제가 뭘…….”
오상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수요일에 한소희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 맞다. 이런…….’
오상진은 살짝 인상을 썼다. 이번 주 주말엔 오랜만에 가족 모임을 한다고 데이트가 힘들다 했던 한소희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오상진은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참 습관이 무섭네.’
오상진은 항상 주말이면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그래왔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주도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휴대폰 속 한소희의 목소리에서는 잔뜩 미안함이 느껴졌다.
-미안해요, 상진 씨.
한소희가 오히려 사과를 하자, 오상진이 당황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미안해요. 이미 얘기를 했던 것인데…….”
-저도 상진 씨 너무 보고 싶어요. 맘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데…….
“알아요. 알아. 가족 모임이잖아요.”
-아시다시피 아빠가 가족 모임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요. 나중을 위해서 상진 씨가 이해해 줘요.
“그럼요. 저도 아버님께 잘 보여야지요. 전 걱정 말고 가족 모임 잘해요.”
-네. 칫! 안 그래도 얼굴 자주 못 보는데 왜 하필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을 한다고 해서는…….
“후후후, 친척들 다 모이는 거죠?”
-네. 거의 다 오셨어요. 그리고 우리 이모, 고모들은 꼼짝을 안해요.
“네?”
-아니. 나마저 빠져버리면 저희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하겠어요. 상 차려야 하지. 술상도 봐줘야 하지. 중간중간 간식도 해줘야 하지. 저희 엄마 죽어나요. 나라도 옆에 있어서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요.
오상진이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소희 씨는 천사예요. 천사!”
-내가 좀 그런 것 같아요.
“알았어요, 저도 이번 주는 집에 있어야겠네요.”
-그래요. 우리 이번 주는 각자 효도하는 주간으로 삼자고요.
“허허,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요.”
-네, 상진 씨도요.
오상진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저만치서 이미선 2소대장이 걸어왔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묘했다.
“퇴근하세요?”
“아, 네에. 2소대장은 퇴근 안 합니까?”
“저도 해야죠. 그런데 1소대장님.”
“네?”
“혹시 통화 중이었습니까?”
“네.”
“여자 친구분?”
“뭐, 그렇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은 아닌데요. 이번 주는 여자 친구분하고 데이트가 없나 봐요.”
순간 오상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으음, 제 목소리가 좀 컸습니까?”
“아뇨. 복도가 조용해서 좀 들렸어요.”
오상진이 주위를 살짝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속으로 살짝 의아해했다
‘뭐지? 그다지 조용하지는 않은데.’
복도에는 오상진 이미선 2소대장 말고도 여러 장병들이 있었다. 게다가 내무실에서 들려오는 TV 소리와 그 외 장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시다시피 그다지 조용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중요한가요?”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그것보다 오늘 약속이 없잖아요. 그럼 우리 소대장끼리 회식해요. 네?”
이미선 2소대장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오상진이 순간 움찔했다.
“회, 회식 말입니까?”
“네. 지난번도 그렇고 다들 회식하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런데 1소대장님이 참석 안 하시면 회식을 할 수 없잖아요.”
오상진은 몇 번이나 회식을 거절했다. 물론 시간도 없을뿐더러, 이미선 2소대장이 부담스러워 회식을 계속 거절해 왔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도 다른 소대장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럼 간단하게 한 잔…….”
지잉지잉.
오상진이 막 대답을 하려고 할 때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잠시만요.”
휴대폰을 들어 확인해 보니 한소희에게서 온 문자였다.
-이번 주에 나 못 만난다고 술 마시고 그러면 안 돼요. 확인 들어갑니다!
오상진이 문자를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번 주도 안 되겠어요. 내일 집에도 가 봐야 하고…… 다음에 진짜…… 다음에 해요. 미안합니다. 그럼 2소대장 주말 잘 보내요.”
오상진은 사과를 하고는 곧장 그곳을 벗어났다.
“1소대장님, 1소대장님.”
“미안해요.”
오상진은 멀어지며 손까지 흔들었다. 순간 이미선 2소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진짜 더럽게 빼네.”
이미선 2소대장이 몸을 돌리며 팔짱을 꼈다.
“하아, 그럼 오늘은 또 누구랑 이 밤을 보내야만 하나.”
이미선 2소대장의 시선이 야릇하게 번들거렸다.
4.
오상진이 이미선 2소대장을 피해 나타난 곳은 1소대 내무실 앞이었다. 오상진은 항상 퇴근 전 1소대에 들려 소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퇴근을 했다.
“얘들아, 별일 없지?”
“충성! 1소대 내무실 휴식 중.”
“쉬어.”
“쉬어.”
“별일 없지?”
“네, 그렇습니다.”
김우진 병장의 어깨에 푸른색 견장이 올라가 있었다. 그는 예전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대답했다. 오상진이 김우진 병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제법 분대장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오, 이제 갓 분대장 단 우진이. 분대장 달아서 어때? 좋아?”
오상진은 김우진 병장이 분대장 신고식을 할 때 옆에 있었다. 자기가 직접 왼쪽 견장을 달아 주기까지 했다.
“네.”
김우진 병장은 머뭇거리다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김우진 병장 앞에 섰다.
“야, 세월 참 빠르지 않냐. 그렇게 망설만 피우던 우진이가 벌써 분대장을 달고 말이지.”
“에이, 소대장님 제가 언제 말썽을 피웠다고…….”
김우진 병장이 주변을 훑으며 말했다. 오상진은 짐짓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아니었나?”
“아닙니다.”
“진짜?”
“네. 진짜입니다.”
“알았어. 알았어. 자식, 발끈하기는…….”
“아닙니다.”
“알았다니까. 그보다 분대장이 되었으니. 잘해야 하는 건 알고 있지?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것도 말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어느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오상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김우진 병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옆에 앉아 있는 차우식 병장을 봤다.
“차 병장.”
“병장 차우식.”
“넌 괜찮아?”
“뭐가 말입니까?”
“분대장 말이야.”
“전 관심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관심도 저는 그닥입니다.”
“자식. 아무튼 넌 너무 조용히 있어.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
차우식 병장은 말이 없었다. 오상진은 살짝 민망한 얼굴로 주위를 확인했다.
“일도는 휴가 잘 갔고?”
“네.”
“오늘 오전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인사도 못 받았네.”
“밝은 표정으로 나갔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보다 일도 복귀하면 그다음 날 바로 제대지?”
“네. 그렇습니다.”
“일도도 벌써 제대라니…….”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환자는?”
“없습니다.”
오상진은 마지막으로 이은호 이병에게 시선이 갔다.
“은호는?”
“이병 이은호. 괜찮습니다.”
“그래. 너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소대장에게 얘기해야 한다.”
“요새는 건강합니다.”
“알아, 그래도!”
“네. 소대장님.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현래 일병이 불쑥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