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75화
4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6)
부대 복도 끝에 김우진 병장이 나타났다. 아직 복귀하려면 2시간이나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벌써 복귀를 했다.
“어? 김 병장님. 충성.”
노현래 일병이 깜짝 놀라며 경례를 했다. 그 모습을 본 김우진 병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 그래.”
“벌써 복귀하셨습니까?”
“그래.”
“아직 오후 17시 되려면 2시간이나 남았습니다. 밖에서 좀 더 시간을 더 보내고 오시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오십니까?”
“밖에서 있음 뭐 해. 그냥 돈만 쓰지. 빨리 부대 복귀하는 것이 좋아.”
“그래도…….”
“그보다 소대원들은 잘 있었지?”
“물론입니다.”
김우진 병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소대 내무실로 걸어갔다.
할머니 삼일장을 치르고 남은 기간 누나와 가족, 친척들과 함께 뒷정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휴가 날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빨리 부대에 복귀한 것이다.
그렇게 내무실로 들어가자, 소대원들이 자신을 반기듯 모여 있었다.
“어? 김 병장님!”
“김우진 병장님 오셨습니까?”
“와, 너무 빨리 복귀하셨습니다.”
“우진이 왔냐?”
후임들에 이어 마지막으로 김일도 병장이 애써 웃는 얼굴로 물었다.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왔습니다.”
그런데 김우진 병장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지난 5일 동안 많이 힘들었던지 볼살이 푹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매우 밝아 보였다.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네, 얼굴이 완전히 반쪽이 되셨습니다.”
김우진 병장은 소대원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괜찮아, 괜찮아.”
김우진 병장이 애써 괜찮다고 했다.
그 순간 내무실 문이 벌컥 하고 열리더니 작전과 작전계원이 나타났다.
“여기 김우진 병장님 있습니까?”
“누구? 난데.”
“아, 지금 대대장실로 올라가 보십시오. 대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나를?”
“네. 지금 바로 올라가십시오.”
이유라도 알려주면 좋았겠지만, 작전계원은 제 할 말만 전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올라갔다.
“대대장님께서 왜 나를?”
김우진 병장은 잔뜩 의아해했다.
김일도 병장이 다가왔다.
“일단 올라가 봐. 급할 거 없으니까 대대장실에 갔다 와서 마저 이야기하자.”
“아, 네에.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전투모를 쓰고, 내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대대장실 앞에 서서 호흡을 골랐다.
“크흠…….”
목소리까지 상태를 확인한 후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C.P병이 보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1중대 1소대 김우진 병장입니다. 대대장님께서 절 찾으셔서…….”
“아, 들어오세요.”
“네.”
C.P병이 대대장실로 갔다. 잠시 후 나오며 말했다.
“지금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대대장실로 들어갔다.
똑똑!
“들어와.”
김우진 병장은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대대장실로 들어갔다.
“충성! 병장 김우진. 대대장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김우진 병장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자네가 김우진 병장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 어서 와라. 일단 그쪽에 앉아.”
“네. 감사합니다.”
김우진 병장은 뜻밖의 환대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후 정면을 응시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종태 대대장이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딱딱하게 있나. 편히 있어.”
“괘, 괜찮습니다.”
“대대장이 안 괜찮아. 내가 자네를 벌주려고 부른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 네에…….”
김우진 병장이 조금은 편안한 자세로 있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상석에 앉았다.
“지금 휴가 복귀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래, 일단 차 한잔할까? 커피?”
“네. 좋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C.P병에게 커피 두 잔을 시켰다. 그리고 다시 김우진 병장을 보며 말했다.
“대대장이 자네를 부른 이유가 궁금하겠지.”
“…….”
“할머니 얘기, 대대장도 들었다. 고생 많지?”
그제야 김우진 병장은 왜 대대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아닙니다.”
“그래, 할머니 장례를 잘 치렀고?”
“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치렀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보다 할머니가 어릴 적부터 키워주셨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그럼 엄청 슬펐겠네.”
“아닙니다.”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겉보기에는 대대장이 조모상을 당한 병사를 위로하는 자리처럼 보이겠지만 실제 한종태 대대장과 김우진 병장은 별 감정 없이 형식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다.
김우진 병장은 대대장이 어려웠고 한종태 대대장 역시 마음에도 없는 억지 위로를 전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병사가 할머니 장례를 치르든 말든 자기랑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작전과장이 이번에는 병사를 불러 위로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김우진 병장도 한종태 대대장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도 김우진 병장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진짜 위로라도 하려고 불렀나?’
처음에는 살짝 감동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이상했다.
대대장이 병사들의 아픔까지 돌볼 만큼 살가운 성격이었던가?
하물며 김우진 병장은 이렇게 단독으로 대대장을 만난 것은 긴 군 생활 동안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멋쩍음을 달래듯 차가 나왔다.
“마시게.”
“네, 감사합니다.”
김우진 병장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물었다.
“그래, 다른 힘든 점은 없었고?”
“네. 대대장님.”
“그럼 별일 없이 잘 다녀온 거지?”
“네. 대대장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한종태 대대장이 크게 웃었다. 아무래도 한종태 대대장은 저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김우진 병장이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다.
그 뒤로 한종태 대대장은 집안일이나 내무실 생활이 어떤지를 물어봤고 그때마다 김우진 병장은 차분하게 얘기를 했다.
“김 병장은 그래도 별문제 없이 군 생활을 잘했네.”
“네. 대대장님.”
“참, 김 병장 제대 얼마나 남았지?”
“3개월 남았습니다.”
“어? 그래? 얼마 안 남았네.”
“그렇습니다.”
“알았네. 무슨 일 있음, 언제든지 대대장에게 말하고. 대대장이 최대한 신경 써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그래, 커피 다 마셨으면 가봐도 돼.”
“네.”
김우진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수고하고.”
“네, 대대장님.”
김우진 병장이 대대장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대대장실 문을 닫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작 그걸 물어보려고 날 불렀나? 여태까지 안 부르다가?’
김우진 병장은 애써 표정을 감추고 1소대 내무실로 내려갔다.
그를 대신해 대대장실로 곽부용 작전과장이 들어왔다.
“김우진 병장하고의 면담은 잘하셨습니까?”
“작전과장 말대로 하긴 했는데…….”
한종태 대대장은 이런 것이 영 못마땅했다.
“솔직히 말이야. 대대장인 내가 꼭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지금은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어쨌든 대대장님께서 병사들에게까지 신경 쓰고 챙겨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부대 곳곳에 소문이 날 것입니다.”
“아후, 고작 이런 걸로……. 아무튼 요즘은 대대장 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
한종태 대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곽부용 작전과장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참 작전과장.”
“네.”
“사단에서 소식 없나?”
“무슨…….”
곽부용 작전과장이 물음표를 지었다.
“거참, 자네도……. 진급 소식 말이야. 아직 무슨 말 없어?”
“아, 진급 말입니까? 아직 사단에서는 별 얘기가 없습니다.”
“그래? 이상하네. 이쯤이면 무슨 말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한종태 대대장은 자신이 충분히 진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요즘 사단장님에게 좀 찍힌 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대장으로서 열심히 했잖아. 칭찬도 자주 들었고. 그럼 사단장님께서 영전하실 때 같이 움직이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어?”
“…….”
한종태 대대장의 꿈 같은 바람에 곽부용 작전과장은 차마 말을 붙이지 못했다.
“아, 진짜. 나 여기 계속 있는 것은 아니지? 지금 몇 년째 대대장 노릇만 하고 있는 줄 아는가? 이제 서서히 대대장도 귀찮고 그래.”
한종태 대대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대답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한종태 대대장이 물었다.
“작전과장, 자네가 보기엔 어때? 나만큼 했으면 진급 소식 들려야 하는 거 아니냐?”
“네, 뭐 그렇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한종태 대대장의 투덜거림을 그대로 들었다. 그러면서 동조해 주는 척했다.
얼마 전 사단장이 좋은 곳으로 보직을 옮긴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계속 저런 식이었으니까.
물론 사단장이 움직이면 사단장 라인 중 상당수가 함께 움직이겠지만, 그 속에 한종태 대대장이 포함되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보다 사단장님에 대해서 더 들은 것은 없어?”
“네, 아직까지는…….”
“아놔, 사단장님께서 날 잊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 이것저것 챙길 게 많아서 좀 늦어지는 걸 거야. 그렇지?”
“네, 맞습니다.”
“그래. 사단장님이 날 잊으실 리 없지.”
오늘도 정신승리 하는 한종태 대대장을 보며 곽부용 작전과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한종태 대대장과 면담을 마친 김우진 병장은 다시 내무실로 내려왔다.
김일도 병장이 그런 김우진 병장을 따뜻하게 맞이해 줬다.
“잘 왔다. 대대장님이 뭐라고 하시디?”
“별 얘기 없었습니다. 그냥 할머니 장례 잘 치렀냐. 별다른 일은 없었냐?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
“그래? 정말 그 얘기뿐이었어?”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반짝였다.
“아! 다른 것도 있었습니다.”
“뭐? 뭔데?”
“무슨 일 생기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대대장이 최대한 신경 써주겠다면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김일도 병장이 인상을 썼다.
“뭐야. 그런 말은 좀 웃기다. 병사가 언제 대대장을 찾아가서 일이 생겼다고 보고 하냐. 안 그래?”
“맞습니다. 중대장님께 보고를 올리지.”
옆에 있던 구진모 상병이 거들었다. 김우진 병장도 맞는 얘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형식적인 말이라는 것쯤은 압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에이, 대대장님께서 직접 들어 주신다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후후후, 맞다. 맞아. 잘했어.”
김일도 병장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최강철 이병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김우진 병장을 발견하고 바로 인사를 했다.
“어? 기, 김우진 병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돌렸다.
최강철 이병을 발견하고 살짝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 강철아. 네 덕분에 잘 다녀왔다.”
“아닙니다.”
“아니야, 정말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야. 너의 그 휴가증이 아니었으면 할머니 돌아가시는 것도 못 보지 않았냐.”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그 소리에 김우진 병장이 피식 웃으며 최강철 이병을 툭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