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9화
41장 추위가 가면(12)
“아닙니다, 이게 다 소희 씨 덕분이죠.”
한소희가 씨익 웃었다. 한중만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밥 먹고 사무실 가서 대본 좀 볼 텐가?”
“저는 좋은데…… 소희 씨 괜찮아요?”
“우리 뒤에 약속도 없잖아요. 전 딱히 상관없어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럼 식사하고 바로 사무실로 가죠.”
“알았어.”
그렇게 세 사람은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커피 하나씩 사서 들어왔다. 소파에 앉은 한소희가 자신의 배를 툭툭 건드렸다.
“와, 배부르다.”
오상진은 오빠 사무실이라고 허물없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한중만은 자신의 책상 서랍을 꺼내 두 개의 대본을 가지고 왔다.
“이게 폭풍의 대본이고, 이것이 바로 왕의 광대라는 작품이야. 아마 왕의 광대라는 제목은 가제야. 100% 확정은 아닌 것 같아.”
“아, 네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대본을 받았다. 오상진은 먼저 폭풍부터 확인을 했다. 오상진의 예상대로 그 내용이 맞았다. 영화로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대본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대본은 괜찮은데 왜 영화로 나왔을 때는 별로였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중만은 그런 오상진의 모습을 지켜봤다.
“왜? 재미없어?”
“아뇨, 재미있습니다.”
“그렇지. 재미있지!”
한중만이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오상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런데 이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딱 대본대로라면 스케일도 엄청 크고, 멋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게다가 막 머릿속으로 상상이 됩니다. 한 가지 문제는 과연 이걸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표현을 할지가…….”
오상진이 살짝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한중만이 얘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흐흠……. 오케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그럼 왕의 광대는?”
“지금 읽어보겠습니다.”
오상진이 찬찬히 대본을 읽어봤다. 역시 영화로 봤던 그대로였다. 오상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 이것도 재미있습니다.”
“재미있어?”
“네. 그런데 이건 제작비 얼마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까?”
“제작비? 아마 70억 정도 예상하던데.”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당시 영화의 제목은 ‘연산군의 남자’였다. 왕의 광대가 아니라. 아마도 가제로 정해놓은 것이었다.
‘그때 당시 거의 900만 가까이 봤을 거야. 그렇다면 얼추 600배 정도의 수익을 올렸네. 대박!’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한중만이 오상진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왜? 뭔가 느낌이 와?”
“네. 잘하면 천만 정도 예상합니다.”
“뭐? 천만? 고작 이 영화로?”
한중만은 천만까지는 안 갈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극이었다. 게다가 연산군과 광대들의 얘기였다. 이런 건 절대 재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상진이 저런 반응을 보이니, 생각이 깊어졌다.
“그렇게 재미가 있어?”
“일단 대본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증권가의 소문도 그렇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쪽의 소스를 전해준 사람의 촉이 좀 좋습니다. 여태껏 영화 투자에서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진짜?”
한중만의 귀가 솔깃했다. 정말 실패가 없다면 그 사람의 촉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매제가 그렇다면……. 아니지, 이 얘기를 듣고 형님이 계속해서 날 꼬시는 건가?”
한중만이 소파에 몸을 깊게 누이며 생각에 잠겼다. 한소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오빠는 투자를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어?”
“한 5억 정도?”
“5억? 어이구 우리 오빠 돈 많네.”
“야, 이 돈 지난번에 영화 제작하려다가 짱박아 놨던 거 엎어져서 그대로 가지고 있던 거야.”
“그래서 그거 다 집어넣으려고?”
“아직 모르겠다. 그냥 2억 정도 넣어볼까, 생각 중인데……. 이거 다 넣어야 하나?”
한중만이 생각하고 있는데 오상진이 불쑥 말했다.
“형님, 괜찮으시면 저도 그 영화에 투자를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한중만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 매제도 하고 싶어?”
“네. 형님이 5억하신다니까. 저도 5억하고 싶습니다.”
“그럼 너랑 나, 10억이네. 어이구야, 자네 그래도 돼?”
한중만의 물음에 한소희가 끼어들었다.
“오빠, 모르지? 우리 상진 씨 돈 많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 날려도 되는 거야?”
한중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신 형님.”
“그래.”
“이거 투자해서 잘 되면요. 배당금 나오지 않습니까.”
“아, 배당금! 그건 걱정 마. 내가 아주 칼 같지…….”
“아뇨, 형님. 만약에 진짜 그 영화가 잘 되면, 그 돈을 형님이 제작하시려는 영화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뭐?”
“상진 씨?”
한중만과 한소희가 깜짝 놀라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한중만의 표정이 밝아지며 물었다.
“정말인가?”
“네.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때문에 형님의 마음이 바뀌신 것이니까. 저도 책임지고 싶습니다.”
한중만이 오상진의 눈빛을 찬찬히 바라봤다. 확실히 뭔가 믿음이 있는 눈빛이었다.
“좋아, 알았어! 그렇게만 해주면 나 모두 올인한다.”
“네. 절대로 형님이 후회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오상진은 알고 있었다. 이 영화가 불러올 극장가의 파급력을 말이다.
16.
최강철 이병의 포상휴가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날도 최강철 이병은 최지현과 함께 보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네, 그러게요.”
최지현은 뭔가 많이 아쉬워했다. 최강철 이병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아침부터 만나서 오후까지 명동 거리를 거닐며 데이트를 즐겼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말했다.
“지현 씨.”
“네.”
“저 이제 부대에 복귀해야 해요.”
“그래요?”
최지현 얼굴이 그늘이 드리웠다. 최강철 이병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알고 있어요. 가요.”
“네? 어, 어딜요?”
“부대 복귀한다면서요. 제가 부대 앞까지 배웅할게요.”
최강철 이병이 당황했다.
“아, 아뇨. 무슨 그런 수고까지……. 그냥 우리 여기서 헤어져요.
최강철 이병이 많이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최지현이 미소를 지었다.
“아뇨, 같이 가요. 너무 아쉬워서 그래요.”
최지현의 말에 최강철 이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 안 되는데…….’
최강철 이병은 김우진 병장이 사 오라고 했던 맥심을 구입할 예정이었다. 부대 앞 매점에 맥심을 팔았다.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요, 꼭 같이 가고 싶어요.”
최지현은 환하게 웃으며 최강철 이병의 팔짱을 꼈다. 최강철 이병은 더욱 당황했다.
“하하, 하하하……. 아, 알겠습니다.”
엉겁결에 최강철 이병은 최지현과 함께 부대로 이동했다. 명동에서 다른 소대원들이 사 달라고 한 것은 미리 다 구입을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맥심을 구입하지 못했다.
최강철 이병과 최지현이 탄 택시가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섰다.
“왜, 부대 앞까지 안 가고요.”
“아,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어색한 얼굴로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직 부대에 복귀를 하려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두 사람은 부대 앞 커피숍으로 들어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최강철 이병의 신경은 온통 서점에 향해 있었다.
‘저 앞에 있는 서점이 마지막인데…….’
최강철 이병이 슬쩍 앞에 있는 최지현을 봤다. 그녀는 예쁜 얼굴로 창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최강철 이병과 눈이 마주쳤다. 최지현이 배시시 웃었다.
“왜요?”
“아, 아닙니다. 그냥 너무 예뻐서…….”
“어머. 강철 씨도 참…….”
최지현은 살짝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숍을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점 근처에 오고 최강철 이병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저 이제 부대 들어가야 하니까. 지현 씨도 어서 들어가세요.”
“왜 자꾸 먼저 보내려고 해요? 뭐 하실 것이라도 있어요?”
최지현의 물음에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게 아니라…… 괜히 부대 근처로 갔다가 군인들에게 놀림 받을까 봐 그래요.”
“뭐, 어때요. 내 남친이 군인인데…….”
최지현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최강철 이병의 시선은 서점 안쪽에 진열된 맥심에 꽂혀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최강철 이병은 계속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있다가 최지현이 물었다.
“뭐해요? 안 가요?”
“가, 가야죠.”
“그런데 강철 씨 뭘 그리 보고 있던 거예요?”
“네?”
최강철 이병이 깜짝 놀랐다. 최지현의 시선이 서점으로 향했다. 그러자 최강철 이병이 곧바로 최지현의 시선을 몸으로 막았다.
“뭐, 뭘 보고 있다니요. 지현 씨를 봤죠.”
“아닌데…….”
“아니긴요. 가, 가요. 부대 앞까지 간다면서요.”
“네에…….”
최지현은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최강철 이병과 걸어갔다.
“이번에 들어가면 또 휴가 언제 나와요?”
“한두 달 정도 있다가요. 아마 그때는 14박 15일 정도 될 겁니다.”
“우와! 그렇게나 길게요?”
“일병 휴가는 그 정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럼 그 안에 면회도 오고 할게요.”
“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며 위병소 앞까지 왔다. 최지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건강하고, 아프지 말고요.”
“그 말은 제가 하고 싶네요. 아프지 마요.”
“네.”
두 사람은 애틋하게 바라봤다. 그때 위병소 근무자가 말했다.
“곧 5시 다 되어 갑니다.”
그 소리에 최강철 이병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지현 씨, 저 지금 바로 들어가 봐야 해요.”
“아, 알겠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네.”
최강철 이병은 아쉬운 얼굴로 최지현과 헤어져 위병소로 향했다. 하지만 더 아쉬운 것은 바로 서점에 있는 맥심이었다.
‘하아, 김 병장님께 한 소리 듣겠네.’
그렇다고 최지현이 보는 곳에서 맥심을 살 수는 없었다. 최강철 이병은 체념한 듯 위병소 사무실로 갔다.
“휴가 복귀자입니다.”
“필요 없는 물품 가지고 온 거 없지?”
“네.”
위병소 부사관이 힐끔 최강철 이병의 주위를 확인했다. 음악 CD와 담배 말고는 없었다.
“너, 이게 다야?”
“네.”
“설마 맥심 같은 불량 서적을 숨기고 그런 거 아냐?”
순간 뜨끔한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없습니다.”
“없어? 그런데 왜 말을 더듬어.”
“너무 갑작스럽게 물어보셔서…….”
“뭐야? 수상한데……. 너 안으로 들어와 봐.”
“아, 네에.”
최강철 이병이 위병소 사무실로 들어갔다. 위병소 부사관이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너 정말 이것 말고는 없지?”
“네, 없습니다.”
“알았어, 들어가.”
“네.”
최강철 이병이 위병소에 신고를 하고 다시 나왔다. 그때까지 위병소 앞에 최지현이 있었다. 최강철 이병이 손을 흔들고는 쓸쓸히 부대로 올라갔다. 최강철 이병은 부대로 올라가면서도 근심이 가득했다.
“아, 진짜 김우진 병장님께 뭐라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