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8화
41장 추위가 가면(11)
“어? 그래요? 전 지금도 소희 씨 보면 막 가슴이 떨리고, 무척 설레고 그런데.”
“칫, 뭐래요? 그래도 우리는 많이 편해졌죠. 처음보다는. 안 그래요?”
“네. 뭐…….”
“솔직히 풋풋함은 없어졌잖아요.”
“그게 아쉽습니까?”
“아쉽다기보다는 처음 만났을 때 설레었던 것이 생각나고 그렇다는 거죠. 그렇다고 지금이 싫다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요. 난 상진 씨와 함께라면 뭐든지 좋아요.”
한소희의 말을 듣고, 오상진이 살짝 미안해졌다.
‘생각해 보니, 요즘 훈련이다 데이트를 자주 못했구나. 그리고 만나면 대부분 아지트에 있었고.’
오상진은 한소희와 최근 데이트했던 것을 떠올렸다. 대부분 아지트 근처에서 밥 먹고, 만날 그곳으로 향했다. 어찌 보면 집에서만 있었던 것 같았다.
‘하아, 반성해야겠다. 오상진.’
오상진은 잔뜩 미안한 얼굴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내가 너무 소희 씨에게 무심했어. 이제 좀 신경을 써야겠다.’
오상진은 생각을 끝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일어났다. 레스토랑은 나와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한소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제 우리 아지트로 갈 거죠?”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딩동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왜요? 어디 갈 곳 있어요?”
한소희가 물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러곤 호텔 프런트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상진이 물었다.
“혹시 방 있나요?”
“네, 어디로 드릴까요?”
“스위트 룸으로 주세요.”
“스위트 룸 말씀이시죠?”
“네. 알겠습니다.”
한소희는 오상진의 행동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리고 오상진이 키를 받고 몸을 돌려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상진 씨?”
“소희 씨 우리 오늘은 분위기 좀 내자고 그랬죠? 너무 아지트에만 있어도 안 좋아요.”
“네?”
한소희가 눈을 끔뻑거렸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설렘도 좋지만, 이런 분위기 있는 곳에서의 설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소희의 얼굴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상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와인도 콜?”
“콜!”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일요일, 오상진과 한소희는 모처럼 둘째 오빠 한중만의 사무실을 찾았다.
“오빠!”
“어서 와라, 소희야.”
“안녕하십니까, 형님.”
“어이구, 우리 매제. 어서와!”
한소희가 깜짝 놀랐다.
“어머? 오빠도 매제야?”
“왜? 형이 만날 매제, 매제라고 부르던데.”
“그건 큰오빠니까 그러는 거고.”
“그럼 넌 매제랑 결혼 안 할 거야? 매제, 결혼 안 할 거야?”
한중만이 오상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상진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해, 해야죠.”
“그렇지. 해야지. 그런데 언제 할 거야?”
“네?”
한소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오빠는 무슨 벌써 결혼 얘기야.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나 22살밖에 안 됐어!”
“야,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면 나중에 권태기 오고 막 그런다.”
“아, 진짜! 못하는 말이 없어. 동생한테……. 우리 아직 좋거든!”
한소희는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오상진의 팔짱을 꼈다.
“야, 인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삐지기는!”
“안 삐졌거든.”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냐?”
“맛난 거 사줘.”
“알았어, 인마. 요 근처에 낙지볶음 잘 하는 데 있거든. 거기 가자.”
“오예! 낙지볶음 좋지.”
한소희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런 한소희를 본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자, 가자.”
근처 낙지볶음 집으로 간 세 사람은 3인분을 시켰다. 한소희는 벌써부터 젓가락을 들고 낙지볶음이 빨리 익기를 기다렸다.
“진정 좀 해라. 남자친구 옆에 두고 너무 몰입하는 거 아니야?”
“몰라, 낙지볶은 내가 좋아하잖아. 오랜만에 입 안에서 불타오르겠구만.”
매콤한 낙지볶음 생각에 한소희는 벌써부터 전투력 만땅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중만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저는 귀엽기만 한데요.”
“어이구, 제 눈에 안경이다. 완전히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어!”
“오빠!”
“아, 아니다. 아니야. 다 익었네. 어서 먹기나 하셔!”
한중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낙지볶음을 권했다. 한소희가 젓가락으로 잘 익은 낙지 하나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렸다.
“으음, 맛있어.”
한소희 눈이 가늘어지며 기쁨을 표출했다. 그리고 대접에 밥이 나왔다. 한중만이 밥 위에 낙지볶음을 넣고, 참기름을 살짝 넣어서 한소희에게 건넸다.
“자, 먹어.”
“오빠가 먹어. 내 취향대로 먹을래.”
“우씨, 오빠 손 민망하게…….”
“됐어. 상진 씨도 쳐다보는데.”
“뭐? 오빠가 동생을 챙긴다는데……. 안 그래, 매제.”
“네. 괜찮습니다.”
“아무튼 싫어. 내가 알아서 먹을게.”
한소희는 자신만의 취향대로 낙지볶음을 먹었다.
“에이, 알았다.”
한중만은 투덜거리며 스윽스윽, 낙지볶음을 비볐다. 그리고 다 비빈 후 한입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그래 이 맛이지.”
그런 두 사람을 오상진이 약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때 한중만과 눈이 마주쳤다.
“아, 미안. 매제. 내 거 줄 걸 그랬다.”
“아닙니다. 저도 형님처럼 비벼서 먹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네. 그리고 아까 그 모습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전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보기 좋기만 했습니다.”
“그렇지! 역시 우리 동생이 남자 하나는 잘 골랐단 말이야.”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그리고 우리 상진 씨 맘이 얼마나 넓은데!”
“으그, 알았다. 남자 친구 칭찬은…….”
한중만이 인상을 쓰며 밥을 한 숟갈 뜨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네, 한중만입니다. 네! 아, 그거요. 아직 결정 못 했는데요. 뭐 때문에 그러세요? 아……. 왕의 광대요? 아, 난 그거 잘 모르겠던데……. 네네, 알겠어요. 내일까지 연락드릴게요. 네네.”
한중만이 전화를 끊었다. 한소희가 잔뜩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뭔데? 뭐라고 그래?”
“아니, 투자 건 때문에.”
“투자?”
“아, 이번에 영화 제작이 쉽지 않아서, 가지고 있는 돈으로 투자를 해보려고.”
“오빠가 투자를 해? 돈은 어디 있었어?”
“예전에 남은 돈이 좀 있었어.”
“돈이 있었어?”
“이 녀석이 이 둘째 오빠를 뭐로 보고!”
“뭘 봐! 찌질한 오빠로 보지.”
“이 녀석이…….”
“내 남친이 보고 있다!”
한소희가 불쑥 오상진을 가리켰다. 한중만이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하네. 저 녀석이…….”
“괜찮습니다. 전 오히려 보기 좋습니다.”
“뭐야? 자네까지 놀리는 건가? 이 모습이 보기 좋아?”
“네.”
오상진이 방긋 웃었다. 그러자 한중만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뭐 자네가 그렇게 봤다면야.”
한소희가 입안에 밥을 밀어 넣고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거 무슨 소리야. 정확하게 말해봐.”
“아, 솔직히 투자는 얼마 안 돼. 그냥 나 혼자는 못 들어가니까. 아는 형님이 있거든 그 형님과 함께 투자하려는데 자꾸 이상한 영화에 투자를 하겠다고 하네.”
“뭐? 이상한 영화? 그 영화가 아까 말한 왕의 광대라는 거야?”
“어.”
“영화 내용이 뭔데?”
한소희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그러자 한중만이 수저를 탁자에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이게 사극인데 장르가 이상해. 그러니까, 연산군이 폭군일 때 광대들이 나와서 연극을 하고, 그걸 본 연산군이 궁으로 초대해서 뭐 어쩌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던 오상진이 뭔가가 떠올랐다.
‘잠깐 왕의 광대? 어? 혹시……, 그거 아냐?’
오상진의 머릿속에 하나의 영화가 떠올랐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형님 혹시……, 그 영화 시놉 가지고 있습니까?”
“시놉시스?”
“네.”
“사무실에 있지 아마. 왜? 재미있을 것 같아?”
한중만의 물음에 오상진의 표정에 심각해졌다.
“제가 그거 어디서 들은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들어? 어디서?”
한중만의 눈이 커졌다. 밥을 먹던 한소희도 귀를 기울였다.
“상진 씨가 그걸 들어요?”
“네.”
한중만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뭘 들었는데?”
“저도 증권가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얼핏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잘될 것 같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나는 못 들었는데…….”
한중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의심스러우면서도 오상진이 말을 하니 섣불리 부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들었어?”
“네! 확실합니다.”
오상진의 눈빛에 확신이 들어서 있었다. 그것을 보자 또 한중만은 흔들렸다.
“그렇단 말이지.”
그때 한소희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오빠는 무슨 영화를 하려고 했는데?”
“아, 내가 이것도 빠르게 소문을 들었지. 이미 톱스타까지 캐스팅이 끝이 났어!”
“톱스타? 누구?”
“장동진이랑, 이정준! 두 사람의 주연의 폭풍! 두 사람 이름만 들어도 대박이지 않냐? 그래서 서로 투자하고 싶어서 난리란다.”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2005년도 후반기에 개봉한 폭풍을 알고 있었다. 그 폭풍 영화의 관람 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어, 폭풍이요?”
“어? 자네 폭풍도 들어봤어?”
“예.”
“그래? 폭풍은 뭐라고 그래?”
“그게…….”
오상진이 말을 아꼈다. 그러자 한중만이 다급하게 물었다.
“에이, 뭐라는데. 솔직하게 말해봐.”
옆에 있던 한소희까지 끼어들었다.
“그래요, 상진 씨. 뭐라고 그래요?”
오상진이 한중만을 보며 물었다.
“폭풍 말입니다. 초반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죠?”
“어!”
“제작비를 건지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오상진이 한중만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망한다는 거야?”
“그건 아닌데…….”
“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힘들다?”
“네.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영화는 개봉해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오상진은 폭풍의 관람객 수를 알고 있었다. 아니,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했다는 기사를 얼핏 본 것 같았다. 한중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긴, 나도 그러긴 했어. 그런데 톱스타를 캐스팅했다고 하니까. 솔깃한 거지. 게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최소 600만 정도는 넘겨야 한다고 그러더라. 막말로 우리나라에서 600만을 넘기가 어디 쉽냐, 안 그래?”
한소희가 깜짝 놀랐다.
“600만? 와, 너무했다. 그 정도로라면 제작비가 어마어마하다는 거네. 요즘 우리 영화 시작 300에서 400만 정도 아냐?”
“아니야. 요즘 우리나라 영화시장도 많이 올라갔어. 그런데 폭풍처럼 제작비를 투자하려면 많이 밀어줘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
한중만의 얘기를 듣던 오상진이 슬쩍 얘기를 꺼냈다.
“솔직히 제작비가 많이 들면 관객이 엄청 많이 봐도, 실제로 남는 것은 별로 없지 않을까요?”
그 소리에 한중만이 눈을 커졌다.
“어이구, 그렇지. 매제 말이 많지. 솔직히 제작비가 적게 드는 작품이 크게 돼서 남겨야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많지. 제작비가 큰 작품에 투자해서 돌아오는 것은 많지도 않아. 우리 매제가 잘 아네.”
한중만의 칭찬에 오상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