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7화
41장 추위가 가면(10)
오상진과 최강철 이병의 연기는 완전 로봇 연기의 선구자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최지현도 대충 눈치를 챈 듯 피식 웃었다. 한소희가 고개를 돌려 최지현을 봤다.
“저기 지현 씨라고 했죠?”
“네.”
“같이 화장실 안 가실래요?”
“아, 좋죠. 같이 가요.”
“상진 씨, 저 지현 씨랑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그래요. 다녀와요.”
한소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최지현과 함께 화장실로 갔다. 그 순간 오상진과 최강철 이병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아…….”
“괜찮았냐?”
“네, 완전입니다. 이야, 소대장님이 이렇듯 연기를 잘 하실 줄 몰랐습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제법 하더라.”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최강철 이병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자.”
“네. 소대장님.”
두 사람은 완벽한(?) 연기에 스스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 한소희와 최지현은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로 갔다. 한소희는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우후, 미안해요. 완전 티났죠!”
한소희가 최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지현이 입을 가리며 ‘풉’ 하고 웃었다.
“네, 완전요. 세상에 어쩜 그렇게 티가 나지?”
“저도 저 정도였을 줄은 몰랐어요.”
한소희는 살짝 민망해했다. 그러다가 최지현을 보며 물었다.
“참, 실례되는 질문인데. 몇 살이에요?”
“저 23살요.”
“어머? 나보다 한 살 많으시네. 전 22살요. 언니시네. 전 저보다 동생일 줄 알았는데.”
“아, 그래요? 사실 가끔 고등학생 같다는 소릴 들을 때도 있어요.”
최지현이 웃으며 말했다. 한소희도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오늘 어떻게 된 거예요?”
최지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언니 많이 당황스럽죠?”
“네. 뭐…….”
“이러는 거 언니는 싫겠지만 사실 강철 씨가 언니랑 잘 되고 싶어서 우리가 옆에서 같이 도와주려고 만나게 되었어요.”
“아, 그랬구나. 어쩐지…….”
최지현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아니, 어제부터 강철 씨가 이상하더라고요. 뭔가 숨기는 것 같았거든요. 뭐지? 무슨 일이 있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이해가 되네요.”
최지현은 뭔가 안도하는 얼굴을 내비쳤다. 그 모습을 한소희가 놓치지 않았다.
한소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언니?”
“네?”
“강철 씨 어떻게 생각해요?”
“강철 씨?”
최지현이 배시시 웃었다.
“좋으니까, 만나고 있겠죠?”
“강철 씨 군인인데도 괜찮아요? 기다려 줄 자신은 있고요?”
최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강철 씨가 그거 걱정해요?”
“아니, 나는 같은 여자인 언니 편이니까요. 무엇보다 언니가 걱정되는 거죠. 솔직히 나도 상진 씨가 직업군인인데도 만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만날 훈련 가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되게 힘들어요. 군인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한소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먼저 운을 뗐다.
“그래요? 직업군인이면 더 편하게 만날 줄 알았는데.”
“절대 아니에요. 훈련 가면 쉽게 연락도 안 돼요. 그럼 전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기다려요. 혹시라도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요.”
“그렇구나.”
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희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래서 언니는 어때요? 강철 씨 제대하려면 1년 반 넘게 남지 않았어요?”
“아마도 그 정도 남았을 거예요.”
“괜찮아요?”
최지현이 잠깐 생각을 했다.
“으음,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전 강철 씨가 좋고,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오오, 언니. 멋지다.”
“그래요?”
최지현이 살짝 웃었다. 한소희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언니. 강철 씨랑 만나면서 뭔가 불만이라든가, 이건 해줬으면 하는 것은 없어요?”
“불만은 좀 있어요.”
“불만요? 뭔데요?”
“하아…….”
최지현이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눈치가 너무 없어요.”
그 말을 듣는 한소희가 ‘풉’ 하고 웃었다.
“왜 웃어요?”
“제 남자 친구도 똑같아서요. 군인은 다 그런가? 저도 연애 초기에 그렇게 신호를 보내는데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맞아요. 강철 씨도 똑같아요. 그때는 너무…….”
“답답해요.”
“답답하죠.”
두 여자가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서로 바라보며 ‘풉’ 하고 웃었다.
“아니, 무슨 뽀뽀를 하는데 몇 달이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저 입에 거미줄 치는 줄!”
“어멋, 그랬어요?”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얘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아무래도 군인이라서 그런지 약간의 보수적인 면도 없잖아 있어요. 뭐, 좋게 얘기하면 여자 친구에 대한 배려라고도 할 수 있죠.”
“맞아요. 강철 씨도 배려가 너무 많죠. 굳이 배려 안 해줘도 되는데…….”
“맞아요. 그 배려심! 안 해줘도 되는데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한소희가 살짝 뜸을 들였다. 최지현이 눈을 반짝이며 어서 말하라며 재촉했다.
“완전 짐승이죠! 호호호.”
“짐승요?”
“네!”
“어머나. 그럼 저도 짐승이 된 강철 씨를 볼 수 있으려나?”
“그럼요. 초반이 힘들지. 그 뒤에는…….”
한소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최지현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언니가 초반만 리드를 해주면 될 것 같아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최지현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여자가 리드를 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오해를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최지현은 그것을 걱정 하고 있었다.
“언니 그래서 제가 왜 나왔겠어요. 저 두 사람이 왜 저런 어색한 연극을 했겠어요? 이게 다 도와드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강철 씨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언니의 마음에 불안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언니가 이 기회에 좀 리드해 주면 일이 편해질 겁니다.”
“그럴까요?”
최지현이 웃으며 말했다. 한소희가 가방을 들었다.
“저 남자들 우리가 왜 안 나오냐며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나가요, 언니.”
“네.”
두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두 커플은 함께 마라톤을 봤다. F석은 대부분 커플석이었다. 그래서 각각 커플석에 앉아 영화를 봤다.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와, 커플석 좋다. 우리는 왜 여태까지 이런 좌석을 못 봤을까요?”
“저도 오늘 처음 앉아 봅니다.”
오상진도 커플석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한소희가 오상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렇게 꼭 붙어 있을 수도 있고.”
오상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의 깍지를 꼈다. 그 모습을 최강철 이병이 힐끔 바라봤다.
“상진 씨 안 불편해요?”
“아뇨. 전혀 안 불편해요. 오히려 너무 좋은데요.”
“그쵸. 저도 너무 좋아요.”
두 사람은 영화를 보면서 알콩달콩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던 최강철 이병이 슬쩍 옆에 앉은 최지현을 봤다.
“저기 지현 씨.”
최강철 이병이 쭈볏쭈볏거리며 최지현을 불렀다.
“네?”
하지만 최지현의 시선이 영화에 고정된 채 대답만 하고 있었다. 최강철 이병은 최지현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최강철 이병의 손이 움찔움찔하며 최지현의 손을 잡을까, 말까 했다.
‘에이, 못 하겠다.’
최강철 이병이 속으로 말하며 손을 치워 버렸다. 그 순간 최지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사실 최지현은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살짝 곁눈질로 최강철 이병의 손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최강철 이병이 먼저 다가와 주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답답했다.
‘무슨 남자가 그리 용기가 없지. 정말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나?’
최지현이 잠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최지현이 먼저 다가가는 것이었다. 최지현은 모르는 척 스르륵 최강철 이병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최강철 이병이 순간 눈을 크게 뜨며 움찔했다.
“지, 지현 씨…….”
“왜요? 불편해요?”
“아, 아뇨. 하나도 안 불편합니다.”
최강철 이병은 경직 된 채로 말했다. 최지현이 최강철 이병의 손을 잡았다.
“너무 긴장했다. 좀 풀어요.”
“제, 제가 그랬습니까?”
“네. 지금도 딱딱하잖아요.”
“네? 딱딱…… 요?”
순간 최강철 이병은 순간 최진현이 말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러곤 얌전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난 또 뭐라고?”
“네? 뭐라고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강철 이병이 바로 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최강철 이병의 신경은 온통 자신의 어깨에 있었다. 시선은 영화를 보고 있지만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최지현의 작은 움직임에도 최강철 이병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 팔이 좀 아프네요.”
“네? 파, 팔이요?”
최강철 이병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최지현이 최강철 이병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이제야 좀 한결 낫네.”
최강철 이병이 씨익 웃었다.
‘아, 그런 거구나. 난 또……. 아무튼 커플석 앉기를 잘한 것 같네.’
최강철 이병의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영화가 끝이 나고, 하나둘씩 극장을 나왔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팔짱을 낀 채 최강철 이병 커플을 기다렸다. 그들도 나오는데 둘이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상진 씨.”
“네?”
“저기 봐요.”
한소희가 슬쩍 말했다. 오상진이 최강철 이병의 커플을 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성공한 것 같네요.”
“네.”
한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최강철 이병이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소대장님.”
“어어.”
“저희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재미나게 보네.”
“네.”
한소희도 최지현과 얘기를 나눴다.
“재미나게 보네요. 언니.”
“소희 씨도요. 그럼 다음에 봐요.”
“네. 언니.”
두 사람은 손을 흔들며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한 참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봤다.
“이야, 보기 좋다.”
“저도요. 왠지 모르게 뿌듯하네요.”
“그보다 밥이라도 사 먹이고 보낼걸.”
오상진이 살짝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한소희가 옆구리를 툭 찔렀다.
“에이, 둘만 데이트 하고 싶은가 보죠.”
“그런가?”
“딱 봐요. 영화 보는 사이 많이 발전한 것 같은데요.”
“하긴…….”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자, 그럼 우린 뭐 할까요?”
“밥 먹으러 갈까요?”
“네.”
오상진은 오랜만에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한소희가 눈을 반짝였다.
“어머? 웬 호텔이에요?”
“우리도 오랜만에 분위기 좀 잡아 보려고요. 그래서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어요.”
“어머나, 센스쟁이!”
“제가 또 한 센스 하죠.”
두 사람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했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대뜸 물었다.
“저기 상진 씨.”
“네?”
“아까 그 두 사람 보니까, 우리 예전 생각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