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6화
41장 추위가 가면(9)
“너도 미친개가 풀리는 것을 원치 않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냥 조용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거든. 네가 협조만 잘해주면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뭘 말이야?”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지?”
“네. 그렇습니다.”
박대기 병장이 바로 말했다. 최 중사는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했다.
“앞으로 너는 내가 보이는 족족, 아니다. 내가 손가락만 까닥해도 뛰어와야 해. 훈련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야.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이제 군기가 확 잡힌 상태였다. 최 중사가 피식 웃었다.
“좋아, 내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그만 가 봐.”
“네.”
박대기 병장이 후다닥 창고를 빠져나갔다. 최 중사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갈구는 것이 좋겠지?”
최 중사 스스로는 이 정도로는 아직 불안한 모양이었다. 담배 한 모금을 빤 후 앞으로 어떻게 갈굴 것인가를 생각했다.
15
목요일 아침.
최강철 이병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휴가 나갈 준비를 했다. 모든 것을 갖춰입고, 김철환 1중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나왔다.
“충성, 이병 최강철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곧장 오상진에게 갔다.
“휴가 나가냐?”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그런데 주말 끼고 가서 어떻게 하냐?”
“괜찮습니다. 어차피 주말 끼고 가야 욕을 덜 먹습니다. 그리고 여친도 주말에 시간이 난다고 했습니다.”
“잘됐네. 그보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너도 참 대단하다. 백일휴가 갔다 온 지 한 달 만에 또 포상휴가를 가다니. 이등병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인 것은 알지?”
“…….”
최강철 이병은 말없이 웃었다.
“그래, 나가서 뭐 할 거냐?”
“네?”
“아니, 다른 것은 아니고, 요새 애들은 뭐 하고 노는지 궁금해서.”
“아, 그런 것입니까?”
최강철 이병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데이트 코스를 공유했다.
“이번에 여기 갔다가, 저쪽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하고, 다시 이쪽으로 올 것입니다. 간단하게 쇼핑을 하고 저녁 먹으러 갔다가 영화를 볼 참입니다.”
“아, 그래?”
오상진은 최강철 이병의 데이트 코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너희 무슨 영화 볼 거냐?”
오상진의 물음에 최강철 이병이 말했다.
“저희는 마라톤 볼 겁니다.”
“마라톤?”
“네. 유명한 감동 실화라고 합니다.”
최강철 이병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강철아. 지난 번처럼 우리 영화관에서 만나고 그러는 거 아니냐?”
“아, 맞다. 그때 소대장님 여자 친구 진짜 예뻤습니다. 꼭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야, 너 여자 친구도 예쁘더라. 솔직히 소대장은 내 여자 친구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너 여자 친구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면 서로 아는 체하지 말자. 우리끼리는 상관없는데 여자 친구끼리는 좀 그렇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최강철 이병도 약간은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최강철 이병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소대장님.”
“왜?”
“사실 상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상담? 무슨 상담?”
“다른 것이 아니라. 진도는 어떻게 뺍니까?”
순간 오상진이 당황했다.
“어? 야, 그걸 나한테 물어봐?”
“네?”
“너 소대장이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 안 나?”
오상진은 최강철 이병이 강하나를 태우고 스포츠카를 끌고 다녔던 것을 상기시켰다.
“아, 그건…….”
최강철 이병이 말을 하지 못했다. 오상진이 입을 뗐다.
“너 그때 어디 갔었어?”
“부산…… 갔었습니다.”
“그래 부산 가서 뭐 했는데?”
“그냥 잘…… 뭐 놀았죠.”
최강철 이병이 우물쭈물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나에게 뜬금없이 진도를 어떻게 빼는지 물어봐? 이 자식이 소대장을 놀리냐?”
“그게 아니라, 사실 그때는 그냥 군인도 아니었고, 잘난 맛에 살아서…….”
최강철 이병이 주절주절거렸다. 오상진은 최강철 이병이 뭔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되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번에 만나는 여자는 진지해?”
“아, 네에!”
최강철 이병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제대로 연애를 하고 싶어?”
“네. 도와주십시오.”
“그럼 너 지금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데?”
오상진의 물음에 최강철 이병이 주춤하며 낮게 말했다.
“손까지…….”
“뭐? 진짜 손만?”
오상진은 살짝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뽀뽀까지도 안 갔어?”
최강철 이병이 눈치를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뽀뽀는 몇 번 했습니다.”
“뭐야? 뽀뽀만?”
“혀도 살짝?”
최강철 이병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오오, 혀도 살짝? 키스하다가 만 거네.”
“네. 시도는 했는데 살짝 거부를 하길래. 겁이 나서…….”
“아, 그래서 더 이상 진도를 못 뺐다, 이거지?”
“네.”
오상진은 최강철 이병의 말을 듣고, 옛날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오상진도 한소희가 너무 예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소중해서 막 대하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오죽 답답했으면 한소희가 먼저 리드를 했을까.
최강철 이병 역시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혹시 여자 친구가 너무 예뻐서 부담스럽니?”
“네. 그렇습니다.”
“넌 예쁜 여자 많이 만나 봤잖아.”
“그런데 지현 씨는 정말 뭔가 특별합니다. 소중히 하고 싶은 생각이 가장 많습니다.”
“너 키스할 때 반응이 어땠어? 약간 아쉬워하는 반응이었어? 당황하는 느낌이었어?”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것부터 알아봐야겠는데.”
오상진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그럴 게 아니라, 소대장이 한번 도와줄까?”
“네?”
“소대장 여친이 전문가거든. 어떻게, 여친 찬스 한번 써 줄까?”
최강철 이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알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휴가 때 호텔 방에 꼭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야, 암만 그래도 소대장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 않냐?”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소대장이 너 연애사에 왈가불가할 상황은 아니다. 어쨌든 하나만 묻자. 진지한 거지?”
오상진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최강철 이병도 금세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네.”
“대신에 꼭 그건 해라?”
“네?”
“그거 있잖아. 피…….”
“아, 네에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오상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깨달았다. 오상진 역시도 뭔가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최강철 이병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알았다. 이 부분은 소대장이 도와줄 테니까. 어서 휴가 나가야지. 여기서 시간 다 보낼래?”
“아, 아닙니다. 그럼 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주말에 보자.”
“네. 충성.”
최강철 이병이 경례를 하고 나갔다. 오상진이 피식 웃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소희 씨에게 알려줘야겠지.”
오상진이 히죽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한소희가 전화를 받았다.
-네, 상진 씨.
“소희 씨, 이번 주말에 말이에요.”
-네.
“영화 보기로 했잖아요.”
-네, 그렇죠. 설마 못 보는 거예요?
“아, 아뇨. 다름이 아니라, 예전에 영화관에서 만난 병사 기억해요?”
-아, 여자 친구분이 무척이나 예뻤던 그 사람요?
“네. 그 친구 이런 고민이 있네요.”
오상진은 슬쩍 최강철 이병의 고민을 얘기해 줬다. 모든 얘기를 들은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그럼 우리가 도와줘야겠네요. 아무래도 여자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답답할 것 같네요.
“소희 씨!”
-네?
“소희 씨도 답답했어요?”
-내가, 내가…….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요. 내가 신호를 몇 번이나 줬는지 알아요? 제가 진짜 이렇게 답답한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그, 그랬나요?”
-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 알아요?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똥은…….”
오상진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그 당시에는 그랬다고요.
“제가 그 정도였습니까?”
-그렇다니까요. 아무튼 내가 만나면서 눈치 보고 신호만 보내주면 되는 거죠?
“네.”
-그러다가 슬쩍 물어보기도 하고 말이죠.
“네.”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하죠. 데이트 코스 같이 잡아야겠네요.
“그래야죠.”
-호호, 재미있겠다.
한소희는 매우 신나 하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 오상진은 곧장 영화관을 향했다. 한소희가 먼저 도착해 매표소 앞에 서 있었다.
“소희 씨.”
“어? 상진 씨.”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오상진이 그녀 앞에 섰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뇨.”
“내가 데리러 가야 했는데…….”
“에이, 뭘 그래요? 택시 타면 금방인데요. 상진 씨 저 데리러 왔다가 영화관 오면 시간 많이 걸려요. 안 그래도 차도 많이 막히는데.”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저렇듯 오상진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한소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그 예쁜 아가씨는 안 보여요.”
“그러게요. 올 때가 되었는데…….”
오상진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저 멀리 최강철 이병과 최지현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어, 저기 오네요.”
“그래요?”
한소희가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을 발견하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오상진의 팔을 붙잡았다.
“상진 씨, 상진 씨.”
“네?”
“저 지금 어때요? 예뻐요?”
한소희가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이며 평가를 원했다. 오상진은 그런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예뻐요. 완전 최고로,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보다!”
오상진이 양쪽 엄지손가락까지 올렸다.
“진짜요? 대충 보지 말고요.”
“아니, 대충 봐도 예뻐 죽겠는데 제대로 보면 저 눈부셔서 못 봐요.”
오상진이 짐짓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능청스레 말했다. 그 모습에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아무튼 상진 씨는…….”
한소희는 오상진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쨌든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예뻐해 주는 사람이었다.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최지현하고 눈이 마주쳤다.
“어?”
“어어?”
최지현도 한소희를 보고 움찔 놀랐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다가갔다.
“저, 맞죠? 저번에 화장실…….”
“아, 네에.”
최지현이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연기를 했다.
“오오, 아, 안녕. 강철아.”
“네, 소. 대. 장. 님. 정말 반갑습니다.”
“여긴 어떻게 왔지?”
“영화 보러 왔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은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 나도 영화 보러 왔지. 하. 하. 하! 여기서 또 보니 무척 반갑구나.”
“저도 무척 반갑습니다. 하하하!”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한소희는 눈을 크게 뜨며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냐는 듯 바라봤다. 그런 상태에서도 오상진과 최강철 이병의 어색한 연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렇구나. 이런 우연이…….”
“우연이죠. 진짜로…….”
한소희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세상에, 상진 씨. 어떻게 이런 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