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5화
41장 추위가 가면(8)
한편 밖에서는 오상진이 한소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소희 씨. 이번 주말에 모처럼 영화 봐요.”
-저야 좋죠. 그런데 또 상진 씨 일 생기는 것은 아니죠?
“하하하, 아닙니다. 걱정 마요.”
-알겠어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때 오상진의 눈에 김 하사와 박대기 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박대기 병장이 껄렁껄렁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뭐지? 저 녀석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오상진이 박대기 병장을 유심히 봤다. 그러면서 김 하사를 불렀다.
“저기, 김 하사.”
“네. 1소대장님.”
“지금 어디 갑니까?”
김 하사가 살짝 머뭇거리더니 입을 뗐다.
“어, 그게……. 최 중사가 박 병장을 불렀습니다.”
“아, 그래요?”
“네.”
“그럼 혹시 부대에 무슨 일 있습니까?”
“글쎄요. 저는 잘…….”
오상진이 슬쩍 김 하사에게 말했다.
“사실 박대기 병장의 태도가 옛날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서 말이죠.”
“아, 그렇습니까?”
김 하사는 말을 하면서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박대기 병장을 봤다.
“야, 박대기.”
“아, 왜 그러십니까?”
바로 관등성명을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인상을 썼다. 그 모습에 김 하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세요. 도와드릴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김 하사는 솔직히 불안했다. 왜냐하면 오상진의 행동이 지난번 2소대장을 날렸던 것처럼 또 그럴 생각처럼 느껴졌다.
‘왜 또 그러십니까? 소대장님께서 끼어들면 일이 커집니다.’
김 하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대기 병장을 바라봤다. 박대기 병장은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소대장님 전 이만…….”
“아, 네에. 가 보세요.”
김 하사가 박대기 병장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오상진이 찬찬히 바라봤다. 박대기 병장은 김 하사가 데리고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박대기 병장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바로 자신이 짱박혔던 그 창고였다.
“어? 여기는 왜 오신 겁니까?”
박대기 병장이 물었다. 김 하사는 쓰읍 한 번 하고는 입을 뗐다.
“인마, 그냥 넌 따라와. 뭔 말이 많아.”
“네, 알겠습니다.”
창고 안에 들어가니 최 중사가 서 있었다.
“최 중사님, 데려왔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다. 김 하사는 그만 가 봐. 나중에 술 한잔하자.”
“네.”
김 하사가 인사를 하고 창고를 나갔다. 최 중사의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김 하사가 사라지자 최 중사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최 중사는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눈으로 박대기 병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네가 박대기냐?”
“병장 박대기.”
박대기 병장이 관등성명을 댔다. 최 중사가 살벌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너, 나 몰라?”
“처, 처음 보지 말입니다.”
“야, 봐! 내 눈 똑바로 봐.”
그런데 박대기 병장은 최 중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눈알을 굴리며 자꾸만 시선을 외면했다. 최 중사가 피식 웃었다.
“이 새끼, 맞네.”
“…….”
박대기 병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최 중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박대기 병장을 봤다.
“야, 박대기. 너 지난번에 여기 있었지?”
“아니지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아닙니다.”
박대기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최 중사가 그대로 쪼인트를 깠다.
“악!”
박대기 병장이 곧바로 자신의 발을 감쌌다. 최 중사가 살벌하게 말했다.
“이 새끼 봐라.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최 중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무서웠다. 사실 박대기 병장은 자기가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같은 성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최 중사는 잘생기긴 했지만 행동이 생 양아치와 같았다.
최 중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너 같은 녀석을 잘 아는데. 너 그때 봤어, 안 봤어?”
최 중사는 박대기 병장의 눈을 똑바로 봤다. 박대기 병장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통수를 강타하는 손이 있었다.
빡!
박대기 병장의 눈에서 순간 번개가 번쩍였다.
“봤어? 안 봤어?”
“못 봤지 말입니다.”
“오호라, 그 자리에 있긴 했다는 거네.”
최 중사기 피식 웃었다. 박대기 병장의 얼굴은 순간 일그러졌다.
‘와, 젠장할!’
최 중사가 다시 물었다.
“어쨌든 안 봤다는 거네.”
“네. 그렇습니다. 안 봤습니다.”
“확실해.”
“네. 안 봤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안 봤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최 중사는 질문을 달리했다.
“그래서 네가 본 거 다른 사람에게 말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최 중사는 또 한 번 박대기 병장의 뒤통수를 강하게 ‘빡’ 하고 쳤다.
“봤긴 봤다는 거네.”
또 한 번 박대기 병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시발…….’
박대기 병장은 처음에 못 봤다고 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봤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었다.
“진짜 아무에게도 말 안 했습니다.”
최 중사가 나직이 말했다.
“아니지. 안 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가 나와야 정상이지. 안 그래?”
박대기 병장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최 중사가 입꼬리를 올렸다.
“야.”
“병장 박대기.”
“엎드려뻗쳐!”
“네?”
“아, 시발. 내가 존나 싫어하는 것이 같은 말 또 내뱉게 하는 거야.”
최 중사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러자 박대기 병장이 곧바로 엎드려뻗쳐를 했다.
“아니다. 그냥, 엎드려!”
박대기 병장이 엎드렸다. 그 뒤로 최 중사의 얼차려가 시작되었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동작 봐라. 다시 좌로, 우로, 좌로 두 바퀴…….”
박대기 병장은 울상이 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왜 그래? 이 새끼 봐라. 왜 그래?”
그럴수록 최 중사의 얼차려는 더 심해졌다. 박대기 병장에게 공포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차라리 네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면 좀 달랐을 텐데 막무가내로 얼차려를 주니까 너무 무서웠다. 한마디로 난 널 언제든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최 중사의 얼차려는 약 30여 분가량 계속되었다. 박대기 병장은 진짜 이렇게 있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먼저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는데?”
“무조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네가 뭘 잘못했냐고.”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다. 최 중사는 그제야 표정을 살짝 풀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네, 압니다.”
“확실히 알아?”
“네. 그렇습니다.”
“와, 생각해 보니 잘못한 걸 알면서 그런 짓거리를 했다는 소리네.”
박대기 병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네?”
“너 2소대장님에게 뭔 말 했지?”
“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박대기 병장이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최 중사가 바로 캐치했다.
“안 했어?”
“정말 안 했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살기 위해서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했다. 최 중사는 그것 역시 알고 있었다.
“안 하긴 뭘 안 해. 너 나중에 내가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면 너 진짜 뒤진다.”
박대기 병장이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최 중사가 피식 웃었다.
“했네. 엎드려!”
또다시 박대기 병장이 엎드렸다. 아까와 같이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얼차려를 했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수십 번. 그렇게 또 30번의 얼차려가 지나갔다. 박대기 병장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최 중사가 박대기 병장을 보며 물었다.
“야, 너 밖에서 좀 쳤냐?”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인천 중구 살지?”
순간 박대기 병장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 묻는 듯했다.
사실 최 중사는 박대기 병장을 만나기 전 미리 확인을 했었다.
잠깐 시간이 비었을 때 최 중사는 인사과를 찾아갔다. 때마침 인사장교는 없고, 인사계원만 있었다.
“야, 영철아.”
“일병 김영철.”
“인사장교님은?”
“아까 볼일 보러 사단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래? 그럼 너 혼자네.”
“네.”
“잘 됐다.”
최 중사가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혹시 말이야. 1중대 2소대 박대기 병장 인적사항 좀 보자.”
“아, 그건…….”
김영철 일병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되냐?”
“네. 안 됩니다.”
“진짜 안 될까? 안 되겠지? 정말 안 돼?”
최 중사가 살살 말했다. 김영철 일병은 진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최 중사가 슬쩍 김영철 일병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영철아, 나 같으면 말이야. 후다닥 모니터에 박대기 병장 인적사항 띄워놓고, 나에게 만 원 받아서 PX에 갈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김영철 일병의 손가락이 바로 움직였다.
다다닥!
“여기 있습니다.”
김영철 일병이 인적사항을 띄워놓고 자신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딴짓을 했다.
“후후, 고맙다. 어디 보자.”
최 중사가 박대기 병장의 인적사항을 쭉 훑었다. 그러다가 주소지에서 멈췄다.
“어라? 인천시 중구? 중구 쪽이면 내가 아는 곳인데……. 그럼 내가 아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는데.”
최 중사는 확인을 마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리고 만 원짜리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영철아, 우린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김영철 일병이 만 원을 챙기면서 말했다.
“뭘 말입니까?”
김영철 일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최 중사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만 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인사과를 나와 창고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최 중사는 박대기 병장을 보며 말했다.
“인천 중구 살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묻지 말고. 다시 묻는다. 인천 중구 살지?”
“네.”
“중구에 아는 놈 누구냐?”
“네?”
“아니, 인천 중구에서 아는 놈 있으면 불러봐. 너도 그곳에서 꽤 잘나갔다며.”
“…….”
박대기 병장은 지금 상황이 뭔지 빠르게 이해하려고 했다. 최 중사가 씨익 웃었다.
“좋아. 그럼 혹시 강태철 알아?”
“가, 강태철 형님을 아십니까?”
“아는구나. 태철이 내 동생이지.”
순간 박대기 병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최 중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말이야. 인천 중구의 미친개라고 들어봤냐?”
“미, 미친개 말입니까?”
“그래.”
박대기 병장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얘기가 편해지겠네.”
최 중사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박대기 병장의 표정은 더욱 주눅이 들어갔다. 최 중사가 조용히 입을 뗐다.
“그 인천의 미친개가 아무래도 병사로는 군 생활을 못 할 것 같아서 부사관으로 들어갔는데. 혹시 소문은 들어봤냐?”
박대기 병장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무래도 최 중사가 자신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몰라? 그럼 이제 알겠네. 그 미친개가 이제 서서히 다시 미쳐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박대기 병장에게 공포가 찾아왔다. 최 중사가 씨익 웃으며 박대기 병장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