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3화
41장 추위가 가면(6)
그날 저녁 이미선 2소대장은 퇴근하기 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박 병장이 그곳에 있었다. 그 일을 가지고 뭔가를 꾸미지는 않겠지? 나도 만일을 대비해야 하나?’
이미선 2소대장은 창고에서 있었던 일로 이래저래 고민이었다. 아직 박대기 병장으로부터 그 어떤 액션도 없었다.
‘그냥 넘어가려고 그러나?’
이래저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4소대장이 다가왔다.
“2소대장?”
“아, 네에?”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합니까?”
“아, 잠깐 생각할 것이 있어서요. 그보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퇴근해야죠.”
“아, 퇴근요. 네, 잠깐 2소대에 다녀와서요. 먼저 퇴근하세요.”
이미선 2소대장이 전투모를 쓰고 행정반을 향했다. 일단 이미선 2소대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생각이었다. 2소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미선 2소대장.
“오늘도 고생 많았다.”
그러자 강인한 병장이 벌떡 일어나며 경례를 했다.
“충성. 2소대 휴식 중.”
“쉬어.”
“쉬어!”
강인한 병장이 이미선 2소대장을 바라봤다. 이미선 2소대장은 쉬고 있는 소대원들을 쭉 훑어본 후 물었다.
“환자 있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사이 이미선 2소대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 힐끔힐끔 박대기 병장을 바라봤다. 박대기 병장은 삐딱하게 앉아서 실실 쪼개고 있었다. 그런 박대기 병장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다.
“환자 없어?”
“네.”
“그럼 잘 쉬고, 내일 보…….”
이미선 2소대장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실실 웃으며 앉아 있던 박대기 병장이 손을 들고 있었다. 이미선 2소대장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박 병장 뭐야?”
박대기 병장이 히죽 웃으며 껄렁하게 말했다.
“소대장님 저 아픕니다.”
“아파?”
“네. 그래서 말입니다. 의무대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의무대? 어디가 아픈데?”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머리가 아파?”
“네. 그렇습니다. 편두통이 온 건지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박대기 병장은 편두통 때문에 아프다고 하면서도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이미선 2소대장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일 의무대 가 봐.”
“소대장님, 내일이 아니라 지금 가고 싶지 말입니다.”
박대기 병장이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부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소대원들 모두 이상한 눈으로 박대기 병장을 바라봤다.
‘박 병장 왜 저래?’
‘미친 거 아니야?’
‘아예 막 나가자고 저러나?’
강인한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잘 있다가 왜 저래? 진짜 이제 막 나가려고 그러나.’
강인한 병장도 어이없어하며 박대기 병장을 바라봤다.
“저기 박 병장님…….”
그런데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갔다 와.”
“아, 네에 감사합니다.”
박대기 병장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미선 2소대장이 강인한 병장을 바라봤다.
“인한아.”
“병장 강인한.”
“박 병장 의무대 보내줘. 아니다, 네가 같이 갔다 와.”
“제가 말입니까?”
“그래. 아프다고 하잖아. 부탁할게.”
“아, 알겠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은 담담한 얼굴로 내무실을 나갔다. 박대기 병장이 전투모를 쓰며 말했다.
“야, 강 병장. 가자.”
“…….”
강인한 병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전투모를 챙겼다.
의무대로 향하는 박대기 병장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불렀다. 강인한 병장이 입을 뗐다.
“뭡니까?”
“뭐 인마?”
“지금 확실히 아픈 거 맞습니까?”
“아파? 아프면 아픈 거고, 아프지 않으면 그런 거겠지?”
박대기 병장은 이상한 말을 꺼냈다. 강인한 병장이 버럭 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아듣기 쉽게 하십시오.”
“후후, 그냥 가는 거지 그런 것이 어디 있어?”
“아, 진짜 왜 그럽니까? 그러다가 소대장님에게 찍힙니다.”
“찍혀? 누가? 내가?”
박대기 병장이 손가락을 자신에게 가리키며 반문했다. 강인한 병장이 눈을 크게 떴다. 박대기 병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절대 그럴 일 없을 테니까.”
강인한 병장은 박대기 병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대기 병장은 그저 실실 웃고만 있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말없이 의무대로 갔다.
“야, 새끼들아. 지금 퇴근 시간인데 찾아오면 어떻게 해.”
“에이, 당직 아니십니까?”
“당직이라고 해도…….”
박대기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지 말고 좀 봐주십시오.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머리가 아파? 어떻게?”
“여기 편두통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속도 안 좋아서 밥도 못 먹었습니다. 그러니, 링거 하나만 놔 주십시오.”
박대기 병장이 죽는시늉을 했다. 군의관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링거? 어이없네. 인마, 여기서 링거 놔 달라고 하면 놔주고 그런 곳인 줄 알아? 지랄 말고, 약이나 받아가서 먹어.”
“아, 진짜 저 힘 하나도 없습니다. 밥도 못 먹었단 말입니다.”
박대기 병장이 계속해서 죽겠다는 시늉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강인한 병장은 진짜 어이가 없었다.
‘뭐야? 밥을 못 먹어? 오늘 저녁 식사 때 식판에 코를 박고 입에 쑤셔 넣은 것은 뭔데?’
“네? 군의관님 저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새끼 봐라. 야, 여기 의무대가 네 요양소냐? 잔말 말고, 약이나 받아서 가.”
군의관은 대충 약을 지어줬다. 박대기 병장은 약을 받아 들고 구시렁거렸다.
“아니, 그냥 링거 하나 놔주지. 쪼잔하게…….”
그의 투덜거림을 듣는 강인한 병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박 병장님.”
“왜?”
“도대체 왜 그럽니까?”
“내가 뭘?”
“아니, 머리 아프다면서 왜 그런 식으로 합니까? 우리 소대장님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귀에 들어가면 어땠어? 난 상관없어! 그리고 너나 나나 제대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뺑이 좀 치면 안 되냐?”
“아니, 몰라서 그럽니까? 박 병장님 만날 뺑이 칩니다. 그걸 몰라서 지금 말하는 겁니까?”
“야! 그게 뺑이 치는 거냐? 너희들이 나 따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거지.”
“그럼 따 당할 짓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와, 새끼 봐라. 분대장 달더니 겁이 아주 상실했구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박대기 병장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앞서서 걸어갔다. 그런 박대기 병장을 강인한 병장이 붙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박대기 병장이 강인한 상병이 잡은 팔을 보고는 툭 하고 털어냈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강인한 상병을 노려봤다.
“야, 강인한.”
“…….”
“너, 새끼! 얼마 전까지 나에게 찍소리도 못하던 새끼가……. 뭐라고? 죽고 싶어!”
강인한 병장이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네에. 치십시오. 그렇게 싸움 잘하면 한 대 치란 말입니다.”
“아, 새끼 봐라. 그래서 뭐? 2소대장이랑 친하니까 널 봐줄 것 같아?”
“뭔 소리입니까?”
“닥치고 내 말 잘 들어? 2소대장? 널 챙겨줄 것 같아? 지랄하지 말라고 해. 2소대장 말이야, 내 한마디면 끝이야. 뭘 알고나 그래.”
순간 강인한 병장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소리인진 네가 알 거 없고.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네 할 일이나 잘해.”
박대기 병장이 그 말만 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강인한 병장이 박대기 병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야? 뭐지? 소대장님과 뭔 일이 있었던 거야?”
강인한 병장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도무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박대기 병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인한 병장과 박대기 병장이 의무대에서 올라온 후 상황실로 보고하러 갔다.
“충성, 병장 강인한 외 1명 상황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늘 당직사령은 오상진이었다. 오상진이 강인한 병장을 보며 물었다.
“어어, 어디 다녀왔냐?”
“의무대에 다녀왔습니다.”
“의무대? 누가 어딜 아파서 다녀왔는데?”
오상진이 힐끔 박대기 병장을 바라봤다. 박대기 병장이 움찔하며 말했다.
“제가 다녀왔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래? 약은 받았고?”
“네.”
“알았다. 그만 나가봐라.”
“네. 충성.”
박대기 병장과 강인한 병장이 상황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오상진이 강인한 병장을 불렀다.
“참, 인한아.”
“병장 강인한.”
박대기 병장은 상황실을 나갔고, 강인한 병장이 다시 몸을 돌렸다. 강인한 병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상진이 힐끔 박대기 병장이 나가는 것을 보고 슬쩍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강인한 병장이 바로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차마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닙니다. 별일 없습니다.”
“그래? 혹시라도 뭔 일 있으면 내게 말하고.”
“네.”
강인한 병장이 상황실을 나갔다. 오상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뭔 일이지?”
그다음 날 박대기 병장은 여전히 껄렁껄렁한 자세로 침상에 앉아 있었다. 강인한 병장은 그 모습이 영 못마땅했다.
‘도대체 왜 저러지? 한동안 얌전히 있는 것 같더니.’
박대기 병장은 어제 오후부터 저랬다. 뭔가 큰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뭔지를 몰랐다. 박대기 병장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편안한 자세로 있었다. 소대원들 역시 뭔가 이상한지 슬쩍 강인한 병장에게 말했다.
“강 병장님. 자꾸 저렇게 두고 보실 겁니까?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강인한 병장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고, 머리가 복잡했다.
“일단 가만히 둬보자.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강인한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나 소대장님 만나서 오늘 훈련 일정 물어보고 올게.”
“네, 다녀오십시오.”
강인한 병장이 행정반으로 갔다.
“충성, 병장 강인한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강인한 병장이 곧장 이미선 2소대장에게 갔다.
“충성.”
“그래, 인한아.”
“네. 소대장님.”
“어제 잘 다녀왔어?”
“네, 뭐……. 잘 다녀왔습니다.”
강인한 병장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말해. 무슨 일이야?”
강인한 병장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아니, 어제 말입니다. 박 병장이 의무대에서 갑자기 링거를 놔달라고 했습니다.”
“링거?”
“네. 그래서 군의관님께 한 소리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냥 약만 타고 나왔습니다.”
“그 외 별일은 없었고?”
“실은…….”
“어.”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했더니……. 저 보고 소대장님 믿고 나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박대기가 그런 말을 했어?”
“네.”
“그 외 다른 말은 없었어?”
“그게…… 소대장님은 자기 한마디면 끝이라며…….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했어?”
“네.”
이미선 2소대장의 눈빛이 쫙 가라앉았다.
‘어쭈, 네가 그런 소리를 했어?’
이미선 2소대장은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강인한 병장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았어. 수고했어.”
“괜찮으십니까? 박 병장 저리 두면…….”
“그건 소대장이 알아서 할게. 강 병장은 오늘 애들 데리고 작업 좀 해야겠다.”
“네.”
이미선 2소대장은 간단히 작업지시를 내렸다. 강인한 병장이 경례를 하고 행정반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