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2화
41장 추위가 가면(5)
9
박대기 병장은 내무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2소대원들을 만났지만 모두들 경례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 X발…….”
박대기 병장은 진짜 기분이 더러웠다.
‘아, 새끼들 그냥 눈깔을 확 빼버릴까 보다. 감히 누구랑 눈을 마주치고 지X이야.’
박대기 병장은 더욱더 눈에 힘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대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저 자신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 새끼들이…….”
박대기 병장은 그중 한 녀석을 붙잡았다.
“야, 새끼야.”
“…….”
“뭐야? 고참이 부르는데 관등성명도 안 대? 죽고 싶어!”
“일병 박유하.”
박유하 일병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박대기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너 새끼야. 감히 날 그딴 눈으로 바라봐?”
“네? 제, 제가 어떻게 바라봤는데 말입니까?”
“날 한심스럽게 바라봤잖아!”
“제가 말입니까?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와, 이 새끼 봐라. 어이가 없네. 오리발을 내미네. 봐봐, 지금도 날 꼬나보고 있잖아.”
“그냥 바라보는 건데 말입니다.”
“그냥 보는 거라고? 지금 그 눈이?”
“네.”
박유하 일병이 당당하게 말했다. 박대기 병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놔, 열 받네.”
박대기 병장이 열을 팍팍 냈다. 하지만 박유하 일병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딱히 할 말이 없으시면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지금 저 엄청 바쁩니다.”
“뭐? 고참이 불렀는데 바쁘다고? 내 말은 말 같지 않은가 보네? 어? 새끼야!”
박대기 병장이 눈을 크게 떴다. 당장에라도 한 대 칠 분위기였다. 그때 강인한 병장이 나타났다.
“유하야.”
“일병 박유하.”
강인한 병장에게는 관등성명을 댔다.
“손에 든 장구류 빨리 밖으로 가져가서 널어.”
“네, 알겠습니다.”
박유하 일병이 박대기 병장을 지나쳐 걸어갔다.
박대기 병장은 진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진짜…….”
박대기 병장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 뒤로 강인한 병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박 병장님 뭐 하자는 겁니까. 왜 일 잘하는 후임을 갈굽니까?”
“뭐? 내가 갈궈?”
“그럼 조금 전 제가 봤던 것이 뭡니까? 설명 좀 해주십시오.”
박대기 병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다가 이내 스르륵 풀었다.
“됐다, 됐어! X발, 소대 꼬라지 잘 돌아간다.”
박대기 병장은 아예 상대하기 싫다는 얼굴로 몸을 홱 돌려 걸어갔다. 인상은 잔뜩 찌푸린 상태로 말이다.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이 수군거렸다.
“아, 진짜 웬 꼬장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그냥 얌전히 군 생활하다가 제대나 할 것이지.”
“성격이 모자라서 그래, 성격!”
“어이구 그놈의 성격…….”
“그냥, 무시해, 무시. 박대기잖아, 박대기.”
박대기는 그런 후임병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건물을 나섰다.
강인한 병장은 멀어지는 박대기 병장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10
박대기 병장은 건물을 나와 창고로 향했다.
창고는 박대기 병장이 유일하게 맘 편히 쉬는 곳이었다. 내무실에 있어서 쉬는 것 같지 않았다. 후임병들에게 눈치를 잔뜩 줬지만, 그들은 박대기를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아, 스트레스 쌓여.”
그래서 맨날 할 일 없이 자신이 짱박히는 곳이었다.
창고로 온 박대기 병장은 조금 전 후임병들의 행동에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핫! 어이가 없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찍소리도 못했던 새끼들이.”
박대기 병장은 창고에서 왔다 갔다 거리며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강인한 이 자식, 언제 한번 걸리기만 해봐.”
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보다 더 나쁜 X은 바로 소대장 X이야.”
박대기 병장은 이미선 2소대장에게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이미선 2소대장은 내무실에 찾아왔다. 그리고 소대원들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박대기 병장에게만은 그 웃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예 무시했다.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감히 날 무시해. 짬밥도 나보다 안 되는 X이?”
이미선 2소대장의 그런 행동에 후임병들 역시 박대기 병장을 무시했다.
“와, X발. 내가 제대하면, 2소대장 너 두고 봐. 밖에서 내 눈에 띄면 죽여 버린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창고를 두리번거렸다. 한쪽에 쌓여 있던 매트리스 하나를 펼쳐서 누워 버렸다.
“시간 참 더럽게 안 가네.”
박대기 병장이 팔베개를 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박대기 병장 귓가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응? 혹시 누가 오나?”
박대가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밖을 확인했다. 역시 누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 젠장!”
박대기 병장이 후다닥 매트리스를 치운 후 장비가 쌓여 있는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창고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아, 진짜. 왜 그러시는 거예요?”
박대기 병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이미선 2소대장의 목소리였다.
‘2소대장? 그녀가 왜?’
박대기 병장은 귀를 쫑긋했다. 이윽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위님 언제까지 그러십니까. 제 맘 좀 받아주십시오.”
“하아, 최 중사님. 왜 그러십니까.”
“아, 진짜! 지난번에 약속하셨잖아요. 드림 콘서트 티켓 구해다 주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고작 티켓 하나 구해다 주고 지금 생색내시는 거예요?”
“고작이라니요. 드림콘서트 티켓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시면서 그러십니다. 내가 그 티켓 구하려고 날밤을……. 그런데 생색이라니 너무하십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미선 2소대장도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최 중사가 바짝 다가갔다.
“최, 최 중사님…….”
“이 소위님 정말 제 맘을 몰라주십니까?”
“이러다가 소문나면 어떻게 해요.”
“소문이 뭐가 중요합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집 잘삽니다. 게다가 저 곧 제대합니다.”
“제대해요?”
“그럼요. 제대하고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겁니다.”
“확실한 거예요?”
“그렇다니까요.”
박대기 병장은 여자 쪽은 이미선 2소대장인 것은 알겠는데 남자는 잘 몰랐다. 그리고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이 뭐라는 거야?’
박대기 병장의 귀가 쫑긋해졌다. 그때 최 중사의 느끼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소위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쁩니까?”
“몰라요.”
“이 소위님, 뽀뽀해도 됩니까?”
“아니, 무슨 그런 말을……. 물어보고 해요.”
최 중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이미선 2소대장에게 다가갔다.
박대기 병장은 너무 조용하자 둘이 뭘 하는지 보고 싶었다.
‘뭐 하는 거야?’
박대기 병장은 궁금한 나머지 조금씩 움직였는데 뭔가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하아, X발…….’
최 중사가 순간 멈추며 소리쳤다.
“뭐야? 누구냐!”
“누가 있어요?”
이미선 2소대장이 화들짝 놀랐다. 최 중사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물었다.
“빨리 나와라. 어서!”
“…….”
조용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최 중사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없는 거 같은데요.”
“가만히 있어보십시오.”
최 중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좋은 말할 때 빨리 나와라!”
이미선 2소대장은 아무래도 찝찝했다.
“안에 한번 보세요.”
“아, 네에.”
최 중사가 천천히 박대기 병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박대기 병장은 잔뜩 인상을 구겼다.
‘하아, X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때 박대기 병장의 눈에 하나의 비닐봉지가 들어왔다.
‘그래, 저거다.’
박대기 병장이 재빨리 비닐봉지를 얼굴에 쓰고 뛰쳐나갔다.
“어멋!”
“너 이 새끼, 누구야!”
박대기 병장은 대답 없이 최 중사와 이미선 2소대장을 밀치며 창고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
이미선 2소대장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최 중사가 물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이미선 2소대장이 일어났다.
최 중사가 말했다.
“이 소위님 여기 가만히 계십시오. 내 이 녀석을…….”
“아뇨, 괜찮아요. 누군지 알 것 같아요.”
“네? 누굽니까?”
이미선 2소대장은 괴한이 자신을 밀치고 도망갈 때 힐끔 눈빛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매우 낯이 익었다.
‘설마…….’
“이 소위님!”
최 중사가 강하게 불렀다. 이미선 2소대장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네.”
“아까 그 녀석 누굽니까?”
“제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누구냐 말입니다. 제가 당장 잡아서…….”
“잡아서 뭐 하시게요?”
“입을 막아야죠.”
“아뇨, 내가 처리할게요. 최 중사님은 가만히 계세요.”
“이 소위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이 일은 남자인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최 중사가 당당하게 나섰다.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처리해요. 최 중사님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최 중사가 이미선 2소대장을 바라봤다.
‘진짜 맡겨도 되는 거야? 아니야, 여자에게 뭘 맡겨. 내가 처리해야지.’
“…….”
“일단 여기서 나가죠.”
최 중사가 진중한 얼굴로 말을 한 후 창고를 나섰다. 그리고 대충 괴한이 사라진 방향을 확인했다.
‘아까 그 녀석이 저리로 갔지.’
최 중사는 사라진 방향을 가늠한 후 이미선 2소대장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헤어지죠.”
그리고 괴한이 사라진 방향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이미선 2소대장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1
그 시각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휴게실로 나와 있었다.
“주말 잘 쉬셨습니까?”
“네. 소대장님은 잘 쉬셨습니까?”
“네. 바쁘게 보냈습니다.”
“쉬지 않고, 바쁘게 보냈습니까?”
“네. 이것저것 정신없이……. 그보다 박 하사는 모처럼 가족들을 보니 좋지 않았습니까?”
박중근 하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게 왜?”
“저희가 아직 금실이 좋아서요.”
“아, 네에…….”
오상진은 그 말뜻을 금세 이해했다. 박중근 하사가 슬쩍 물었다.
“소대장님.”
“네?”
“소대장님은 결혼 늦게 하십시오.”
“어? 내 주위 사람은 결혼 빨리하라고 하던데. 안정된다고 말입니다.”
“물론 안정은 됩니다. 엄청! 하지만…….”
박중근 하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튼 결혼은 늦게 하는 겁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저 피우고 오십시오. 전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오상진은 다 먹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박중근 하사가 허리를 툭툭 건드렸다.
“아이고 삭신이야.”
그때 건물 안으로 누군가 ‘쓰윽’ 하고 지나갔다. 그는 박중근 하사와 눈이 마주쳤다.
“어? 저 자식 뭐냐? 박대기!”
박중근 하사가 박대기 병장을 발견하고 불렀다.
박대기 병장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박중근 하사를 봤다. 그런데 경례도 없이 다시 도망치듯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어? 저 자식 봐라. 감히 날 보고 경례도 없어.”
그 뒤로 최 중사가 뛰어들어 왔다.
“최 중사님.”
박중근 하사가 먼저 발견했다.
“어어, 박 하사. 혹시 여기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 못 봤어?”
“지나간 사람 봤습니다.”
“누구였지?”
“박대기 병장이었던 갔습니다.”
“박대기 병장은 어디 소대지?”
“1중대 2소대입니다만…….”
“1중대 2소대…….”
“왜 그러십니까?”
“별거 아니고, 박대기 병장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아, 네에. 알겠습니다.”
최 중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본부중대 간부가 여긴 어쩐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