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61화
41장 추위가 가면(4)
“야, 고작 이걸 펼치는데 낑낑거리냐?”
구진모 상병이 한마디 했다. 두 사람은 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진 상병이 천막 상태를 확인했다.
“으음…….”
황토가 묽은 곳을 손으로 툭툭 건드려 봤다. 흙은 떨어지지만 자욱이 남아 있었다.
“안되겠네.”
이해진 상병은 대충 빗자루로 흙을 털어내고 말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저분해 보였다.
“이 참에 물로 좀 씻어야겠다.”
이해진 상병이 생각을 정리한 후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물 좀 떠와라. 아무래도 빗자루로 털지 못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편 다른 소대도 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한태수 일병은 각 내무실에 있는 방탄 헬멧을 모조리 꺼내서 밖으로 가져왔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들고 나와 외피를 벗겨냈다. 그리고 뒤집어서 일렬로 나란히 늘어놓았다.
그 뒤로 장구류와 군장을 가지고 나와 똑같이 햇볕에 말렸다. 이렇게 하루 종일 말리면 오후쯤 되었을 때 뽀송뽀송해질 것이다.
“와, 오늘 날씨 좋다.”
“그러게 말입니다.”
최강철 이병이 빗자루로 천막을 쓸며 말했다.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소리쳤다.
“자, 자. 날씨도 좋으니까, 빨리 물로 청소하고 널자!”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도 행정반에서 업무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1소대 애들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을 하려고 했다.
1소대 바로 옆문으로 나가니 구름 몇 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제법 따뜻했다.
“와, 날씨가 완전히 풀렸네.”
그때 김일도 병장이 다가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 김일도 너 뭐냐?”
“네?”
“왜, 내 옆에 자연스럽게 와서 서냐?”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봐주십시오.”
“너 말년이라고 너무 노닥거리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할 때는 합니다.”
김일도 병장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오상진에게 건넸다.
“한 대 피시겠습니까?”
“아니, 이제 끊으려고.”
“와, 이리 좋은 담배를 왜 끊습니까? 아니지, 요새 연애한다고 몸 관리 하십니까?”
“그래, 몸 관리한다.”
“와, 너무하십니다. 완전 연애한다고 티 내는 것 아닙니까?”
“야, 인마. 너도 연애해 봐.”
“와, 연애 못 하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크크, 왜? 부럽냐?”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이제 제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나가면 군대 물 쫙 빼고, 클럽부터 접수할 겁니다.”
김일도 병장은 제대하고 자신 앞에 펼쳐질 파란 만장한 미래를 설계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참! 제대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일도 너 제대 언제지?”
“다음 달입니다.”
김일도 병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야, 벌써 그렇게 됐냐?”
오상진이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년 휴가 가야지. 요즘 말년 휴가 몇 박 며칠이냐?”
“9박 10일이지 말입니다.”
“이야, 기네.”
오상진이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한마디 툭 내던졌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말년 휴가인데 9박 10일이 뭡니까. 일병 휴가처럼 14박 15일은 줘야 하지 않습니까. 진짜 국방부에 건의하고 싶네.”
김일도 병장이 투덜거렸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자식이. 그래 어디 한번 건의해 봐라.”
“네.”
“그보다 너 아직 견장 안 뗐다. 그거 달고 있을 때까지는 책임지고 애들 관리해라.”
“걱정 마십시오. 그보다 분대장 선임은 언제 할 겁니까?”
“글쎄다. 너 말년 휴가 가기 전에 넘겨야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란히 광합성이라도 받는 듯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김일도 병장이 먼저 눈을 뜨며 물었다.
“소대장님.”
“왜?”
오상진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고 있었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물어봐.”
“제가 아마 상병 때일 겁니다. 소대장님께서 전입 오시고, 한두 달이 지났을 때인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오상진이 천천히 눈을 뜨며 김일도 병장을 바라봤다.
“아, 언제인지 알겠다.”
오상진도 시점이 언제였는지 대충 감이 왔다. 아마도 오상진이 과거에서 회귀했을 때였을 것이다.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매우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인제 와서 말하는 건데 말입니다. 소대장님께서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갑자기 사람이 확 변하셨습니다. 혹시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계기라…….”
오상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그때 내가 과거로 회귀를 했다,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뭐, 별거 없는데…….”
“에이, 그래도 뭔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왜? 그때 소대장이 많이 달라졌냐?”
“확 달라졌지 말입니다. 그때 적응하려고 엄청 힘들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딴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지금이야, 완벽히 적응을 했지만……. 그때는 진짜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180도 확 달라질 수가 있는지…….”
김일도 병장은 그때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달라졌었냐?”
“네.”
“그리고 넌 그것이 궁금하다?”
“네.”
김일도 병장은 집중하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은 자신이 귀환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해봤자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사실 말이야.”
“네!”
김일도 병장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내가 죽는 꿈이었어.”
“죽는 꿈 말입니까?”
“그래. 먼 훗날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말이야. 그리고 눈을 떴는데 관사였지. 그때 생각한 거야.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확 바뀐 거란 말입니까?”
“그렇지.”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쏙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너는 그때가 좋아? 지금 이 좋아?”
오상진이 뜬금없이 물었다. 김일도 병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답했다.
“지금이 좋습니다.”
“그럼 됐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처음에는 달라진 소대장님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랬구나…….”
오상진은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참, 제대하고 나서 언제 한번 찾아와. 소대장이 밥 한 끼 살게.”
“에이, 이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겁니다.”
오상진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 알았다.”
“넵. 충성.”
김일도 병장이 살며시 경례하며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오상진이 경례 자세를 가리켰다.
“야, 아무리 말년병장이라고 해도 경례가 그게 뭐냐? 손이 구부정해서는…….”
“아, 그렇습니까? 그냥 넘어가 주시지 말입니다. 한 달 후면 곧 민간인이 됩니다.”
“그때까지는 군인이야.”
“네,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대답을 하고는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자식, 벌써부터 행동이…….”
그러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내가 회귀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네.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오상진이 ‘허허’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8
각 중대와 소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번 주 혹한기 훈련에 사용했던 장비들과 장구류들을 소독하기 위함이었다.
소독은 이렇듯 햇볕이 쨍쨍할 때 밖으로 가져나가 일광욕(?)을 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소독을 해주고 나면 모든 장비가 뽀송뽀송해지고,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1중대 2소대 역시 이미선 2소대장이 전달하고 바삐 움직였다. 그런데 박대기 병장만 움직이지 않고 침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하아, 물집 잡혀서 죽겠는데…….’
사실 오후에 물집이 심하게 잡힌 병사는 의무대로 가기로 했다. 그사이 박대기 병장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아, 심심하다.’
박대기 병장은 무료하게 앉아 있다.
원래 박대기 병장은 소대에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는 중이었다. 물론 스스로가 자처한 일이기에 딱히 뭐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소대 후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X발, 하나같이 맘에 안 들어.’
어쨌든 병장은 달았지만 박대기 병장은 2소대에서의 권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등병들은 그나마 자신을 무서워하지만 일병들부터는 자신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박대기 병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쩐지 2소대에서 점점 더 자신의 입지를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는 것은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제대 때문이었다.
‘그래, 참자, 참아. 이제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사고 쳐서 영창 가면 나만 손해야. 이대로 제대 날짜를 연기할 수는 없지.’
박대기 병장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바짝 동여맸다.
‘에라이, 모르겠다.’
박대기 병장은 침상에 벌러덩 누웠다. 그의 귓가로 강인한 병장이 애들을 다독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야, 빨리빨리 움직여라. 왜 그렇게 굼뜨냐. 소대장님께서 오전 중으로 끝내라고 했다.”
강인한 병장은 2소대장이 여자라서 그런지 끔찍이 챙겼다. 아니, 자신이 좀 더 움직여 이미선 2소대장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박대기 병장은 그런 강인한 병장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저 자식은 2소대장이 여자라고 X나 신경 쓰네. 한심한 새끼…….’
박대기 병장은 인한을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박대기 병장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박 병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박대기 병장이 슬쩍 눈을 떴다. 강인한 병장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뭐, 인마?”
“여기서 뭐 하시냐 말입니다.”
강인한 병장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박대기 병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보면 몰라?”
“소대장님께서 소대 정비하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누워 있지 말고 좀 움직이시죠.”
“뭐, 새끼야?”
박대기 병장이 눈을 부라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인한 병장과 서로 눈이 마주쳤다.
“같이 움직이라 했습니다.”
“네가 뭔데, 새끼야!”
“전 이 소대의 분대장입니다.”
강인한 병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대기 병장이 힐끔 강인한 병장의 어깨에 있는 녹색 견장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그래서 새끼야. 꼴에 분대장이라 이거지?”
“…….”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난 하기 싫은데.”
“박 병장님은 우리 소대 아닙니까?”
“핫!”
박대기 병장은 어이가 없었다.
“방금 뭐라 했냐? 우리 소대? 언제 너희들이 날 소대원으로 봐줬냐?”
“…….”
강인한 병장이 말없이 바라봤다.
“꼴값 떨지 말고 그냥 너 하던 일이나 해.”
“그럼 여기 계셔서 정비하는 거 방해나 하지 마시죠.”
“아, X발…….”
박대기 병장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X발! 사라져 줄게. 아 놔, 분대장이라고 X나 설치네.”
박대기 병장은 강인한 병장을 스치듯 지나갔다.
강인한 병장이 몸을 돌리며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너 내 꼴도 보기 싫잖아. 그래서 사라져 준다고.”
박대기 병장은 그 한마디만 하고 내무실을 나갔다.
강인한 병장의 눈빛이 강하게 바뀌었다.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가 이내 풀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