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57화
40장 혹한기란 말이다(10)
최강철 이병은 그 소리를 듣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콜렉트 콜이라 전화를 안 받아줄까 봐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콜렉트 콜은 상대방에게 요금이 부과되는 방식이라 상대방이 거절을 할 수 있는 통화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친한 사람이 아니면 바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
자신인 줄 모르고 전화를 거절해 버릴까 신호가 길어질수록 애가 탔는데 전화가 연결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 것이었다.
“지현 씨.”
-네, 강철 씨.
“미안해요. 콜렉트 콜로 해서요. 갑자기 내려오는 바람에 전화카드를 안 가지고 왔어요.”
-괜찮아요. 그리고 저한테 콜렉트 콜로 전화할 사람은 강철 씨밖에 없어요, 헤헤.
“아, 그래요.”
최강철 이병은 최지현의 말에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미안해요. 혹시 자고 있었어요?”
-아니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요.
“아, 맞다. 하하하…….”
최강철 이병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자신이 자야 해서 착각을 했다.
“뭐하고 계셨어요?”
-저 지금 학원이에요.
“어? 학원요? 무슨 학원인데요?”
-네, 영어 학원이에요. 연예인에 미련도 없고……. 이제 뭐라도 다른 걸 해보려면 영어를 배워놓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래요? 그럼 지금 통화 가능해요?”
-마침 쉬는 시간이에요. 그보다 무슨 일 있어요?
최지현이 수화기 너머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강철 이병이 바로 말했다.
“아, 아뇨. 없어요. 그것보다 저 다음 주에 휴가 나가요.”
-휴가요? 또요?
“이번에 혹한기 훈련 중에 제가…….”
최강철 이병은 수화기를 붙잡고 자신이 한 일을 열심히 설명했다. 마치 엄청난 일을 했다는 것처럼 잔뜩 부풀려서 말했다.
-우와! 진짜요? 강철 씨 대단하다.
“에이, 뭐. 군인이라면 당연한 거죠.”
-그래도 진짜 폭탄을 발견한 거잖아요. 안 무서웠어요?
“무섭기는요.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진짜 폭탄을 보고 그래야죠. 하하핫!”
최강철 이병이 호탕하게 웃었다. 열심히 허세까지 떨어가며 큰소리를 쳤다.
-역시 강철 씨는 멋져요.
최지현의 칭찬에 최강철 이병은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제가 지현 씨 보려고 엄청 열심히 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네, 알겠어요. 그럼 우리 다음 주에 볼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알았어요. 그럼 다음 주에 봐요.
“네.”
-아, 저 지금 수업 들어가야 해요.
“아, 미안해요.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공부 열심히 하세요.”
-네. 강철 씨도 수고해요.
“네.”
최강철 이병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최지현과 통화를 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마치 하늘을 붕 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진짜 왜 이러지?”
최강철 이병은 공중전화 박스를 나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다시 몸을 돌려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맞다. 누나에게도 전화해야 한다.”
최강철 이병이 누나에게 콜렉트 콜로 전화했다.
-네, 최강희입니다.
“누나, 강철이.”
잠시 후 여자 기계음이 나오고 최강희가 전화를 받았다.
-오오, 군인 아저씨! 무슨 일이니? 탱크 필요하니?
“아이씨, 누나! 진짜 왜 그래.”
-내가 뭘? 탱크 필요하냐고 물어본 것뿐인데.
“진짜 탱크 사 줄 거야? 그럼 지금 사 줘! 우리 부대로 보내봐!”
-이게 어디서 누나에게 삥을 뜯으려고. 누나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으로 보여?
“뭐야. 누나. 이랬다저랬다 하고. 노처녀 히스테리 부려?”
-뭐? 노, 노, 노처녀!? 너 죽을래?
“아, 미안. 미안. 누나가 자꾸 날 놀리니까, 그랬지.”
-됐고! 왜 전화했어?
“아니, 나 혹한기 훈련 잘 받았다고.”
-뭐야?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야?
“그것도 있고…… 보내준 부식 잘 먹었다고.”
-아, 부식.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너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한 거야?
“응? 갑자기 왜 그건 물어봐?”
최강철 이병이 순간 당황했다. 수화기 너머 최강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 꼭 여자 친구에게 전화했다가 ‘아차’ 하고, 마지못해 나에게 전화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맞네.
“아니야.”
-아닌데 왜 말을 더듬고 있어? 맞구만!
“아, 몰라. 끊어!”
최강철 이병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왔다.
“뭐야, 왜 이렇게 촉이 좋아.”
최강철 이병이 투덜거렸다. 그때 지나가던 간부가 한마디 했다.
“너 뭐야? 잠 안 자?”
최강철 이병이 깜짝 놀라며 후다닥 뛰어갔다.
“아, 아닙니다. 지금 들어갑니다.”
“빨리 들어가!”
“넵!”
8.
한편, 최강희도 휴대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훗, 자식이 말이야. 거짓말을 못 해요.”
최강희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옆에 서 있던 강 비서가 한마디 했다. 강 비서는 최강희가 직접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강철 군 전화입니까?”
“그래요. 그보다 강철이가 만나는 여자가 누구라고 했죠?”
“최지현이라고 예전 연예기획사에 있던 여자였습니다. 강철 군 하고도 살짝 인연이 있습니다.”
“어떤 인연이죠?”
“클럽 마약 사건 때 강철 군을 도와줬던 인물입니다.”
“아, 그래요? 집안은요?”
“집안은 평범합니다. 연예인 되기 위해서 기획사에 들어갔다가, 사기만 당하고 계약해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요?”
최강희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살며시 두드렸다.
“그럼 잠깐 두고 봐야 하나?”
“네. 조금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도 큰 결격 사유는 없어 보입니다.”
최강희는 강하나 사건 이후로 최강철 주변 여자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하나 이후 만난 최지현이라는 여자는 일단 합격이었다.
“알았어요. 강철이가 좋아하면 됐죠. 수고했어요, 그만 나가보세요.”
“네.”
강 비서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9.
오상진은 관사에서 4시간 정도 잠을 잔 후 눈을 떴다. 시간을 확인한 후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이크, 소희 씨 만나기로 했는데…….”
오상진은 후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후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소희 집 근처에 도착을 할 때쯤 전화를 걸었다.
“소희 씨, 저 거의 도착했어요.”
-네, 전 이미 나와 있어요.
“네? 조금만 기다려요. 거의 다 왔어요.”
-천천히 와요. 운전 조심하고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자마자 액셀을 좀 더 강하게 밟았다.
5분 후, 한소희 집 근처에 도착했다. 한소희가 오상진 차량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집에서 기다리죠.”
“상진 씨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랬죠.”
한소희가 냉큼 조수석에 올라탔다. 오상진은 오랜만에 보는 한소희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뇨, 너무 오랜만에 봐서요. 여전히 내 여친은 예쁘구나 생각 중이었어요.”
“뭐예요. 2주 전에 봤으면서…….”
한소희가 부끄러워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려 2주일 동안 못 봤잖아요. 통화도 잘 못 하고…….”
“그게 어디 저 때문인가요? 상진 씨가 혹한기 훈련 간다고 그랬죠.”
“네. 제 잘못입니다.”
오상진이 곧바로 항복을 했다.
“뭐할래요?”
“으음……. 밥 먹고 우리 아지트에 가요.”
“으흐흐흐, 아지트요?”
오상진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한소희가 대뜸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 앞에 엑스자를 치며 말했다.
“뭐예요. 그 웃음은? 응큼해! 아니, 변태!”
“네? 제가 왜 변태예요?”
“방금 변태처럼 웃었잖아요.”
“제가요? 오해입니다.”
“오해가 아닌 것 같은데요.”
한소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은 그 모습마저 예뻐 보였다.
“우리 여친은 웃을 때도 예쁘고, 화났을 때도 예쁘고. 도대체 안 예쁜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뭐예요. 그렇게 말해도 이미 늦었어요?”
“그래서 아지트에 가지 마요?”
“누가 가지 말래요? 칫! 응큼쟁이!”
한소희는 일부러 토라진 듯 행동했다. 오상진이 크게 웃었다.
“역시 예쁘다니까.”
한소희가 고개를 돌린 채 입가에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오상진이 액셀에 올려놓은 발을 밟았다. 차가 부우웅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잉, 지잉.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신순애에게서 온 전화였다.
“엄마?”
“네? 어머니요?”
한소희도 놀란 눈이 되었다. 오상진이 차를 한곳에 세운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한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오상진의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들, 혹시 데이트해?
“네. 옆에 있는데 바꿔 줄까요?”
-어휴, 됐어! 그런데 너 오늘 저녁에 집에 올 수 있어?
“저녁에요? 무슨 일 있어요?”
-으응, 이모부가 올라오셨어.
“이모부가요? 그럼 가야죠.”
-데이트하고, 천천히 와도 돼.
“아뇨, 괜찮아요. 바로 갈게요.”
오상진은 말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는 살짝 새초롬한 표정으로 차창을 보고 있었다.
“소희 씨.”
오상진이 조용히 불렀다. 한소희는 반응이 없었다.
“똑똑똑, 소희 씨.”
한소희가 몸을 홱 돌렸다.
“왜요!”
“혹시 삐졌어요?”
“아니요.”
“그럼 왜 새초롬하게 있어요?”
“아니, 모처럼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나에게 상의도 없이 집에 간다고 하고…….”
한소희는 잔뜩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소희 씨, 이해해 줘요. 엄마가 오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저하고 먼저 상의를 했어야죠.”
“미안해요.”
솔직히 한소희가 떼를 쓰는 것을 알았다. 사실 따져보면 거의 2주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주말이 아니면 평일엔 보기 힘들었다. 한소희 입장에서는 그럴 만했다. 그래서 오상진도 너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잠깐 고민을 하던 오상진이 불쑥 물었다.
“그럼 소희 씨. 우리 집에 안 갈래요?”
한소희가 깜짝 놀랐다.
“네?”
“이모부도 올라오셨다고 하니까. 이참에 소개시켜 줄게요. 어차피 우리 가족이라고 하면 이모 식구네, 이 정도거든요. 집에 사촌 동생들도 있고 하니까. 겸사겸사 한번 안 만나볼래요?”
한소희가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어머나, 어떡하지? 나 오늘 완전 안 예쁜데.”
한소희는 오늘 캐주얼하게 입고 나왔다. 물론 오상진이 바라보기에는 이 모습마저 예뻤지만 말이다.
“아뇨, 예뻐요.”
“아니에요. 좀 더 꾸미고 오면 완전 더 예뻐요!”
“물론 그렇지만 지금도 예쁘다니까요.”
“정말요? 진짜 괜찮아요?”
“네!”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 씨는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뭘 입어도 다 예뻐요.”
“칫!”
한소희는 싫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는 겁니다?”
“어쩔 수 없죠. 오늘은 상진 씨 곁에 있고 싶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이모네도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물론 이런 식은 아니었지만.”
“하하하, 알았어요. 그럼 출발합니다.”
“알았어요. 나중에 보상해 줘야 해요.”
“보상요? 어떤 것이 좋으려나?”
“나중에 내가 말할 거예요.”
“알았어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한소희는 예정에도 없었던 이모네를 만나러 오상진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