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56화
40장 혹한기란 말이다(9)
오상진도 인사를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들 괜찮냐?”
김철환 1중대장이 소대장들을 스윽 훑어보며 물었다.
“네. 중대장님.”
“버틸 만합니다.”
다들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표정들이 죽어가는 게 빨리 쉬게 해줘야 할 거 같았다.
“특이사항 없으니까, 다들 숙소로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해. 특히 부소대장들도 괜히 딴 데로 새지 말고, 곧장 숙소와 집으로 가.”
“네. 중대장님.”
“그리고 쉴 때 쉬더라도. 애들 관리 한 번씩 들여다보고.”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몸을 돌려 오상진에게 다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1소대장. 넌 오늘 뭐 할 거냐? 우리 집에 가서 한잔할 텨?”
“아닙니다. 전 오늘 약속이 있습니다.”
“여자 친구?”
“네.”
“그래, 좋을 때다. 그럼 쉬어라.”
“네. 쉬십시오.”
김철환 1중대장이 떠나고, 오상진도 책상을 정리한 후 일어났다.
“저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월요일 날 뵙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네. 1소대장님.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십시오.”
오상진은 인사를 한 후 행정반을 나왔다. 그러면서 휴대폰을 꺼내 한소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전 끝났습니다.
-ㅠㅠ 상진 씨 보고 싶어요. 훈련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마음 같아선 내가 가서 안마해 주고 싶어요.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바로 답장을 보내려는데 뒤에서 이미선 2소대장이 불렀다.
“오 중위님.”
그에 오상진은 문자를 보내려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네?”
이미선 2소대장이 다가왔다. 그녀는 살짝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뗐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저랑 해장국 한 그릇 어떠십니까?”
“해장국 말입니까?”
“네. 아니면 위병소 앞에 김치찌개라도……. 얘기를 들어보니 거기 김치찌개가 맛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제가 한 번도 안 가 봐서…….”
이미선 2소대장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오상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 번도 안 가 보셨습니까?”
“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한 번도 안 가 봤다고? 웃기네.’
오상진이 속으로 웃었다. 며칠 전에 4소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말입니다. 어제 2소대장이랑 부대 앞 김치찌개 집에서 밥 먹었지 말입니다.”
“2소대장이 좋아합니까?”
“네. 생각보다 잘 먹던데 말입니다.”
오상진은 그 대화를 떠올리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을 했다. 오상진의 앞에 서 있는 이미선 2소대장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마치 처음인 듯 오상진에게 여우짓을 하고 있었다. 오상진은 거기다 대고 대놓고 ‘너 4소대장이랑 같이 먹었잖아’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관사로 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상진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순간 이미선 2소대장의 눈빛에 아쉬움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 그러십니까?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 한번 해요.”
이미선 2소대장은 오상진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후다닥 행정반으로 뛰어들어갔다. 오상진은 살짝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야? 나한테 왜 저러지?”
그러다가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손에 쥔 휴대폰을 들어 다시 한소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관사로 가서 한숨 자고, 오후에 보면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일어나면 소희 씨에게 바로 달려갈게요.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낸 후 고개를 들었다. 그사이 1소대 내무실 앞에 도착했다.
다들 잠을 잘 시간인데 내무실 안이 소란스러운 걸 보니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이것들이…….”
오상진이 문을 벌컥 하고 열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안 자?”
오상진의 한마디에 1소대원들이 후다닥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이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09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안 피곤하냐? 소대장이 더 피곤하게 만들어줘? 연병장 한 바퀴 돌고 잘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안 자고 있어?”
“…….”
소대원들이 조용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떠들지 말고, 빨리 자! 어차피 12시에 기상인데 시간 얼마 없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내일 충분히 휴식 취하고.”
“네.”
“일도야.”
오상진이 김일도 병장을 불렀다.
“병장 김일도.”
“애들 잘 통제하고, 오후에는 개인 정비하고.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오상진이 막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최강철 이병이 손을 들었다.
“이병 최강철.”
오상진이 걸음을 멈추고 최강철 이병을 봤다.
“왜? 소대장에게 할 말 있냐?”
“네.”
“뭔데, 말해봐.”
“저…….”
최강철 이병이 슬쩍 고참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오상진이 눈치채고 말했다.
“강철이 잠깐 밖에 나와봐.”
“네.”
오상진 역시도 최강철 이병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최강철 이병 누나 때문에 혹한기 훈련 기간 동안 잘 먹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오상진이 내무실을 나가고, 최강철 이병도 뒤를 따랐다.
“그래, 무슨 일이야?”
“저기 대대장님께 받은 포상휴가 말입니다.”
“아, 그거. 써야지. 언제 쓸 거야?”
“다음 주에 가능하겠습니까?”
“다음 주에 딱히 훈련이 없긴 한데……. 바로 쓰게?”
오상진이 물었다. 최강철 이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로 쓰면 안 됩니까?”
“그건 아니지만…… 너 백일 휴가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잖아.”
“네.”
최강철 이병의 얼굴에 살짝 어둠이 드리웠다.
“휴가라는 것이 바로 써도 좋지만, 넌 이등병이고 다음 달에 일병 달지 않아? 일병 달면 14박 15일짜리 일병 휴가도 갈 텐데……. 나중을 위해서 아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상진의 답변에 최강철 이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소대장님.”
“왜?”
“저 이제 이병 4호봉입니다. 일병 달려면 아직 2달이나 남았습니다.”
“그래? 아직 두 달이나 남았어?”
“네.”
“뭐, 정 그렇다면 갔다 와도 되지만…….”
오상진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으려나?’
물론 마음 속으로는 조금 걱정이 들기는 했다.
원래 이등병이라는 것이 휴가를 갈 때도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등병이 포상휴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받아놓은 휴가를 가지 않는 것도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괜찮겠지.’
오상진이 잠깐의 고민을 끝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다음 주에 가는 것으로 소대장이 알고 있을게.”
“네. 감사합니다. 충성!”
“오냐, 쉬어라.”
오상진이 손을 흔들며 부대를 나섰다. 최강철 이병은 주먹을 쥐며 나이스를 외쳤다. 그리고 내무실로 들어가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오상진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참! 강철아.”
“이병 최강철.”
“너희 누나한테 잘 먹었다고 전해라.”
“네?”
“부식 말이야. 신경 써 줘서 보내줬잖아.”
“아.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힘차게 말을 한 후 내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참들 눈치를 살피며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옆에 누워 있던 이해진 상병이 눈을 뜨며 물었다.
“소대장님께 말씀드렸어?”
“네.”
“그럼 김일도 병장님께 말씀드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김일도 병장을 봤다.
“김일도 병장님.”
“왜?”
김일도 병장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저, 다음 주에 포상휴가 갈 생각입니다.”
“그래? 알았다.”
김일도 병장은 대수롭지 않게 승낙을 했다. 그런데 김우진 병장이 눈을 번쩍하고 떴다.
“뭐? 다음 주에 휴가 간다고?”
최강철 이병이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네.”
“야, 인마! 너 백일 휴가 다녀온 지도 얼마 안 되었잖아. 그런데 또 휴가 가? 그것도 이등병이?”
김우진 병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최강철 이병을 바라봤다. 그에 최강철 이병은 눈을 크게 뜨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저…….”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말했다.
“야, 우진아. 됐다. 그만해.”
“아니, 그래도…….”
“됐다니까. 최강철, 집에 전화는 했냐?”
“아, 아닙니다.”
“그럼 어서 전화부터 하고 와.”
“아, 네!”
최강철 이병이 후다닥 내무실을 빠져나갔다. 김일도 병장은 김우진 병장이 뭐라고 하기 전에 일부러 최강철 이병을 내보낸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김우진 병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 김 병장님. 왜 그러십니까?”
“내가 뭘 인마.”
“최강철 이병만 편애하십니다.”
“편애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
“그래도 강철이는 아직 이등병 아닙니까. 이등병 녀석이 벌써부터 포상휴가를 막 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막말로 저희 때는 그러지 않았지 않습니까. 고참들 눈치 보고 가지도 못했는데. 군대 참 좋아졌습니다. 이등병이 고참들 눈치도 안 보고 말입니다.”
김우진 병장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눈을 뜨며 김우진 병장을 봤다.
“우진아. 너 그때는 이등병이 포상휴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그리고 대대장님께서 준 포상휴가인데 안 가는 것도 웃기지 않냐.”
“그래도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야, 이제 군 문화도 바뀌어야지. 언제까지 그리 고리타분한 관습에 얽매일 거야. 너도 이제 몇 달 후면 제대잖아. 병장이 되어서 그런 꼰대 짓을 하고 싶냐?”
“꼬, 꼰대……. 제가 말입니까?”
김우진 병장이 펄쩍 뛰었다.
“그럼 지금 네가 말하는 것이 꼰대지 뭐겠냐?”
“에이.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아니야?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
“…….”
김일도 병장의 한마디에 김우진 병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이해진 상병을 불렀다.
“야, 해진아.”
“상병 이해진.”
“너도 이 상황을 이해하냐?”
“이미 소대장님도 허락하셨는데 말입니다. 저라고 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말은 이해진 상병도 이해할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말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었다. 김우진 병장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그러다 결국 몸을 홱 돌려 침낭을 덮으며 말했다.
“허! 그래,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나도 몇 달 후면 제대다. 뭔 상관이야. 에잇!”
김우진 병장이 침낭을 머리 위로 푹 뒤집어썼다.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얘들아, 어서 자라. 피곤하지도 않냐.”
“네. 알겠습니다.”
7.
그사이 최강철 이병이 공중전화 박스로 향했다. 전화카드 없이 콜렉트 콜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최강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첫 번째 통화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 자나?”
최강철 이병이 다시 한번 콜렉트 콜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현 씨, 저예요. 최강철. 콜렉트 콜인데 전화 좀 받아줘요.”
최강철 이병이 다급하게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여성 기계음이 들려왔다.
-상대방이 전화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 연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