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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455화 (455/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455화

40장 혹한기란 말이다(8)

1중대가 위병소를 통과할 때 군악대의 우렁찬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빰빠빠빠빠빰!

그 뒤로 다른 타 부대 장병들이 도로 양옆으로 쭉 펼쳐져 무사히 행군을 마친 충성대대 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행군을 무사히 마친 장병들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해냈다는 자부심!

끝까지 버텨냈다는 자긍심!

마지막으로 이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5.

충성대대의 병력은 부대 앞 연병장에 모여서 간략하게 신고를 마친 후 각자 내무실로 들어갔다. 김우진 병장이 1소대 내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깐이지만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야, 역시 우리 내무실이 좋구나.”

김우진 병장은 자신의 자리 앞에 군장을 벗었다. 무겁게 짓눌리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서둘러 전투화도 벗고 양발까지 벗었다.

“와, 시발! 도대체 물집이 몇 개 잡힌 거야.”

김우진 병장은 자신의 발바닥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다른 소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진짜 힘들었습니다. 두 번 다시 행군은 못 할 것 같습니다.”

구진모 상병이 군장을 벗으며 한마디 했다. 그러자 회심의 웃음을 짓는 김우진 병장이었다.

“어떡하냐? 내년 유격 때 또 해야 할 텐데. 하지만 난 이번이 마지막 행군이지롱. 부럽지?”

“헐…….”

구진모 상병이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김우진 병장이 한껏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진모 상병은 심통이 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병장으로 진급해 제대할 날을 손꼽고 있는 김우진 병장이 너무나 부러웠다.

“좋겠습니다.”

“좋긴 좋지! 이제 난 큰 훈련은 이제 없잖아?”

“그건 또 모르지 않습니까.”

그때 김일도 병장이 들어왔다.

“우진아. 넌 큰 훈련 하나 더 있을지도 몰라.”

“네?”

김우진 병장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었다.

“모르지, 운 나쁘면 독수리 훈련에 걸릴지도.”

“에이, 서, 설마…… 그러겠습니까?”

“모르지. 나야 이제 한 달 반만 있으면 제대니까.”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김우진 병장이 털썩 어깨를 늘어뜨렸다.

“젠장, 완전 부럽습니다.”

“크헐헐헐.”

그렇게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사이 오상진이 내무실로 들어왔다.

“자, 모두 샤워실로 갈 준비해라. 그리고 9시까지 모두 준비 끝내고 취침할 준비를 해.”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내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대충 군장 정리하고. 샤워할 준비 서두르자.”

“네.”

1소대가 바삐 움직였다. 그사이 방송을 통해 각 소대별 샤워 시간이 나왔다.

일병들과 이병들은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눈빛을 반짝였다. 그 누구보다도 귀를 쫑긋했다.

“야, 우리 소대 샤워 몇 시냐?”

“네. 8시 10분부터 20분까지입니다. 제1 샤워장입니다.”

“8시 10분 확실해?”

“제가 똑똑이 들었지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각 소대별로 주어진 샤워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10분 안에 모든 샤워를 마쳐야 했다.

“알았다. 빨리 준비하고 내려가자.”

“네.”

“아, 저는 그냥 세면장에서 얼굴이랑 발만 씻겠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진 구진모 상병이 그대로 드러누웠다. 몸이 녹초라 움직일 기운도 없었지만 10분만에 전쟁같은 샤워를 하는 것도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인상을 썼다.

“야, 구진모. 안 일어나?”

“그냥 세면장에서 씻게 해주면 안 됩니까?”

“너 때문에 내무실에서 냄새나잖아! 네가 우리 중에서 냄새 제일 나는데 안 씻으면 어떻게 해!”

“아니, 제가 안 씻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면장에서 씻겠다는 말입니다.”

“닥치고, 세면도구 챙겨!”

“김 병장님!”

“닥쳐! 아무튼 꼭 이런 놈들이 있어.”

구진모 상병은 울상을 지었지만 김우진 병장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모두가 냄새가 날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지만 모두가 씻었는데 한 명이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김 병장님. 저 샤워 싫습니다.”

“잔말 말고 따라와! 넌 밑에 애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냐?”

“제가 뭐가 부끄럽습니까. 안 씻는 것도 아니고…….”

“네 몸에서 냄새난다고! 몸에서!”

김우진 병장이 질린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구진모 상병은 하기 싫은 얼굴로 질질 샤워장으로 끌려갔다.

반면, 최강철 이병은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면도구와 수건을 챙겨서 움직였다. 세면도구 안은 군에 적응을 끝낸 일병들처럼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서둘러 샤워장에 도착을 한 최강철 이병이 세면도구를 꺼냈다. 그걸 본 이해진 상병이 눈을 크게 떴다.

“너, 목욕탕 왔냐?”

“네?”

“무슨 비누도 아니고 샴푸까지…….”

“아. 제가 비누는 좀……. 바디로션이랑 샴푸는 저희 누나가 보내줬습니다. 한번 써 보시겠습니까?”

최강철 이병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해진 상병은 어이없어했다.

“야, 인마. 이등병이 벌써부터 이런 거 사용하면 욕먹는다. 어서 숨겨!”

“네?”

최강철 이병이 서둘러 세면도구를 닫았다. 이해진 상병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인마, 일병 말호봉이나 상병 때 사용해. 이등병이 벌써부터 사제 물품 사용하면 버릇없다고 해.”

“그, 그렇지만 전 비누를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지금 사용하면 되겠네. 새끼가, 여자 친구 생겼다고 아주 깔끔을 떨어.”

“아, 아닙니다.”

“아니긴……. 아무튼 그거 잘 숨겨 뒀다가 나중에 사용해.”

“네.”

이해진 상병의 한마디에 최강철 이병은 울상이 되었다. 그렇게 비누로 머리랑 몸을 닦은 최강철 이병은 샤워장을 벗어날 때까지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 찝찝해. 씻은 것 같지도 않아.’

하지만 고참들에게 찍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비누에 적응해 볼 생각이었다.

내무실로 올라가는 사이 이해진 상병이 최강철 이병에게 슬쩍 물었다.

“참, 너 포상휴가 받았지?”

“네. 그렇습니다.”

“언제 갈 거냐?”

“저 가도 됩니까?”

“그럼 네가 얻은 포상휴가인데.”

“그럼 다음 주에 가능합니까?”

최강철 이병의 눈빛이 반짝였다. 솔직히 이등병이고 백일 휴가 갔다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 포상휴가를 가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물론 일병 되고 가면 좋지. 그런데 다음 주에 간다고 해도 어차피 소대장님이라면 허락해 줄 거야. 다만, 물론 김우진 병장님은 엄청 짜증을 내겠지. 이등병 새끼가 또 휴가 간다고 말이야. 그래도 갈 거지?”

“……네, 가고 싶습니다.”

“그럼 한번 욕 듣고 말아. 어차피 부식 추진한 것 때문에 크게 야단치지는 않을 거야.”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최강철 이병은 또 걱정이 되었다. 사실 포상휴가 받고, 곧장 나가서 최지현이랑 보낼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김우진 상병에게 한마디 들을 생각을 하니까 겁이 났다.

“해. 포상휴가는 빨리 갔다 오는 것이 좋아.”

“아, 알겠습니다.”

“잠들기 전에 소대장님께 바로 말해봐. 너 소대장님과 친하잖아.”

“네, 알겠습니다. 이 상병님.”

“그래.”

이해진 상병은 최강철 이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태로 최강철 이병은 세면도구를 놓고, 곧장 오상진을 만나러 움직였다.

6.

오상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행정반에 들어왔다. 행정반에도 살짝 냉기가 감돌았다.

5일 만에 들어온 행정반이었다. 오상진은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방탄헬멧과 장구류를 벗어서 책상 위에 올렸다.

“하아…….”

오상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그사이 다른 소대장들도 하나둘 행정반 안으로 들어왔다.

“와, 진짜 너무 힘듭니다.”

4소대장이 죽을상으로 말했다. 3소대장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이미선 2소대장은 말 할 기운조차 없어 보였는데 혹한기 훈련은 처음인데다가 소대장들 중 유일하게 여자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벅찬 모양이었다.

“다들 괜찮습니까?”

안쓰러운 마음에 오상진이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4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앓는 소리를 했다.

“진짜 두 번은 못 받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한기 훈련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데 참……. 피곤해 죽을 지경입니다.”

3소대장이 한 마디 보태자 이미선 2소대장도 푸념에 동참했다.

“저는 더 힘들었습니다. 화장실 문제면 잠자리 문제까지…….”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소대장은 나름 티 내지 않고 잘 버텨보려 했지만 혹한기 훈련의 주변 상황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영외 훈련의 경우 화장실과 잠자리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다행히 함께 훈련받은 여자 부사관들과 같이 생활해서 잠자리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화장실 문제는 정말 곤욕이었다. 하루 이틀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참고 참고 참다가 진짜 힘들 때, 그것도 밤에 몰래 갔다.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이미선 2소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장구류를 책상 위에 올린 후 머리를 만졌다. 머리도 푸석푸석하고 얼굴 역시 말이 아니었다.

그때 4소대장이 다가왔다.

“2소대장. 그래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아, 네에. 4소대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4소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뭐 하실 겁니까?”

“저 말입니까?”

“네.”

4소대장이 넌지시 물었다. 혹여라도 이미선 2소대장이 별 약속이 없다면 데이트를 겸해 식사를 권해 볼 생각이었다.

“전 이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관사로 가면 완전 뻗어버릴 것 같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자 4소대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온종일 잠만 잘 겁니다.”

“역시 잠이 최고입니다.”

이미선 2소대장은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내일까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온종일 잠만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 표정이 어두웠다.

바로 3소대장이었다. 3소대장이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다들 좋으시겠습니다. 전 내일 당직사령입니다. 하아…….”

3소대장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3소대장을 4소대장이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하필…….”

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말을 했다간 오히려 놀린다고 오해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3소대장을 대신해 당직사령을 서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의리를 떠나 지금 당장 베개에 머리를 대면 곧바로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3소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빨리 가서 휴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3소대장이 서둘러 퇴근할 준비를 했다.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행정반에 들어왔다.

“야, 다들 고생했다.”

각 소대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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