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54화
40장 혹한기란 말이다(7)
모든 훈련이 끝나고 천막을 해체했다. 매트리스며 천막을 해체한 물품은 고스란히 육공트럭 차량에 적재했다.
“자, 다 실었냐?”
오상진이 확인하며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일도야.”
“병장 김일도.”
“애들 집합시켜라.”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1소대원들을 집합시켰다. 그사이 오상진은 주변을 확인했다. 뭔가 빠진 것은 없는지, 쓰레기나 오물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참! 해진아.”
“상병 이해진.”
“화장실은?”
“네. 흙으로 잘 덮어 뒀습니다.”
“그래? 문제없겠지?”
“네.”
“잘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확인한 후 말했다.
“자, 이동하자.”
오상진을 선두로 1소대원들이 움직였다. 공터에는 1중대원들이 다 모였다. 김철환 1중대장이 나왔다.
“모두 준비 다 끝냈지?”
“네.”
“좋아! 마지막 복귀 행군이 남았다. 다들 알겠지만 추운 날씨다. 행군 시 안전에 유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1중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각 중대가 모이는 공터로 이동했다.
오후 14시가 조금 넘은 시각.
넓은 공터에는 수백 명의 중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자그마한 단상에 한종태 대대장이 올라서 간략하게 얘기를 한 후 김철환 1중대장을 봤다.
“출발해!”
“네!”
충성대대 1중대를 선두로 줄지어 행군을 시작했다. 한종태 대대장은 단상에 서서 모든 병력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곽부용 작전과장을 보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출발하지.”
“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종태 대대장은 준비된 1호 차에 올라탔다. 그 뒤에 곽부용 작전과장과 통신장교까지 다 탔다.
“출발해!”
“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병이 말을 한 후 1호 차가 출발했다. 행군하던 장병들이 부러운 눈으로 1호 차를 바라봤다.
1소대에서 김우진 병장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행군을 하다니. 젠장!”
그 옆에 있던 김일도 병장이 한마디 했다.
“말년 병장도 하는데, 구시렁거리기는…….”
“그러게 말입니다. 왜 김 병장님도 한다고 합니까?”
“힘이 있냐? 까라면 까야지.”
“그보다 이번에도 그 길로 가겠죠?”
“그렇겠지.”
두 병장의 대화를 듣던 최강철 이병이 옆에 있던 이해진 상병에게 물었다.
“그 길이라니 뭔 말입니까?”
“있어. 공포의 뚝방길!”
“공포의 뚝방길 말입니까?”
“그렇지. 돌고 돌고, 또 돌고.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똑같은 길을 걷고, 또 걷는 길.”
“네?”
최강철 이병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있어. 아마 저녁 먹고 나서 알게 될 거야. 공포의 뚝방길!”
“아, 네에…….”
최강철 이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딱 이름만 들어도 공포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사실 공포의 뚝방길은 최악의 코스였다. 모두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잠까지 쏟아지는 최악의 상태였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 똑같은 길을, 대략 4시간 동안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모르고 가는 거랑 알고 가는 거랑은 또 기분이 달랐다. 모르고 갈 때는 막상 그 상황이 닥칠 때까지는 괜찮지만, 알고 가는 것은 아는 순간부터 걱정이 밀려왔다. 한마디로 정신적인 충격이 오기 때문이었다.
“야, 똑바로 안 걸어! 조 일병! 정신 안 차리지.”
“일병 조영일. 아닙니다.”
“노 이병, 슬슬 걸음걸이가 비틀비틀거린다. 고참 몰래 술 먹었냐? 그러다가 아스팔트랑 뽀뽀하겠다.”
“아, 아닙니다.”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한마디씩 하며 확실하게 정신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행군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다. 겨울의 짧은 해는 금세 떨어졌다. 다시 찾아온 겨울밤의 추위는 행군하는 장병들을 지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와, 젠장. 평지를 걸으면 춥고, 오르막을 오르면 덥고, 더우면 땀나고, 식으면 더 춥고! 젠장 맞을, 도대체 뭐 싸우자는 거냐!”
김우진 병장이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에 모든 장병들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
앞서 걸어가던 김철환 1중대장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주둔지에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냈다.
“자자, 선두 좀 더 빨리 걷자.”
“네.”
그렇게 한참을 더 걷고서야 주둔지가 보였다. 그리고 김우진 병장의 눈에 공포의 뚝방길 초입이 눈에 들어왔다.
“아, 시발. 드디어 도착했네.”
그 순간 알게 될 공포에 정신적으로 충격이 슬쩍 다가왔다.
“아, 아니야. 괜찮아.”
김우진 병장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떻게든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사이 오상진이 나서며 말했다.
“선두 제자리!”
“선두 제자리.”
“여기서 저녁 먹고 출발한다. 자리 잡고,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1소대는 군장을 벗고, 전투화도 벗은 상태였다. 추운 날씨라 발바닥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와, 벌써 물집이 잡히려고 합니다.”
“전 벌써 50원짜리가 잡혔습니다.”
소대원들의 소리를 들으며 오상진은 상태를 확인했다.
“자, 물집 잡힌 대원들은 터뜨리지 말고, 실을 꽂아 둬. 그래야 쓰라리지 않아.”
“네.”
소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이은호 이병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구 상병님.”
“왜?”
“지금 저녁 먹는 시간이지 말입니다.”
“그렇지.”
“그럼 또 전투식량 먹는 겁니까?”
“글쎄다. 그건 모르지…….”
“하아. 전투식량은 좀 그런데…….”
이은호 이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육공트럭이 부아앙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어? 밥 차 아닙니까?”
최강철 이병이 말했다. 소대원들 모두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오상진이 일어났다.
“자자, 1소대부터 밥 먹으러 가자.”
“네.”
1소대원들이 움직였다. 밥 차가 있는 곳으로 가니 구수한 냄새가 맡아졌다.
“어? 이 냄새는?”
조영일 일병이 먼저 냄새를 맡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였다.
“왜? 뭔 냄새데?”
김우진 병장이 다가와 물었다. 조영일 일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삼계탕입니다.”
“뭐? 진짜?”
“네! 냄새가 확실합니다.”
“이야, 그럼 우리가 삼계탕을 먹는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대박!”
소대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리고 준비된 식판을 들고 밥을 먹으러 갔다. 정말 조영일 일병이 말한 대로 삼계탕, 아니, 반계탕이 있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취사병들이 배식을 하고 있었다. 먼저 푹 삶은 닭 반 마리를 식판에 올렸다. 그다음은 잘 우려낸 육수를 부어주었다.
닭을 받은 소대원들은 밥과 김치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진짜 삼계탕입니다.”
“단백질 보충하라는 거네.”
장병들의 얼굴에 조금 전까지 지쳐 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상진이 다가와 물었다.
“배식 다 받았냐?”
“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받았지?”
“그렇습니다.”
“그래 잘 먹고! 마지막으로 힘내서 남은 행군 마무리 짓자!”
“네, 알겠습니다.”
“많이들 먹어라!”
“맛있게 드십시오.”
소대원들은 신나 하며 닭을 먹었다. 오상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맛나게들 먹어라.”
사실 삼계탕은 한종태 대대장의 특별지시였다. 이번 혹한기 훈련을 통해 대항군도 잡고, 충성대대의 이름을 올렸다. 사단 통제관도 이번 혹한기 훈련에 충성대대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사단장의 전화 한 통이 컸다.
“수고했네, 충성대대장!”
“아,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 한 통의 전화로 인해 한종태 대대장은 특별히 대대 보급관 민영기 상사에게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저녁에 삼계탕이 좋겠다고 말이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 옆으로 다가왔다.
“상진아.”
“네.”
“이게 다 너 덕분이다.”
“네?”
“대항군 말이야. 대항군. 대대장님이 모처럼 사단장님께 칭찬을 받았다고 하잖아.”
“아, 또 그렇습니까?”
“사단장님께서 최대한 쏘라고 지시를 내렸나 봐. 그래서 사단에 있던 닭은 다 처리한 모양이다.”
“대대 보급관이 움직였겠습니다.”
“당연하지. 대대장님 특별지시인데.”
“후후, 대대에 있으면서 똥줄 탔겠습니다.”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무튼 잘 먹자고.”
“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사이 병사들도 한마디씩 했다.
“삼계탕입니다. 삼계탕!”
“뭐야? 진짜네.”
“무슨 군대에서 삼계탕도 먹어보네.”
모든 장병이 다들 좋아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장병들은 또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야, 눈 안 떠! 새끼야, 눈 뜨라고!”
“죄, 죄송합니다.”
“너 그거밖에 안 돼? 여기서 포기할 거야?”
“아, 아닙니다.”
“정신 차려, 새끼야!”
“네!”
끝없는 뚝방길을 걸어갔다. 진짜 말처럼 공포의 뚝방길이었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영하의 날씨를 느낄 새도 없이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바짝 정신 차려라! 아직 끝이 아니다.”
“네.”
“1소대! 파이팅!”
누군가 힘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1소대원들이 곧바로 소리쳤다.
“파이팅!”
누군가의 힘찬 함성에 1소대는 다시금 힘을 냈다. 그러던 중 이은호 이병의 몸이 비틀거렸다. 뒤에 걷던 최강철 이병이 움찔했다.
“너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유난히 체력이 약한 이은호 이병이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나마 최강철 이병은 괜찮았다.
“군장 줘.”
“네?”
이은호 이병의 눈이 커졌다.
“군장 달라고!”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은호 이병이 객기를 부렸다.
“완주해야 할 거 아니야. 난 아직 괜찮으니까. 줘.”
“괘,…….”
“쓰으읍!”
최강철 이병이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이은호 이병은 어쩔 수 없이 군장을 건넸다. 최강철 이병이 군장을 앞으로 맸다. 이전보다 딱 두 배의 무거움이 최강철 이병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걸어가!”
“네.”
“딱 한 시간이다. 한 시간 후에 군장 받아가.”
“아,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한 시간 동안 휴식을 줄 테니 그동안 체력을 올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 만에 이미 바닥 난 체력을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다음 이은호 이병의 군장을 가져간 사람은 이해진 상병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돌려가며 공포의 뚝방길을 벗어났다.
“와, 드디어 벗어났다!”
“진짜 힘든 건 둘째치고, 끝없이 반복되는 길은 사람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도 공감이다. 그래도 버텨내서 다행이다.”
다들 공포의 뚝방길을 벗어났다는 것에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00시가 되었을 때 나오는 사발면과 간식은 또 다른 힘이 되어 주었다.
새벽 5시가 되었을 때 장병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그 정신력만으로 버텨 오전 07시가 조금 넘긴 시간 저 멀리 위병소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