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48화
40. 혹한기란 말이다(1)
1
“알았다. 이만 가봐라.”
“네.”
김일도 병장이 1소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몸을 돌려 말했다.
“소대장님 내일부터 진짜 제대로 하겠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그래, 일도야. 열심히 하자.”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김일도 병장이 힘차게 말했다. 오상진은 멀어지는 김일도 병장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잠깐 없다고 이런 일이…….”
오상진은 답답한 마음에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었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하나를 꺼냈다.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켜려는 순간 멈칫했다.
“소희 씨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오상진은 담배를 잠깐 바라보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그래 어차피 담배도 끊을 참이었는데 좀 참아보자.”
오상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몸을 돌렸다. 그리고 1소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다른 중대 소대장들이 모여 있었다.
“어? 여긴 어쩐 일이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타 중대 소대장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몰랐다.
“야, 1중대장님이 왜 우릴 불렀지?”
“글쎄다. 모르겠네.”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이 부른 것을 알고 그냥 가려고 했다. 그렇게 몸을 돌려 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오상진 말이야.”
“오 중위? 오 중위가 왜?”
오상진은 자신에 대한 말이 나오자 순간 귀를 쫑긋했다.
“그보다 말이야. 난 오 중위가 쌤통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쌤통? 하긴 오 중위가 좀 재수 없긴 하지.”
“마찬가지야. 자기만 다 잘난 듯 행동하잖아.”
“맞아, 맞아.”
오상진은 소대장들의 얘기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막말로 오상진이 스스로 잘난 척 행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소대장들은 마치 오상진이 잘난 척하고 다닌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 중위 잘하지 않냐?”
소대장 한 사람이 슬쩍 말했다. 그러자 다른 소대장들이 일제히 그를 쏘아봤다.
“뭐야? 오 중위랑 친해?”
“아니면 오 중위 대변인?”
“4중대 2소대장이지? 자네 오 중위랑 친분 있지?”
“아, 아니거든.”
“그런데 왜 오 중위를 감싸고 그래?”
“내, 내가 언제 그랬어.”
“아까 그랬잖아.”
“아니거든.”
그 소대장은 괜히 말 한 번 잘못해서 거기 있는 모든 소대장들에게 한 소리씩 들었다.
“아무튼 오늘은 좀 기분이 좋긴 하더라.”
“나도, 나도.”
오상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막말로 오상진이 저들에게 무엇을 크게 잘못을 했는지도 몰랐다.
“하아…….”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곳을 떠나려 했다.
“야, 그보다 오늘 오 중위 얼마나 깨졌냐?”
“안 깨졌대. 어제 당직근무 선다고 훈련에서 빠졌대.”
“뭐? 운도 좋네. 존내 깨졌어야 했는데.”
“내 말이 그 말이야. 진짜 운 좋아.”
“참! 그런데 어떻게 1소대를 콕 짚어서 잡은 거래? 1소대 원래 가장 외곽에 있지 않았냐. 대항군이 활동하려면 3소대나, 4소대를 터는 것이 좋았을 텐데…….”
한 소대장의 질문에 다른 소대장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것도 그러네.”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하긴 해.”
그때 한 소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난 알고 있는데.”
“뭐? 알고 있어?”
오상진 역시도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뭐지? 우연이 아니었단 말이야?’
오상진은 다시 자리를 잡고 귀를 쫑긋했다. 다른 소대장들 역시 궁금했다.
“뭔데? 진짜 뭔가 있는 거야?”
“말 좀 해봐. 아, 진짜 답답하네.”
“다들 모여봐. 방금 내가 들은 얘기 아무에게도 하면 안 된다.”
“당연하지!”
“아, 진짜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봐.”
“알았어. 사실 1소대가 원래 타깃이었대.”
“뭐? 1소대가 타깃이었다고?”
“아니, 왜?”
“그러게 왜?”
“어험, 그게 말이지. 내가 아는 애가 대항군에 있거든. 그 친구가 말하길 우리 쪽 소스가 흘러나간 거래.”
“와, 대박!”
“진짜? 그럼 첩자가 있었다는 거야?”
“야, 첩자까지는……. 훈련이잖아.”
“암만 훈련이라고 해도 우리 위치를 적에게 알린 거잖아. 이건 아니지.”
“아놔, 진짜! 이봐, 강 소위. 왜 자꾸 다큐를 찍으려고 그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아니면 나 입 닫는다.”
“아, 아니야. 미안. 미안!”
“그래, 계속 얘기해 봐. 강 소위는 그냥 모른 척하고.”
“좋았어. 그럼 다시 얘기를 할게. 그 친구가 정보를 접하고 진짜 가봤는데 1소대가 있었다는 거야. 완전 깜짝 놀랐지 뭐야.”
“진짜?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막말로 그게 아니고서야 이 넓은 산에 그것도 외곽에 외치한 1소대 위치를 어떻게 파악했겠어. 안 그래?”
“하긴 맞는 말이네.”
“그렇지.”
다른 소대장들 역시 모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 소대장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그런 걸까? 왜 1중대 1소대지?”
“왜긴 왜겠어. 오 중위 때문이지. 얼마나 꼴 보기 싫었으면 그랬을까?”
“진짜? 그런 거야?”
“그렇다니까.”
“아무튼 오 중위도 적이 참 많아.”
“자기가 스스로 적을 만든 거지.”
오상진은 그 얘기를 들으며 점점 더 얼굴에 씁쓸함이 피어올랐다.
“암튼 이번 훈련 내내 1소대 좀 고생할 거다.”
“큭큭큭, 그거 잘됐네.”
“그럼 오상진 중위 깨지는 일만 남았네.”
“그렇지. 크크크.”
“야, 중대장님 부르신다. 가자!”
“그래!”
소대장들이 담배를 다 피우고 뛰어갔다. 그 뒤로 오상진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 씁쓸한 얼굴이던 오상진은 이번에는 눈빛이 강하게 바뀌었다.
“그랬단 말이지. 알았어! 나도 그냥은 안 당해.”
2
오후 훈련도 말끔하게 마친 1소대가 복귀를 했다. 식사추진을 하고 각자 저녁을 먹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박중근 하사가 오상진을 찾아왔다.
“소대장님.”
“아, 박 하사.”
박중근 하사는 오상진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아까 낮엔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너무 감정적으로 나갔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서로가 약간 오해의 소지도 있고 말이죠.”
“아, 네에. 그 부분에 대해서 아까 김일도 병장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그럼 일단 오해는 풀린 겁니다.”
“네. 뭐 그렇죠.”
“잘하셨습니다. 박 하사도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네.”
“그래도 그 세 명의 징계는 부대 복귀하면 해야겠죠?”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중근 하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해는 오해고, 징계는 징계입니다.”
“그렇죠. 아, 그리고…….”
오상진이 막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무튼 잘 풀었다니 다행입니다.”
“네, 소대장님.”
박중근 하사는 얘기를 한 후 경례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오상진은 낮에 들었던 얘기를 박중근 하사에게 하려다가 그만뒀다.
‘일단 참자! 박 하사 성격에 발끈할 수도 있어. 나도 어디서 말이 새는지 모르니까.’
오상진은 일단 그 근원지부터 찾아볼 생각이었다.
시간은 흘러 저녁 점호를 간단하게 한 후 오상진이 천막으로 갔다. 한 편으로 오상진의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1소대원들은 모두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부스럭. 부스럭.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핫팩의 따뜻함을 느끼며 잠을 청해봤다. 그런데 쉽게 잠을 자지 못했다.
‘하아…… 잠이 안 오네. 내일 당장 훈련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오상진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어두운 천막 안, 홀로 눈을 끔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내일은 매복이니까. 목표 지점을 잘 설정을 해서 매복해야겠지? 어디가 좋을까?’
오상진은 머릿속으로 아까 낮에 본 작전상황판 지도를 펼쳤다. 1소대가 매복할 장소를 확인했다.
‘여기서 산 능선 쪽을 살핀 후 대기할까? 아니야, 너무 흔해…….’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작전상황판 지도를 펼쳤다.
‘그럼 이쪽으로 가 볼까? 여기에 매복할 수 있는 지형이 많긴 한데 말이야. 쉽사리 대항군들이 오지는 않겠지? 아니지, 대항군이 안 오면 더 좋잖아.’
하지만 오상진은 왠지 꼭 리턴 매치를 해 보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없었으니까.’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현실이 낮아 보였다.
‘하아, 답답하네. 뭔가 팟 하고 방법이 떠오르지 않네. 정말 답답하다.’
오상진은 잠도 오지 않고 이래저래 잡생각이 많아졌다. 하물며 뭔가 뾰족한 실마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머리나 식힐 겸 바람이나 쐴까?’
오상진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김우진 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김 병장님께서 불침번을 다 서시고 웬일이십니까?”
오상진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짐작이 되었다. 바로 2소대 하영운 일병이었다.
“영운이냐?”
“네. 그렇습니다.”
“내가 지은 죄가 커서 그래. 지은 죄가!”
“무슨 죄를 지었…… 아, 낮에 포승줄!”
하영운 일병이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순간 김우진 병장이 눈을 크게 떴다.
“영운아, 그 얘기는 하지 말자. 맘 아프다.”
“하하하. 그래서 불침번을 서고 계시는구나.”
“그래, 내 다음 순번이 우리 김일도 병장님이시다.”
“헐……. 김 병장님 분대장아닙니까. 게다가 말년이신데…….”
“그래도 어쩌겠냐. 소대장님께서 불침번 서라고 했는데 말이야. 지은 죄가 있으니 군말 없이 서는 거지.”
김우진 병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영운 일병이 물었다. 김우진 병장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진짜 김 병장님께서 배가 아파서 그랬거든. 그래서 내가 망봐주고, 그러려고 했는데 막상 볼 일을 다 보고 올라가려는데 솔직히 가기 싫더라. 그래서 내가 꼬셨지. 김 병장님은 안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올라가야 해서 움직이는데 갑자기 대항군이 나타난 거야. 어느새 완전히 포위를 한 상태로 말이야.”
“아, 그랬습니까?”
“그렇지. 완전 살벌했지. ‘손들어!’ 딱 말하는데…….”
김우진 병장은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운도 없으십니다. 하필 그곳에 대항군이 나타날 줄은 말입니다.”
“그렇지. 운도 지지리도 없지.”
김우진 병장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하지.”
“뭐가 말입니까?”
“대항군이 우리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포위를 했단 말이지.”
“이미 확인을 하고 포위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전혀 낌새도 못 느꼈는데……. 게다가 거긴 외각이잖아.”
“대항군이 어디 말을 하고 움직입니까. 그냥 운이 없었던 겁니다.”
하영운 일병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우진 병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가?”
김우진 병장은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하영운 일병이 입김을 불어내며 말했다.
“후우, 저는 빨리 혹한기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부대 내무실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