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33화
39장 착하게 살아요(1)
1.
박정자는 최말숙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뭐야, 최 씨! 여기 있었어? 진짜 일하고 있었네.”
“……네에.”
“신 씨 어디 있어?”
“어, 언니는 주방에…….”
“나오라고 해봐요.”
최말숙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황한 얼굴로 주방 쪽으로 갔다.
“언니, 언니!”
“왜 그래?”
“왕국밥 박 사장님 오셨어.”
신순애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박정자가 입구 한가운데 딱 서서 짜증스러운 눈길로 식당을 쭉 훑어봤다. 그리고 주방에서 나온 신순애를 노려봤다.
“신 씨,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남의 레시피로 이렇듯 장사를 해도 돼?”
박정자는 허리에 두 손을 턱 하니 얹었다. 신순애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져 갔다.
2.
박정자는 콧김을 잔뜩 뿜어대며 신순애 국밥집으로 향했다.
“어디야? 저기야?”
박정자는 신순애 국밥집의 간판을 확인하고 어이없어했다.
“이것들이 진짜……. 정말 국밥집을 차렸네. 어디 내 구역에서 국밥집 장사를 해.”
박정자가 구시렁거리는데 때마침 가게에서 젊은 아가씨 셋이 나왔다.
“여기 국밥 진짜 맛있지?”
“응! 너도 알잖아. 나 국밥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지.”
“그런데 여긴 진짜 맛있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
“맞아. 맞아!”
젊은 아가씨의 말에 박정자의 귀가 쫑긋했다.
“지선이 넌 어때?”
“뭐, 나쁘지 않네.”
“저 가시나, 국밥 먹자고 하니까 못 먹는 것처럼 학을 떼더니……. 아까 봤지? 두 숟가락 먹더니 아예 코 박고 허겁지겁 먹는 거?”
“야, 내가 언제 그랬어. 이 집 국밥이 깔끔하고 그래서 그렇지.”
“아무튼 저 가스나 내숭은……. 내가 장담하는데 너 분명히 혼자 또 와서 국밥 먹는다.”
“나도 동감!”
지선이 두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아니거든. 나 국밥 또 안 먹을 거거든.”
“안 먹기는……. 아니다, 우리 다음 주에 또 와서 먹을 건데 너 안 먹을 거니?”
“뭐, 너희들이 먹는다면 내가 또 먹어줄 아량은 있어!”
“지랄하네.”
“야, 시끄럽고! 빨리 인증샷이나 찍자!”
“그래!”
세 여자가 나란히 섰다. 한 여자가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자, 하나둘셋 하면 찍는다.”
“그래!”
셋은 한껏 예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촬영을 끝내고 확인을 하던 여자 한 명이 말했다.
“뭐야? 나 눈 감았잖아. 다시 찍어!”
“야, 내가 다시 찍을게 줘봐. 하나, 둘, 셋!”
찰칵!
“야, 나 준비도 안 했는데…….”
“뭐야? 잘 나왔네.”
“뭐가 잘 나와. 너만 잘 나왔잖아.”
세 명의 여자가 티격태격거렸다. 그러다가 슬슬 지나가는 박정자를 붙잡았다.
“아줌마!”
“나?”
“죄송한데 사진 하나만 찍어 주시면 안 돼요?”
“사진?”
“네.”
“알았어요. 이리 줘봐요.”
“감사합니다. 여기 버튼만 누르시면 돼요.”
“그래요.”
박정자가 휴대폰 화면에 아가씨 세 명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박정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한때는 사진을 좀 찍었죠.”
사실 박정자는 왕국밥이 장사가 잘됐을 때 동네 아줌마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참 많이 찍고 놀았었다.
“자, 찍어요. 하나, 둘, 셋.”
찰칵!
“자요.”
휴대폰을 건네자 아가씨 세 명이 바로 확인했다. 그런데 세 명의 아가씨들이 다들 인상을 썼다.
“아줌마.”
“왜요? 사진이 잘 안 나왔어요?”
“여기 간판이 안 나왔잖아요. 간판이!”
“간판? 간판을 왜 찍어?”
“아니 우리 블로그에 인증샷 찍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인증샷? 그게 뭔데요?”
박정자는 궁금했다. 그러자 한 아가씨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이 가게 다녀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증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맞아요. 여기 가게 맛집이란 말이에요.”
박정자가 눈을 부릅떴다.
“맛집이라고?”
“아줌마, 그렇게 있지 말고 다시 한번만 더 찍어줘요. 간판 잘 나오게 해서요.”
“알았어요.”
박정자가 다시 휴대폰을 받았다. 그리고 엄청 내키지는 않았지만 상호까지 보이게 해서 찍어줬다. 아가씨들이 확인을 하며 중얼거렸다.
“사진은 아까 것이 좋던데…….”
“그럼 두 개 같이 사용하면 되지.”
“그러네.”
아가씨 세 명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줌마 고마워요.”
그 길로 아가씨 세 명이 가려고 했다. 그런데 박정자가 바로 불러세웠다.
“잠깐, 아가씨들!”
“네?”
“저기 말이야. 여기 맛집이라니, 누가 그래?”
“아! 여기요. 유명 블로거들이 몇 명 다녀갔는데 그 사람들 전부 맛있다고 했어요.”
“그래? 블로거? 그런 것이 있었어?”
박정자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맛집만 찾아다니는 블로거들이 그 집 음식을 먹고, 평을 써 놓는 것이었다.
“오호, 이 집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단 말이지. 알겠어, 이제 내가 바로 잡아줘야지.”
박정자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는 문을 딱 열고 당당히 들어갔다.
3.
최말숙은 문이 열리자 당연히 손님이 온 줄 알고 밝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 요.”
박정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최 씨, 여기서 일하는 거였어?”
놀란 최말숙이 황급히 불러온 신순애도 박정자를 보곤 놀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왜?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어?”
“그건 아니고……. 일단 앉으세요.”
신순애가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최말숙이 바로 신순애를 말렸다.
“언니. 무슨 소리예요, 지금! 그리고 사장, 아니지, 이제 사장도 아니지. 아줌마, 왜 남의 장사하는 데 와서 이래요. 빨리 나가세요.”
박정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아줌마? 아줌마라고? 야, 최말숙! 네가 지금 나에게 아줌마라고 할 수 있어! 너, 네 아들 수술 급하다고 했을 때 수술비 대 준 사람이 누구야?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아!”
박정자의 큰 소리에 밥을 먹던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말숙에게 향했다. 그러나 최말숙도 보통은 아니었다. 두 손을 허리에 올리며 콧방귀를 꼈다.
“허! 아줌마,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을 바로 하세요. 그 돈을 공짜로 줬어요? 월급을 가불해 준 거고, 꼴랑 100만 원 가불해 준 것으로 생색은……. 그리고 가불해 준 이후에 얼마나 절 부려먹었어요. 말끝마다 아들 살린 거 내가 돈을 줘서 그렇다는 둥…….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려요.”
최말숙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박정자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봐, 이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봇짐까지 내놓으라고 하네. 세상에 나 같은 사장이 어디 있어. 진짜 내가 때마다 밤늦으면 차비 챙겨주고, 종종 보너스도 챙겨줬잖아.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보너스 챙겨준 것은 단체 손님 받았을 때 고생했다고 챙겨준 것이고. 차비 챙겨준 것도 원래 퇴근 시간보다 두세 시간은 더 늦게 끝나서 차준 거잖아요. 심지어 늦게까지 일했으면 수당을 챙겨줘야지, 그거 챙겨주기 싫어서 차비로 퉁쳐놓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요. 안 그래요, 언니?”
최말숙이 신순애를 쳐다봤다. 신순애는 살짝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말숙아, 그만해.”
최말숙을 말린 후 박정자를 바라봤다.
“사장님 여기까지 오신 거 국밥 한 그릇 드시고 가세요.”
“헛! 신 씨도 그러는 거 아니야. 내 덕에 이렇게 장사하게 되었으면서, 국밥 한 그릇? 그 국밥이 누구 국밥인데? 신 씨 국밥이야? 우리 가게에서 국밥 만들던 실력으로 가게 차려놓고, 신 씨 국밥이야? 우리 국밥이지! 어떻게 우리 집 레시피를 가지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럴 수가 있어!”
박정자의 큰 소리에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손님 중 대부분이 박정자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괜히 나서서 피 보기는 싫었다. 그래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봤다.
“뭐야, 저 아줌마! 웃기네.”
한소희도 기가 막혀 했다. 그리고 오상진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상진 씨, 나 말리지 마요.”
한소희가 자리에서 딱 일어나려는데 오상진이 손을 붙잡았다.
“소희 씨가 왜요?”
“상진 씨도 지금 봤잖아요. 저 아줌마가 어머니께 억지를 부리고 있잖아요.”
그러자 오상진이 나직이 한마디 했다.
“소희 씨, 참아요.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나설 테니까. 소희 씨는 가만히 있어요.”
“왜요? 나 이런 거 자신 있어요. 어디 가서 말싸움으로 진 적이 없어요.”
“아는데, 소희 씨가 그런다고 해서 좋을 게 없어요. 만약 소희 씨가 나선다고 해봐요. 저기 계신 어른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다들 버릇없다고 할 거예요. 나서도 아들인 내가 나설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가 진정을 하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렇다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는 않았다. 잔뜩 인상을 쓰며 박정자를 노려봤다.
한편, 오상진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벌써부터 뛰어나가 발칵 뒤집어엎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사람들의 이목이 박정자의 말에 휘둘려 동요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오상진이 바로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았기에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최말숙이 초반에 반박을 너무 잘해놔서, 박정자의 억지가 먹히지 않았다.
‘일단 타이밍을 지켜보자. 괜히 내가 나섰다가 더 이상해질 수 있으니까.’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한쪽에서 국밥에 반주를 하시던 어르신 한 분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에이, 입맛 떨어져서 국밥을 못 먹겠네.”
그러자 박정자가 냉큼 말했다.
“그렇죠, 할아버지. 여기 국밥 별로죠!”
어르신이 박정자를 노려봤다.
“여기 국밥이 문제가 아니라, 아줌마가 문제야, 아줌마가!”
순간 박정자가 당황했다.
“어? 이 영감님 보게. 날 언제 봤다고 아줌마래!”
“아줌마는 날 언제 봤다고 영감님이래.”
어르신도 그대로 받아쳤다. 박정자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아니, 영감님이니까, 영감님이라고 하죠.”
“그럼 나는 아줌마니까, 아줌마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딱 봐도 아가씨로 불릴 나이는 아닌데 말이야.”
그러자 주위에 있던 손님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와, 할아버지 말발 대박!”
“할아버지 장난 아니다.”
“할아버지가 이겼네.”
주위의 웅성거림에 박정자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아니, 영감님, 아무것도 모르면 나서지를 마세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하세요?”
그러자 어르신이 한마디 했다.
“알지, 알다뿐인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내가 이 동네 국밥이란 국밥은 다 먹고 다녔어. 안 먹어본 곳이 없단 말이야.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지.”
“허, 웃기셔. 영감님 우리 집 국밥 먹어보기나 했어요?”
그러자 어르신이 피식 웃었다.
“아줌마, 저 밑 시장터 앞에 왕국밥 집 사장이지?”
순간 박정자가 놀랐다.
“어? 어떻게 알아요?”
“내가, 그 국밥집에 몇 번을 갔는지 알아?”
“저희 집에요? 언제요?”
“하긴, 내가 직접 가지 않고, 배달 시켜먹긴 했는데. 내가 진짜 누군지 모르겠어?”
어르신이 당당히 박정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박정자는 순간 움찔했다.
‘진짜 날 아는 사람인가? 아니야, 전혀 본 적이 없는데. 사기꾼 아냐?’
박정자는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르신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