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32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24)
식당에 들어선 남성은 신순애를 보더니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가장 작은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신순애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최말숙이 물통과 컵을 가지고 그 남성에게 갔다.
“국밥 드릴까요?”
“네. 소주 한 병도요.”
“네.”
최말숙이 주문을 받고 소리쳤다.
“언니, 국밥 한 그릇요.”
“알았어.”
그런데 최말숙이 고개를 갸웃하며 슬쩍 남성을 바라봤다.
‘뭐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데…….’
잠깐 고민하던 최말숙이 뭔가 떠오르더니 신순애에게 말했다.
“맞다. 언니, 언니! 저 남자 말이에요.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
“저 남자? 글쎄다.”
“몰라요? 저 남자 예전 왕국밥집 사장 동생인가, 뭔가 그 양반 아니에요?”
“그래?”
신순애가 작은 창을 통해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네.”
“맞아, 언니! 그 남자야. 그런데 저 남자가 왜 왔데?”
“왜 오긴 왜 와. 밥 먹으러 왔겠지.”
신순애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최말숙은 달랐다.
“저 양반이? 기억 안 나? 왕국밥집 찾아와서는 국밥이 질린다는 둥,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냈던 사람이라고. 그런데 저녁에 국밥을 먹으러 와? 말이 안 되잖아.”
신순애가 다시 한번 그 남자를 슬쩍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말숙아, 그렇다고 여기 왜 왔냐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 그냥 밥 먹고 가게 둬!”
신순애는 국밥 말러 들어갔다. 하지만 최말숙은 의심의 눈초리를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야,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수상해, 수상해.”
최말숙은 그 남자를 시선에 떼지 않았다. 그사이 신순애는 특별히 신경 써서 국밥을 준비했다. 수렴도 보통 5번을 하면, 이번에는 8번을 했다. 밥알에 국밥 국물이 충분히 스며들 수 있게 말이다.
“자, 말숙아. 그만 쳐다보고 얼른 국밥이나 가져다드려.”
“알았어요.”
최말숙은 냉장고에서 술 한 병 꺼내 테이블에 내어주고, 곧 이어 반찬과 함께 국밥을 가져다줬다.
그사이 최말숙은 정신없이 손님이 먹고 간 홀을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주기적으로 그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분명히 뭔가 있어? 분명히…….’
남자가 국밥과 소주를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남자는 계산을 한 후 후다닥 나가버렸다. 최말숙이 곧장 남자가 있던 테이블로 갔다. 그가 떠난 자리를 보니 국밥을 반밖에 먹지 않았고 소주도 반병밖에 먹지 않았다.
“이봐, 이봐! 이 양반 국밥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니까.”
신순애가 나왔다.
“언니! 그 사람 국밥 반이나 남겼어. 게다가 소주도 봐봐. 반병이나 남았잖아.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언니, 박 사장이 스파이로 보낸 것이 아닐까?”
최말숙 역시도 박정자가 어떤 인간인지 몸소 느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신순애는 고개를 흔들었다.
“말숙아, 우리 신경 쓰지 말자. 우리만 열심히 살면 되지.”
“아휴, 착해빠진 우리 언니. 박 사장을 몰라서 그래?”
“그래도 괜히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골치 아프니까. 어서 테이블이나 치우자.”
“아냐, 언니! 이거 내 촉이 좋지 않아. 분명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아.”
최말숙은 계속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신순애는 그래도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니까. 저쪽 테이블이나 어서 치워!”
신순애는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그렇게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사이 문이 열리며 손님이 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최말숙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한편, 국밥집에서 나온 남자는 이쑤시개를 뱉어내더니 주차한 차에 올라탔다. 그 길로 차를 몰아 왕국밥집에 도착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텅 빈 홀을 지키고 있던 박정자가 벌떡 일어났다.
“갔다 왔어?”
“응, 갔다 왔는데…….”
“왜 장사가 잘되는지 알았어?”
“누나, 정말 모르고 날 그리 보낸 거야?”
“뭔데?”
“가 보니까, 예전 주방 아줌마가 사장으로 있던데.”
“뭐? 신 씨가?”
“응! 최 씨도 거기 있던데.”
“최말숙 그년도 거기 가 있어?”
“그렇던데.”
남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박정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것들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 코앞에서 국밥집을 차렸단 말이지.”
그러자 듣고 있던 동생이 한마디 했다.
“에이, 누나. 코앞은 아니지. 차 타고 십 분은 가야 하는데.”
“그래도 같은 동네에서 하면 안 되지. 상도덕이 있는데.”
“아이고, 누나도 처음에 저 앞에 국밥집 있는데 여기다가 차려 놓구선.”
동생의 투덜거림에 박정자가 눈을 부라렸다.
“너, 너, 누구 편이야? 누구 역성을 드는 거야!”
“아니, 누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암튼 그쪽 장사 잘되더라. 손님들이 미어터져!”
“그 정도야?”
“응!”
박정자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런데 동생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데 누나! 거기 국밥 그대로던데?”
“뭐? 국밥이 그대로라고?”
“응, 전에 여기서 먹었던 맛 있잖아. 그런데 왜 여긴 그 맛이 안 나지? 레시피 그때 받았다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동생이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박정자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 그러니까, 우리 레시피를 거기서 쓴다, 이 말이지? 그런 거야?”
“그 레시피 누나가 만든 거야? 아줌마가 주고 갔다며.”
“그 아줌마는 뭐, 땅 파서 만들었다니? 우리 가게의 기본 레시피를 참고해서 만든 거지.”
“그럼 우리 거 아니야?”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고.”
“좀 웃기네. 남의 영업 비밀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었던 거네. 그 아줌마 그리 안 봤는데……. 재미있어!”
박정자는 잔뜩 뿔이 나 있었다.
“야, 거기 어디라고 했어?”
“왜? 가서 한바탕 하게?”
“못할 것도 없지.”
“아이고, 그러지 마. 같은 동네 사람끼리 얼굴 붉히지 마.”
“같은 동네 사람이고 나발이고, 내가 그 가게 때문에 망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어야 해?”
“어휴, 맘대로 하쇼. 맘대로!”
“그보다 장소가 어디야?”
박정자가 물었다. 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저기 위로 올라가면 화성사거리 알지?”
“그래.”
“그쪽에 있어. 그쪽에!”
“화성사거리라고? 알았어.”
박정자는 뭔가 잔뜩 결심을 한 듯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동생을 보며 말했다.
“야! 너 나 대신 가게 좀 봐.”
“뭐?”
“가게 좀 보라고!”
박정자가 눈을 부라리자 동생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래서 안 오려고 했는데.”
남자는 그리 말하면서 테이블로 가서 털썩 앉았다.
“빨리 와! 나 약속 있어.”
박정자가 씩씩거리며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시각, 오상진과 한소희는 차지애와 식사를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왔다. 차지애와 함께하는 식사자리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파스타가 너무나도 느끼했다는 것이었다.
한소희도 요즘 입맛이 바뀌었는지 국밥집을 보곤 입맛을 쩝쩝 다셨다.
“상진 씨, 많이 느끼하지 않았어요?”
“저는 괜찮았습니다.”
“칫, 거짓말! 내가 느끼했는데 상진 씨가 안 느끼했다고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아, 소희 씨는 느끼했어요?”
“네, 거기 맛있다고 해서 갔는데 무슨 파스타를 그렇게 느끼하게 조리했는지 모르겠어요.”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죠. 진짜 맛있는 음식인데 내 입맛이 너무 촌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색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러자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에이, 저는 상진 씨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먹어서 진짜 맛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맛있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는데요. 아마 지애 언니도 상진 씨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먹었을걸요?”
“아, 그럼 내가 잘못한 건가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소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너무 블로그를 믿었던 거죠. 그보다 우리 어머니 가게 들러서 국밥 한 그릇 먹고 가면 안 돼요?”
“국밥요? 들어갈 배가 있어요?”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아니, 갑자기 국밥 냄새를 맡으니까. 입에 침이 고이는 거 있죠. 시원한 국밥 국물 한 술만 떠도 느끼했던 속이 확 풀릴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오상진은 다르게 생각했다.
‘우리 소희 씨가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오상진은 잔잔한 미소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소희 씨. 굳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 우리 어머니 충분히 소희 씨, 좋아해요.”
한소희가 살짝 놀라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어? 나 진짜 국밥 먹고 싶어서 그런 건데.”
“어, 그래요?”
그러자 한소희가 오상진에게 바짝 붙었다. 눈까지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물었다.
“정말 어머니께서 저 좋다고 했어요?”
“그럼요. 요새는 어머니께서 소희 씨랑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도 묻고 그래요.”
“나, 어머니한테 열심히 점수 잘 따고 있나?”
한소희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오상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무튼 국밥 먹으러 가요. 저 진짜 속이 느끼해서 못 참겠어요.”
“알았어요. 가요.”
오상진과 한소희는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최말숙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 어서 와. 상진이 오랜만이다.”
“네. 이모.”
다행히 저녁 시간이 지나서인지 몇 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한소희는 주방에 있는 신순애를 향해 소리쳤다.
“어머니, 저 왔어요.”
최말숙이 한소희를 봤다.
“소희 씨도 어서 와요.”
“네. 이모.”
잠시 후 주방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고 나온 신순애가 한소희를 봤다.
“어, 왔니.”
“네, 어머니.”
한소희가 쪼르르 신순애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왔어?”
“상진 씨랑 데이트하다가 배가 고파서요.”
“그럼 맛있는 거 먹지.”
“에이, 어머니가 해주시는 국밥이 제일 맛있어요.”
“어머, 얘는…….”
“헤헤헤.”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 예쁜 말을 하는 한소희가 신순애는 싫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금방 내올게.”
“네. 어머니.”
오상진과 한소희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말숙이 물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둘이 재미난 곳에서 데이트하지, 왜 여길 왔어.”
“충분히 했어요.”
최말숙이 피식 웃으며 쟁반을 가지고 갔다. 오상진이 한소희를 보며 물었다.
“한 그릇 다 먹을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한 그릇 가지고 나눠 먹을 수는 없잖아요.”
“왜 못 먹어요. 우리 엄마 가게인데.”
“에이, 어머니 가게니까 더 그럴 수 없는 거죠. 그보다 내가 다 못 먹으면 상진 씨가 좀 먹어줘요.”
“하아, 배부른데…….”
오상진의 자신의 배를 만졌다. 그러자 한소희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그래서 싫다는 거예요?”
“서, 설마요. 여자 친구가 우리 엄마에게 잘 보이겠다고 노력하는데 열심히 먹어야죠. 배가 터지더라도 먹겠습니다.”
한소희가 금세 환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남자 친구가 최고라니까.”
오상진 역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둘이 그렇게 알콩달콩하고 있는 사이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여자가 뛰어 들어왔다.
“흥!”
최말숙이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
최말숙의 눈이 크게 떠지며 표정이 굳어졌다. 식당 문을 열고 나타난 여자는 다름 아닌 박정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