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31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23)
“아, 그러셨구나.”
오상진이 살짝 민망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짓던 차지애가 가방과 서류를 챙겼다.
“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끝났어요. 두 사람 이제 천천히 데이트 즐기세요.”
차지애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상진이 바로 그녀를 붙잡았다.
“차 변호사님. 그러지 마시고,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들과 식사라도 하시죠.”
한소희도 곧바로 나섰다.
“그래요, 언니. 우리랑 저녁 같이 먹어요.”
“음, 실례가 안 되면 그럴까요?”
차지애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30.
같은 시각,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예전 신순애가 근무했던 왕국밥집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요새 불경기인가? 왜 이렇게 장사가 안되는 거야.”
박정자는 살짝 짜증이 난 얼굴로 밖을 바라봤다. 날씨가 춥지만 제법 사람들은 다니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왜 이래?”
박정자가 이번에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다. 저 멀리서 회사원으로 보이는 10명가량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 손님이다.”
박정자는 직감적으로 밥 먹으러 오는 손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문을 활짝 열어놓곤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힐끔 왕국밥집을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건너편 곱창집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어머,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열 명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곱창집 사장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고는 건너편에 황당한 얼굴로 서 있던 박정자를 보며 비웃듯 씨익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뭐, 뭐야? 저놈의 여편네가!”
박정자는 당장에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덤벼들 태세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콧김만 잔뜩 뿜어대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 집은 무슨 마약이라도 파나? 왜 저렇게 사람들이 붐벼? 젠장, 맛대가리도 없는 곱창이 뭐가 좋다고…….”
박정자는 건너편 곱창집을 향해 투덜거렸다. 가게 안에 있던 주방 아주머니가 나왔다.
“사장님, 문 열어놓고 뭐 하세요?”
“하도 손님이 안 와서 문 열어 놨어요.”
“에이, 그런다고 손님이 들어와요? 문 닫으세요. 추워요.”
순간 박정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실 이 아주머니는 예전 신지애나 최말숙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할 말 다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내가 저 여편네를 그냥…….”
그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정 씨마저 없으면 진짜 힘들지. 암, 힘들고말고.”
박정자는 애써 화를 눌렀다. 조금 눈치가 없더라도 지금은 데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는 정 씨는 왜 나왔어요? 주방 정리는 다 했어요?”
“정리할 거라도 있어요? 설거지는 진즉에 다 끝났고. 손님이 있어야 뭐라도 하죠. 봐요, 가게 손님은 파리밖에 없잖아요.”
그러자 박정자가 참지 못하고 버럭 했다.
“이봐요, 정 씨. 지금 사장을 앞에 두고 뭐라고 하는 거예요.”
“에이, 내 입 가지고 말도 못 하나요.”
“으구구…… 내가 말을 말지. 말을 말아.”
박정자는 투덜거리며 문을 닫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정 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원래 저희 가게 이렇게 사람이 없었어요?”
“무슨 소리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었다고.”
“그러니까요. 나도 아는 언니에게 듣기로는 여기 장사 잘된다고 해서 왔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정 씨의 물음에 박정자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종업원이 정씨가 사장에게 ‘왜 이렇게 장사가 안돼요’라고 묻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쓰잘데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주방에 들어가서 일이나 해요.”
“네네, 알겠어요.”
정씨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박정자가 투덜거렸다.
“정 씨를 빨리 자르든지 해야지……. 내가 제 명에 못 살겠어.”
박정자가 고개를 홱 돌리는데 저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지나갔다. 박정자가 문을 열고 후다닥 뛰어나갔다.
“김 사장님.”
“어어, 박 사장. 장사 잘되지?”
“지금 보시면 몰라요? 파리만 날리고 있잖아요.”
“요새 불경기라 그래.”
“불경기요? 건너편은 불경기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하잖아요. 그런데 어디 가세요?”
“우리 상가번영회 모임이 있어서.”
“번영회 모임요? 그런데 왜 우리 식당에서 안 해요?”
“아이고, 난 하고 싶었는데 너무 여기서만 한다고 해서,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했어.”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가게 장사가 안 되는데, 번영회 입장에서 우리 가게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너무하네.”
“미안해, 미안해. 다음에는 박 사장 가게에서 할게.”
김 사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박 사장이 바로 붙잡았다.
“잠깐, 김 사장님.”
“왜?”
“번영회 모임은 그렇다고 치고, 김 사장님 요새 발길이 왜 이렇게 뜸해요. 언제는 우리 국밥 이틀에 한 번이라도 먹지 않으면 큰일 난다면서요.”
“허허, 내가 그랬었나?”
김 사장은 헛기침을 하며 모르는 척했다.
“웃기셔! 작년까지만 해도 뭐, 쉬는 날도 없이 얼굴도장 찍는 듯 드나들었으면서. 왜? 국밥이 질렸어요?”
“아니, 국밥이 질린 것은 아니고…….”
“그럼 어디 딴 곳에서 드세요?”
“어? 으응, 그게……. 우리 집 근처에 국밥집이 하나 생겼어. 그리고 여긴 좀 머니까.”
김 사장은 박정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정자는 곧장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기가 우리 집 국밥보다 맛있어요?”
“에이, 국밥 맛이 다 비슷비슷하지.”
김 사장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무튼 다음에 가게에 들르겠네. 내가 지금 시간이 늦어서 말이야.”
말을 마친 김 사장은 또 붙잡힐세라 후다닥 뛰어갔다. 그러다가 문제의 그 곱창집으로 쏙 들어갔다.
“뭐야? 약속 장소가 저 곱창집이었어? 으구, 저놈의 곱창 여편네……. 조만간 내가 아작을 내든지 해야지. 그보다 국밥 맛이 다 비슷비슷해? 웃기셔! 언제는 국밥은 왕국밥이라고 난리 치던 양반이 왜 저런 소리를 하지?”
박정자가 고개를 홱 돌려 김 사장이 걸어왔던 곳을 바라봤다.
“가만, 국밥집이 새로 생겼다고?”
박정자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어. 한번 알아봐야겠어.”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편, 신순애 국밥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모, 여기 깍두기 더 주세요.”
“네네.”
“아줌마, 소주 한 병요.”
“네. 곧 가져다 드릴게요.”
최말숙 혼자서 홀 서빙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신순애는 주방에서 열심히 국밥을 말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네, 어서 오세요.”
손님은 꽉 찬 국밥집 내부를 보며 말했다.
“자리 없어요?”
“자리요? 잠시만요.”
최말숙이 자리를 쭉 확인하더니 말했다.
“아, 저쪽 손님 거의 다 드셨거든요. 곧 빠질 것 같은데…….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어디 잠시 갔다 오시면 자리 빠지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가게 나가셔서 왼쪽으로 가시면 흡연 장소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손님은 한두 번 가게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듯 흡연 장소로 향했다. 최말숙은 곧장 주방으로 갔다.
“언니 또 손님이 오셨어.”
“아, 그래? 자리는 있어?”
“아니, 없지. 다행히 단골손님이라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기다린다고 했어.”
“그래? 감사하네.”
“그런데 언니 오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손님이 많으면 좋지.”
신순애가 웃었다. 최말숙도 그리 싫지는 않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손님이 많아도 적당히 많아야지. 이건 너무 쉴 새 없이 들어오니까 정신없어 죽겠어요.”
“조금만 참아. 지애가 곧 올라온다니까. 조금만 참아.”
신순애가 투덜거리는 최말숙을 달랬다.
“언니, 지애도 지애지만 언제까지 지애가 우리 식당 일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이참에 직원 한 명 더 뽑아요.”
“직원을?”
신순애는 주방에만 있어서 그런지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 줄 몰랐다.
“나도 그렇고 싶은데……, 말숙아,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없겠니? 언제까지 이렇게 잘 된다는 보장도 없잖아.”
“언니! 이게 말이야. 단순히 개업발이 아니라니까.”
“알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신순애는 솔직히 불안했다. 언제 손님이 줄어들지도 모르고, 그때 장사가 안된다고 자를 수도 없었다.
“언니, 아니라니까. 나 말고 직원 두 명은 더 써도 돼!”
“나도 아는데 괜히 직원 썼다가 장사 안되면 그만두게 하기도 그렇고 좀 그렇잖아.”
“알았어요, 알았어! 아무튼 우리 언니는 참……. 못 말린다니까.”
최말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홀에서 손님이 소리쳤다.
“여기 계산이요.”
“네!”
최말숙이 계산대로 가서 말했다.
“국밥 두 그릇에 수육 소(小) 자 하나죠?”
“네.”
“3만 원입니다.”
손님은 카드를 내밀었다. 곧바로 결제한 후 카드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사이 신순애는 국밥을 말고 있었다. 먼저 국밥 그릇에 수렴을 통해 밥에 국물이 스며들게 했다. 그렇게 국밥을 담은 후 위에 잘게 쓴 파를 올렸다.
취향에 따라 테이블에 비치된 들깻가루나, 양념장을 넣고 먹으면 되었다.
“말숙아, 국밥 나왔다.”
“네, 언니.”
최말숙이 곧장 받아서 손님에게 내주었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맛있게 드세요.”
“네.”
신순애가 주방에서 작은 창을 통해 홀을 바라봤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꽉 찼다.
“하아, 이렇게 잘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신순애는 솔직히 개업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막말로 국밥은 호불호가 갈렸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요새 젊은 사람들은 딱히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국밥은 어른들이 먹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신순애 국밥집은 홀에 젊은 사람이 반 정도 되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단 말이야. 우리 국밥집에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단 말이지.”
신순애는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왕국밥집에서 일할 때도 이렇듯 젊은 사람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간혹가다가 한두 테이블이 전부였다.
신순애가 주방에서 나왔다. 젊은 사람들 테이블로 가서 물었다.
“혹시 입맛에 맞으세요?”
“네, 엄청 맛있어요. 저 원래 국밥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우연히 들어와 먹어보고 반했어요.”
그러자 앞에 앉은 친구가 바로 말했다.
“그렇지? 해장에도 최고지?”
“맞아, 속 풀 때 완전 짱이야. 간혹 집에 있을 때도 생각나고 그래요.”
“그 정도예요?”
“네, 진짜 맛있어요.”
엄지손가락까지 올리며 말했다. 신순애는 기분이 좋은지 피식 웃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들어왔다.
“네,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