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9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21)
“매일 밤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래요?”
최지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몰랐다.
“사실 목요일까지 대민지원 나가느라 이번 주에 외박을 못 나올 뻔했거든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렇듯 나왔네요.”
“하느님께서 우리 둘의 만남을 축복해서 그러시나?”
“앗! 진짜 그런 걸까요?”
초반에 만난 두 사람의 풋풋함에 택시기사가 슬쩍 말했다.
“두 분 보기 좋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남자 친구분은 군인인데, 휴가 나온 겁니까?”
“아니요, 휴가는 아니고 외박입니다.”
“아, 외박……. 좋을 때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최강철 이병이 크게 웃고 최지현은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최강철 이병은 평소에 들었다면 기분이 별로였을 저런 말도 오늘은 그리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우리 뭐할래요?”
“저, 시간 많습니다.”
“그럼 영화부터 볼까요?”
“영화 좋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그럼 그렇게 해요.”
두 사람은 택시에서 내려 곧바로 영화관을 찾아 들어갔다.
“어? 군인이 영화 보러 왔네.”
“진짜네! 이야…….”
최강철 이병은 자신이 입은 군복을 살폈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렇다 보니 괜히 최지현에게 미안해졌다.
“혼자 왔나?”
“에이, 군인이 영화 보러 혼자 왔겠어?”
“그런데 왜 혼자 앉아 있잖아.”
“어디 갔겠지.”
그때 최지현이 나타났다.
“강철 씨.”
“아, 네에…….”
최강철 이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지현의 손에는 팝콘과 음료수가 들려 있었다.
“와, 대박! 여자 친구 있었네.”
“내가 그랬잖아. 군인은 절대 혼자 영화 보러 안 온다고.”
“그런데 솔직히 여자 친구 진짜 예쁘다. 연예인이야?”
“뭐?”
“아니, 자기도 봤잖아. 진짜 예쁘지 않아?”
“…….”
그런데 여자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제야 힐끔 옆에 앉은 여자 친구를 봤다. 여자 친구가 눈을 부라리며 팔짱을 낀 채 쳐다보고 있었다.
“왜에?”
“자기, 저 여자가 예뻐! 내가 예뻐!”
“하하, 하하하……. 다, 당연히 자기지.”
“흥!”
그렇게 최지현 때문에 괜히 몇몇 커플의 사소한 다툼이 시작됐다.
한편, 최강철 이병은 자신의 군복차림과 그 때문에 쏠리는 시선에 최지현이 부담스러워 할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미안해요. 외박이라 군복을 입고 있어서…….”
“괜찮아요. 전 신경 안 써요. 보라고 해요, 멋진 군인 남친 보여 주는 건데요.”
최지현이 배시시 웃었다. 최강철 이병 역시도 미소를 지었다.
‘나, 남친이라고 했다.’
오히려 최강철 이병은 다른 것에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최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화장실 좀…….”
“아, 네에. 다녀오세요.”
최강철 이병이 바로 말했다. 최지현이 눈웃음을 지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다녀올게요.”
“네.”
최지현이 여자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세면대 앞 거울에 섰다.
“화장 안 떴나?”
가방에서 파우더를 꺼내 얼굴에 툭툭 두드렸다. 그런데 구두 소리가 들리며 최지현의 옆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최지현은 본능적으로 힐끔 옆의 사람을 봤다. 그런데 최지현의 눈이 확 하고 돌아갔다.
‘어? 무슨 여자가 저리 예뻐?’
최지현 본인도 스스로가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선 여자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예뻤다. 옷도 청순하게 입었는데 어딘지 모를 섹시함을 풍기고 있었다.
그 여자는 손을 씻고, 세면대 앞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다가 거울을 통해 서로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러자 최지현과 그 여자는 서로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는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의식하지 않은 채 화장실을 나왔다.
한편, 그 시각 오상진도 영화관에 왔다. 한소희가 화장실을 간 사이 오상진은 영화표와 팝콘, 음료수를 사서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익숙한 군복이 보였다.
“어? 저 군복은 우리 부대 군복인데…….”
오상진이 가까이 다가가자 최강철 이병인 것을 알았다. 오상진은 영화관에서 만나는 것이 반갑기도 하면서도 좀 이상했다.
“강철아.”
최강철 이병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오상진이 턱 하니 서 있었다.
“어? 소, 소대장님…….”
최강철 이병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이 올라가 거수경례를 했다.
“추, 충성.”
“야, 됐어! 밖에서 무슨 경례야.”
“그런데 소대장님께서는 어쩐 일이십니까?”
“영화관에 영화 보러 오지 뭐하러 왔겠냐.”
“아, 그렇지 말입니다.”
“그러는 너는 어떻게 왔어?”
“아, 저도 영화 보러 왔습니다.”
“그래?”
오상진과 최강철 이병이 대화하고 있는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철 씨!”
최지현이었다. 오상진과 최강철 이병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최지현이 환한 미소로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본 최강철 이병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소대장님, 제 여자 친구입니다.”
최강철 이병은 당당하게 최지현을 소개했다. 오상진이 최지현을 봤다.
‘어? 예쁘네.’
최지현이 다가와 최강철 이병 옆에 섰다.
“강철 씨, 이분은 누구세요?”
“지현 씨, 인사하세요. 저희 부대 소대장님이십니다.”
오상진이 바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상진입니다.”
“아, 네에. 안녕하세요. 최지현이에요.”
“엄청 미인이시네요. 우리 강철이 좋겠어요.”
뒤늦게 한소희도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상진 씨!”
그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최강철 이병이 깜짝 놀라고, 최지현은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헐, 우리 소대장님 여자 친구분? 엄청 예쁘시다.’
‘어멋, 아까 화장실에서…….’
한소희가 오상진 옆으로 다가왔다.
“아는 분이에요?”
“여기는 우리 소대 최강철 일병. 그리고 그 옆에 분은 여자 친구분요.”
“아, 그러시구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최지현이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화장실에서 살짝 어색하게 마주쳤다가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더욱 어색했다.
“강철아, 너희 영화 뭐 보니?”
“네, 저희는 내 머릿속 지우개를 볼 생각입니다.”
“오호, 그거 재미있지.”
“소대장님께서는?”
“우린 오페라 하우스의 유령.”
“아……. 저희도 그거 보고 싶었는데.”
최강철 이병의 표정이 환해졌다. 오상진 커플과 같은 영화를 보지 않아서였다. 아무래도 같이 보면 껄끄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소희가 오상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상진 씨, 우리 시간 다 되었어요.”
“어, 그래요?”
오상진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최강철 이병에게 말했다.
“우리 영화 시간 다 되어서 간다. 재미있게 봐라.”
“네, 소대장님도 재미있게 보십시오.”
“그래.”
오상진 손을 흔들며 갔다.
“우리 몇 관이에요?”
“2관요.”
오상진과 한소희가 팔짱을 끼며 나란히 2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지현이 물었다.
“강철 씨, 우리는 몇 시에요?”
“아, 저희도 지금 들어가야 해요.”
“아, 그래요? 가요.”
“네.”
최강철 이병과 최지현도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그러다가 최지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소대장님이 되게 젊으시네요.”
“소대장은 육사를 졸업해서 바로 입관해 소대장을 하시는 겁니다. 내가 알기로는 올해 나이가 이제 스물다섯 되십니다.”
최지현이 웃으며 말했다.
“어? 그래요? 그런데 소대장님 여자 친구분 엄청 미인이지 않나요?”
“에이, 제 눈에는 지현 씨가 훨씬 예쁩니다.”
“어머, 그래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최강철의 대답에 최지현의 입가엔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한편, 오상진과 한소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소희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까 그 군인 말이에요.”
“네.”
“혹시 전에 말했던 국회의원…….”
“오, 맞아요. 그 친구예요. 우리 소희씨 기억력 좋네요.”
“아, 그래서 여자 친구분이 예쁘시구나.”
한소희의 중얼거림을 들은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네? 뭐라고요?”
“그분 여자 친구분요. 예쁘잖아요.”
한소희의 눈이 반짝이며 물었다. 오상진은 짐짓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저는 제대로 못 봤어요.”
“제대로 못 봤어요? 아까 한참을 뚫어지라 보는 것 같던데.”
“아닙니다. 소희 씨가 착각한 겁니다. 어떤 남자가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두고 한눈을 팔겠습니까? 전 절대로 한눈팔지 않아요.”
“칫, 뭐예요. 이런 것만 늘고……. 능구렁이 다 됐어!”
그러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팔짱을 쓰윽 꼈다. 그에 오상진이 한소희의 손을 잡았다. 그 상태로 기분 좋게 영화를 봤다.
28.
영화가 끝나고, 오상진과 한소희는 기분 좋게 근처 카페로 향했다. 간단하게 차를 시키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차지애 변호사였다.
“소희 씨, 저 전화 좀 받아도 괜찮을까요?”
“네, 그럼요.”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짧게 양해를 구하곤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오상진입니다.”
-오 사장님, 저 차지애예요.
“아, 네. 변호사님.”
그 소리에 한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지애 언니예요?”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상진은 대답을 한 후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갔다.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해요?
“네. 말씀하세요.”
-부탁하셨던 일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서 한번 찾아뵙고 정확하게 사정을 얘기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언제 시간이 되세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은데.
“언제요?”
한소희가 앞에서 작게 말했다.
“그냥 조금 이따가 보자고 그래요.”
“그럴까요?”
“네.”
오상진이 잠깐 한소희와 대화를 하고는 차지애에게 말했다.
“저희는 오늘 괜찮은데 차 변호사님은 어떻습니까?”
-네? 저희요?
“아, 지금 소희 씨랑 같이 있어요.”
-아, 그렇구나. 제가 혹시 두 분 데이트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야 아직 만날 날이 엄청 많이 있는데요.”
-그럼 제가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혹시 어디서 보는 것이 좋을까요? 아는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그리로 갈게요.
“그럼 제가 이쪽으로 주소 보내드릴게요. 그쪽으로 오세요.”
-네, 알겠어요. 그럼 데이트 잘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휴대폰을 끊었다. 한소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지애 언니가 뭐래요? 이모부님 건 때문에 그래요?”
“네. 거의 일이 마무리된 것 같아요.”
“으음, 그렇구나. 그럼 가요. 우리 아지트로요!”
“벌써요? 우리 데이트는요?”
오상진은 한소희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한소희는 배시시 웃으며 수줍게 말했다.
“전 상진 씨랑 이렇게 데이트하는 것도 재미가 있는데,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 건물 잘되는 거 보는 것도 기분 좋고요.”
“그래요?”
“네. 아무튼 우리 빨리 가요.”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오상진은 그런 한소희를 보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