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427화 (427/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427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9)

김철환 중대장은 대놓고 ‘사단장님께서 날 챙겨 주신다’ 이런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 얘기는 오상진에게 부담이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에게 정치적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상진아, 대대장님 입장도 우리가 이해는 해줘야지. 대대장님도 일단 자기를 건너뛰고 사단으로 넘어간 것이니까. 기분은 나쁠 것 아니야.”

“그렇긴 하죠.”

“그렇다고 대대장님께서 아무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넘어가면 그것 역시도 대대장님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거든. 우리 군인은 그런 거 빼면 시체 아니냐.”

“그런 것이라면 조금 안심이 됩니다.”

“그래, 인마. 안심해.”

“네.”

“그건 그렇고 안수호 이병 소식은 들은 것이 있냐?”

“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통화했는데 괜찮다고 합니다. 며칠만 입원하면 퇴원할 것 같습니다.”

“그래? 누구랑? 박 소위랑?”

“아뇨, 아침에 안수호 이병 부모님께 전화가 왔었습니다.”

“너에게?”

김철환 1중대장이 살짝 놀랐다.

“네.”

안수호 이병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한걸음에 국군수도병원으로 갔다. 2소대장인 박 소위에게 상황을 듣고, 아들도 무사한 것에 감사했다.

그 과정에서 안수호 이병이 오상진의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 무사하다니 잘됐다. 그건 그렇고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또 대민지원을 오라고 하지는 않겠지?”

“여기서 또 부르면 양심도 없는 겁니다.”

“아무튼 너나 나나 팔자에도 없는 대민지원 때문에 고생했다.”

“제가 죄송합니다.”

“죄송은……. 그보다 이주 후에 혹한기 훈련 잡힌 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각 소대장들에게 철저히 준비하라고 일러둬. 알겠지?”

“네.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혹한기 훈련 준비에 대해서 얘기 중이었습니다.”

“알았다. 그럼 다음 주부터 혹한기 훈련 준비에 신경을 쓰도록 해.”

“네.”

오상진은 대답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대장실을 나와 곧장 중대 행정반으로 향했다.

24.

같은 시각 광주시청은 난리가 났다.

조금 전까지 국장실에 있다가 내려온 김한솔 팀장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조 주임 자리를 보며 소리쳤다.

“조 주임 어디 갔어?”

“잠시 자리 비운다고…….”

“제기랄…….”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여직원이 물었다.

“아무튼 내가 그 화상 때문에 미친다, 미쳐!”

“무슨 일이신데요?”

“부시장님께서 시말서 쓰라고 한다.”

“예? 시말서요?”

“그래.”

“아니, 그런 일로 시말서를 쓰라고 합니까.”

“그런 일로 시말서라니, 시말서로 넘어간 것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 지금 의회에서 담당자 처벌하라고 난리인데 부시장님께서 대충 이 정도 막아주셨어. 만약 막아주지 않았다면 저 멀리 시골로 발령이 났거나 옷 벗어야 했어.”

“아, 그 정도예요?”

“기사 댓글 안 봤어? 시가 문제라고, 지금 여기 일하는 모든 공무원 싸잡아서 욕을 먹고 있잖아. 이런 상태인데 누가 좋아하겠어.”

“하긴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내년에 선거잖아. 그렇지 않아도 시장님 연임 준비 중이신데 이걸로 못하게 되셔봐.”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그래도 여기 사람들 표심은 잘 안 바뀌잖아요.”

“표심이 문제가 아니라, 각 당들이 문제지. 여기에 깃발 꽂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우리 시장님뿐이겠어?”

막말로 전(前) 시장이 문제가 되어버리면 후보를 바꿀 수가 있는 문제였다. 연임의 프리미엄은 시장 조사나, 지지율이 좋을 때 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원래 당 규정이었다.

예를 들어 현직 시장이 일을 막장으로 해서 여론이 무척 안 좋다면 당에서는 바로 다른 시장 후보를 내세우게 된다. 그래서 기존 시장 입장에서는 연임이란 건 터무니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의 시장인데 자기 시에서 후보가 갈리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었다.

“제가 조 주임에게 한번 연락해 볼까요?”

“연락은 무슨……. 아무튼 꼴도 보기 싫네. 실수야, 내가 실수한 거야. 괜히 정 때문에 내가 안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는데…….”

김한솔 팀장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25,

조 주임은 밖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곳에 조 주임 말고도 다른 주임이 있었다.

“어이, 조 주임. 어제 한 건 했다며?”

조 주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박 주임, 지금 나 놀려?”

“놀리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문제는 왜 너는 뒤로 넘어졌는데도 코가 깨지지? 그게 의문이다.”

“야이 씨…….”

“농담이야, 농담! 아무튼 훌훌 털고 일 열심히 해. 너 원래 이런 거 잘하잖아.”

“시끄러워, 담배 다 피웠으면 꺼져라.”

“그래. 수고해라.”

박 주임이 낄낄 웃으며 휴게실을 나갔다. 그런데 박 주임의 옆에 있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번에 승진은 박 주임이 하시는 겁니까?”

“야, 인마. 듣겠어.”

박 주임이 일하러 가면서 힐끔 조 주임의 눈치를 살폈다. 조 주임은 담배를 거칠게 빨았다.

“하아, 시발……. 뭐가 이렇게 제대로 안 풀리는지 모르겠네.”

그러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

“왜, 엄마?”

-선자 얘기가 뭐야?

“선자가 왜요?”

선자는 조 주임의 여동생이었다.

-선자가 와서 또 너한테 문제 생겼다는데 이게 뭔 소리야?

“아, 그런 거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선자 걔는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데요.”

-아냐? 정말 아니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네가 아니라면 다행이고. 그건 그렇고……. 마을에 피해 없다냐?

“어디요? 가람마을요?”

-그래.

“엄마는 이제 가람마을에 살지도 않으면서 무슨 마을 걱정이에요.”

-야,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선산이 거기 있는데 신경을 써야지.

“아이고, 엄마! 우리가 뭐, 명절에 제사 지내러 다니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일 들어가 봐야 해요. 끊어요.”

조 주임이 곧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또 무슨 일이 터졌는지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한 창 찾아보던 그때 기사 하나가 또 떠 있었다.

-광주시청의 갑질, 어제오늘이 아니었다.

바로 한국일보의 후속 기사였다. 조 주임은 그 기사를 보고 인상을 팍 썼다.

“아이 씨, 또 뭐야!”

-문제의 공무원은 4년 전에도 주민들에게 향응을 대접받아 징계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일로 인해 민원실로 전보 조치를 내린 적이…….

“아, 젠장……. 대체 누구야? 누가 자꾸 이따위 기사를 쓰고 지랄이야!”

조 주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한국일보로 전화를 걸었다.

“이것들이 내가 참으니까 바보로 아나.”

뚜르르르, 뚜르르르.

-네. 사회부 기자 이가성입니다.

“네. 거기 오설민 기자라고 있죠. 바꿔줘요.”

-실례지만 어디라고 할까요?

“나 광주시청 공무원인데 기사 보고 연락했다고 하면 압니다.”

-네, 잠시만요.

그리고 수화기 너머 작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선배! 전화 왔어요.

-누군데?

-광주시청이라고 하던데요.

-아이씨, 없다고 그래.

이 소리가 다 들리고 있었다. 조 주임은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들이 진짜……. 장난하나.”

조 주임이 잔뜩 뿔이 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조금 전 전화를 받은 이가성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죄송한데요. 지금 통화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조금 전 옆에 있는 소리 다 들었는데 빨리 바꿔요.”

-저기 그게……. 죄송하지만 다음에 전화주세요.

그 말을 하면서 뚝 끊어버렸다. 조 주임은 너무 어이가 없어 휴대폰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허! 이 자식들이 진짜……. 공무원을 뭐로 보고!”

조 주임이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통화 중이라는 연결음이 들렸다.

뚜뚜뚜뚜뚜.

조 주임은 거칠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투덜거렸다.

“아,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하아…… 그냥 이대로 공무원 때려치우고 치킨집이나 할까?”

조 주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을 내뱉었다.

26.

금요일 점심시간.

오상진은 간부식당에서 밥을 먹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러는 사이 휴대폰을 꺼내 한소희와 잠깐 통화를 했다.

-상진 씨!

한소희의 목소리가 매우 밝았다.

“어? 소희 씨, 목소리가 밝네요. 지금 어디예요?”

-어디겠어요. 저희 아지트죠.

“점심은요?”

-아까 친구들 만나서 아점 했어요.

“아, 아점…….”

-네, 상진 씨는요?

“저도 지금 먹고 부대 복귀하는 길입니다.”

-그렇구나.

“그보다 방학인데 취미 생활 하고 그러시지. 아지트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전혀요. 저는 제가 숨 쉬고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요. 그보다 우리 내일 보는 거죠?

“당연하죠.”

-우리 몇 시에 봐요?

“으음, 소희 씨, 편히 있어요. 제가 점심때쯤 데리러 갈게요.”

-점심때쯤이요? 우웅, 난 좀 상진 씨 일찍 보고 싶은데……. 안 될까요?

“안 되긴요. 제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죠. 알겠어요. 제가 내일 일찍 데리러 갈까요?”

-아싸! 내일 꼭 일찍 데리러 와야 해요.

“그래요. 그보다 우리 내일 뭐 할까요? 소희 씨 하고 싶은 거 있어요?

-하고 싶은 거라…… 우리 오랜만에 영화 볼까요?

“영화요?”

오상진은 한소희와 만나면 거의 영화를 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지트에서 빔프로젝터로 보는 것이었고, 영화관에 간 지는 꽤 되었다.

-네. 영화관에서 팝콘 먹으면서 보고 싶어요.

“그러고 싶었어요?”

-꼭 그러고 싶은 것보다는 그냥 평범한 데이트를 하고 싶달까?

“평범한 데이트?”

-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커피숍에 가서 수다도 떨고, 요새 우리 너무 아지트에만 있었던 거 알아요?

순간 오상진이 뜨끔했다.

“하하하…… 돈 아끼고 싶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에요. 상가 일도 있고…….”

-알아요. 그러니 상가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니 우리도 이제 평범한 데이트를 해보자는 거죠.

한소희의 말을 듣고 오상진은 솔직히 미안해졌다.

“알았어요, 소희 씨. 내일은 우리 예전처럼 데이트해요.”

-알겠어요.

그렇게 한소희와의 전화를 마친 오상진은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중대 행정반으로 향했다.

“식사 맛있게들 하셨습니까.”

“네. 맛있게 드셨습니까.”

“네네.”

오상진은 각 소대장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미선 2소대장이 커피를 타면서 물었다.

“1소대장님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때 4소대장이 손을 들었다.

“저요! 저 커피 먹고 싶습니다.”

“아, 그래요…….”

이미선 2소대장이 살짝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를 타주었다.

“여기요.”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대답을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4소대장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은 후 오후 일과를 준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