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6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8)
‘역시 형수님의 밥은 진짜 맛있어.’
오상진은 오랜만의 집밥에 기분이 좋아졌다. 김철환 1중대장도 껄껄 웃었다.
“봐, 상진이 부르니까. 좋지?”
그러자 김선아가 눈치를 췄다.
“당신 아무튼…… 한 번 만 더 그래 봐요.”
“알았어. 야, 상진아. 너도 좀 말해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상진을 불렀다고 하자, 이래저래 두 사람이 대화를 해서 풀은 모양이었다.
“형수님, 한 공기 더 주십시오.”
“그래요.”
김선아가 환하게 웃으며 밥 한 공기를 더 퍼주었다.
“참, 상진 씨는 언제 여자 친구 보여줄 거예요?”
“아, 그러지 않아도 소희 씨가 중대장님하고, 형수님 많이 보고 싶어 해요. 제가 조만간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그래요, 날 한번 잡아봐요. 그래도 우리가 가족 같은 사이인데 얼굴은 한 번은 봐야죠.”
“그럼요.”
그렇게 식사를 다 마치고,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나 상진이랑 잠깐 얘기 좀 할게.”
“알았어요. 차 준비해 줘요?”
“아니, 됐어.”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은 거실로 나갔다. 그사이 김선아는 식탁을 정리했다.
소파에 앉은 김철환 1중대장 옆에 오상진이 앉았다.
“그런데 정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신 겁니까?”
“맞아.”
“또 다른 하실 말씀은 없으시고요.”
“있지. 실은 말이다. 만약에 오시라도 내일 사단 문제에 대해서 말이 나오면 내가 했다고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내가 했다고 해. 그러면 되는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완고하게 말했다. 오상진은 순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대장님…… 제가 한 일을 왜?”
“그냥 그렇게 해. 솔직히 말해서, 그 상황에서 난 도저히 너처럼 못하겠더라. 아마도 대대장님 입장 생각하고, 부대 이미지만 생각했을 거야. 그 틀에 박힌 고정관념 말이야. 당연히 병사를 생각해야 하는데도 말이지.”
“……중대장님.”
오상진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아마 또다시 그 상황이 닥쳐도 너처럼 못했을 거야. 네가 한 말이 다 맞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때 당시에는 너무 위아래가 없는 것은 아닌지. 너무 막 나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어. 그런데 왠지 또 믿음은 가더라. 결국 헬기가 오고 나서 안수호 이병이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내가 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닙니다. 중대장님.”
“만약에 내가 진짜 그렇게 안 되었으면 어쩔 뻔했니. 지금까지 눈 치우고, 오늘까지 못 올 뻔했지.”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너의 판단이 맞았다. 막말로 지금도 창피하고 부끄럽다. 아무튼 그 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넌 모른 척해. 알았지?”
“진짜 안 그러셔도 되는데…….”
“쓰읍, 자식이. 중대장이 말하는데 자꾸 토 달 거야.”
“아닙니다.”
“아무튼 내 말 들어!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진짜 뭔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이야기를 한 후 오상진이 관사로 돌아갔다.
22.
김철환 1중대장은 홀로 베란다에 나갔다. 추운 겨울이지만 지금은 왠지 시원하게 느껴졌다.
“으음…….”
김철환 1중대장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번 일을 통해 김철환 1중대장도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김학래 비서실장과의 통화도 떠올렸다.
부대로 복귀하기 전 차량에 탑승하려고 할 때 김철환 1중대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충성대대 1중대장 김철환 대위입니다.”
-1중대장, 사단 비서실장이네.
김철환 1중대장이 깜짝 놀랐다.
“추, 충성.”
-고생 많았지?
“아, 아닙니다.”
-사실 자네에게 따로 전화한 이유가 있네. 불편하겠지만 들어줬으면 좋겠군.
“마, 말씀하십시오.”
-이번 일은 자네가 책임을 졌으면 좋겠군.
“다, 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 오상진 중위에게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네. 이 생각은 나 또한 그렇고, 사단장님의 생각도 그러하네.
“사, 사단장님께서 말입니까?”
-그렇다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물론 한종태 대대장이 오상진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김철환 1중대장의 지시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대신에 사단장님이 김 대위, 잘 지켜봐 주실 거네.
“사, 사단장님께서 절 지켜봐 주신다고 말입니까?”
-그렇다네. 사단장님께서 자넬 아주 좋게 보고 계셔. 그러니 이 이후에 일어나는 불이익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자네만 믿고 이만 끊겠네. 조만간에 한번 보세.
“네. 충성.”
김철환 1중대장은 김학래 비서실장과 통화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아…… 아무렴 내가 상진이에게 그 책임을 물을까. 그보다 사단장님께서 날…….”
김철환 1중대장은 이 부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사단장님이 뒤를 봐주신다는 내용이지 않은가.
“……이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네.”
김철환 1중대장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약 20여 분 동안 밖에 있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김선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 베란다에서 뭐 했어요?”
“그냥 눈이 와서…….”
“당신 솔직하게 말해봐요. 담배 핀 것은 아니고요?”
“담배? 담배는 무슨…….”
“담배 핀 것 같은데…….”
김선아가 의심의 눈초리를 짓자 김철환 1중대장의 눈빛이 짓궂게 변했다.
“안 폈어! 좋아. 자, 맡아봐. 아니면 뽀뽀라도 해볼래?”
“무, 무슨 짓이에요.”
“아니, 담배 안 핀 거 확인받고 싶으니까.”
“됐어요. 저리 가요.”
“에이, 왜 그래. 오랜만에 뽀뽀 한번 하자.”
“징그러워요.”
김철환 1중대장이 김선아에게 달려들었다. 김선아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침대 쪽으로 넘어졌다.
23.
다음 날 오상진은 중대 행정반으로 출근을 했다. 대민지원이 끝나서인지 각 소대장들의 표정은 다들 좋아 보였다.
“와, 대민지원 안 가서 너무 좋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진짜. 눈이라면 학을 뗍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한쪽에 마련된 믹스커피를 들었다. 뜨거운 물을 데워서 커피를 탄 후 오상진에게 건넸다.
“커피 드세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제가 타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한 번쯤은 괜찮잖아요.”
“네, 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다음은 3소대장에게도 커피를 건넸다.
“잘 마시겠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도 커피를 타서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리고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저 이번에 다시 봤어요. 1소대장님.”
“네?”
“정말 멋지게 행동하시던데요.”
“저 말고도 누구나 행동했을 것입니다.”
“에이, 설마요. 1소대장님이니까, 가능한 행동 아니에요?”
“아닙니다. 3소대장도, 4소대장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뭐, 아무튼 전 다시 봤어요.”
이미선 2소대장이 방긋 웃었다. 오상진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창가 쪽을 바라봤다. 3소대장도 창가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런데 지금 눈이 또 오는데, 설마 대민지원 요청 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죠?”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양심이 있다면…….”
오상진이 그 소리를 듣고 한마디 했다.
“이제 대민지원 요청이 들어와도 나갈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잊으셨습니까? 저희 2주 후면 혹한기 훈련입니다.”
“아, 맞다. 혹한기의 시간이 다가왔구나.”
3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선 2소대장도 달력을 확인했다.
“혹한기 훈련이군요. 뭐 뭐 준비하면 될까요?”
이미선 2소대장이 질문을 하고 있는데 행정반 문이 열리며 4소대장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말입니까?”
“왜요? 우리 또 대민지원 갑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4소대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뇨, 그것보다 더 한 일이 터졌어요.”
“무슨 일입니까? 속 시원하게 말씀해 보십시오.”
“저희 중대장님 징계 먹었습니다.”
“네?”
오상진이 화들짝 놀랐다. 다른 소대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왜 우리 중대장님께서 징계를 먹습니까?”
3소대장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자 4소대장이 알아온 소식을 전했다.
“일단 3중대장은 당연히 징계를 먹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우리 중대장님은 총 책임자로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징계입니다.”
“징계 수위는 어떻게 됩니까?”
“3중대장 감봉 3개월. 우리 중대장님 감봉 2개월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소대장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행정반을 나갔다. 곧장 중대장실로 갔다.
똑똑똑!
“들어와.”
오상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왔냐?”
“중대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중대장님께서 징계를 받으십니까?”
“됐어, 인마!”
“혹시 진짜 저 때문입니까? 그래서 어제…….”
“어허, 1소대장. 어제 중대장이 한 말 못 들었나. 자넨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중대장인 내가 다 책임진다고 말이야. 하긴 책임지는 게 맞지. 총 책임자로서 본분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제가 다시 가서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야, 인마. 오버하지 말고 앉아!”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오상진은 일단 소파에 앉았다.
“인마, 괜찮아. 너 덕분에 내가 점수 딴 것이 한두 개냐. 이번 일로 잃은 것은 별로 없어. 고작 감봉 2개월인 것을 이건 책임자로서 지는 거야. 별로 티도 않나.”
“그럼 제가 다이렉트로 사단과 연락 취한 것은 문제 삼지 않는 겁니까?”
“그런 문제가 없지 않지. 그래도 그런 걸로 징계를 내릴 수는 없잖아. 대대장님 입장에서는 말이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사고가 생긴 것은 총책임자인 내가 짊어져야지. 게다가 내가 어디 징계 한두 번 먹냐.”
김철환 1중대장의 말에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다니까.”
“그래도 형수님께서 아시면은…….”
“너희 형수에게는 진즉에 말했지.”
“형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잘했다고 하더라. 중대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말이지. 그러려고 중대장 하는 거라고……. 그러고 보면 너희 형수가 진짜 중대장감인데 말이야.”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오상진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김철환 1중대장은 징계를 받은 것치고는 표정이 매우 밝았다.
“뭡니까? 왜 그렇게 표정이 밝습니까? 아니면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철환 1중대장이 미소를 띄웠다.
“사실 말이야. 사단에서 미리 연락이 왔다.”
“네? 사단에서 말입니까?”
“그래. 혹시 징계를 받더라도 그러려니 하라고 말이야. 그리고 별도로 사단에서는 잘 판단했다는 칭찬도 받았다. 그거면 된 거 아니냐.”
“그, 그렇…… 습니까? 그래서 징계를 받았는데도 기분이 좋으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