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5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7)
“인마, 나도 농담이야.”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기는…… 방금 너 쫄은 거 다 봤거든.”
“아닙니다!”
“아니긴…….”
그 모습을 후임병이 지켜봤다. 막말로 눈 치울 때는 서로 말 걸기도 귀찮아하던 두 고참이 부대 복귀를 하면서 웃고 떠드는 모습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최강철 이병이 자꾸만 하늘을 힐끔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이해진 상병이 물었다.
“강철아, 왜 자꾸 하늘을 봐?”
“또 눈이 오는 것은 아닌지 해서 말입니다.”
“야이 씨! 재수 없는 소리 할래.”
“죄송합니다. 진짜 눈 안 내리겠지 말입니다.”
“안 내려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네.”
그때 이은호 이병이 해맑은 목소리로 한마디 툭 던졌다.
“어? 눈이다.”
“뭐? 진짜 눈 와?”
“네? 눈이라고 하셨습니까?”
부대 복귀한다는 생각에 기분 좋았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 시X! 진짜 도대체 우리에게 왜 그럽니까?”
“정말 이러기입니까? 이 정도 눈 내렸으면 됐지 않습니까!”
김일도 병장과 김우진 상병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얼마 후 1소대원들이 탄 육공트럭 안에선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20.
해는 어느덧 넘어가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김철환 1중대장은 깊은 잠에 빠졌는지 코를 커다랗게 골고 있었다.
드르르릉, 푸핫. 드르르르릉, 푸핫.
김철환 1중대장의 코골이는 정말 대단했다. 오상진은 코골이를 익히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운전병은 처음이기에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저기, 오 중위님.”
“왜?”
“중대장님 깨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많이 시끄러워?”
“아니, 그건 아니고 말입니다.”
“오죽 피곤하시면 그러겠냐. 중대장님 안 깨게 차 살살 몰아줘.”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길이 얼어서 빨리 못 달립니다.”
“차 안 빠지게 조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한창 가는 길에 오상진은 뭔가 생각이 났는지 휴대폰을 꺼내 한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소희 씨, 저 지금 부대 복귀해요.
오상진이 뒤척이자, 김철환 1중대장의 머리가 창가 쪽으로 향했다. 잠시 멈췄던 코골이가 다시 들려왔다.
드르르릉, 푸핫. 드르르릉 푸핫.
김철환 1중대장은 본격적으로 잠을 청했다. 운전병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사이 한소희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정말요? 이제 복귀하는 거예요?
-네.
-다행이다. 오늘 피곤할 텐데 푹 쉬세요.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아도 돼요.
-알겠어요.
-이제 대민지원 끝이에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마 부대에 사정이 있어서 바로 대민지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번 주에 꼭 만나요, 우리.
-그래요.
오상진은 한소희와 문자를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그때 박은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이이잉!
“어? 은지 씨!”
-어떻게 됐어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안수호 이병 사단 헬기 타고 수도병원으로 갔어요.”
-국군병원이요?
“네.”
-그럼 국군병원 가면 그 병사 만날 수 있겠네요.
“아마도요. 인터뷰하시게요?”
-네, 직접 듣고 싶어서요.
“으음, 인터뷰를 허락해 줄지 모르겠네요.”
-그건 저한테 맡기세요. 혹시 윗분 중에 아는 사람 계시면 제 이름 좀 잘 말씀해 주세요. 제가 부대에 피해가지 않게 기사 잘 뽑아 드릴게요.
“은지 씨가 그리해 주시면 감사하죠. 알겠습니다.”
-그래요, 상진 씨. 다음에 봐요.
“네.”
오상진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김학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후우…….”
통화를 하기 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따르르릉.
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바로 받았다.
-오 주위인가?
“충성, 그렇습니다.”
-다친 병사는 국군병원에 잘 입원 시켰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보다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기사 말입니다.”
-그래, 기사가 왜?
“그 기사를 썼던 기자가 후속 기사를 쓰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혹시 가능하겠습니까?”
오상진이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으음…… 글쎄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
“네. 확실히 믿을 만합니다. 사실 저에게 전화를 해서 취재를 허락해 주면 최대한 사단에 피해를 주지 않고, 훈훈하게 마무리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음, 그렇지 않아도 그 기자가 쓴 기사를 쭉 훑어봤는데 괜찮은 기자 같기는 했네.
“물론입니다.”
-그래, 그 문제는 내가 사단장의 재가를 받아서 잘 처리해 주겠네. 어차피 기사는 나가야 하고, 가능하면은 첫 기사를 쓴 기자가 후속 기사까지 쓰는 것이 좋겠지.
“네, 감사합니다.”
-알았네. 그럼 조만간 전화하겠네.
“네. 수고하십시오. 충성.”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한시름 놓았다.
“후우, 다행이네. 은지 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사이 육공트럭은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오상진은 부대를 떠난 지 고작 1박 2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오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이번 대민지원은 힘들었고, 또한 피곤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중대장을 흔들어 깨웠다.
“중대장님 도착했습니다.”
“으응? 도착했어?”
“네.”
“벌써?”
김철환 1중대장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차창 밖을 봤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진짜야? 왜 안 보여?”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와, 잠이 안 깨진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사이 오상진의 눈에 저 멀리 충성대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21.
찰칵!
오상진이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소희 씨, 저 방금 씻고 나왔어요.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이 한소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우리 남친 고생했어요.
“후후후, 고생은요.”
-고생했죠. 추운 겨울날 그것도 눈 치우고 왔는데.
“어르신들께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보다 소희 씨는 뭐 하고 있었어요?”
-우움, 우리 남친 생각?
“진짜요?”
-그럼요. 너무 보고 싶었는데요. 지금도 막 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어요.
“오세요. 오면 되죠!”
-칫! 자꾸 내 마음 흔들래요? 아니면 진짜 가요. 진짜 갈 거예요?
한소희는 진심이었다. 오상진은 그런 한소희의 마음을 알기에 살짝 억눌러줬다.
“알았어요, 미안해요. 저도 우리 여친 너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 마음을 꾹 참고 있다가 주말에 보면 더 좋지 않을까요?”
-……치사해요. 그렇게 말을 하면 어쩔 수 없잖아요.
“하하하. 우리 이번 주말에 꼭 봐요.”
-알겠어요. 그보다 우리나라는 상진 씨가 다 지키나 봐요.
“설마 그러겠습니까?”
-저녁은요? 먹었어요?
“그럼요. 먹었죠.”
오상진은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입맛이 없어서 저녁은 먹지 않고 바로 관사로 왔다.
-진짜요?
“네. 중대장님께서 고생했다고 밥 사주셨어요.”
-중대장님 너무 고마우시다. 내가 나중에 밥 한 끼 대접해 드려야겠어요.
“네. 그래요.”
-우리 남친 피곤하겠다. 그만 끊어요. 내일 통화해요.
“알겠어요. 소희 씨, 잘 자요.”
-상진 씨도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침대 옆에 내려놓고, 뒤로 벌러덩 누웠다.
“하아…… 얼마 만에 쉬어보냐.”
오상진이 눈을 감고 얼마 있지 않아,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누구지?”
휴대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
“어? 중대장님이 왜?”
오상진은 바로 몸을 일으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중대장님.”
-상진아, 밥 먹었냐?
“아뇨.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우리 집에 빨리 와라. 지금 너희 형수 칼질 소리가 장난이 아니야. 거실까지 들리고 있어.
“왜 또 그러십니까.”
-농담 아니야. 지금 다크가 엄청 내려앉았어. 그 전화를 좀 늦게 했다고 저렇게 살벌하기가 있냐. 아무튼 지금 엄청 삐져 있거든. 그러니까, 네가 와서 니 형수 기분 좀 풀어줘.
“에이, 괜히 제가 중간에 끼면 분위기만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 상진이 너, 네 형수가 엄청 좋아하는 거 몰라? 그리고 중대장 좀 봐주라. 네가 중간에서 비위 좀 잘 맞춰줘. 중대장 지금 죽겠다. 인마, 소대장이 되어서 중대장 죽는 꼴 볼래?
“하아…… 알겠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뭡니까?”
-냄새 상으로는 청국장을 준비하는 것 같던데.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처제 있다.
“아, 세나양 말입니까?”
-그래, 올 때 간식도 좀 사 오고. 우리 처제 뭐 좋아하는지 알지?
“네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츄니링 차림으로 관사를 나섰다. 김세나가 좋아하는 떡볶이랑, 순대를 사서 김철환 1중대장 집으로 향했다.
띵동!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김세나가 반겼다.
“오셨어요.”
“오, 세나 있었네.”
“네, 오늘은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벗어나 집에 왔어요.”
“잘됐네.”
오상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매우 놀란 상태였다.
‘세나가 완전히 여자가 다 되었네. 예전 TV에서 봤던 걸그룹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어.’
오상진이 김세나를 보며 말했다.
“너, 많이 예뻐졌다.”
“그렇죠? 히힛.”
김세나가 예쁘게 웃었다. 그런데 부엌에서 김선아가 나와 김세나의 등짝을 때렸다.
짝!
“언니!”
“언니가 말했지. 집에서 화장 지우라고! 넌 아직 학생인데 그렇게 화장하고 다녀야겠니?”
“뭐래! 언니, 요새는 학생도 요 정도는 다 하고 다니거든.”
“그런 거는 데뷔하고 나서 해. 겉멋만 늘어서는……. 자꾸 그럴 거면 그냥 집에 들어와!”
“언니! 진짜……. 만날 잔소리야.”
두 자매의 투닥거림에 김철환 1중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진아, 이리 와라.”
“네.”
“두 사람 많이 시끄럽지?”
“에이, 뭘요. 사람 사는 집이 북적거려야죠.”
김세나가 어느새 다가왔다.
“손에 든 거 뭐예요?”
“아, 과일이랑 이건 세나가 좋아하는 분식.”
“그럼 떡볶이?”
“그래, 순대도 있다.”
“오예! 이거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김세나는 분식을 챙겨서 냄새부터 맡았다.
“하아, 냄새 좋다. 오빠 잘 먹을게요.”
김선아가 나오며 말했다.
“밥 먹고 먹어!”
“그럴 거야.”
김선아는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뭘, 저런 걸 사 오고 그래요.”
“오는 길에 샀어요, 형수님.”
“네. 배고프죠. 밥 다 되었어요. 나오세요.”
“네.”
오상진이 일어났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를 잡았다. 오상진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형수님도 오세요.”
“네네. 국만 푸면 돼요.”
오상진이 차려진 밥상을 봤다. 분명 청국장만 있다고 들었는데 고등어, 제육볶음, 다른 여러 가지 반찬들이 올라와 있었다.
“형수님 청국장만 있어도 되는데…….”
“상진 씨 온다는데 어떻게 청국장만 해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걸로 했어요.”
“감사합니다. 형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