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4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6)
“오 중위?”
“네. 그렇습니다.”
“같이 헬기 타고 가죠.”
“제가 말입니까?”
“누구 보호자 한 명은 타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좌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사이 강일수 군의관과 각 중대장들이 나왔다.
“무슨 일이지?”
“보호자 한 명 동승해야 한다고 하는군.”
“그런데 왜 오상진 중위가…….”
이대우 3중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주변 눈들 때문에 강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 오상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저보다는 이 소위를 데리고 가시죠.”
“으응? 이 소위?”
“네. 3중대 2소대장입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안수호 이병의 소대장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그런가?”
보좌관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이 소위가 서 있었다. 오상진이 이 소위를 봤다.
“우리 이 소위가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렇죠?”
“네? 네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보호자로 따라가려면 이 소위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알겠네. 이 소위, 타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다시 안수호 이병을 봤다.
“아무 걱정 말고, 치료 잘해.”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헬기에서 멀어졌다. 헬기 주위로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헬기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사이 이대우 3중대장은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 중위……. 의외군.’
이대우 3중대장은 조금 전 이 소위를 헬기에 태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대우 3중대장은 오상진을 새롭게 봤다.
‘어쨌거나 이걸로 한숨 돌렸나?’
이대우 3중대장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상진 역시 멀어지는 헬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6.
그 시각.
광주시청에서 보낸 제설 차량이 마을 입주로에 들어섰다.
“와, 여기 눈 봐라. 완전 수북하게 쌓였네.”
“진짜 많이도 쌓였다. 이거 언제 치우냐?”
“그러게 말이다. 그보다 마을 안쪽에 군인들이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나?”
“들어가 있데. 사실 군인들도 어제 폭설로 고립이 되었다나 봐.”
“그래? 하긴 군인들의 삽질로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이길 수 없지.”
“그렇지, 그렇지.”
그러면서 기사 한 명이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 씨! 아무래도 빨리 끝내야겠어. 오늘 또 눈 내릴 기세여.”
“그래? 알았네. 알았어. 서두르자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둘러 장비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제설 차량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 구급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사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최 선생님!”
“네?”
“제설 차량 왔어요. 지금 길 내고 있어요.”
“그래요? 지금 갑니다.”
최 선생이 부랴부랴 담배를 끄고, 구급차에 올라탔다.
“이제 들어가는 겁니까?”
“네.”
“그래도 조금 더 늦게 오지. 제설 차량 너무 빨리 왔어.”
“최 선생님은 그렇게 농땡이를 피우고 싶으세요?”
“아이고, 무슨 농땡이는 큰일 날 소리를 합니다. 그냥 밖에 나와서 좋아서 그러죠.”
“병원에 있을 때 그랬잖아요. 눈 오는데 무슨 출동이냐면서요.”
“그때는 그때고요. 기다리니 여유가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하긴 그렇죠.”
두 사람은 실실 웃으며 차를 몰았다.
17.
그로부터 30분이 지났다. 제설 차량으로 눈을 치우자 금방 마을 입구까지 길이 났다.
“중대장님! 저기 제설 차량 옵니다.”
“그 뒤에 구급차도 함께 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확인했다. 그 뒤에 제설 차량을 따라서 구급차가 들어왔다.
“어이구, 이제야 오시네. 참 빠르게도 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우리가 길 다 뚫을 뻔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피식 웃었다.
“이놈들아, 여기서 저기까지 우리가 뚫으려고 했으면 또 여기서 밤을 지새워야 했어.”
“아닙니다. 저희가 충분히 뚫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당연하지.”
1소대원끼리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박중근 하사가 웃었다.
“이 자식들 허풍은……. 그래, 이제 쉬엄쉬엄하자.”
“네.”
그리고 제설 차량이 눈을 밀고 나타나자 감탄을 했다.
“이야, 역시 제설 차량 멋지네. 대단해!”
“그냥 한 방에 밀어버립니다.”
1소대원이 감탄하고 있을 때 구급차가 앞에 섰다. 조수석에서 최 선생이 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눈 때문에 입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최 선생이 구급상자를 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그 모습을 김철환 1중대장이 바라봤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환자,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네? 어떻게요?”
최 선생이 깜짝 놀랐다.
“저희 사단에서 헬기를 보내서 바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사단에서요? 무슨 병사 한 명이 다쳤는데 헬기까지 보내줍니까?”
“그만큼 병사 상태가 위중했습니다.”
“아이고, 그럼 빨리 연락을 주시지……. 그럼 빨리 왔을 텐데.”
“눈이 와서 못 들어왔다면서요. 그럼 방법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럼 볼일 없는 거네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최우호 선생이 인사를 하고 다시 차량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차량이 출발하자마자 인상을 썼다.
“에이씨! 괜히 헛걸음만 했잖아.”
운전하는 구급대원이 말했다.
“시청에 전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맞다. 전화해야지.”
구급대원이 휴대폰을 꺼냈다.
“조 주임 되십니까?”
-네.
“한 병원 닥터 최우호입니다.”
-아, 네에. 도착했어요?
“네. 고생해서 들어오긴 했는데요. 환자가 없던데요.”
-환자가 없다니? 무슨 소리예요? 허위 신고예요?
“그건 아니고, 그쪽 사단에서 헬기를 보내 환자를 싣고 갔다는데요.”
-사단 헬기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근데 제가 헬기를 보긴 봤어요. 그 헬기가 뭔가 했는데 설마하니 사단 헬기인 줄은 몰랐네요.”
-사단 헬기라니…….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복귀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청에 있던 조 주임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사단 헬기에 태우고 갔다고? 기껏 생각해서 구급차 보내줬더니.”
김한솔 팀장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참, 조 주임. 어떻게 됐어? 들어갔대?”
“네. 조금 전에 눈을 다 치워서 들어갔답니다.”
“그래? 그럼 환자는 싣고 나오는 거야?”
“아뇨, 그전에 사단 헬기에 환자 싣고 갔답니다.”
“사단 헬기? 그럼 환자가 사라진 거야?”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씨, 이러면 곤란한데.”
김한솔 팀장이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조 주임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방금 위에서 전화가 오길래. 책임지고 우리가 병원으로 호송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뭐라고 해? 제설 차량이 없어서 구급차가 못 들어간다고, 그걸 그대로 말해? 그러다가 위에서 뭐라고 하면 조 주임이 책임질 거야?”
“그건 그렇지만…….”
“에이씨, 나도 몰라! 아무튼 제설 차량 스케줄은 조 주임이 짰으니까. 이번 일도 조 주임이 알아서 해, 난 몰라!”
“팀장님, 팀장님…….”
김한솔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조 주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그럼 나만 또 X 되는 거야?”
조 주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18.
충성대대 대민지원 장병들은 제설 차량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시간을 단축했다. 우선 큰 대로변만 눈을 깨끗하게 치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운전병들은 차량 상태 확인해 봐.”
“네.”
“그리고 각 중대들은 부대로 복귀할 준비를 해라. 인원 체크 다시 한번 해서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마을회관 앞에 10여 대의 육공트럭이 나란히 세워졌다. 차량 시동을 걸어놔서 뿌연 매연이 나왔다.
부우우우웅.
“자, 인원체크 끝난 중대부터 탑승!”
김철환 1중대장이 마지막으로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모든 중대원들이 탑승을 완료했다.
“와, 이제 드디어 부대로 복귀한다.”
“으구, 지긋지긋한 눈! 이제 진짜 다시는 보기 싫다.”
김일도 병장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입을 열었다.
“하긴 그렇긴 합니다. 그러고 보니 김 병장님, 이제 두 달 남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이야, 좋겠다.”
“좋겠습니다, 김 병장님.”
“이야, 이제 김 병장님도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겁니까?”
“부럽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소대원들의 한마디에 김일도 병장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거렸다.
“야, 자식들아. 너희들도 언젠가는 와! 그러니 걱정 말고 군 생활 열심히 하란 말이야.”
김일도 병장은 마치 당장 오늘 제대하는 사람처럼 말을 했다.
“그래도 전 앞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은호 이병이 한마디 했다.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었다.
“은호는…… 뭐,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일병 말 호봉쯤 되면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할 거야.”
김일도 병장의 충고에 이은호 이병이 미소를 지었다.
“네.”
“아무튼 이것들아! 부러워하지 말고 열심히 하란 말이야. 그래야 제대 날도 다가오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그때 오상진이 마지막 체크를 위해 소리쳤다.
“일도야, 그만 떠들고. 인원 이상 없지?”
“네.”
“부상자는?”
“없습니다.”
“좋아, 이제 부대 복귀하자! 모두 고생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 김철환 1중대장도 조수석에 탔다.
“자, 출발하지!”
“네!”
육공트럭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리며 그렇게 길고 길었던 1박 2일의 여정이 끝이 났다.
19.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육공트럭 뒤에 앉아 있던 소대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우와, 부대로 복귀하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지 처음 알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휴가 갔다가 복귀할 때는 그렇게 싫었는데…….”
“후후후, 맞아. 지금 부대에 복귀한다고 하니 너무 설렌다.”
“그렇게 설레시면 부대에 말뚝 박으시지 말입니다.”
김일도 병장의 말에 곧바로 김우진 상병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야, 김우진.”
“네?”
“너 요새 조금 선을 넘는 것 같다?”
“네?”
김우진 상병이 살짝 당황했다. 여태까지 장난식으로 얘기를 하면 잘 받아줬다. 그런데 오늘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자식은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어떻게 말년병장에게 말뚝 박으라는 소리를 할 수 있지?”
“에이, 농담이지 않습니까.”
“농담? 인마, 난 지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판이야. 그런데 뭐? 김우진 요새 좀 많이 편해졌지? 아니면 한 따까리 할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