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3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5)
-지금 출발하니까. 1시간 안에 도착할 것 같네요. 그러면 오늘 중으로 길 뚫리지 않겠습니까.
“일단 감사합니다. 그런데 빨리 좀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저희도 사정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막말로 제가 제설 작업을 요청했는데 사고가 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무엇보다 갑자기 폭설이 내릴 줄은 또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부분은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허허허.
조 주임이 멋쩍게 웃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기자들에게 연락이 오면 잘 좀 말씀해 주세요. 저도 사정이 있지 않습니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네, 그래요.”
오상진은 빨리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잘 말해주기는 개뿔…….”
오상진은 휴대폰을 다시 품속에 넣으려는데 전화가 또 울렸다. 이번에는 박은지였다.
“네. 은지 씨.”
-상진 씨 어떻게 됐어요?
“은지 씨가 기사를 잘 써준 덕분에 지금 사단에서 헬기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어? 사단에서요? 119헬기가 빠르지 않나요?
“네, 그렇긴 한데 사단에서 보내주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합니다. 사실 119헬기를 띄우려면 이래저래 절차가 까다롭지 않습니까. 저희 사단 헬기는 사단장님 명령 하나면 바로 뜹니다.”
-어, 그럼 잘됐네요. 병사 상태는 어때요?
“일단 상태는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설 작업이 너무 더딥니다. 이대로 가다가 오늘 또 고립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난 이틀 동안 첫째 마을과 둘째 마을의 눈을 각각 치워왔다.
하지만 오늘 하루 만에 세 개의 마을의 눈을 치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그나마 큰길만 작업해서 다행이지만…….
“아무튼 은지 씨 덕분에 병사 한 명을 살렸습니다.”
-잘되었어요. 모처럼 기자로서 뿌듯하네요.
“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일 있잖아요. 이후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씀해 주셔야 하는 거 알죠?
“그럼요. 제가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 기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네. 그럼 끊겠습니다.”
-아참! 상진 씨.
오상진은 전화 끊으려다가 다시 귀에 가져갔다.
“네?”
-형부에게 죽기 싫으면 언니에게 전화 좀 하라고 하세요.
“하하하, 네에.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대장님 정신없을 텐데요.”
-알죠, 아는데 형부만 걱정하는 언니 심정도 이해해 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어요.”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소희 씨에게 전화를 못 했네.”
오상진은 형수가 걱정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한소희도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소희 씨, 뭐 해요?
-상진 씨!
-저 지금 밥 먹고 있어요.
다행히 기사를 못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제가 기사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소희가 걱정하지 않게 설명을 해줬다.
-지금 대민지원하는 곳에서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눈 다 치우고 있고, 조만간에 부대에 복귀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우리 상진 씨 고생이 많아요. 눈 다 치우면 밀린 데이트해요.
-그래요.
오상진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휴대폰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에게 다가갔다.
“중대장님.”
“어, 왜?”
“은지 씨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은지에게? 왜?”
“실은 은지 씨에게 연락이 와서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하아…….”
김철환 1중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쩐지 사단장님께서 움직이신다고 하더니……. 그래서 사단에서 직접 연락이 온 거였어?”
“네.”
“그래서 뭐라고 얘기를 했는데?”
“제가 흘린 소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눈치를 채셨습니다.”
“하긴 그 양반들이 하루 이틀 짬밥도 아니고, 척하면 척이지.”
“뭐, 어쨌든 결론은 잘 되었잖아. 너 아니었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애 망가질 뻔하지 않았냐. 잘했다, 잘했어.”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을 나무라지 않고, 격려를 해줬다. 그것이 더 미안한 오상진이었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아니야. 네가 말했다 해도 반대했을 거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아이고, 이놈의 군 생활이라는 것이 뭔지, 너무 힘들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잘 풀렸잖아!”
김철환 1중대장이 웃으며 오상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참! 중대장님.”
“왜?”
“은지 씨가 그러던데 형수님께서 죽기 싫으면 당장 전화하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마누라를 깜빡했네.”
김철환 1중대장이 땀을 삐질 흘렸다.
“알았어, 오케이. 땡큐!”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서둘러 구석진 곳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김철환 1중대장의 굽신거리는 행동을 보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그 길로 1소대원들이 작업하는 곳으로 갔다.
“얘들아, 쉬엄쉬엄하자.”
오상진이 고생하는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누구보다 열심히 삽질을 하던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안수호 이병은 어떻습니까?”
그 소리에 소대원들이 작업을 멈추고 모두 오상진을 바라봤다.
“걱정 마라. 사단에서 헬기 보내주기로 했다.”
“네. 헬기 말입니까?”
“와! 대박! 헬기를 타다니…….”
“김 상병님 헬기 타본 적 있습니까?”
“타보기는 무슨, 가까이서 본 적도 없다.”
“와, 그런데 안수호 이병은 헬기를 탄단 말입니까?”
1소대원들 다들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두두두두두’ 하는 헬기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헬기 소리다!”
1소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갔다.
“어? 저기 헬기다!”
“진짜야. 진짜 헬기가 왔어.”
“와…….”
오상진도 저 멀리 작은 점 하나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헬기를 바라보는 오상진의 입가를 타고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15.
두두두두두두!
허공을 가르며 헬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곧바로 소리쳤다.
“자, 전부 멀리 떨어져! 헬기 착륙지점에서 떨어지란 말이야.”
김철환 1중대장의 지시에 병력들이 일제히 착륙지점에서 멀어졌다. 그 사이 오상진이 헬기를 유도했다. 과거에 강원도에서 헬기를 유도했던 적이 있어서 딱히 낯설지 않았다.
오상진이 착륙지점을 플래시 두 개로 가리켰다. 엄청난 바람과 굉음을 내며 헬기가 서서히 내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
헬기의 강한 풍압에 의해 착륙지점에 남아 있던 눈이 하늘 높이 비상했다. 흩날리는 눈발에 모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1소대장! 어서 피해.”
오상진이 한쪽으로 피하자, 헬기는 자리를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모든 중대원들은 프로펠러에서 뿜어지는 풍압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헬기 착륙 장면을 보려고 했다.
“우와, 대박! 진짜 헬기야.”
모두의 호들갑 속에 헬기가 눈 녹인 지면에 내려앉았다. 자세히 보니 UH-60 블랙호크였다.
참고로 UH-60 블랙호크는 1968년 미 육군 UH-1 휴이 기동헬기를 대체하기 위한 신형 개발에 들어갔고, 결국 1976년 12월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우리 육군은 1980년대부터 UH-1 기동핼기 전력과는 별도로, 새로운 중형 기동헬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후보기종으로 UH-60 기동헬기가 선정되었다.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1990년 12월 대한항공을 통해 면허생산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4,000대 이상 생산된 베스트셀러 헬기였다.
그중 110여 대가 육군에 배치되었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멈추고, 문이 열리며 그곳에서 두 명의 남성이 내렸다. 한 명은 군의관, 또 다른 한 명은 군 의병이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저는 의무대에서 파견 나온 강일수 중위입니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마을회관에 있습니다.”
“네.”
강일수 군의관이 재빨리 뛰어갔다. 그 뒤를 가방을 든 군 의병이 뛰어갔다. 마을회관 문을 열며 강일수 의무관이 소리쳤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여기입니다. 여기!”
군의관이 곧바로 안수호 이병에게 갔다. 군 의병이 가방을 열어 옆에 뒀다. 먼저 혈압부터 쟀다.
“자네 소속과 이름은?”
“충성대대 3중대 2소대 이병 안수호입니다.”
“어떻게 된 거지?”
“자, 작업을 하다가 뒤로 넘어졌습니다.”
안수호는 착실하게 답변을 해줬다. 강일수 의무관은 이번에는 작은 플래시를 들었다. 안수호 이병의 눈에 비추며 상태를 확인했다.
‘음, 동공의 확장 반응이 조금 늦네.’
강일수 의무관은 안수호 이병 뒷머리를 확인했다. 그곳에 밴드를 부착하고 있었다. 그것을 떼어내자 상처가 드러났다.
“어이구 상처가 좀 심하네.”
안수호 이병 뒷머리가 몇 센티미터 찢어져 있었다.
“이 상태인데 대일밴드만 붙였습니까?”
강일수 군의관의 말에 옆에 있던 최 병장이 움찔했다.
“저희가 구급상자가 없어서. 그나마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밴드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다행히도 2차 감염의 조짐은 없어 보이네요.”
강일수 군의관이 군 의병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독약과 붕대를 줘. 수도병원으로 가서 찢어진 부위는 꿰매야 할 것 같다. 다행히 피는 멈췄네.”
의무병이 소독약과 붕대를 건넸다. 강일수 군의관이 빠르게 응급처치를 했다. 소독약을 뿌리자 많이 아픈지 안수호 이병이 인상을 썼다.
“으으으…….”
신음까지 흘렸다. 강일수 의무관이 피식 웃었다.
“아픈 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괜찮아 보이네.”
“네.”
“그래. 곧 병원으로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붕대를 다 감은 후 강일수 의무관이 말했다.
“일단 안수호 이병 부축해서 헬기로 데리고 가주시죠.”
“아, 네에.”
최 병장이 바로 나섰다. 그 외 한 명이 더 부축하며 안수호 이병을 마을회관에서 데리고 나갔다.
강일수 군의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무병이 곧바로 가방을 챙겨서 같이 일어났다.
김철환 1중대장이 강일수 군의관을 만났다. 그 뒤에 2중대장과 3중대장이 같이 왔다.
“안수호 이병 상태는 어떻습니까?”
“으음, 뇌진탕 초기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수도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정확한 진단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아, 네에.”
“그래도 지금 상태를 보니 정신도 있고, 다만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니.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말했다.
“부탁…… 합니다.”
이대우 3중대장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일수 군의관이 바로 말했다.
“네. 지금 바로 수도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오상진이 밖에서 기다렸다. 안수호 이병이 헬기에 몸을 실었다. 오상진이 바로 다가갔다.
“고생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