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2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4)
-그보다 정확히 어떻게 된 거야?
“실은 어제 3중대 2소대 안수호 이병이 제설작업 과정에서 넘어져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었습니다. 안수호 이병은 날씨도 춥고, 설상가상으로 고립되다 보니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밤사이에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래? 심각한가?
“지금은 다행히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대에 보고하고 119에 요청을 했지만 119차량이 마을 진입로에서 막혀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감하군. 그래서 자네가 생각한 최적의 대처는 뭐라고 생각하나?
김학래 비서실장의 물음에 오상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바로 말했다.
“119헬기를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119헬기?
“네. 119헬기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119헬기라…… 119헬기가 현재 어디 있지?
“수원 쪽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수원에서 거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3, 40분으로 예상합니다. 어쨌든 허락만 해주시면 그 시간에 맞춰서 바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헬기라…… 잠깐만 기다려 보게.
“네.”
김학래 비서실장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5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충성, 오상진 중위입니다.”
-오 중위.
“네.”
-헬기 말이야. 우리 쪽에서 보내주기로 했네.
“네?”
-헬기 우리가 보내주기로 사단장님의 허락이 떨어졌네.
“저, 정말입니까?”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당연하지 않나. 우리 사단에 헬기가 있는데 무슨 119헬기를 불러.
“가능하시겠습니까?”
-못할 게 뭐야. 사단장님의 허락도 떨어졌고, 우리 병사가 다쳐서 사경을 헤맨다는데. 당연히 보내야지.
“가, 감사합니다.”
-아무튼 헬기 보내기로 했으니까. 그런 줄 알고 있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랑 통화한 거 일단 비밀일세.
“그리하겠습니다.”
오상진은 김학래 비서실장과의 통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김철환 1중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싶었다. ‘지금 헬기가 오고 있으니 준비하십시오’라고 말이다.
하지만 김학래 비서실장님이 비밀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상진은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사단에서 대대장을 거쳐 다시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바로 현장 지휘관인 김철환 1중대장에게 상황이 전달되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네. 충성.”
김철환 1중대장이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옆에 있던 2중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대장님께서 뭐라고 합니까?”
“사단에서 헬기를 보내준다고 하네.”
“헬기 말입니까?”
2중대장은 깜짝 놀랐다. 사실 여태껏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병사 때문에 사단장님의 헬기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역사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아무튼 2중대장은 진정을 한 후 물었다.
“이번일 말입니다. 혹시 대대장님께서 직접 보고하신 겁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방금 작전과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과장님 말로는 사단에서 직접 움직였다고 하는군.”
“사단에서 말입니까? 아니, 어떻게 알고…….”
“그건 나도 모르지. 아무튼 헬기가 오기로 했으니 다행이긴 하네.”
“그런데 말입니다. 대대장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2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대장님? 어떨 것 같나?”
“아마 난리 나겠죠?”
“그래. 지금 난리도 아니야. 이번 일로 3중대장 엄청 깨질 것 같기도 해.”
“그러겠습니다. 그런데도 3중대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신없겠지.”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2중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저 멀리서 이대우 3중대장이 걸어왔다.
“여기서 뭣들 하십니까. 다들 병력 통제 안 하십니까?”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인상을 썼다.
“지금 이 상황이 누구 때문에……. 됐네, 뭔 말을 하겠나. 아무튼 지금 누가 벌여놓은 일 수습하느라 대대랑 통화를 하고 있었어.”
김철환 1중대장의 뼈있는 말에 이대우 3중대장이 움찔했다.
“대, 대대랑 말입니까?”
“대대 가지고 뭘 놀라고 그래. 이미 사단까지 연락이 닿았는데.”
“사, 사단까지…… 말입니까?”
이대우 3중대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무튼 걱정 마. 사단에서 헬기 보내주기로 했으니까. 조금 후면 도착할 거야. 그리고 2중대장.”
“네.”
“자네는 병력 데리고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게.”
“알겠습니다.”
2중대장이 바로 움직였다. 김철환 1중대장은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이대우 3중대장을 바라봤다. 이대우 3중대장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 일…… 1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겁니까?”
“뭘 말해?”
“지금 상황 말입니다. 대대에 직접 보고를 하신 겁니까?”
“내가 뭘 말해? 그리고 이 친구야. 내가 그럴 정신이라도 있었나? 지금 제설 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그, 그럼…….”
“대대에서 직접 연락이 왔어. 모든 상황을 알고 말이야. 아니지, 사단장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직접 움직이신 것 같아.”
“정말 1중대장님께서 보고하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거참! 자네는 이런 상황에서도 의심부터 하나?”
“그럼 2중대장이 말했습니까?”
“2중대장도 그런 말 한 적 없네. 여태까지 제설 작업하고 있었던 것을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나. 그보다 자네는 말하고 안 하고,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
이대우 3중대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혹시 오 중위가 사단장님께 직접 전화한 것입니까?”
“이 사람이 진짜…….”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도대체 자네의 머릿속에는……. 아닐세. 그리고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일개 소대장이 직접 사단장에게 보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게다가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대대를 통해서 연락이 왔겠나. 사단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겠지.”
“하긴, 그렇긴 한데 말입니다. 어쨌든 사단에서 나섰으니까 이제 다 해결이 된 것입니까?”
이대우 3중대장이 팔자 좋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철환 1중대장은 한심하게 바라봤다.
“하아…… 편할 대로 생각해.”
김철환 1중대장은 이대우 3중대장과 얘기를 하면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한편,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에게 얘기를 듣고, 곧바로 안수호 이병에게 갔다. 안수호 이병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안수호, 지금 상태는 어때? 괜찮아?”
“이병 안수호. 어, 전 지금은 조금 괜찮습니다.”
일단 말은 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눌해 보였다. 아직은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참아. 부대에서 널 위해 헬기를 띄웠다고 하니가.”
“헤, 헬기 말입니까?”
안수호 이병의 눈이 커졌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너 헬기 타봤어?”
“아닙니다.”
“소대장도 타지 못한 걸 안수호 이병이 먼저 타보네. 그것도 사단장님 헬기를 말이야.”
“그, 그건…….”
“뭐, 잘된 일이지. 이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튼 사단장님께서 너 특별히 신경 써주시는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고 헬기 타면 금방 국군 수도병원에 도착할 거야. 거기서 치료 잘 받으면 돼.”
“제, 제가 정말…… 그래도 됩니까?”
“괜찮아.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네.”
안수호 이병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데 안수호 이병 옆에 서 있던 최 병장이 입을 뗐다.
“와, 안수호 넌 좋겠다. 헬기도 타고.”
“아, 아닙니다.”
“아니긴 새끼, 좋아 죽지? 아무튼 넌 낫기만 해. 이 자식아……. 너 하나 때문에 지금 부대 전체가……. 민폐다, 민폐야!”
안수호 이병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 오상진의 시선이 최 병장에게 향했다.
“최 병장.”
“네?”
“넌 말이 왜 그래?”
“뭐가 말입니까?”
“아픈 병사를 앞에 두고 그게 할 소리야!”
오상진이 작지만 근엄한 어투로 말했다. 최 병장이 순간 움찔했다.
“그, 그냥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지금 상황이 웃을 상황이야? 사단에서 헬기를 왜 보내줬다고 생각해. 넌 그게 이해가 안 돼?”
오상진의 따끔한 충고에 최 병장은 얼굴을 굳혔다.
“죄송합니다.”
“아니, 도대체 죄송할 말을 왜 하는 거지. 그렇게 상식이 없나?”
오상진의 꾸지람에 최 병장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소대장이 참다 참다 말하는데 너 어제부터 말이야. 태도가 왜 그 모양이야? 안수호 이병을 잘 보살피라고 하지 않았어?”
“……네.”
“제대로 보살핀 거 맞아?”
“자, 잘 보살폈습니다.”
“그래? 소대장이 쭉 지켜봤는데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던데. 아니면 명령 불복종이야?”
“그게 아닙니다. 저도 나름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최 병장은 다소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뭘 보살폈지? 계속 딴짓만 하고 있었잖아. 소대장이 모를 것 같아!”
“…….”
최 병장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오상진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자네 안수호 이병 상태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봤던 거 그냥 안 넘어갈 테니까.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야.”
최 병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여기 소대장도 아니면서 왜 지랄이야. 제기랄…….’
최 병장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안수호 이병을 쳐다봤다. 안수호 이병은 고개를 돌려 그 눈빛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 오상진에게 전화가 지잉지잉 울렸다.
“네, 오상진 중위입니다.”
-와, 이제 통화가 되었습니다. 오 중위님.
목소리만 들어도 조 주임이라는 것을 금세 알았다.
“무슨 일이죠, 조 주임님.”
오상진은 바로 목소리를 깔았다. 그러자 조 주임이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 이 기사는 뭐죠? 갑자기 기사가 떴습니다.
“무슨 기사 말입니까?”
-기사 안 보셨습니까?
“여기서 기사 볼 정신이 있습니까? 제설 작업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갑자기 전화해서는 무슨 소리입니까.”
오상진이 모르는 척을 하자 조 주임이 정곡을 찔러 들어왔다.
-그래요? 그쪽에서 흘린 기사가 아닙니까?
오상진은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곧바로 모르쇠로 나가며 화제를 돌렸다.
“조 주임님. 지금 이 와중에 뭔지도 모를 기사 때문에 전화를 하신 겁니까? 대체 제설차는 언제 보내주시는 겁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제가 큰맘 먹고 다른 곳에서 제설 차량을 수배해 뒀습니다. 아마 2대가 그쪽으로 갈 것입니다.
오상진은 순간 울컥했다. 오전에는 분명 안 된다고 해놓구선, 이제 와서 생색내는 게 얄밉기만 했다.
“아까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진짜 사정 그랬었고, 지금은 얼추 제설이 끝나가고 있어서 2대를 수배할 수 있었어요.
“정말입니까?”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