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1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3)
“아닙니다.”
사실 곽부용 작전과장은 부상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몰래 찾아와 부상자가 있으니 부대로 복귀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물어왔었다.
“상태는, 심각해?”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습니다.”
“정신 잃었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은 상태가 심각한 것이 아니네. 사실 대대장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그런데 차를 빼다가 부상당했다는 소릴 들어봐.”
곽부용 작전과장의 그 말에 김철환 1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영 상태가 좋지 않으면 즉각 후송 조치하고.”
“네.”
곽부용 작전과장은 그때 대화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때는 한종태 대대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무시했는데 이제 와서 상황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입을 다물자, 괜히 얘기했다가 나만 피를 봐.’
곽부용 작전과장이 입을 다물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살짝 짜증 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금이라도 구조병력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눈 치우러 보냈더니 사고나 치고 말이야. 1중대장도 이번에 영 실망하게 만드네.”
그때 한종태 대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한종태 대대장이 휴대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헉! 비서실장님이 왜?”
한종태 대대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충성대대장입니다.”
-사단 비서실장 김학래 중령입니다.
“아이고, 선배님. 어쩐 일이십니까?”
한종태 대대장은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혹시 기사 봤습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확인을 하고 보고를 드릴 참이었습니다.”
-그럼 충성대대장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대민지원 하는 곳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고 그사이에 사고가 생긴 모양입니다.”
한종태 대대장은 최대한 자신을 포장하며 설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지금 구조병력 보내기로 했습니다.”
-지금 말입니까?
“네.”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 사단에서 무슨 조치가 있을 것 같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하십시오.
“대, 대기 말입니까? 혹시 사단장님께서…….”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대기 하십시오.
“아, 네에…….”
한종태 대대장이 휴대폰을 붙잡고 굽신거렸다. 곧 전화를 끊은 한종태 대대장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단장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아무래도 사단장님께서 이 사안을 직접 챙기실 것 같은데.”
“사단장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곽부용 작전과장도 살짝 놀랐다. 하지만 한종태 대대장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진짜! 나는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냐. 환장하겠네.”
한종태 대대장이 머리를 팍팍 헝클어뜨렸다. 그러곤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에잇! 망할 놈의 눈! 적당히 좀 내리지.”
한종태 대대장은 괜히 하늘에 대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14.
눈이 펑펑 내려 민원인의 발걸음이 뚝 끊긴 광주시청 민원실은 오늘따라 더욱 조용했다.
그때 웹 서핑 중이던 민원실 직원 하나가 어느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이 기사 우리 얘기잖아.”
그리고 곧장 고개를 돌려 뒤쪽에 있던 김한솔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왜 그래요?”
“기사가 하나 떴는데 확인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기사요? 어떤 기사죠?”
“이번 대민지원과 관련된 기사인 것 같은데요.”
“대민지원이요? 대민지원이라면 충성대대밖에 없을 텐데…….”
그 순간 김한솔 팀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올해 초 멧돼지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딥니까? 그 기사 어디예요.”
김한솔 팀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급히 다가와 기사를 클릭해 줬다.
“이거예요.”
직원이 보여준 기사를 김한솔 팀장은 찬찬히 확인을 했다. 그런데 초반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으음, 다행이긴 한데 요새는 이런 것도 기사로 올려주나 보네요.”
김한솔 팀장이 살짝 안도를 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쓰인 기사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뭐야?”
김한솔 팀장이 본 기사 마지막 줄은 이랬다.
-한편, 신고를 받은 119차량이 해당 병사를 후송하기 위해 갔지만 마을로 들어가기 전부터 폭설로 인해 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에, 군부대는 광주시청에 제설 차량 지원을 요청했으나, 광주시청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난색을 표현한 상황이다.
김한솔 팀장이 재차 확인을 해봤다. 냉정하게 읽어 봤지만 앞에 나열된 기사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마지막에 올라온 몇 줄이 더 임팩트가 강했다.
“젠장, 이러면 우리 광주시청 이미지가 뭐가 돼!”
김한솔 팀장은 곧바로 스크롤을 돌려 밑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와, 진짜 이건 아니지. 애꿎은 군인만 죽어나네.
-이래서 우리나라 군인은 불쌍하다니까.
-와, 진짜 예전 생각난다. 공무원들 아직도 군인들 노예처럼 부려먹는 거 달라지지 않았네.
-우리도 저런 비슷한 적 있었는데. 다른 곳은 제설 차량 보내주고. 우리는 죽으라 삽질하고 말이야.
-아무리 대민지원을 나갔다고 해도 최소 공무원이 나와서 확인을 해줘야지.
-진짜 광주시청 저번 멧돼지 사건 때도 그러더니……. 아무튼 정신을 못 차렸나 봐.
-불쌍한 우리 군인만 죽어나네.
-우리 오빠도 충성대대인데 설마…… 아니겠죠?
-님, 빨리 연락해 보세요.
-광주시청 공무원들, 지들은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하나. 왜 일을 이따위로 하지?
-나랏밥 먹는다 이거지!
-나랏밥이 큰 벼슬이지. 암만!
-젠장……. 난 공무원시험 4번 떨어졌다!
-난 6번이요.
-하아…… 전 몇 년째인지…….
이런 부정적인 댓글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김한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할!”
김한솔 팀장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조 주임을 찾았다.
“조 주임! 조 주임 어디 갔나?”
“조 주임님 아까 화장실에 가신다고…… 아, 저기 오네요.”
김한솔 팀장이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있던 조 주임을 봤다.
“조 주임!”
조 주임은 손을 닦고는 무슨 일인가 했다.
“네. 팀장님.”
“빨리 이리 오게, 빨리!”
조 주임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빠르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무슨 일 있지. 그 뭐냐, 자네 말이야. 오상진 중위랑 얘기를 했다고 했지?”
“네.”
“얘기가 잘 안 됐어?”
“아뇨, 얘기 잘 되었습니다.”
“그래? 별말 없었어?”
“네. 별말 없던데요.”
조 주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김한솔 팀장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아닐 텐데……. 솔직히 말해봐. 오상진 중위가 뭐라고 했나.”
김한솔 팀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조 주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저희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해 줬죠. 지금 시청에 제설 차량 지원해 줄 여력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서, 설마 그게 다야?”
김한솔 팀장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거기서 뭘 더 바랍니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죠.”
“그래서 다른 말은! 또 다른 말 하지 않았어?”
“다른 말이라면……. 아! 병사 한명이 다쳤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저희에게 말합니까? 그건 그쪽 사정 아닙니까?”
조 주임의 무지한 말에 김한솔 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환장하겠네. 자네 대체 왜 그러나! 지난 부서에서도 사고 쳐서 민원실로 옮겨왔으면 정신 좀 차려야지!”
“예? 또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아니, 우리가 도움을 청한 대민지원 아닌가. 그럼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와야지.”
“그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답답한 이 친구야. 자네 기사 안 봤나?”
“기사 말입니까?”
“이걸 봐봐, 이 기사!”
김한솔 팀장이 모니터를 돌려서 기사를 보여줬다. 조 주임이 기사를 쭉 읽어 내려가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진짜 짜증 나네. 무슨 기사를 이렇듯 악의적으로 적습니까? 생각할수록 열 받네. 기자가 누굽니까?”
조 주임은 기사를 쓴 기자를 확인했다.
“박은지 기자?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 이 아가씨, 지난번에도 멧돼지 기사 적은 그 기자 아닙니까. 아니, 이 기자는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건가? 왜 이런 기사를 쓰지.”
조 주임은 괜히 열을 내며 혼자 투덜거렸다. 그러자 김한솔 팀장이 차분하게 불렀다.
“조 주임.”
“네.”
“지금 분위기 파악 안 돼? 이 기사 시장님이랑 부시장님 보면 어떨 것 같아? 특히 우리 시장님 이미지에 엄청 민감하신 분인 거 몰라?”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기사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어…….”
조 주임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한솔 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짜 우리 다 엿 되는 거야. 알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조 주임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지금 당장 오상진 중위에게 전화해. 우리가 최대한 조치를 할 테니까,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란 말이야. 이 기사 말고 또 다른 추가 기사 나오기 전에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조 주임이 후다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잔뜩 인상을 쓴 채 수화기를 들며 투덜거렸다.
“아, 제기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고……. 도대체 무슨 악연인지 모르겠네.”
곧바로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익- 띠익- 띠익-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립니다.
짧은 통화 대기음에 이어 여자 기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통화 중이야.”
조 주임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또다시 들려오는 것은 여자 기계 목소리였다.
“답답하네.”
조 주임은 초조한 얼굴로 계속해서 오상진과 통화를 시도했다.
15.
조 주임이 애타게 전화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오상진은 사단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오 중위, 나 김학래 중령일세. 기억하나?
“충성! 네 기억합니다. 비서실장님.”
-오늘 올라온 기사는 확인했나?
“네, 조금 전에 확인을 했습니다.”
-혹시 그 기사 자네 쪽에서 흘러나온 건가?
“그게…….”
오상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어떤 처분을 받을지 각오는 한 상태였다.
그런데 김학래 비서실장의 입에서 질책이 아닌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야. 무슨 사정인지 대충 이해는 하네. 아마도 위에서는 대충 상황을 그냥 넘기려고 고집을 부렸겠지. 그런데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말이야. 그래서 선택한 것이겠지. 내말이 맞나?
김학래 비서실장이 정확하게 요점만 찍어서 말했다. 오상진이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여기서 뭔가 속이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네. 저도 이게 최선이 아닌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야, 잘했어. 그 덕분에 사단장님께서도 한 번에 보고를 받을 수 있었어. 차라리 잘됐어!
김학래 비서실장은 일단 좋은 쪽으로 넘어갔다. 오상진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