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20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2)
-네, 오상진 중위입니다
“네, 여기 광주시청입니다.”
-아, 네에.
“제설 차량 부탁하셨는데 지금 제설 차량이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쪽으로 대민지원 투입한 것이 제설 차량 지원에 한계가 있어서 공문을 보냈던 건데 인제 와서 제설 차량을 찾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네?
“이미 다른 곳으로 제설 차량이 다 빠져나가 지금 당장은 구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저도 이리저리 확인을 했지만 일손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오상진은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 우리 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보내 주십시오.
“조심 좀 하시지 그랬습니까. 우리도 지금 난감합니다.”
순간 오상진이 울컥했다.
-저희가 제설 작업을 하다가 다쳤는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서운합니다.
“아, 미안합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를 드립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 사정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그런 줄 알고 계십시오.”
조 주임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상진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개…….”
오상진이 휴대폰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이 목소리 익숙한데. 혹시 그때 그 공무원 아니야?”
오상진은 바로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리고 어금니를 빠드득 깨물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다가왔다.
“뭐래?”
“시청에 얘기를 해봤는데 제설 차량이 다른 곳에 투입되어서 지금 당장 이쪽으로 보내줄 수 없답니다.”
“뭐? 그럼 어떻게 하라고? 우리보고 뚫으라고?”
“네. 지금은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물며 하늘에서는 또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놔, 아주 죽으라고 하는구먼.”
이대우 3중대장이 버럭 화를 냈다.
“젠장할!”
오상진은 휴대폰을 꼭 쥐면서 김철환 1중대장을 불렀다.
“중대장님.”
“왜?”
“방법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방법? 무슨 방법?”
“사단장님께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오상진의 발언에 김철환 1중대장의 눈이 커졌다.
“야, 너 미쳤냐! 사단장님께 직접 전화를 한다고? 네가 아무리 사단장님께서 오냐오냐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하면 너 완전히 밉보이는 거야. 막말로 대대장님께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건 지휘계통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야. 안 돼, 절대 하지 마!”
“하지만 지금 상황이…….”
“됐어! 일단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이건 진짜 아니다. 아니라고, 오상진!”
김철환 1중대장이 강한 눈빛을 말했다. 이번에는 오상진의 말을 듣지 않았다.
“헬기가 답인데…….”
지금 상황에서 오상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단장님 헬기였다. 그러나 일개 중위가 사단장께 ‘헬기 좀 보내주십시오’라고 전화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오상진이 예쁘다고 해도 말이다. 군의 인식상 이건 아니었다. 그래서 김철환 1중대장이 말린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김철환 1중대장이 직접 삽을 들고 눈을 치웠다. 일단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길이 열리고 구급차가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상진은 휴대폰을 들어 사단장님 번호를 찾았다.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누를까, 말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잉, 지잉’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깜짝이야!”
오상진은 갑작스러운 전화에 놀랐다.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하니. 박은지였다.
“와, 타이밍 진짜 죽인다.”
오상진의 얼굴에 한 가닥의 빛이 피어올랐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은지 씨! 진짜 타이밍 대박입니다.”
-네?
“아뇨,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아니, 상진 씨 대민지원 갔다면서요.
“네네.”
-그런데 거기 갇혔다면서요.
“네.”
-언니가 형부 걱정된다고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어제 저한테만 전화를 몇 번이나 하던지. 제가 언니 달래느라…….
“은지 씨. 말씀하시는 데 미안합니다. 그보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오상진이 바로 박은지의 말을 끊었다. 그 순간 박은지는 오상진의 묵직한 말투에 곧바로 눈치를 챘다.
-혹시 거기에 무슨 일 생겼어요?
“네.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요?
“아, 여기 병사 하나가…….”
오상진이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얘기를 다 들은 박은지가 입을 열었다.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아무래도 이건 제가 나서야 할 거 같아요.
박은지가 그 말을 남기고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13.
백 소장은 뒷짐을 진 채 함박눈이 내리는 사단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엔 김학래 비서실장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눈이 많이 오는군.”
백 소장의 말에 김학래 비서실장이 시선을 창가에 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주 내내 함박눈입니다.”
백 소장의 시선 창가 아래로 향했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사단 건물 주변엔 병사들이 나와 내리는 눈을 맞으며 싸리비로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백 소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장병들 눈 치우느라 고생이 많겠어.”
김학래 비서실장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매년 겨울에 눈만 내리면 연례행사처럼 하지 않습니까.”
“연례행사라……. 딱 맞는 얘기긴 하군.”
백 소장이 몸을 돌려 김학래 비서실장을 봤다.
“참! 이번에도 우리 사단에서 대민지원을 많이 나갔다지?”
“네. 함박눈이 내리지 않습니까. 아마도 시골 쪽으로 도움이 많이 필요할 때입니다.”
“맞아. 대민지원 역시 국민들을 지키는 일이지.”
“사단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백 소장이 천천히 걸어가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혹시 충성대대도 대민지원 파견 나갔나?”
“네. 그렇습니다.”
“어느 쪽이지?”
“충성대대는 경기도 광주 쪽으로 대민지원을 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주 쪽이라…….”
“네. 어제까지 눈 치우는 데 아무 문제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데 충성대대장이 웬일이지? 대민지원을 다 보내고 말이야.”
백 소장은 지난번 꼬리 자르기 행태를 보고 많은 실망을 한 상태였는데, 그런 충성대대에서 대민지원을 보냈다는 것이 좀 의외인 것 같았다.
“사단장님 충성대대가 나간 곳은 옛날 멧돼지 사건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고말고.”
백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학래 비서실장이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그곳도 이번 폭설 피해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건 때의 인연으로 그 마을에서 충성대대에 대민지원을 요청한 모양입니다.”
“아, 그런 것이었어? 하긴 충성대대장이 그렇게 인정 많은 놈이 아니었지. 쯧쯧쯧.”
백 소장이 혀를 찼다. 김학래 비서실장은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그보다 사단장님.”
“말해.”
“육본 쪽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까?”
“육본? 육본에서 왜?”
“이제 서서히 부서 이동이 있을 시기 아닙니까. 사단장님께서도…….”
김학래 비서실장의 말에 그제야 뭔 말인지 깨달은 백 소장이 손을 흔들었다.
“이 친구야. 나는 맘 비웠네. 허허허.”
백 소장이 웃음을 지었지만 최근에 좋은 일이 많았다. 주로 충성대대, 즉 오상진을 통해서 많은 좋은 일들이 있었다.
덕분에 백 소장 역시도 오상진의 덕을 보는 상황이었다.
오상진의 공과 함께 사단 백 소장의 공도 함께 올라간 것이었다. 어쨌든 오상진은 사단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윗선에서도 백 소장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백 소장도 내심 영전을 바라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김학래 비서실장이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저, 사단장님, 사실 제가 오지랖을 좀 부렸습니다.”
“무슨 오지랖?”
“오늘 아침에 육본 쪽에 아는 지인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은근슬쩍 동향을 살펴봤는데 이번 영전 대상에 사단장님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네. 사단장님. 명단에 올랐다는 건 영전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김학래 비서실장이 들뜬 마음으로 대답했다. 정작 백 소장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 않은가.”
“그 정도면 확정이지 말입니다. 아니, 육본에서도 사단장님을 거의 영전 되실 분위기였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백 소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뭐, 그래? 나야 사단이 좋은데……. 뭐 명령이라면 받아야겠지?”
“그렇습니다.”
“하아, 육본에 가서 우리 장군들 눈치 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아파오네. 허허허.”
백 소장의 웃음소리가 사단장실 가득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똑똑!
“사단장님.”
보좌관이 급히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사단장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기사가 하나 났는데 말입니다.”
“기사?”
보좌관이 재빨리 신문기사를 프린트한 것을 가져와 백 소장에게 내밀었다.
“여기…….”
백 소장이 프린트를 받아 확인을 해봤다. 제일 먼저 기사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경기도 광주 지역에 대민지원을 나갔던 군부대 병력! 폭설로 고립돼.
백 소장이 제목을 확인한 후 바로 물었다.
“경기도 광주 지역에 대민지원이면…….”
“네, 아마도 충성대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 으음…….”
백 소장이 별생각 없이 뉴스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중 어떤 내용에 눈을 번쩍하고 떴다.
“뭐야? 부상자가 있었어?”
“네. 확인을 해보니. 작업 도중 부상자가 발생했고, 현재 구급 조치가 미흡한 상태라고 합니다.”
“아니, 이런 일이 있었으면 당장 보고를 했어야지. 충성대대장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백 소장이 화를 버럭 냈다. 김학래 비서실장이 바로 답했다.
“지금 당장 확인해 보겠습니다.”
“빨리 알아봐.”
김학래 비서실장이 바로 사단장실을 나갔다.
같은 시간, 한종태 대대장도 문제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
“젠장! 어떤 놈이 이런 기사를 쓴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뭐가 중요해?”
“이 기사를 사단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사단에서?”
한종태 대대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바로 조언을 했다.
“지금이라도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 진짜 환장하겠네. 도대체 이것들은 대민지원 가서 도대체 뭔 짓을 했기에 이런 불상사가 나오는 거야!”
한종태 대대장은 일단 이런 기사가 났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것도 자신의 1호 차를 빼주다가 사고가 난 것도 모르고 말이다.
“도대체 병력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부상자가 나오고 말이야. 에잇!”
한종태 대대장이 혀까지 차며 화를 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부상 이유를 말하려고 했다.
“대대장님, 그게…….”
“그게 뭐?”
한종태 대대장이 강하게 노려봤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