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15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7)
“야, 이거 받아.”
오상진이 주머니에 있던 핫팩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 아닙니다.”
“동상 안 걸리려면 받아. 그리고 절대 뺏기지 마라. 누구한테 주지 말고.”
“알겠습니다.”
안수호 이병이 핫팩을 받아서 귀에 가져갔다. 따뜻한 온기가 귀에 닿자 입에 미소가 걸렸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수고해라.”
“충성,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손을 흔들어 주며 작업하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안수호 이병 쪽으로 2소대 병장이 나타났다.
“아. 진짜 여기는 짱박히는 곳도 없냐. 추워 뒤지겠네.”
그러다가 안수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안수호.”
“이병 안수호.”
“너 오늘 핫팩 받았냐?”
“아, 안 받았습니다.”
“왜, 아까 아침에 나눠 주더만.”
“그, 그거 이 상병님이 가져갔습니다.”
“뭐? 이 상병이 이 새끼가…….”
병장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안수호 이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진짜 없어?”
“네네, 어, 없습니다.”
안수호는 갑자기 그의 손이 우측 주머니로 자연스럽게 갔다. 그곳에 오상진이 준 핫팩이 있었다. 병장은 그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진짜 없어?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
“……어, 없습니다.”
안수호 이병은 오상진이 주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이걸 지켜야 했다. 그러나 이미 눈치를 챈 병장은 실실 쪼개며 다가갔다.
“진짜 없어?”
“어, 없습니다.”
“없다고?”
그러면서 기습적으로 안수호 이병의 오른쪽 주머니를 뒤져 핫팩을 찾아냈다.
“아앗, 아, 안 되는데…….”
“뭐, 시발? 안 돼? 그리고 너 핫팩 없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이건 뭐냐?”
“그게…….”
안수호 이병은 당황하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병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등병 새끼가, 벌써부터 거짓말을 하고…….”
“그거 제 거 아닙니다.”
“네 거가 아니면 누구 건데? 중대장님이 주셨어?”
“아닙니다.”
“이 새끼, 진짜 많이 컸네. 이제 거짓말까지 하고 말이야. 그렇게 내게 주기 싫디? 아니, 내가 네 것 뺏는다고 했냐?”
병장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위에 있던 다른 고참들이 모였다. 병장이 주위에 있던 밑에 애들에게 소리쳤다.
“야, 너희들 안수호 편의 봐주고 그러면 다 뒤졌어.”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핫팩을 안수호 이병에 던졌다.
퍽!
핫팩이 안수호 이병 가슴에 맞고 떨어졌다. 안수호 이병이 바닥에 떨어진 핫팩을 주웠다.
“에이, 혼자 따뜻하게 잘 보내라. 고참은 얼어 뒤질 테니까.”
그러면서 콧김을 씩씩 품어대며 사라졌다. 안수호 이병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사수가 다가왔다.
“왜 그랬냐?”
“저, 저는…….”
“됐고, 빨리 일이나 해. 어휴, 답답아.”
안수호 이병은 핫팩을 손에 꼭 쥔 채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3일째 대민지원을 나갔다.
어제 두 번째 마을을 다 끝내고 드디어 오늘 마지막 마을인 가람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내내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중대장님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이런 상태면 우리 돌아갈 수 있겠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면 어제랑 그제 치웠던 곳도 다시 쌓이는 거 아닙니까?”
“상황 봐서, 눈이 쌓일 것 같으면 병력을 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가 고립이라도 되면 큰일입니다.”
“그래, 일찍 마무리 짓고, 무슨 조짐이 보이면 바로 철수할 준비를 하자고.”
“네.”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차가 멈췄다.
“왜? 무슨 일이야?”
운전병이 말했다.
“앞에 차가 멈췄습니다.”
그런데 앞의 차량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상진이 슬쩍 말했다.
“아무래도 눈이 오다 보니까, 차량이 천천히 가는 걸 겁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차량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가 나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오상진이 나가려는데 박중근 하사가 한발 빠르게 내려 확인을 했다. 잠시 후 돌아온 박중근 하사가 말했다.
“1호 차가 지금 눈길에 미끄러져서 고랑에 빠졌습니다.”
“뭐? 대대장님은?”
“다행히 무사하십니다.”
“알았다. 일단 병력 내려서 차량을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이 차량에서 내려 부랴부랴 앞쪽으로 뛰어갔다.
8.
대대장실의 문이 열리고 곽부용 작전과장이 들어왔다.
“대대장님.”
“뭐야?”
“이번 대민지원 중인 곳에 한번 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거기까지 가야 해?”
한종태 대대장은 잔뜩 불만이 쌓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5분대기조 포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래도 조금 움직인 것도 아니고, 3개 중대가 움직인 것이라 대대장님께서 한번 얼굴 비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나 참…….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사단장님께서는 알지 모르겠네.”
한종태 대대장이 투덜거렸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한종태 대대장이 저렇게 불만이 가득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실 사단장은 상관과 부하장교의 입장에서 끈끈함, 유대,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관계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한종태 대대장처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꼬리 자르는 식의 행동은 좋아하지 않았다.
애당초 한종태 대대장은 백 소장 라인이 아니었다. 다만 백 소장이 한종태 대대장을 좋게 보고 받아들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종태 대대장의 꼬리 자르는 행동 때문에 큰 실망을 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곽부용 작전과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참에 한 번 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됐어, 귀찮아.”
“이 사건 사단장님께 보고 올라갔을 것입니다. 가서 얼굴 한번 비치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곽부용 작전과장의 말에 혹한 한종태 대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진짜 귀찮은데…….”
그러면서 슬쩍 창가 쪽으로 시선이 갔다.
“눈 많이 오나?”
“오늘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전투모를 머리에 썼다.
“에효, 가자, 가! 이놈의 대대장 충성대대 내려와서 아주 그냥 무슨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네. 전방에 있을 때보다 더 해.”
“그러십니까?”
한종태 대대장 뒤를 따르는 곽부용 작전과장이 말을 하며 최대한 기분을 맞춰주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을 태운 1호 차가 출발했다.
9.
한종태 대대장이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쌓인 눈이 길 양옆으로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마을회관에 도착을 하자 마을 이장이 나와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마을 이장이 먼저 인사를 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곧바로 한종태 대대장을 소개했다.
“저희 대대장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저희 장병들이 열심히 했습니까?”
“너무 열심히 해줬습니다. 축사며, 하우스까지 싹 다 정리해 줬습니다. 정말 좋은 군인들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사이 곽부용 작전과장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대장님 기념 사진 하나 찍으시죠.”
“에이, 이 무슨 기념 사진이야.”
“그래도 오셨는데 사진 한 장 찍으면 좋죠.”
“으음, 그럼 그럴까?”
한종태 대대장이 마을 이장을 바라봤다.
“이장님, 괜찮으시면 사진 한 장 찍겠습니까?”
“아이고, 그럼요. 찍으시죠.”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제대한의 자세로 사진 촬영에 임했다.
이렇듯 한종태 대대장은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네, 이제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말했다.
“한 번 더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곽부용 작전과장이 사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네. 끝났습니다.”
한종태 대대장과 이장이 사진을 다 찍은 후 헤어졌다. 한종태 대대장이 차로 향하며 물었다.
“어떻게 사진은 잘 나왔어?”
“네. 물론입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사진 속 한종태 대대장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봐, 여기 나 눈 감았잖아.”
“아…… 다시 찍습니까?”
“됐어, 이미 끝났잖아.”
“그래도…….”
곽부용 작전과장이 우물쭈물했다. 한종태 대대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뭘 그래도야. 그럼 다시 불러올래? 사진이 잘 못 나왔다고?”
“아, 아닙니다.”
“됐어, 다음에는 잘 찍어.”
“네.”
두 번째 마을에서도 똑같이 이장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간단히 마을을 돌아본 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다음은 어디야?”
“세 번째 가람 마을입니다. 그쪽은 안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온 김에 다 돌지.”
“아, 그쪽은 아직 제설 작업 전입니다. 오늘 투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슬슬 부대로 복귀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은 1호 차로 복귀를 했다.
“부대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운전병이 대답을 한 후 차량을 출발시킬 준비를 했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거는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차라라랄, 티티티틱!
“왜 그래?”
“죄송합니다. 차량 시동이 잘 걸리지 않습니다.”
“뭐야? 차량 정비 안 했어?”
“매일 출발 전에 합니다.”
“그런데 왜 그래?”
“차량이 오래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래되어도 점검만 제대로 했다면 괜찮잖아.”
“네, 죄송합니다.”
운전병은 당황하며 다시 시동을 돌렸다.
부아아아앙!
그제야 엔진이 돌아갔다. 운전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어서 출발해!”
“네.”
운전병이 차량을 출발시켰다.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며 운전했다. 운전병이 얼마큼 운전을 잘하는 것은 브레이크를 최대한 많이 밟지 않는 것이었다. 액셀로 차량의 속도를 조절하며 운전을 했다.
겨우겨우 시동을 걸고 출발한 운전병은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며 운전했다.
운전병에게 있어 운전 실력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브레이크를 최대한 밟지 않는 것에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액셀로 차량의 속도를 조절하며 운전을 했다.
“눈길이다, 조심히 운전해라.”
“네.”
한종태 대대장은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 뒤에 곽부용 대대장이 앉았다. 1호 차 뒷좌석은 일반 한 줄로 된 의자로 양옆으로 되어 있었다. 군용 육공트럭 뒷좌석처럼 말이다.
운전병이 잔뜩 긴장한 체 운전을 했다. 사실 이번 운전병이 바뀐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전 운전병이 제대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체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운전병이 급브레이크를 한 번 밟았다.
끼익!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한종태 대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야!”
“죄송합니다. 눈길이 미끄러워서…….”
운전병이 바로 사과했다. 한종태 대대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누가 눈길 미끄러운 거 몰라? 그렇게 브레이크 막 밟으면 차가 막 돌잖아. 운전병이 그것도 제대로 몰라?”
“죄송합니다.”
“작전과장.”
“네.”
“이 자식 누가 1호 차 운전병으로 만든 거야.”
“그건 수송대대에서 배치하는 것이라서 말입니다.”
“광현이는?”
“광현이는 저번 달에 제대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온 것입니다.”
“그래? 광현이가 운전 잘했는데…….”
운전병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다가 다음 주에 잡힌 휴가 걱정이 되었다.
‘아이씨! 이러다가 휴가 날아가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