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14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6)
“상병 김우진.”
김우진 상병이 고개를 돌렸다. 김일도 병장이 눈짓으로 이은호 이병을 가리켰다.
“이은호 이병 말입니까?”
“그래! 그 녀석 전달해서 불러봐.”
“네.”
김우진 상병을 릴레이로 중간에 앉은 이은호 이병에게 전달되었다.
“이병 이은호!”
이은호 이병이 고개를 돌렸다. 김일도 병장은 일단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손짓으로 자리를 바꾸자고 사인을 보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은호 이병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김일도 병장이 눈을 부릅떴다.
“잔말하지 말고, 바꿔! 이리와!”
이은호 이병이 어쩔 수 없이 김일도 병장 자리로 갔다. 김일도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나마 바람이 잘 불지 않는 트럭 바로 안쪽자리를 내주었다.
“몸 간수 잘해!”
“네. 감사합니다.”
이해진 상병도 최강철 이병을 안쪽으로 불렀다.
“강철이도 안으로 들어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됐어, 인마. 들어와.”
김일도 병장이 맨 끝으로 가서 앉았다. 뒤쪽일수록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았다.
“아, 춥다. 제대 2달 남기고 이게 무슨 꼴이야.”
김일도 병장이 투덜투덜거렸다. 그렇게 후임들을 챙기는 모습이 훈훈하게 보였다.
하지만 3중대 2소대는 좀 달랐다.
“와, 시발 진짜 춥다. 추워. 이런 날씨에 무슨 대민지원이냐.”
2소대 왕고가 트럭에 올라탔다.
“야, 내 자리 잘 데워놨냐?”
“네. 그렇습니다.”
일병 한 명이 차량 안쪽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그래. 자식이 맘에 드네.”
병장이 안쪽에 가서 앉았다. 그러면서 잔뜩 몸을 움츠렸다.
“와, 시발. 진짜 추워! 춥다고!”
병장이 소리쳤지만 주위는 그저 고요했다. 다른 후임병들은 계급이 낮을수록 바깥으로 몰려 앉아 있었다. 그중 이병 한 명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안수호.”
“이병 안수호.”
“춥냐?”
“아닙니다. 안 춥습니다.”
이미 온몸이 바들바들 떨고 있음에도 거짓으로 말하는 이등병이었다.
“너, 지금 덮고 있는 모포 이리 줘봐.”
“네?”
모포는 뒷자리 앉아서 가는 추운 사람을 위해 예비 모포를 꺼내서 준비한 것이었다. 그래서 뒤에 앉은 장병들이 덮고 있었다.
“넌 안 춥다며. 난 추워. 그러니 줘.”
“이, 이건…….”
안수호 이등병이 뭐라고 하려는데 옆에 있던 일병이 곧바로 말했다.
“야, 빨리 드려. 뭐 하고 있어.”
“네.”
무릎에 덮고 있던 모포를 주었다. 그것을 덮은 병장이 그제야 좀 살 것 같은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반면 모포까지 빼앗긴 안수호 이병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6.
마을에 도착을 한 충성대대원들은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이렇듯 도움을 주러 오셔서.”
이장이 오상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네, 당연히 와야죠.”
그렇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병력을 투입시켰다. 눈삽은 이미 마을에 준비되어 있었다. 싸리비과 넉가래를 들고 병력이 내렸다. 소대장들이 병력을 모으는 사이 각 중대장들이 모이기로 했다.
“그냥 치우면 되지. 왜 또 모이라는 거야.”
차량에서 내리는 이대우 3중대장이 투덜거렸다. 원래 3중대장은 김철환 1중대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중대장끼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사이 김철환 1중대장은 마을 이장과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일단 큰 대로변의 눈을 치워드리고, 또 뭐가 필요합니까?”
“사실 큰 도로변도 문제지만 강 씨네 하우스 두 동이 무너졌지 뭐요. 그곳하고, 저기 한 씨네 축사 쪽도 문제고. 거긴 소들 때문에 빨리 눈을 치워줘야 해요.”
마을 이장이 필요한 곳을 바로바로 알려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던 이대우 3중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장님. 저희는 도로 눈을 치워드리러 왔지. 축사까지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대우 3중대장은 여기까지 끌려 온 것도 짜증이 났다. 그런데 무슨 남의 집 축사까지 봐주는가.
마을 이장이 이대우 3중대장에게 말했다.
“아이고,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시오. 이러다가 한 씨네 소들 다 죽으면 큰일 나오.”
마을 이장이 매달리다시피 말했지만 이대우 3중대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끼리 회의 좀 하겠습니다.”
“네, 그래요.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2중대장 3중대장을 불렀다.
“3중대장, 정말 안 되겠나?”
“모릅니다. 자꾸 이런 식이면 저 못 도와드립니다. 저희는 도로에 있는 눈을 치우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주민들이 도움을 청하는데 못 들은 척할 순 없잖아.”
“그럴 시간이 있습니까? 여기 도로의 눈을 정리하는 데도 한나절 이상이 걸리는데 말입니다. 또 지금 계속해서 눈이 내리지 않습니까. 여기서 끝도 아니고, 저 안쪽 가람마을까지 정리해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안 하다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아닙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우 3중대장의 말이 맞았다. 시간적으로 도로만 정리해도 빠듯했다. 그렇다고 이장이 저렇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이것 참…….”
김철환 1중대장이 난처해하고 있을 때 2중대장이 나섰다.
“그럼 여기서 팀을 나누죠. 3중대장님은 예정대로 도로변 눈 정리에 투입하십시오. 그리고 축사 쪽은 저희 2중대중에서 한 개 소대만 빼서 움직이겠습니다. 이장님 도와드리지 않고 가면 나중에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지 않습니까.”
2중대장의 말에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2중대장이 한 개 소대를 이끌고 가서 축사를 좀 봐줘. 나머지 소대는 미리 소대장들에게 지시를 내려놓고.”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움직이자.”
각 중대별로 맡은 구역으로 이동했다. 3중대는 각 마을 좁은 길들을 우선으로 해서 제설 작업에 들어갔다.
1중대는 큰 도로변의 눈을 치웠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차량 통행이었다. 그래야 물자를 싣고 나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2중대 1소대는 축사로 향했다. 눈 때문에 무너진 축사를 돌봐야 했다. 한 씨네 할아버지가 축사를 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축사가 무너졌다면서요.”
“아이고, 어서 오세요. 저기 저쪽입니다. 지금 그곳에 소 한 마리가 갇혀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무너진 축사 쪽으로 가자 소 한 마리가 갇혀서 울고 있었다.
움머-
“기다려, 기다려. 금방 구해줄게.”
2중대장이 말을 한 후 무너진 축사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일어날 사고에 대해서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일단 눈부터 빠르게 치우도록 지시를 내렸다.
“자, 1소대. 여기 눈부터 처리하자!”
“네.”
그렇게 병력이 투입되었다. 한편, 오상진 1중대 1소대 역시 무너진 하우스 쪽으로 이동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우스 한쪽이 가라앉았다.
그때 할아버지가 나왔다. 오상진이 할아버지에게 갔다.
“할아버지 어떻게 해드립니까?”
“하아…….”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고 무너진 하우스로 가서 말했다.
“여기 눈부터 치워주시고, 무너진 하우스 뼈대를 처리해 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소?”
“네. 저희들이 해드리겠습니다.”
“고마우이, 고마우이.”
할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사실 한 해 농사를 비닐하우스에 저장에 놓았다.
그런데 이번 폭설로 인해 그 한 해 농사를 다 망치게 되었다. 그러니 나오는 것은 한숨밖에 없었다. 오상진은 그런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자자, 서두르자. 일도는 애들 데리고 눈부터 정리하고, 나머지는 하우스 있는 물건들을 빼내도록 하자.”
“네!”
“서두르자.”
오상진과 1소대원들이 곧바로 작업해 착수했다. 그렇게 약 2시간을 작업하자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당연히 점심은 전투식량과 따뜻한 국물이 있는 사발면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어떻게 군 장병이 고생하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따뜻한 잔치국수를 준비해 주었다.
“점심들 해요.”
“얘들아, 일단 작업 멈추고 밥부터 먹자.”
오상진과 1소대원들이 잔치국수 하나를 들었다. 이미 밥도 한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모자라면 말해요. 더 가져다줄 테니까.”
“네.”
장병들이 환하게 웃으며 따뜻한 멸치육수에 푹 담가진 국수를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와, 진짜 맛있다.”
“그렇지 말입니다.”
장병들 대부분 잔치국수 두 그릇에 밥까지 말아서 맛있는 김치에 먹었다. 그리고 배부르게 먹은 후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오후 네 시가 되었을 때 무너졌던 하우스를 정리할 수 있었다.
“할아버님. 일단 임시방편으로 무너진 곳을 빼내고 일단 다른 비닐로 막아 뒀습니다. 날 풀리면 그때 작업자를 불러서 고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도 작업한 곳을 바라보며 매우 고마워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국군장병들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누.”
오상진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후 1소대원들을 데리고 복귀를 했다.
“다 끝냈냐?”
김철환 1중대장이 물었다.
“네.”
“그럼 애들 차량에 탑승시켜라. 오늘은 작업 여기서 끝내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은 두 번째 마을입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네.”
그렇게 대민지원 첫째 날이 끝이 났다. 부대로 복귀해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7.
그다음 날도 아침을 먹고 난 후 대민지원을 나갔다. 어제 눈을 치운 마을을 지나 두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도 아랫마을과 같이 똑같은 상황이었다. 축사는 물론이고, 하우스까지 농작물 피해도 다수 있었다.
특히 두 번째 마을에서는 산 아래에 인삼을 기르고 있었다. 오늘은 그곳의 눈을 정리하는 데 장병들이 투입되었다.
“자자, 오늘도 사고 없이 무사히 작업 끝내자.”
“네.”
오상진도 애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그러던 중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눈을 치우고 있는 한 장병이 눈에 띄었다.
“야. 거기 너!”
“이, 이병 안수호.”
“어, 그래. 안수호 이병. 너 왜 여기 혼자서 눈을 치우고 있냐? 너 몇 중대냐?”
“3중대 2소대입니다.”
“다른 고참들은?”
“다른 곳의 눈을 치우러 갔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수호 이병을 바라봤다. 혼자서 일하는 건 둘째치고 얼굴이 빨개도 너무 빨간 것 같았다.
“너 귀마개 없어?”
“아, 아니.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 갔어? 귀까지 빨개 가지고……. 너 이러다가 동상 걸려, 인마!”
“…….”
안수호 이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오상진이 물었다.
“설마 챙겼는데 고참이 뺏어간 거야?”
“아닙니다. 제가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리긴…….”
오상진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3중대 병사였다. 1중대, 하다못해 2중대만 되었어도 오지랖을 부려 봤겠지만 3중대는 오상진이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