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13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5)
4.
-특보입니다. 경기도 광주 지역에 때아닌 폭설로 인해 최고 30㎝의 적설량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인근 지역 주민과 작물에 큰 피해를 입은 상황입니다.
군청과 동사무소는 이번 폭설로 인해 전화통이 난리가 났다. 특히 시청과 민원실의 전화기는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울렸고 덕분에 민원실 직원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민원실로 자리를 옮긴 조 주임 앞으로도 쉴 새 없이 전화가 왔다.
“네, 광주시청 민원실 조 주임입니다.”
-나야. 이장.
“하아. 네, 이장님. 무슨 일이세요?”
-우리 마을 이번에 폭설로 고립이 되었어. 빨리 눈 좀 치워줄 수 있겠나? 이러다가 우리 여기서 다 죽게 생겼어.
“기다려 보세요. 안 그래도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놈의 만날 알아본다는 말만 하지 말고. 공무원이나 되어서 왜 이렇게 일을 대충 하는 거야?
“이장님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저희도 놀고 있는 줄 아십니까?”
-알아, 아는데……. 급해서 그러지, 급해서.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에 젊은 사람이 없어. 죄다 노인들뿐이잖아. 게다가 여기서 눈이 더 오면 우리 꼼짝도 못 해.
“하아……. 이장님 제가 안 보내주려고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입니다. 이장님도 사정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장님 마을뿐만이 아니라. 그 아래 마을도 그렇고, 그 옆 마을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도 인력이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조 주임, 너무하네. 자네가 그래도 우리 마을 사람인데 우리 마을로 먼저 보내줘야지.
“왜 그러십니까. 저 공무원입니다. 사사로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이 발언 이장님도 위험하다는 사실 아시죠?”
-아, 미안, 미안. 사과하겠네. 그래도 좀 도와줘.
“알겠어요. 저도 최대한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니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려, 부탁하네.
“네.”
조 주임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잔뜩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누군 놀고 있는 줄 아나. 그리고 우리 엄마 계실 때 잘하지 좀. 엄마도 안 계시는데 마을 사람 취급이야.”
김한솔 팀장이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조 주임, 왜 그래?”
“어, 팀장님.”
“무슨 일이기에 그래?”
“아니. 가람마을 이장님 전화입니다.”
“거기 자네 동네잖아.”
“네.”
“아이고, 큰일이네. 지금 사방팔방에서 다 난리인데. 그래도 제설 차량을 빨리 파견해야 하지 않겠어?”
“파견시키고 싶어도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하긴, 그 마을뿐만이 아니라, 다른 마을도 폭설 때문에 난리지, 난리야.”
“네,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요도에 따라 파견하는데 노인네들이 집에만 있으면서 뭐가 그리 문제라고 저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잘 처리해. 알아서…….”
“네. 알겠습니다.”
김한솔 팀장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자신의 자리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멈칫하고는 몸을 돌렸다.
“참, 조 주임.”
“네.”
“그러지 말고 우리 대민지원을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
“대민지원 말입니까?”
“그래. 이럴 때를 위한 대민지원 아니야.”
“이런 한겨울에 군인들이 오겠습니까?”
“얘기를 잘 해봐야지. 아, 그 있잖아. 예전에 멧돼지 잡았던 그 부대 말이야. 그곳에 요청하면 되잖아.”
멧돼지란 말에 조 주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부대 말입니까.”
“그래. 그때 거기 장교 한 명이 명예시민상도 받았잖아. 그곳에 부탁하면 올지도 모르지.”
조 주임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건 그거고……. 나쁘지 않겠네. 명예시민상까지 받았는데 거절하지는 않겠지.’
조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대민지원 공문 보내겠습니다.”
“그래, 그래. 자네가 잘 알아서 해봐. 어차피 모르는 사람도 아니잖아.”
“그렇죠.”
“설마 자네 아직도 지난 멧돼지 사건으로 꽁해 있는 것은 아니지.”
“아닙니다. 제가 애입니까.”
“그래, 자네가 그럴 줄 알았어. 아무튼 그 일은 그렇게 처리하자고.”
“네.”
조 주임은 빠르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5.
한편, 충성대대는 오늘도 부대 주변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하아, 시발. 뭔 놈의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하루걸러 눈이냐.”
김우진 상병이 싸리비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온통 짙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에잇, 빌어먹을…….”
쏴아, 쏴아.
김우진 상병은 괜히 싸리비에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최강철 이병도 입김을 불어대며 싸리비로 눈을 치웠다.
“후우, 눈이 예쁘다는 말 취소. 처음에는 괜히 좋고 그랬는데……. 지금은…….”
최강철 이병은 옆에 고참이 있어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쓸어도 쌓이는 눈을 보며 이해진 상병에게 물었다.
“이 상병님 눈이 오는데 왜 자꾸 청소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눈 그치고 나면 그때 해도 되는데 말입니다.”
“네 말도 맞아. 그런데 윗대가리들은 병사들이 노는 꼴을 못 봐. 그래서 치우고 쓸고, 또 치우고 그러는 거지.”
“와, 정말입니까? 진짜 나쁜 사람들이네.”
최강철 이병이 투덜거렸다. 이해진 상병은 최강철 이병의 행동이 귀여웠다.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전투력 손실이라나? 이렇듯 몸을 놀려야 한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그래도 이게 무슨 뻘짓인지 모르겠습니다.”
“후후후. 그래 뻘짓이지.”
“이제 겨울이 싫어지려고 합니다.”
이해진 상병이 후후후 웃음을 흘렸다. 한쪽에서는 오상진도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때 행정계원에 뛰어 내려왔다.
“1소대장님.”
오상진이 고개를 들었다.
“어, 왜?”
“중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중대장님?”
“네.”
“알았다.”
오상진은 싸리비를 옆에 있는 이은호 이병에게 주고 중대장실로 갔다.
“중대장님 저 찾으셨습니까?”
“어, 상진아. 어서 와라.”
김철환 1중대장이 손짓을 했다. 오상진이 앞으로 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상진아, 이번에 경기도 광주 지역에 폭설 내린 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대민지원 요청 공문이 내려왔다. 눈 좀 치워달라네.”
“중대장님 저희가 그럴 여력이 어디 있습니까. 그쪽이라면 저희 부대 말고도 가까운 부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맞긴 한데 광주시청에서 콕 집어서 우리 부대를 요청했네. 그리고 너 명예시민상도 받았다며.”
“네.”
“이야, 그거 하나 주고 제대로 우려먹을 생각인가 보다.”
“그럼 저희만 가면 됩니까?”
“그건 봐야 하는데……. 어쩌면 중대 전체가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상진은 살짝 미안해졌다. 자기 때문에 1중대 전체가 또 대민지원을 나가야 할 판이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죄송은 무슨…….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무튼 그런 줄 알고 준비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전투모를 챙겨서 일어났다.
“나, 작전과에 다녀올 테니까. 일단 준비하고 있어.”
“네.”
잠시 후 작전과에 다녀온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이 실실 웃고 있었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을 만났다.
“대대장님, 어떻게 얘기 잘 되었습니까?”
“어어! 잘 되었지.”
“그런데 중대장님 표정이 좋아 보이십니다. 혹시 저희 대민지원 안 갑니까?”
“아니! 가.”
“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후후후, 우리만 가는 것이 아니거든.”
“예?”
“3중대도 간다. 3중대도!”
“3중대도 같이 가는 겁니까?”
“그래! 우리 대대장님이 대민지원을 가는데 그래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3중대도 함께 가라고 했다. 아, 2중대도 함께 가.”
“2중대까지 말입니까?”
“그래. 대대장님이 콕 집어서, 1중대, 3중대, 5중대 이렇게 가라고 말이야.”
“와, 대박이네요.”
“그치. 요즘 우리 대대장님 정말 맘에 든단 말이야.”
김철환 1중대장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실실 웃었다. 오상진은 중대장실을 나와 휴대폰을 꺼냈다.
-소희 씨 저 대민지원 가요.
오상진이 메시지를 보내자 곧바로 한소희에게서 답장이 왔다.
-대민지원요? 이 겨울에요? 왜요?
-눈 치우러 가야 해요.
-아니, 군인이 무슨 노예도 아니고, 그런 거로 부려먹고 그래요. 이해가 안 되네. 거기가 어디예요. 내가 신문고에 신고해 버릴게요.
-그러지 마요. 군인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겁니다. 대민지원 역시 같은 맥락이고요.
-언제 끝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눈이 안 와야 하는데……. 크리스마스 때 내리고 말지. 갑자기 눈이 꼴 보기 싫어졌어요.
오상진은 그 톡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 소희 씨가 불만이 많은 것 같네.”
-혹시 연락이 안 돼도 이해해 줘요.
-네, 알았어요.
오상진은 메시지를 확인한 후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다음 날 1중대와 2중대, 3중대가 각각 육공트럭을 타고 경기도 광주로 향할 준비를 했다. 칼 추위에 중대원들은 반만의 준비를 했다.
“다들 내복은 다 입었지?”
“네.”
“귀마개도 하고, 다른 것 준비는 다 했냐?”
“네. 했습니다.”
“많이 춥다. 다들 옷을 단단히 갖춰 입어라.”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소대원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싸리비과 넉가래 상태를 확인했다.
“제설 장비는 충분히 챙겼지?”
“네.”
“그래!”
오상진은 확인을 다 한 후 차량에 올라탔다. 잠시 후 김철환 1중대장이 차량에 탔다.
“소대원들은 다 탔고?”
“네.”
“그래. 출발하자.”
운전병이 대답했다.
“네.”
앞 선두에는 헌병대 차량이 있었다. 그 차량이 도시 주변 차량들을 통제할 생각이었다. 헌병대 차량을 선두로 대대장 차량과 각 중대별 육공트럭이 움직였다. 육공트럭 20대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차량을 타고 가던 오상진이 힐끔 뒤쪽 창을 봤다. 덮개를 씌우지 않은 차량에 소대원들이 서로 밀착한 상태로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오상진이 안쓰럽게 바라봤다.
“저기 중대장님.”
“왜?”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버스 정도는 지원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 훈련 상황도 아니고, 대민지원을 나가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1소대장. 내가 말을 하지 않은 줄 아냐? 그렇지 않아도 그런 소리를 했다가 된통 혼났다. 대대장님에게 말이다.”
“대대장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군인이 군인 정신이 있어야지, 버스는 무슨 버스야! 이렇게 큰소리치더라.”
김철환 1중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지 말입니다.”
“너도 알잖아.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잘 몰라. 어쩔 수 없잖아. 이해해라.”
“그래야죠.”
오상진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육공트럭 중앙쯤에 이은호 이병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앉아 있었다. 최대한 밀착해서 앉아 있지만 칼바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볼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으으으, 춥다.”
이은호 이병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일도 병장이 말했다.
“은호야.”
하지만 이은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차량의 소음과 칼바람 소리, 게다가 귀마개까지 하고 있어 바로 옆 사람의 얘기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은호!”
김일도 병장이 강하게 불러봤지만 이은호 이병은 전혀 듣질 못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옆자리에 있는 김우진 상병을 툭 쳤다.